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갑질 폭로 (2)
참다못한 운전기사는 주현진을 고소했고, 그동안 몰래 녹음한 파일을 언론에 터트렸다.
거기에 나온 주현진의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단지 욕하고 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운전기사를 아예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다. 개새끼, 소새끼 같은 욕은 기본이고, 장애가 있는 아들을 조롱하질 않나, 운전 중에 폭행을 하질 않나.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갑질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기사가 나고 여론이 들끓자 주현진은 이사직을 사임하고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터트린 시기가 안 좋았다. 당시는 합병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난 뒤였으니까.
그 시점에서 지난 일들을 터트려봐야 총수일가에게는 별 타격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걸 덮는 과정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예전에 폭행으로 두 차례 벌금 낸 적 있으시죠? 음주운전으로 한 차례 면허취소됐었고.”
내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갑질을 폭로하면 한정그룹 측에서는 그 부분부터 걸고넘어질 겁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내분이 집을 나간 것도 가정폭력 때문이라고 할 거고, 아드님이 과거 학교에서 폭력을 당해 치료받은 것도 아버지의 폭력 때문이라고 몰아갈 겁니다. 또한 평소에도 자주 음주운전을 해서 주현진 이사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주의를 주는 과정에서 욕설을 몇 차례 했다는 식으로 물타기 하겠죠. 메시지를 공격하지 못한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여론을 뒤집을 때 흔히 쓰는 방식입니다.”
언론들은 재벌가의 갑질 문제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운전기사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았다. 그러고는 거액의 합의금을 노린 계획적인 일이라는 쪽으로 몰아갔다.
난 당시의 인터넷 반응을 떠올렸다.
-저런 전과가 있는데 취직이 되나?
-이력서를 거짓으로 쓴 거지.
-음주운전한 놈을 누가 개인기사로 쓰겠음? 주현진이 완전히 속은 거지.
-ㅋㅋㅋ ㅈㄴ 반전.
-ㅇㅇ 알고 보니 운전기사가 개새끼.
-운전기사랍시고 고용했더니 음주운전 처하고 있으면 나 같아도 욕 나올 듯.
-합의금 받아먹기 위해 일부러 욕설 유도한 거 아님?
-저거 불법 녹음 아닌가? 저런 건 처벌 안 되나?
-회사 기밀 같은 것도 녹음했을 텐데. 강력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애초에 녹음한 게 회사 정보 같은 거 얻어서 외국 경쟁사에 돈 받고 팔려고 했을 수 있음.
-주현진 이사가 폭행당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애초에 그렇게 욕먹으면서 3년 가까이 운전기사를 했다는 게 말이 됨? 지도 좋으니까 계속 했겠지.
-와! 진짜 저런 인간을 3년이나 데리고 있으면서 월급 준 주현진이 보살이네.
-역시 양쪽 말 다 들어봐야 함.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주현진을 비난하고 운전기사를 동정하던 여론은 어느 순간 ‘둘 다 나쁜 놈이다’ 또는 ‘그놈이 그놈이다’가 되었고,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주현진 이사가 오히려 피해자다’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비난 여론을 견디지 못한 운전기사는 한정그룹이 내민 합의서에 사인했다.
주현진은 재판에서 폭행은 인정되지 않고 폭언만 인정돼 벌금으로 끝났고,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들 때쯤 슬그머니 원래 자리로 복귀했다.
난 눈앞에 있는 그 운전기사를 보았다.
주현진 성격이 지랄 맞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때문에 운전기사들도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그만뒀는데 그는 벌써 2년을 넘게 버텼다.
재벌가 운전기사라고 하면 월급을 많이 받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딱 남들 받는 만큼 받는다.
가끔 팁 정도는 받겠지만.
꾸준히 폭언과 폭행을 당해왔다면 어째서 그만두지 않은 걸까? 그야 당연히 생계 때문이겠지.
다른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을 테고.
“한국에서 재벌을 고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그는 비웃는 투로 말했다.
“잘 알고 있다구요? 겪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걸 안다는 겁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겪어봤으니까 알죠.”
“예?”
“프리머스 사태 아시죠?”
“대충은 압니다.”
“그거 제가 터트렸습니다.”
“······.”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프리머스 사태에서는 재계에서도 이슈였다. 딱히 뉴스를 챙겨보지 않더라도 재벌가 운전기사쯤이면 귀동냥으로라도 한 번쯤 들어봤겠지.
“대체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혹시 주현진 이사의 폭언과 폭행이 담긴 파일이 있다면 저한테 넘겨주세요.”
내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누, 누가 몰래 녹취를 했다는 겁니까!?”
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 몰래 녹취했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
“······.”
“그런데 정말로 안 했나요?”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대체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겠지.
난 놀라는 그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평생 터트리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대로 가지고 계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터트릴 생각이라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입니다.”
“유일한 기회요?”
“아시겠지만 지금 한정그룹은 지주회사 합병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총수일가의 갑질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한정그룹이 이길 거 아닙니까?”
“과연 그럴까요?”
내 말에 그는 의문을 나타냈다.
