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연말 (120/529)

 121화. 연말

 ‘그 사건’이 발생한 건 새벽 3시.

 20대 남성 한 명과 여성 두 명이 집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남성은 가지고 있던 마약을 두 여성에게 투약했다.

 그런데 너무 많이 투약했는지 여성은 극심한 신체의 이상을 느꼈고,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 자리에서 마약에 취한 남성을 체포했다. 체포 당시 남성은 마약에 취했는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놀랍게도 남성의 정체는 KDK의 리더이자 래퍼인 씨랩이었다!

 [씨랩, 마약 투여 혐의로 현장 구속]

 [집에서 여성 두 명과 함께 마약 투여!]

 [현장에서 필로폰 압수. 200명이 한 번에 투여할 수 있는 양!]

 [지속적으로 마약을 투여해온 것으로 추정]

 [씨랩, 강제 투약이 아닌 여성들과 합의하에 투여한 거라 주장······]

 -한류스타 스케일 지리네.

 -마약 할 거면 지 혼자 할 것이지 왜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미친놈 아니야?

 -마약 하나도 나눠서 하는 인성. 씨랩 다시 봄.

 -한국에서 필로폰 비쌀 텐데. 저 비싼 걸 무상 나눔하다니.

 -퍽이나 좋은 거 나눠준다~

 -그 시간에 여성 둘과 왜 한집에 있어?

 -부럽다 ㅜㅜ

 -취해서 어쩌고 하던 가사가 알고 보니 약에 취한 거였네.

 -이번 기회에 아예 씨랩이 아니라 뽕랩으로 이름 바꾸고 마약돌로 전향하자.

 -기왕 이렇게 된 거 멕시코나 콜롬비아에서 마약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건 어떨까?

 -히로뽕~ 히로뽕~ 신나는 마약~ 나도 한번 맞아보자~

 -쿵쿵짝! 쿵쿵짝!! 쿵짝쿵짝!!!

 여기서 끝났다면 그냥 평범한(?) 마약사범으로 적당히 집행유예를 받고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집안에 숨겨놓은 마약을 찾는 과정에서 침실과 화장실에 설치해 놓은 카메라가 발견되었다.

 또한 씨랩이 가지고 있던 핸드폰과 노트북에는 몰래 찍은 걸로 보이는 여성의 신체 사진과 성관계 동영상들이 가득했다.

 심지어는 이걸 단톡방을 만들어 지인들과 공유까지 했다!

 여성 피해자는 한둘이 아니었고, 그중에는 유명 아이돌과 모델, 배우도 있었다.

 [KDK 씨랩, 단체 대화방에 불법 촬영 영상 유포]

 [경찰, 씨랩 집과 사무실 압수수색.]

 [스마트폰과 컴퓨터 수거해 디지털 포렌식]

 [여성을 대상으로 마약 투여 후, 지인들과 집단 성폭행]

 [경찰에 신고하려는 여성에게 마약 공범이라며 협박]

 [확인된 피해자만 최소 50명. 연예인들 다수 포함]

 [경찰 추가 범행 조사 중]

 워낙 충격적인 일이라 이는 외신에도 대서특필됐다.

 연예계는 발칵 뒤집혔고,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성폭행에 몰카에 유포까지?

 -뭔 성범죄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냐?

 -ㅅㅂ 이런 새끼가 한류스타라니!

 -TV 나와서 가오란 가오는 다 잡더니 완전 인간쓰레기.

 -단톡방에 있던 나머지 여섯 명은 누구야?

 -피해자들 중에 여자 연예인들도 많다는데. 유명 가수와 아이돌도 있다고 하고.

 -제목인 ‘너의 사진’이 설마 그 사진이었어?

 -이거 지금 해외토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와아! 나라 망신 아주 제대로 시키네 ㅡㅡ;

 -중국이었으면 사형인데~

 소속사는 모든 스케줄을 중지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 했지만 사태는 연예계 전체의 마약과 성폭행 스캔들로 번졌다. 국민신문고에는 모든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마약검사를 해야 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기자와 에이튜버 등은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단톡방에 있던 공범과 피해 여성으로 추정되는 연예인들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기자들은 멋대로 기사를 썼다.

