128화. 갑질 폭로 (3)
민홍수는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언론이 양측 입장을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누워 과자를 집어먹던 안현철은 소리 내서 웃었다.
“푸하하! 광고를 그렇게 받아 처먹었는데 공정할 리가 있나? 언론사는 구독자가 아닌 광고주의 사랑을 먹고 사는 법이지.”
“그래도 기사조차 안 내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안현철은 수염을 긁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차피 기사가 나오든 말든 국민연금은 찬성할 거야.”
“글로벌 경영컨설팅 업체들이 다들 반대의견을 내고 있는데도요?”
“언제 이 나라가 그런 거 신경이나 썼어? 재벌은 정치권에 바라는 게 있고, 정치권 역시 재벌에게 바라는 게 있지. 이미 서로 얘기 끝났을걸.”
대부분의 전문가들 역시 국민연금의 찬성을 예측했다.
국민연금 운용본부장은 오영환 대통령의 측근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청와대의 뜻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민홍수는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밖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들었다.
‘한정그룹과 청와대 사이에 교감이 이뤄졌다면, 그 과정에서 대가가 오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을 파고들면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본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미루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프리머스 사태 때문. 그런데 이후 그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민홍수에게 코발트 게이트에 대해 제보했다.
놀랍게도 제보 내용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 일로 인해 외교부 차관과 비서실장의 목이 날아갔으니.
‘그리고 나도 그만뒀고.’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기자님. 한미루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아직 중흥경제신문에서 일하고 계시죠?]
“아! 제가 지금은 다른 언론사로 옮겼습니다.”
[어느 언론사인가요?]
“뉴스트리거입니다.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부연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상대는 바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안현철 기자님이 창업한 인터넷 언론사죠. 좋은 곳으로 옮기셨네요.]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은 목소리다.
‘내가 이직한 걸 알고 있었나?’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한번 만날 수 있겠습니까? 할 얘기도 좀 있고 해서요.]
지금은 한정그룹 관련해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요즘 좀 바빠서······.”
[한정그룹과 관련된 일입니다.]
“······예?”
* * *
민홍수는 강남의 카페에서 한미루를 만났다.
“오랜만이네요.”
“예.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일전에 한 차례 만났었던 만큼 어색함 없이 인사를 나눈 다음 자리에 앉았다.
민홍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정그룹과 관련된 일이라는 게 뭔가요?”
그러자 한미루는 말 대신 녹음기를 꺼내 내밀었다.
“먼저 이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이게 뭡니까?”
“들어보면 아실 겁니다.”
민홍수는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았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쌍욕이 들려왔다. 순간, 놀라서 이어폰을 뺄 뻔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 듣는데 ‘주현진 이사님’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뭐야? 욕한 사람이 주현진 이사야?’
그는 계속해서 녹음을 들었다.
편집을 했음에도 5시간이 넘는 분량이다. 그리고 내용 대부분은 욕이었다.
민홍수는 중요한 부분만 넘기듯 빠르게 돌려 들은 다음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뺐다.
“주민재 회장 막내아들 주현진입니까?”
“예.”
“녹음한 사람은 운전기사겠군요.”
“맞습니다.”
민홍수는 의아하다는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이 녹취는 대체 어떻게 입수한 겁니까?”
“당사자에게 직접 받았습니다.”
“이걸 제보하시는 이유는요?”
한미루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총수일가의 잘못된 행동을 세상에 알리는 게 언론 본연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민홍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뉴스트리거는 작은 인터넷 언론사입니다. 중흥경제신문 같은 메이저 언론사에 비하면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다.”
“그 메이저 언론사가 과연 이 기사를 실어줄까요?”
민홍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벌들이 운전기사나 가사도우미, 직원 등에게 행패를 부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한정그룹 총수일가의 갑질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죠. 저 역시 예전에 비슷한 기사를 한번 썼는데 결국 실리진 않았습니다.”
“중요한 광고주 심기를 건드리고 싶진 않을 테니까요.”
“저희는 그런 눈치를 보지 않으니 기사를 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잠깐은 시끄러울지 몰라도 적당히 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떻게 될 거라고 예상하시나요?”
“한정그룹에서는 주현진 이사를 해임하며 꼬리 자르기를 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잘못을 퍼트리며 여론을 물타기 할 테고. 이 정도면 구속될 정도의 사안도 아닌 만큼 적당히 벌금으로 끝나거나 피해자와 합의할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론이 가라앉으면 슬그머니 자리로 복귀하겠죠.”
한미루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마치 앞날을 내다보는 것 같은 정확한 예상이네요. 그래도 지금은 한정그룹은 합병을 앞두고 있죠. 이런 내용이 흘러나가면 합병에 안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민홍수는 잠시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슈가 되긴 하겠지만 합병에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주철진 부회장이 이랬다면 모를까 주현진 이사의 갑질 정도로는 대세를 뒤집기 힘듭니다.”
“그럼 이걸 한번 들어보시죠.”
