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이사 (2)
LB스튜디오.
한국 3대 게임사 중 한 곳으로 PC통신 초창기 시절부터 브라더후드, 블러드앤매직 등 주옥같은 PC MMORPG를 만들어내며 수많은 게임중독자들을 양산해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생겨난 이후 PC게임은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모바일게임이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PC 온라인게임의 강자였던 LB스튜디오는 기존의 IP를 활용해 브라더후드M, 블러드앤매직M 등을 내놓았고,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도 엄청난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전까지 정액제로 서비스하던 PC 온라인게임과는 달리 모바일게임은 철저한 과금제를 지향했다.
LB스튜디오 모바일게임 과금 형태는 딱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페이투윈(Pay to Win), 둘째는 확률형 아이템이다.
현질을 많이 해야 강해지는데, 단순히 돈을 주고 아이템을 사는 게 아니라 마치 도박처럼 일정한 확률로 아이템을 뽑아야 한다.
누구는 한 번에 원하는 아이템을 뽑을 수 있지만, 누구는 백 번을 뽑아도 안 나올 수 있다. 심지어는 영업비밀이라며 확률이 얼마인지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스템은 수많은 중독자들을 양산했고 LB스튜디오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었다.
LB스튜디오는 그동안 기존 게임들의 모바일화에 주력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PC MMORPG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 모바일화할 게임들이 없는 만큼 새로운 IP를 확보할 목적이기도 했다. 제작 기간 2년에 제작비는 무려 1500억 원이 투입됐다.
그게 바로 판타지아 테일즈다.
그런데······.
게임이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운영자가 고가의 아이템을 무단 생성해서 팔아먹고 유저를 조롱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태 수습을 위해 보상을 마구 뿌려대는 판타지아 테일즈와는 달리, LB스튜디오의 다른 게임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잉? 접속보상 언제 사라짐?
-그러게. 소리 소문 없이 없어졌네.
-요즘 템 왜 이렇게 안 나오냐?
-뭔가 좀 이상한데. 예전에는 슬라임 100마리 잡으면 리덴 보통 8개는 떨궜는데, 지금은3개밖에 안 떨어짐. 이거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진짜 템 나오는 빈도가 확실히 줄어듬.
-아니, 가챠도 맨날 꽝이야.
-레알! 지난번 골방여포 방송 보니까 1억 질렀는데 하나가 안 나오더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ㄷㄷㄷ 잠수함 패치한 거 아니야?
-이거 그냥 확률조작 아닌가?
-혹시 판타지아 테일즈의 손해를 브후M 과금을 늘리는 걸로 메우려는 건가?
여기에 더해 LB스튜디어는 브라더후드M에 이전에는 없던 장비 시스템을 만들었고, 상위 클래스를 추가했다.
이는 유저들이 또다시 현질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잠깐만. 이거 이중가챠에 컴플리트 가챠네.
-가챠를 통해 설계도를 만들고, 그 설계도를 모아 또 가챠를 돌려야 하네.
-장비 만들기 전까지는 이전과 매매도 안 됨. 한 계정에서 전부 뽑아야 함.
-확률도 안 나와 있음 ㅋㅋㅋ
-이게 과연 고정일까 가변일까?
-이제까지 LB스튜디오 한 짓을 보면 뽑을수록 확률이 내려갈 것 같은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건 합리적 의심이 아닌 킹리적 갓심!
-설계도 하나 만들려면 1억은 그냥 깨지겠는데.
-다 뽑으려면 대체 몇 억을 질러야 하는 거냐?
-와아! ㅅㅂ 진짜 해도 너무하다ㅜㅜ
-하지만 안 지를 수가 없잖아!!!
-그런데 불매한다던 애들 다 어디감?
-이러고도 현질하는 우리가 레전드~
-네. 다음 개돼지~
-아니, 터지긴 판타지아 테일즈가 터졌는데 왜 우리가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거야?
-세계 최초 유저가 회사의 손실을 분담하는 시스템입니다. LB소프트 주가 부양을 위해 다 같이 현질합시다.
-신박하다~ 신박해~
-대단하다 LB스튜디오!
-대단하다 K게임!
* * *
LB스튜디오 개발3팀 개발자들은 수습을 위해 매달렸다.
회사 차원에서 사과문을 올리고 여러 보상안을 마련했지만, 한번 떠나간 민심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하필 이 시점에 아이스스톰에서 새로운 PC MMORPG를 ‘모닝스타2’를 런칭했다는 것.
유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거 모닝스타2로 이동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강선우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원래 모닝스타2보다 먼저 내서 시장을 선점하려 했던 건데, 오히려 도와준 셈이 됐네.”
그러자 옆에 있던 차수연이 듣고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회사에서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거 아니에요?”
강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반대예요.”
차수연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반대라니요?”
“제대로 게임을 운영할 생각이라면 이렇게 보상을 뿌리지 않겠죠.”
강선우는 개발자로서만이 아니라 게이머로서도 잔뼈가 굵었고,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게임은 출시 첫 달에 승패가 갈린다고 할 정도로 초기 흥행이 중요하다. 그런데 초기 흥행을 완전 대차게 말아먹었다.
한번 망한 게임이 되살아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건 회사의 엄청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말로는 살려보겠다고 하면서 적당히 서비스하다가 운영 중단시킬 생각일걸요.”
“설마요. 그럼 이제까지 들어간 개발비도 회수 못 하지 않겠어요?”
