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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사라 에이버리 (1) (118/529)

 119화. 사라 에이버리 (1)

 사라는 라시드 왕자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원래 사우드 가문은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 중 하나였다. 사우디 초대 국왕은 건국 과정에서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각 부족장의 딸들을 신부로 맞아들이는 방식으로 국가의 안정을 꾀했다.

 그는 300번가량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이 많은 만큼 자식도 많았다. 자식들이 워낙 많다 보니 모두에게 자리를 챙겨줄 수도 없었다.

 일부는 왕위를 계승하거나 국가 요직을 한자리씩 차지했지만, 대부분은 약간의 재산만 받았다.

 그들 중에는 왕족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사라의 아버지 아민이 그러했다.

 그는 젊은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어차피 권력과도 거리가 멀고 사우디에서의 생활이 답답했던 그는 학위를 딴 뒤에도 사우디로 돌아가지 않고 결혼해 미국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핏줄만 왕족이지 평범한 사람이에요. 결혼하며 어머니 성을 따라 에이버리로 바꾸기까지 했으니까요.”

 라시드 왕자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교수로 일하던 큰아버지 아민과 사촌여동생인 사라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라시드가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였던 만큼 금방 친남매 같은 사이가 됐어요.”

 사우디 차기 권력자와 친남매 같은 사이라니!

 사촌남매가 가깝게 지내는 게 뭐가 그리 놀랄 일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재 사우디 왕실에는 1만 5천 명의 왕자와 공주가 있다.

 이들 중 권력자와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난 눈앞의 미녀를 보며 생각했다.

 이 나이에 재무이사라.

 한국에서도 20대가 대기업 이사직에 오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 아버지가 회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녀 역시 젊은 나이에 에이오일 재무이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전부 라시드 왕자라는 빽 덕분이겠지.

 그런데 이제 내 감시 역할로 붙이겠다는 건가?

 그다지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참견해대면 귀찮으니까.

 그런데 문득 그녀의 얼굴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한번 들어본 것 같고.

 내가 그녀를 어디서 봤더라?

 “아······.”

 생각났다!

 사우디 국부펀드 해외투자 본부장 사라 에이버리!

 현재 사우디 국부펀드의 규모는 약 3500억 달러.

 자원부국이라는 특성상 사우디 국부펀드는 대부분의 자산을 해외에 투자한다. 따라서 해외투자 본부장은 사실상 사우디 국부펀드를 좌지우지하는 위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시드 왕자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뒤 국부펀드에 자신의 측근들을 배치하고 해외투자액을 크게 늘렸다.

 주로 투자한 곳은 IT산업이었고 그 투자를 그녀가 총괄했다.

 인사이트 펀드와 손을 잡고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AI 관련 기업들을 사들여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한국 대기업에서 수년간 일한 경험 덕분에 한국 사정에 밝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방한해 한국에도 대규모 투자를 벌였다.

 뛰어난 투자실력에 빼어난 외모까지 더해지며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인터넷에 가끔 ‘흔한 국부펀드 운영자의 외모’로 올라오기도 했었지.

 지금 시점에서는 에이오일 재무이사로 있었구나.

 그녀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춰 볼까요?”

 “예?”

 “제가 에이오일 이사직을 맡은 건 전부 라시드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

 뜨끔!

 아마 평소에 그런 시선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 미래를 몰랐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테고.

 난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반대입니다.”

 “반대요?”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라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나요?”

 그야 미래에 얼마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만······.

 난 태연하게 말했다.

 “적어도 라시드 왕자가 능력 없는 사람에게 자리를 줄 사람 같지는 않으니까요. 재무이사는 기업의 자금흐름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위치죠. 라시드 왕자가 그 자리를 맡겼다는 건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 아닌가요?”

 그녀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입니다.”

 그녀의 능력은 이미 입증된 거나 다름없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라시드는 제가 아람코로 가기를 바랐지만, 전 에이오일을 택했어요.”

 “어째서요?”

 “작은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거든요.”

 “······.”

 언제부터 에이오일이 작은 회사였어?

 하긴 한국 재계 순위 18위면 좀 작긴 하지. 아람코의 자회사인 데다가 시총은 300분의 1에도 못 미치니까.

 아람코가 스타벅스라면 에이오일은 동네 카페쯤 되려나?

 어쨌거나 그녀를 재무이사로 넣은 걸 보면 에이오일에까지 라시드 왕자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심어 놓은 자기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뭔가요?”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무슨 수로 라시드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가요? 당신이 눈앞에서 연금술을 보여줬다고 하던데.”

 “하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기야 헐값에 산 그림을 1억 5천만 달러에 팔아치웠으니. 연금술이라고 표현한 건 칭찬이겠지?

 “오빠는 사람을 잘 믿지 않아요. 그가 신뢰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죠.”

 주위에 아첨꾼과 모략꾼들이 넘쳐날 테고,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아무나 쉽게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사님도 포함되어 있겠네요.”

 사라는 미소로 내 말을 긍정했다.