민홍수가 다시 이어폰을 꽂자 한미루는 다음 녹음 파일의 재생을 눌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주현진 이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욕이 아닌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주민재 회장이 대통령을 만나 국민연금의 찬성을 부탁했다구요?”
한미루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부탁이요?”
“왜 웃으십니까?”
“그냥 들어달라고 말하는 게 부탁이지, 그 과정에서 대가가 오가면 보통 부정청탁이라고 하죠.”
그 말에 민홍수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대가요? 무슨 대가가 오갔다는 겁니까?”
“만약 한정그룹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대통령의 차명 재단에 100억을 기부했다면요?”
“······.”
민홍수는 할 말을 잃었다.
국민연금 합병 찬성을 대가로 재단을 통해 뇌물을 받았다니!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정치권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주현진 이사의 발언에는 ‘만나서 부탁했다’는 것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죠.”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며 흘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을 한 사람은 한미루.
다름 아닌 프리머스 사태를 터트리고, 코발트 게이트를 제보한 장본인이다. 그때도 정권의 주요 인사가 관련되어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 정보를 얻은 거지? 그리고 주현진의 운전기사와는 대체 무슨 관계야? 이걸 제보한 이유는 한정그룹 합병을 방해하기 위해서? 대체 왜?’
열심히 생각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
모를 땐 혼자 고민하지 말고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최고다.
“이 정보는 어디서 얻은 겁니까? 운전기사와는 어떻게 만났고, 이걸 제보하는 이유는 뭡니까? 어째서 한정그룹 합병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겁니까?”
“궁금한 게 많으시네요.”
당연하다.
사실이라면 특종도 이런 특종이 없으니.
한미루는 서류봉투를 하나 꺼내들었다.
“필요한 내용과 입증할 서류는 이 안에 다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가 손을 뻗자 한미루는 서류를 뒤로 빼며 말했다.
“이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뉴스거리입니다. 이런 기사를 가장 먼저 내면 엄청 대박이겠죠?”
“그, 그렇겠죠.”
그 말대로다.
처음 쓰면 언론은 ‘단독’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지만, 남들보다 1초만 늦게 내도 다른 받아쓰기밖에 안 된다.
“외신 역시 크게 보도할 테고. 그럼 최초로 보도한 기사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겠네요.”
한정그룹 합병안은 엘리언트라는 미국계 헤지펀드까지 끼어든 국제적인 사안이다. 여기에 청와대까지 얽혀 든다면?
당연히 전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민홍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원하는 게 뭡니까?”
“주현진 이사 갑질 사건, 오늘 저녁까지 기사로 내보낼 수 있겠어요?”
“오늘 저녁이요? 그건 너무 빠릅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건지는 의문이지만 제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욕설도 욕설인데, 부정청탁이라니. 이게 사실이라면······.’
한미루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녹음 파일은 드릴 테니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그럼 전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민홍수는 다급하게 상대를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왜 그러시죠?”
“그 자료는 안 주십니까?”
그의 물음에 한미루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 이건 오늘 기사를 얼마나 잘 쓰는지 봐서요.”
“······.”
또 이 소리야?
* * *
난 카페를 나오며 기억을 떠올렸다.
원래 중흥경제신문의 기자로 있던 민홍수는 뉴스트리거라는 소규모 언론사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유는 훗날 그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특종을 냈기 때문.
그 특종이 바로 K문화재단에 대한 것이다.
민홍수는 한정그룹 지주회사 합병 관련 기사를 쓰던 도중 한정그룹의 비자금이 페이퍼컴퍼니로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그 돈이 뇌물로 쓰였을 거라 추측하고 그 부분을 파고들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3년 후.
파나마에 위치한 페이퍼컴퍼니 전문 로펌의 비밀자료가 유출되며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해당 자료에는 그들이 관리하는 페이퍼컴퍼니의 실소유주에 대한 정보들이 담겨있었다.
전 세계 유명인들은 물론이고, 한국 재벌, 정치인, 연예인들의 이름도 다수 튀어나와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중 에이티제이라는 페이퍼컴퍼니의 소유주는 양지숙으로, 다름 아닌 주민재의 아내이자 주철진의 엄마였다.
그리고 에이티제이는 한정그룹 합병안 직전 100억을 K문화재단이라는 곳에 기부했다.
민홍수는 이 사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썼고, 이는 정권 차원의 뇌물 비리로 번졌다.
관련 의혹만 해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사가 나온 시점은 합병이 끝나고 대통령은 퇴임한 이후.
지난 정권의 비리인 만큼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관심은 금세 가라앉았다.
기업들의 뇌물은 문화발전을 위한 자발적인 기부로 포장되었고, 검찰 조사에서도 대가성이 없었다며 흐지부지 결론이 났다.
물론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K문화재단과 관련한 사안은 그가 취재해 밝혀낸 것이고, 이는 훗날 엘리언트 매니지먼트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는 근거가 된다.
한마디로 미래의 민홍수가 쓸 기사를 현재의 민홍수에게 건네준 셈이다.
“기사 잘 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