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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미술품 투자 (1) (97/529)

 98화. 미술품 투자 (1)

 다른 상품과는 달리 그림은 예술품이다. 그리고 예술품은 원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격에 판매된다.

 그림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요소는 캔버스 크기나 물감 가격이 아닌, 화가의 명성이다.

 무명화가의 작품이 유명화가의 작품으로 밝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림값은 수천수만 배 뛴다.

 다시 말해 별다른 자본 없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이라······.”

 투자상품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대부분 주식, 부동산을 떠올린다. 전문가라면 채권, 원자재, 파생상품 등이 추가되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금보다도 훨씬 안정적이며 꾸준한 수익을 내는 상품이 존재한다.

 바로 미술품이다!

 세계를 붕괴시킬 뻔했던 금융위기가 끝난 후, 세계 경제는 다시 성장을 시작했다.

 각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을 풀었고, 노동소득 대비 자산가치가 폭등하며 빈부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이 여전히 가난에 허덕일 때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품 시장은 엄청난 호황을 맞았다.

 상장을 통해 부를 거머쥔 실리콘밸리 IT 창업자, 명문구단의 구단주, 월가의 헤지펀드 운영자, 부동산 재벌 등은 닥치는 대로 돈이 될 만한 그림들을 사들였다.

 최근 몇 년 사이 미술품 시장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명 화가의 작품은 하루가 다르게 값이 뛰었고, 경매가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 가격은 무려 4억 달러가 넘는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화가가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사람이고, 오래전 죽었고, 그가 남긴 회화는 스무 점도 안 됐으니까.

 “잠깐.”

 그 그림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그 그림이 경매에 나오는 건 앞으로 7년 후.

 갤러리에 잠들어 있던 그림을 미술품 관계자 두 명이 구매해 수백만 달러를 들여 감정가 복원에 나섰다.

 그 결과 유명 화가의 진품임이 확인되었고, 그들은 그 그림을 러시아의 부호에서 1억 달러에 판매했다.

 이후 그 부호가 다시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고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

 “지금쯤이면 아직 갤러리에 있을 텐데.”

 그 갤러리 이름이 뭐였지?

 내가 무슨 미술계 관계자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며 기사로 봤을 뿐이다.

 그림과 화가는 기억나도 그게 어느 갤러리에서 팔렸는지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시카고 어디 갤러리라고 하지 않았나?”

 난 일단 노트북으로 시카고 갤러리 목록을 검색했다. 유명 갤러리만 해도 수십 곳이고, 중소 갤러리까지 치면 수백 곳이 넘는다.

 과연 찾아낼 수 있을까?

 * * *

 로버트 팬델.

 큰 덩치에 갈색 곱슬머리를 한 그는 뉴욕 갤러리스트로 미술계의 유명인사였다.

 로버트는 맨해튼 시내의 한 식당에서 친구이자 화상인 패트릭 윌시를 만나기로 했다. 잠시 후, 나타난 패트릭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그 소식 들었지?”

 “무슨 소식?”

 “랭크시가 센트럴파크에 노점을 차려서 자기 그림을 60달러에 팔았다는 얘기. 그게 정말일까?”

 이틀 전, 투위터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어제 센트럴파크 노점에서 그림을 60달러에 판매했다. 하지만 단 세 명의 뉴요커만이 내 그림을 구매했다.]

 내용만 보면 별다를 건 없었다.

 그런데 투윗을 올린 사람이 랭크시다!

 랭크시가 누구인가?

 현재 미술계 최고의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버트의 고객들 중에서도 그의 그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인터넷과 SNS는 난리가 났다.

 -이게 진짜야? 노점에서 랭크시 그림을 팔았다고?

 -랭크시가 누구야?

 -그 소더비 경매장에서 자기 그림 분쇄한 애 있잖아.

 -아! 그 미친놈? 그런 미친놈 그림을 왜 사? 줘도 안 가짐.

 -그 미친놈 그림이 50만 달러씩에 팔리니까.

 -방금 한 말 취소. 주면 갖는다!

 -사간 사람들 완전 대박이네.

 -홀리 쉣! 랭크시 그림이 60달러라니. 지난번 소더비 경매에서 130만 달러에 팔리지 않았나?

 -노점 아직 있나? 있겠지?

 -제발 하루만 더 팔아줘~

 -한 장이라도 좋으니 사고 싶다.

 -당장 센트럴파크로 달려간다!

 -그날 구매한 사람 있으면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그 투윗을 본 순간 로버트는 기절할 뻔했다.

 그는 뉴요커고 센트럴파크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였다. 그날도 센트럴파크를 산책했고, 그림을 파는 한 노점을 보았다.

 평소였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날따라 매대 위에 걸린 ‘예술작품을 저렴하게 판매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라는 홍보문구가 신경에 거슬렸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살펴보았다.

 로버트는 한눈에 그 그림들이 랭크시의 작품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랭크시가 유명해진 뒤 그를 흉내 내는 작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그 그림을 그린 화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랭크시 그림이 노점에서 팔리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으니.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말도 안 돼! 그게 진짜 랭크시 그림이었다고?’

 랭크시의 투윗을 본 수천 명의 뉴요커들은 일제히 센트럴파크로 달려갔다. 로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드넓은 공원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며 일전에 그림을 팔았던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노점이고 노인이고 자취를 감춘 뒤였다.