“무슨 말입니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지금 김승도 씨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의 얼굴에서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는 만큼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일자리가 걱정이시라면 그 문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또한 폭로 이후에 발생할 문제들도 확실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전 주현진 이사와 사이가 매우 안 좋습니다. 운전하시면서 제 욕하는 걸 질리도록 들으셨을 겁니다. 둘째로 주현진 이사의 갑질을 폭로하는 게 저한테 도움이 됩니다. 전 이 사건을 합병 반대에 이용할 생각이니까요.”
그는 어째서 몰래 녹음을 했을까?
그야 당연히 주현진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노예도 폭발하면 주인을 칼로 찌른다.
어차피 가만히 놔둬도 그는 반년 뒤에 폭로를 하게 되어있다. 내가 할 일은 그 결심을 앞당겨주는 것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 남 밑에서 일하는 건 노예나 노동자나 똑같습니다. 노예는 주인을 위해 일하고, 노동자는 고용주를 위해 일하죠. 그럼 이 둘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만 팔지만, 노예는 노동력과 함께 인격까지 판다는 겁니다. 인격이 없는 존재는 인간이 아닙니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욕하고 때려도 처벌을 받지 않는 거죠.”
그의 얼굴에서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난 그를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다시 말해 고용주가 직원을 욕하고 때린다면, 그건 직원을 노동자가 아닌 노예로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노예의 자식 역시 노예입니다. 그러니 같은 취급을 하는 겁니다.”
내 말에 그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자신이 노예 취급당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마저 그런 취급을 당한다면 어떤 아버지가 참을 수 있겠는가?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만약 정말로 녹취 같은 게 있다고 한다면 주현진 이사를······ 주씨 일가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어느새 생기 없이 흐리멍덩하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노예도 화가 나면 주인을 찌른다. 그리고 주인을 찌른 노예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난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예. 제가 확실하게 끝장을 내겠습니다.”
* * *
중흥경제신문이 한국 최고의 경제 일간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정재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덕분이다.
지금도 어용언론이라는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곳의 기자인 민홍수는 KNC인터내셔널 주가조작 의혹을 최초 보도했다. 이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고 열 배 넘게 폭등했던 주가는 동전주로 폭락했다.
어떻게 보면 늘상 있는 주가조작 사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외교부가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
이 일로 인해 외교부 차관이 구속됐고, 현 정부의 실세라 할 수 있던 김한수 비서실장까지 날아갔다.
그저 주가조작 사건을 알렸을 뿐인데 본의 아니게 정권을 저격한 셈이 됐다!
청와대와 새한국당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왜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냐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보도국장은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냐며 길길이 날뛰었다.
“너만 잘났어? 기사를 쓰기 전에 얘기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만약 이거 잘못됐으면 어쩔 뻔했어?”
민홍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잘못됐습니까?”
“그러니까 허위가 있었으면······.”
“없었잖습니까?”
“······."
그 말에 김주용 국장은 당황했다.
실제로 그가 쓴 기사 내용은 전부 사실로 밝혀졌다. 사실이니까 문제가 됐다. 오보였으면 차라리 별문제 없었겠지.
“그, 그러니까 잘못됐으면 말이야, 잘못됐으면! 앞으로 기사 쓰는 거 다 나한테 올려서 검토 맡아.”
민홍수는 딱 잘라 말했다.
“싫습니다.”
“뭐?”
“검토가 아니라 검열을 하겠다는 거잖습니까?”
할 말이 없어진 보도국장은 일단 큰소리쳤다.
“니 멋대로 할 거면 관둬!”
민홍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관두겠습니다.
“······응?”
박봉에 야근 같은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쓰고 싶은 기사를 못 쓰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결국 민홍수는 입사한 지 3년 만에 사표를 쓰고 중흥경제신문을 나왔다.
민홍수의 학과 선배인 안현철은 KBC 기자로 있던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에 큰 회의를 느꼈고, 제대로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직접 언론사 사주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행히 그는 금수저였다.
대형병원 원장인 아버지의 지원을 받은 그는 KBC를 때려치우고 나와서 직접 인터넷 언론사를 차려서 뜻이 맞는 기자들을 모았다.
그렇게 ‘뉴스트리거’가 탄생했다.
선배의 요청을 받은 민홍수는 이곳으로 이직했다.
뉴스트리거는 홈페이지와 페이스노트, 에이튜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사를 업로드했다.
제작진이라고 해봐야 대표를 포함해 고작 7명.
인원이 적다 보니, 취재와 기사 작성뿐 아니라 홈페이지 관리와 SNS 업로드 등 여러 잡일까지 맡아야 했다.
또한 중흥경제신문에 있을 때는 명함만으로도 쉽게 관공서와 기업을 출입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월급은 반토막이었다.
하지만 민홍수는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지금 상황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최근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는 한정그룹 지주회사의 합병이었다.
며칠 전, 맥컬리 컨설팅에서는 합병비율이 잘못 산정되었고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엘리언트는 이를 근거로 국민연금 측에 공식서한을 발송하며 압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류 언론들의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