 이름이 거론된 연예인들 중 관련이 없는 이들은 강하게 부인했지만 어차피 다들 진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조회수를 노린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에 또 다른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피해자 중 가장 많이 이름이 거론된 여성은 다름 아닌 이번 신곡의 피처링을 맡은 케이나였다.

 누가 뿌렸는지 모르겠지만 심지어는 인터넷에서 합성사진까지 나돌았다.

 지유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보며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만약 내가 피처링을 했다면······?’

 그랬다면 지금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케이나가 아니라 그녀였을 것이다. 가뜩이나 신인인 입장에서 이런 사건에 연루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이다.

 나중에 아니라는 게 밝혀지더라도 한번 실추된 이미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활동을 접었을지도······.

 그런데 그런 상황을 간신히 피했다.

 “그 사람 말이 맞았어.”

 * * *

 주식 매수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사이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우는 새로 산 소파에 누워 새로 산 TV를 보고 있었다.

 “넌 연말인데 집에 안 가냐?”

 “설에나 가려고. 너는?”

 “나도.”

 보고 있는 것은 가요 프로그램.

 “요즘 저쪽은 난리도 아니던데. 뭔 마약에 성폭행에 몰카에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며?”

 “그러게.”

 1회차 때도 딱 이맘때쯤 터져서 가요계가 발칵 뒤집혔던 것 같다.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된 남자 연예인만 일곱 명. 씨랩은 구속됐고 나머지는 불구속 입건됐다.

 아직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자들은 벌써부터 온갖 추정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이미 가해자와 피해자 명단이 나돌고 있었다.

 대부분 틀렸지만 원래 이런 건 아니면 말고 아니겠나?

 선우는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노래 좋더라. 제목이 뭐였더라?”

 “봄을 그리며.”

 “아, 맞다. 쟤 한국대 출신이라며? 혹시 본 적 있어?”

 “예전에 한 번.”

 원래대로라면 지유는 지금 시점에서 씨랩의 ‘너의 사진’의 피처링을 맡았고, 저 노래는 사건이 터진 뒤 공개된다.

 듣고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시는 사건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 제대로 활동을 못 해서 그냥 묻혔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처링을 맡지 않으며 신곡을 빨리 공개했고, 열심히 활동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선우 옆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들어 나한테 연락 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에는 누굴까?

 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미루 선배님 번호 맞나요?]

 여자인데 왠지 목소리가 좀 익숙하다. 방금 전까지 듣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맞는데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전 지유나라고 합니다.]

 “지유나? 그게 누군데요?”

 [혹시 지유라고 하면 아시나요? 지난번에 술자리에서 만났었는데.]

 “아!”

 지유나가 본명이었나?

 “제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언니한테 물어봤어요.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여기서 언니란 내 동기이자 전 여친인 진세연.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왜요?”

 [드릴 말씀도 좀 있고 해서요.]

 왠지 꼭 만나줬으면 하는 느낌이다.

 “몇 시쯤 괜찮아요?”

 난 시간과 장소를 정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선우가 물었다.

 “누구야?”

 “그냥 아는 사람.”

 “여자 같은데.”

 “여자면?”

 “윤아 씨한테 이르게.”

 “······.”

 이걸 왜 일러?

 * * *

 자정을 넘긴 늦은 밤.

 난 24시간 카페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저도 방금 왔어요.”

 스키니진에 어글리슈즈, 그리고 엉덩이까지 가리는 커다란 흰색 후드티를 입었다. 그녀는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티를 벗었다.

 방금 전까지 TV에서 보던 가수가 눈앞에 있으니 약간 신기한 느낌이다. 그리 큰 키가 아닌데도 비율이 좋은 걸 보면, 대체 머리가 얼마나 작은 거지?

