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3)
[(WST 단독) 거짓된 천재의 신화. 쿨라우드 CEO 롤프 부치, 죽은 친구의 프로그램을 훔쳐서 창업한 것으로 밝혀져]
(전략) 쿨라우드는 창업한 지 3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임에도 클라우드 업계 4위로 치솟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인공지능 프로그램 미네르바가 있었다. 미네르바는 다른 클라우드 업체들이 사용하는 어느 프로그램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쿨라우드의 창업자이자 CEO 롤프 부치는 수십 차례에 걸쳐 자신이 미네르바를 개발했다고 말해왔고, 심지어는 개발 비화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실제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은 그의 MIT 동기인 제이슨 킴이고, 프로그램의 이름도 미네르바가 아닌 미미르였다.
제이슨 킴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를 활용해 창업을 할 예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이슨 킴은 롤프 부치에게 자신의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창업을 앞두고 제이슨 킴은 불의의 사고로 죽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롤프 부치는 그의 프로그램을 훔쳐서 자신이 만든 것으로 공개했다.
죽은 친구를 배신한 덕분에 롤프 부치는 실리콘밸리의 천재라는 명성과 함께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를 제보한 란진 쿠마르는······.
단순한 의혹 제기 수준이 아니었다.
기사에는 란진 쿠마르의 독점 인터뷰까지 실려 있었다. 그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며 롤프 부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터넷은 발칵 뒤집혔다.
-뭐야? 롤프 부치가 사기 친 거였어?
-말도 안 돼! 그 사람 되게 유명한데.
-이게 진짜야? 죽은 친구가 만든 프로그램을 훔쳐서 자신이 개발했다고 속였다고?
-개발자에게 프로그램은 자식과도 같습니다.
-코드 한 줄 베껴도 소송하는 판에 프로그램을 통째로 훔쳐? 이게 있을 수나 있는 일이야?
-그럼 그동안 강연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다 거짓말이었어?
-존나 뻔뻔하네. 이게 인간이냐?
-여기저기 튀어나와 강연하더니 알고 보니 쓰레기였네.
-혹시 MIT 입학한 것도 뻥 아니야?
-이제까지 창업한 것도 다 까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어디서 또 뭘 훔쳤을지 어떻게 알아?
-뭐야? 그럼 천재는 롤프 부치가 아닌 제이슨 킴이잖아.
-혹시 롤프가 제이슨 킴을 죽인 거 아닐까? 그 프로그램이 너무 탐이 난 나머지 ‘이제부터 이건 내 거야!’ 하면서.
-에이, 설마~
-그런데 쿨라우드가 뭐 하는 회사야?
-B2B 기업이라 잘 모를 수도 있는데, 클라우드 업계에서는 빅3 다음인 기업입니다. 시총 1천억 달러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1천억 달러는 개뿔. 다 거품이지~
-토머스 모터스도 터지고, 쿨라우드도 터지고. 올해는 뭔 날이냐?
-CEO 그만뒀다는 얘기가 있던데.
-혹시 사기 치다 걸려서 쫓겨났나?
기사와 댓글을 보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전화가 오고 문자가 날아왔다. 다들 기사 내용에 대한 진위를 물어보았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란진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거지?’
그 순간, 한 사람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롤프는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는 소리치듯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뭐가요?]
“지금 나오는 기사 말이야! 모른 척하는 거야?”
[아아, 그거요? 저도 봤습니다.]
“약속이 다르잖아!”
[무슨 약속이요?]
“비밀을 지켜주겠다며?”
[제가 그런 말을 했던가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분명히 말했어!”
[그런가요?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뭐?”
[제가 폭로한 것도 아니고 예전 동업자가 폭로한 걸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그 말에 롤프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니, 니가 알려준 거잖아!”
증거는 없지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해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어째서야? 어째서 약속을 어긴 거야?”
[누가 말하길, 말로 한 약속은 어겨도 되는 거라고 하던데요.]
“······뭐?”
그 말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였다.
롤프는 상대를 향해 소리쳤다.
“너,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의 외침에 상대는 한미루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요?]
“뭐?”
[소송이라도 하시게요? 이 상황에서 소송해봐야 본인만 웃음거리가 될 텐데요.]
롤프는 울먹거리듯 말했다.
“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어?”
[그럴 리가요. 저는 당신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아예 관심조차 없죠.]
“그, 그럼 어째서 그런 건데?”
상대는 그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해주었다.
[그게 진실이니까요.]
롤프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며 울부짖었다.
“끄어어어.”
* * *
울먹거리는 롤프를 보니 약간은 안쓰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뭐, 내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나중에 밝혀질 일이었다. 1회차 때도 그는 쫓겨나듯 회사를 떠났고 자신의 지분도 일부 넘겨야 했다.
그렇다면 롤프는 그 뒤 힘들게 살았을까?
천만에.
그는 여전히 쿨라우드의 지분을 10퍼센트 넘게 가지고 있었고, 덕분의 그의 자산은 1천억 달러가 넘었다.