 “오빠의 말에 따르면 미루 씨와 함께 일하면 재밌을 거라고 하던데요.”

 다행히 그날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그러니 그림을 사고 투자를 한 거겠지만.

 그녀는 본론을 꺼냈다.

 “한정물산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들었어요.”

 “예.”

 난 그림을 팔아 받은 1억 5천만 달러로 한정물산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시드 왕자에게도 같은 부탁을 했다.

 컨티뉴 캐피탈에 투자할 투자금 1억 5천만 달러는 향후 한정물산 주식으로 회사 계좌에 들어올 예정이다.

 “어째서 한정물산인가요?”

 한정물산은 건설, 호텔, 리조트, 부동산임대, 수출입, 그리고 각종 벤처투자까지 포함하는 대기업.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정그룹의 지주회사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2년 동안 일했으면 재벌그룹 지배구조에 대해서 잘 아시겠네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큼은요.”

 한정그룹은 한국 재벌그룹 순위 10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집단. 건설, 리조트, 중공업, 에너지, 엔터, 식품, 유통 등 6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한정그룹 총수일가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재벌들은 각종 범죄를 저질러 포토라인에서 고개를 숙였다.

 10대 그룹 회장님들 중에서 금고형 이상의 판결을 안 받은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다.

 그중에서도 한정그룹은 총수일가의 전횡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표본이나 다름없었다. 횡령, 배임, 일감 몰아주기, 폭언, 폭행, 갑질 등등.

 주민재 회장은 현재 회삿돈 1200억을 빼돌린 혐의로 집행유예 중이고, 주철진 부회장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조세포탈과 배임 혐의로 재판 중이다.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경영에 매진해야 할 회장과 부회장이 법원에 들락날락거리고, 뉴스에 나오다 보니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한정그룹은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웠고, 총수일가의 지분은 다 합쳐봐야 6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해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한정물산을 지주회사로 삼고 나머지 계열사를 지배하는 체제로 전환했지만, 총수일가의 지주회사 지분율만 놓고 보면 10퍼센트에도 못 미치죠.”

 “그렇다 해도 우호지분이 있어서 경영권을 위협받을 정도는 아닐 텐데요.”

 “평상시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지금은 총수일가가 재판을 받고 있고, 주민재 회장은 고령에 아들인 주철진 부회장에게로 경영 세습이 이뤄지는 중이에요. 안정적인 세습과 경영을 위해서는 지주회사 지분을 더 늘릴 필요가 있어요.”

 그녀는 내 얘기에 큰 흥미를 나타냈다.

 “총수일가가 사재를 털어서 주식을 매입할 거라는 건가요?”

 “그럴 만한 돈은 없을 거예요.”

 재벌들이 재산이 많다지만 대부분 주식으로 묶여있고, 실제 현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이 펑펑 쓰는 돈 역시 알고 보면 회삿돈인 경우가 많다.

 난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한국 재벌들은 그런 정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요.”

 “그럼요?”

 “보통은 편법을 쓰죠.”

 “어떤 편법인지 궁금하네요.”

 “지주사와 계열사를 합병시킬 겁니다.”

 한국 재벌의 가장 큰 특징은 족벌경영과 문어발식 사업확장이다.

 10대 그룹 정도 되면 상장사만 수십 개, 비상장사는 수백 개쯤 거느리기 마련이다. 계열사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총수일가의 지분이 많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분이 적으면 약간의 틈만 있어도 지배구조가 흔들린다. 실제로 외국계 헤지펀드에 공격당한 적도 몇 차례 있고.

 한정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는 케케묵은 이슈였다.

 내가 DA증권에서 일하면서 본 관련 시나리오만 해도 열 개가 넘는다. 그룹 내 계열사들끼리의 합병이나 분할을 예측한다는 것은 시나리오 쓰는 일에 가깝고,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결과를 알고 있다면 끼워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디랑 말인가요?”

 “지주회사인 한정물산과 HJ로직스요.”

 부모가 자녀에게 부를 이전하기 위해서는 증여나 상속을 해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세금이 발생한다.

 때문에 재벌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자녀에게 부를 물려줄 창의적인 방법들을 여럿 개발해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일감 몰아주기다.

 약간의 자본을 증여해 자녀가 회사를 설립하게 하고, 그 회사에 계열사들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매출과 수익이 신생기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성장한다.

 기존 회사의 자산을 자녀의 회사로 옮기는 셈이니 당연히 배임에 해당한다.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기에 각종 규제를 내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규제를 한다 한들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A그룹 후계자가 만든 회사는 B그룹과 거래를 하고, B그룹 후계자가 만든 회사는 A그룹과 거래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HJ로직스는 바로 그러한 일감 몰아주기로 큰 회사다. 최대주주는 후계자인 주철진.

 한정물산과 HJ로직스의 합병은 한정그룹 경영권 승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주철진 부회장의 한정물산 지분은 2.3퍼센트인 반면 HJ로직스의 지분은 25.1퍼센트죠. 이 둘을 합병시키면 합병사의 지분율을 20퍼센트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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