 혹시 다시 노점이 열릴까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했고, 언론들은 이를 취재하러 나왔다.

 그 순간, 패트릭의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어! 랭크시가 방금 또 투윗을 올렸는데.”

 [자신을 갤러리스트라고 말한 한 뉴요커는 내 그림을 보고 ‘선도 제대로 못 그었다. 허접한 화가가 어디서 주워듣고 프로의 흉내만 냈다. 낙서에 불과하다. 삼류 그림이다. 10달러도 아깝다’ 등의 모욕을 하고 갔다. 물론 그는 내 그림을 사지 않았다.]

 투윗을 본 패트릭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완전 미친놈이네. 랭크시 그림을 보고 선도 제대로 못 그었다고 하다니. 대체 어떤 병신이 이런 말을 했을까?”

 “······.”

 응. 그 병신이 나야.

 “자신을 갤러리스트라고 했다는데? 뉴욕 갤러리스트면 우리가 아는 사람 아닐까? 대체 누구지? 지금 이 글 보고 있으면, 자기 머리를 총으로 쏘고 싶을 텐데.”

 “······.”

 응. 지금 딱 그런 심정이야.

 그나마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이름을 밝혔다면 두고두고 미술계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테니.

 얘기를 하는 사이 투윗 하나가 더 올라왔다.

 [뉴요커가 사간 세 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12장은 자신을 ‘한’이라고 밝힌 여행 온 한국인이 다 사갔다. 그는 진정으로 내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 단 한 명의 사람이다.]

 ‘한국인이라고?’

 노점을 떠난 뒤 잠깐 뒤를 돌아봤을 때 한 동양인 청년이 노인과 뭔가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설마 그놈이 그림을 다 산 건가?’

 로버트는 복장이 뒤집힐 것 같았다.

 ‘니가 사간 그림! 그 그림이 내 그림이었어야 해!’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투윗으로만 이 사건을 접했다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날 그 자리에서 그 그림을 직접 보았다!

 만약 랭크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백 배를 내고서라도 다 샀을 것이다.

 ‘그 그림들을 다 샀다면 대체 얼마야?’

 눈앞에서 로또 수십 장이 날아간 셈이다.

 로버트의 심정을 알 리 없는 패트릭은 계속해서 말했다.

 “한국인? 이놈 아주 잭팟이 터졌네.”

 그림이란 진정으로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로버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의 기준에서 그림의 가치란 곧 그림의 가격이다.

 자신이 그 그림들을 샀다면 예쁘게 치장해 최대한 비싼 가격에 고객들에게 팔 수 있었을 것이다.

 ‘그놈은 그게 랭크시 진품이라는 걸 알까? 경매에 올리면 최소 50만 달러는 받을 수 있는 그림을 주위에 나눠주거나 자기 집 거실에 걸어놓는 거 아니야?’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왠지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아 로버트는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이 한국인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찾아서 뭐 하게?”

 “랭크시 그림을 팔라고 해야지.”

 뉴욕 거주자라면 모를까, 여행 온 한국인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로버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해.”

 “왜? 랭크시 그림이라면 평소에 환장하면서.”

 “······.”

 그랬지.

 사실은 지금도 환장할 것 같다.

 “됐고. 일 얘기나 하자.”

 패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번에는 진짜야?”

 “한번 봐봐.”

 그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화면에 나온 것은 16세기 초에 그려진 종교화였다.

 그림의 크기는 고작 가로 45.4센티, 세로 65.6센티. 수차례 덧칠되었을 뿐 아니라 훼손이 심각했다. 작자는 신원미상. 그래도 그림의 역사성 때문인지 가격은 1만 1천 달러에 올라와 있었다.

 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그림 가격의 적게는 열 배에서 백 배의 비용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복원 전문가에게 맡기려면 거기서 또 열 배다.

 무명화가의 그림은 복원을 해봐야 그 이상의 금액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복원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패트릭은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또 허탕 치는 건 아니고?”

 로버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달라. 이 그림에는 분명히 뭔가 있어.”

 그들이 찾는 그림은 랭크시 그림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로버트가 그림의 행방을 알게 된 것은 며칠 전.

 해당 갤러리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도록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이다.

 “어딘데?”

 “에펜프리트 갤러리라고, 시카고에 있는 갤러리야.”

 그들은 그림의 행방을 추적하며 유럽 전역을 뒤지고 다녔다.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등을 몇 번이나 오갔고, 허탕을 치고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쓸 만한 그림을 건지기도 했지만, 그들이 찾는 그림은 아니었다.

 그런데 옆 동네나 다름없는 시카고에 있었다니!

 패트릭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만약 그 그림이 맞다면, 이제까지 미술품 경매기록을 전부 갈아치우게 될 거야.”

 화가가 죽으면 그림 가치가 올라간다. 이유는 희소성 때문.

 죽은 화가의 작품은 더 이상 시장에 공급되지 않는다.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 잭슨 폴록,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렘브란트 등등.

 이들의 그림 가격은 현재 적게는 1천억 달러에서 많게는 3천억 달러를 넘는다.

 하지만 이들의 명성을 다 합쳐도 ‘그’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만약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정말로 ‘그’라면,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당장 갤러리에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야?”

 친구의 말에 로버트는 고개를 저었다.

 “10년 넘게 창고에 처박혀 있었을 정도로 아무도 관심 없는 그림이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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