그 정도 돈이 있는데 욕 좀 먹는다고 대수겠는가?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다. 그에게 남은 거라고는 고작(?) 10억 달러뿐이니까.
뭐, 그래도 그 돈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 물론 평생 욕은 먹어야겠지만.
란진 쿠마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명나게 롤프를 물어뜯었다. 아마 조만간 책도 하나 낼 것이다.
폭로의 파장은 생각보다 컸지만, 토머스 모터스 사태 때만큼은 아니었다.
시총은 쿨라우드가 두 배 이상 높지만, 토머스 모터스는 B2C 기업인 데다가 상장회사라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있던 반면, 쿨라우드는 B2B 기업인 데다가 비상장회사다.
아무래도 자기 돈이 걸려있지 않으면 관심이 좀 덜한 법이지.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느끼는 충격은 더욱 컸다. 메르세데스 왓슨, 브레드 버튼에 이어서 또 한 명의 자수성가 신화가 무너졌으니.
아마 이번 일로 쿨라우드의 기업가치도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 만큼 고객들의 이탈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어서 컨티뉴 캐피탈의 인수 소식이 기사로 나왔다.
[(WST 단독) 컨티뉴 캐피탈 쿨라우드 인수. 롤프 부치와 알렉스 프레스턴 지분 전량 매각하고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정확한 매각가는 알려지지 않아······.]
[쿨라우드 신임 CEO로 개발자 출신 시드 루카스 임명]
데이비드는 성명을 발표했다.
“먼저 이번 일에 대해 유족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잘못을 저지른 롤프 부치는 모든 지분을 매각하고 CEO직을 사임했고, 저희 회사는 제이슨 킴의 유족과 협의해 정당하게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간부터 프로그램과 서비스의 이름을 미네르바에서 미미르로 바꾸고, 개발자가 롤프 부치가 아닌 제이슨 킴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또한 앞으로 사명을 스노우 크래시로 변경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겠습니다.”
토머스 모터스 사태에 이어서 쿨라우드의 인수까지 성공시키자 데이비드 록허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지금쯤이면 그를 놓친 사모펀드들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겠지.
* * *
이걸로 실리콘밸리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일을 끝마친 우리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곳에 오기 전 목표했던 걸 전부 손에 넣었다. 무엇보다 향후 세계 최대 기업이 될 쿨라우드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미리 안 될 거라 생각하고,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좀 달라진 건가?
시드는 나에게 물었다.
“형은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그냥 미국에 있으면 안 돼요?”
“한국에서 할 일이 좀 있어서.”
왠지 서운해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어차피 자주 올 거야.”
“네. 다음에 오면 좀비네이도 같이 봐요.”
“······.”
그건 좀.
“다음에 볼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알았어요. 잘 가요.”
난 시드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짐을 정리하고 호텔을 나서는 길에 데이비드가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6개월 안에 80억 달러를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한화로는 9조 원인가?
이 정도 금액을 6개월 안에 현금으로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유재호 회장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대출은 안 될까요?”
그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될 것 같습니까?”
“안 되겠죠.”
M&A 기법 중에 LBO라는 것이 있다.
무자본 차입매수(Leveraged Buyout)로, 인수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돈 한 푼 없이 기업을 사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쿨라우드는 자산이라 할 만한 게 거의 없다. 영업이익은 적자에, 부채도 상당하다. 게다가 나머지 지분에 대한 인수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새우가 고래를 집어삼킨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다.
“투자를 받아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건 가능할지 모릅니다. 쿨라우드를 인수하는 거라면 많은 투자사들이 달려들 테니까요.”
“하지만 그 경우에는 지분을 나눠먹어야겠죠.”
다시 말하지만 내가 다 먹을 생각이다.
“6개월 안에 80억 달러를 혼자서 마련하겠다는 겁니까? 게다가 자본은 고작 6800만 달러 남았습니다.”
“불가능할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예.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데이비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역시 그렇겠지?
그런데 그는 바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보스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제는 제법 나를 믿기 시작한 모양이다.
“맞아요. 돈이야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 * *
안타깝게도 돌아가는 비행기도 이코노미석이다.
원래 돌아갈 때는 돈 벌어서 비즈니스석을 타려고 했는데, 번 돈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
지금은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우리는 5시간 반의 비행 끝에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나름 기나긴 여정이었다. 생각해보면 1회차 때도 이렇게 길게 외국을 돌아다닌 적은 없었다.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난 데이비드에게 물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뭘요.”
“이제 집에 가서 쉬실 건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바로 병원으로 가려고 합니다. 딸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1분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럼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진심이십니까?”
“예. 앞으로 계속 같이 일할 텐데, 이번 기회에 인사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안 될까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안 될 건 없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기 전에 잠시 들를 곳이 있습니다.”
“어디를요?”
“오코너 펍이요. 그때 말씀하신 햄버거를 사다주려고 합니다. 딸이 햄버거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
당신은 바보. 딸밖에 모르는 바보.
“그런데 외부 음식 가져가도 되나요?”
“가끔은 가능합니다. 물론 너무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은 피해야 하겠지만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제가 안내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