 확실히 귀엽다.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늦은 시간인지라 카페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얘기하거나 노트북이랑 핸드폰 하느라 바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큰 관심이 없는 법이지.

 “아! 커피는 제가 살게요.”

 난 그녀에게 말했다.

 “이미 주문하는 중이에요. 뭐 마실래요?”

 “예? 그, 그럼 탄산수로. 제가 커피를 잘 못 마셔서요.”

 “주스나 에이드도 있는데.”

 “밤에 먹으면 살쪄서요.”

 연예인도 고생이구나.

 난 커피와 탄산수를 시켜서 자리에 앉았다.

 지유는 나를 보며 물었다.

 “저기······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그러세요.”

 그녀는 한국대 언론학과. 그러니 내가 선배인 건 맞다.

 공부도 잘하는 데다가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잘 부르다니. 김범석도 그렇고 세상에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는 법이지.

 하지만 내 재능이라고는 그저 돈 버는 것뿐. 그러니 돈이나 열심히 벌어야지.

 “그, 그럼 선배님도 말씀 편하게 하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지유는 재빨리 물었다.

 “어떻게 아셨던 거예요?”

 “뭘?”

 “씨랩 선배님······ 아니, 그 사람이 사고 칠 거라는 걸요.”

 그야 회귀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걸 말할 수는 없는 관계로 적당히 둘러댔다.

 “전에 말했잖아. 애널리스트 형한테 들었다고. 씨랩이 마약하고 여자들 만나고 다니는 건 알음알음 알려져있던 모양이야. 성폭행에 불법 촬영까지 한 줄은 몰랐겠지만.”

 증권가에서는 실시간으로 온갖 연예계 찌라시가 나돈다.

 J양은 성격이 나쁘고 K양은 스폰을 받는다거나, P군은 원정도박을 즐기고 K군은 게이라거나.

 이러한 찌라시만 전문적으로 취재해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있을 정도다. 대부분은 틀리지만 가끔은 맞는 내용도 있다.

 “전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는데. 다행히 선배님 덕분에 살았네요.”

 오기 전 기사를 좀 봤다.

 그녀는 다행히 사건을 비껴 갔지만, 대신 피처링을 맡았던 케이나가 말려들어갔다. 그녀 입장에서는 괜한 피해를 입은 셈이다.

 아무리 미래를 알아도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또한 나한테 최선의 결과가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는 아니겠지.

 “그때 이후 회사는 그만두셨다고 들었어요.”

 “쫓겨난 건 아니고 내가 그만둔 거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어떤 일이요?”

 “그냥 작은 투자회사야. 아! 그보다 김범석이라는 사람 알아? 가수인데.”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지유는 반색했다.

 “어! 알아요. 매직캐슬 부르신 분이잖아요.”

 “지금 같이 일하고 있어.”

 “정말요? 저 그분 팬인데.”

 “나도 팬이야.”

 “정말요? 그 노래 진짜 좋은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구요. 전 분명히 뜰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대화를 해보니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영락없는 대학생이다. 그러고 보니 학교는 휴학 중인가?

 이제부터 잘나가면 졸업하기는 힘들겠지.

 “아무튼 정말 감사드려요. 그리고 그때 일도 사과드리고 싶어요.”

 “사과?”

 “예. 그날 저 생각해서 말씀해주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말했잖아요.”

 모르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알고 조언해준 내가 이상한 거지.

 “이것 때문에 보자고 한 거야?”

 “예. 꼭 만나 뵙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이런 걸 보면 의외로 고지식한 성격인가?

 우리는 커피를 마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또 연락드려도 될까요?”

 내가 아는 그녀의 정보는 여기까지다. 일어났어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은 만큼, 앞으로는 많은 것이 달라지겠지.

 그러니 굳이 연락할 일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굳이 연락을 안 할 이유도 없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지유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아! 그리고 이거 드릴게요.”

 “뭐야?”

 “제 CD예요. 사인도 했어요.”

 “고마워. 잘 들을게.”

 그런데 집에 CD플레이어가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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