“개발비야 다른 게임에서 뽑아먹으면 되겠죠.”
온라인게임은 개발한다고 끝이 아니라, 이후 지속적인 관리와 콘텐츠 업데이트를 해줘야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게 다 돈이다.
그러니 차라리 빨리 서비스 접고, 만들어놓은 설정과 캐릭터 적당히 재활용해서 다른 게임을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PC 온라인게임이 아니라 P2W 시스템을 탑재한 모바일게임이라는 점이지.’
PC MMORPG는 모바일게임에 비해 개발기간, 인력,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이번에 크게 실패했으니 결국 제작비는 적게 들고 돈은 많이 벌 수 있는 모바일 쪽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차수연은 놀란 표정이었다.
“어! 그렇게 되면 개발3팀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마 해체되겠죠.”
LB스튜디오는 개발팀이 해체되면 다른 팀에 들어가기 위해 사내면접이라는 걸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인원은 해고당할 것이다.
‘성과급 날아간 것도 모자라 잘못하다가는 모가지도 날아가겠는데.’
돈도 돈이지만 그동안 모두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됐다는 점에서 화가 끓어올랐다.
‘잠깐만. 회사 잘리면 마통 이자도 못 낼 텐데.’
친구놈이 투자하겠다고 전 재산을 긁어간 것도 모자라 마통까지 뜯어갔다. 때문에 지금도 다달이 월급에서 이자가 빠져나가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강선우의 표정을 본 차수연이 물었다.
“왜 그래요?”
“어제 친구가 미국에서 돌아왔거든요.”
“주식한다고 돈 빌려갔다는 친구요?”
“예.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서요.”
“무슨 얘기를 했는데요?”
“지금 사는 집이 얼마냐고 물어보더니, 빼는 게 어떻겠냐고 하던데요.”
그 말에 차수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 혹시 몰래 보증금 빼려는 게 아닐까요?”
“설마······.”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는데, 친구의 지난 행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치 사람이 바뀐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니, 주변의 돈까지 다 끌어다가 작전주와 정크본드에 투자했다.
결과는 대성공.
고작 두 번의 투자로 1천억이 넘는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회사를 차리겠다며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영원히 이어질 리 없다. 마찬가지로 전 재산을 쏟아붓는 식의 투자를 했다면 한 번 삐끗하는 것만으로도 다 날렸을 것이다.
큰돈 벌겠다고 호기롭게 소리치고 떠났는데 실패해서 돌아온 거라면?
‘그러고 보니 어제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 표정도 별로 안 좋았고. 어디에 투자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니 대답을 회피하고. 진짜 미국에서 뭔 일 생긴 거 아니야?’
토머스 모터스에 투자해 전 재산을 날린 직원의 얘기가 갑자기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혹시 미국에서 전 재산을 다 잃은 게 아닐까?
강선우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내 보증금 3천만 원으로 마지막 한타를 하려고!?”
그동안 보여줬던 눈빛과 표정!
생각해보면 도박중독자나 다름없었다.
강선우는 재빨리 한미루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뭐지? 왜 전화를 안 받아?’
갑자기 엄청나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계약서랑 인감도 전부 집에 있잖아.’
불길한 예감에 강선우는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재빨리 집으로 달려갔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안 돼!”
집 안은 텅 비어있었다.
가구와 물건으로 인해 비좁던 투룸은 드넓은 운동장처럼 변해있었다.
‘뭐야? 내 물건들 다 어디 갔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지금 어디야?”
[밖이야. 왜?]
“왜는 뭔 왜야? 집이 왜 텅 비어있어? 내 컴퓨터랑 게임기 다 어디 갔어? 내 보증금은?”
[이사했으니까.]
“이사?”
[주소 불러줄 테니 이쪽으로 와봐.]
“너 딱 기다려!”
강선우는 바로 택시를 타고 한미루가 찍어준 주소로 향했다.
‘대체 여긴 어디야?’
도착한 곳은 한강과 붙어있는 청담동의 고급 빌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친구가 문을 열어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에 익숙한 가전과 가구들이 보였다.
“왔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말했잖아. 이사했다고.”
“어디로?”
“여기로. 니가 저쪽 써. 내가 이쪽 쓸게.”
강선우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이 넓다 못해 광활하다. 거실에서는 한강이 내려다보였다. 이런 데서 살아도 되는 걸까? 여기 월세면 월급보다 몇 배는 비쌀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20대 중반 정도의 여자가 서 있었다. 엄청난 미인이다.
“이분은 누구······?”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전 성윤아라고 해요. 미루 씨랑은 전 직장동료예요.”
“아, 예. 안녕하세요. 강선우라고 합니다.”
“그동안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 그래요?”
강선우는 한미루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일단 앉아 봐. 하나씩 설명해줄게.”
강선우는 이전 집에서 가져온 낡은 소파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한미루는 천천히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내용이 상상초월이었다.
“자, 잠깐. 그러니까 데이비드 록허트라는 미국 투자자를 섭외해서 회사를 만들고, 토머스 모터스라는 수소차 기업을 폭락시켜 돈을 벌었다고?”
“응.”
“나 그 기사 봤는데. 그거 터트린 회사가 그러니까······.”
“컨티뉴 캐피탈.”
“그게 니 회사라고?”
한미루는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처음부터 컨티뉴 캐피탈로 이름 짓겠다고 말했잖아.”
“어, 그랬나?”
‘그러고 보니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강선우는 재빨리 물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