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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2) (93/529)

 94화.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2)

 난 미미르의 권리를 사들이며 제이슨 킴의 아내에게 약속했다.

 미네르바가 아닌 미미르라는 이름을 되찾아주고, 제이슨 킴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난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킬 생각이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세상에 알리느냐다.

 그냥 언론에 폭로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첫째로 이미 인수를 끝낸 마당에 사모펀드 관계자가 해당 기업의 비리를 까발리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잘못했다가는 향후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영향이 있을 수도 있고.

 둘째로 1회차 때와 마찬가지로 롤프는 당연히 아니라고 부정할 텐데, 이 경우 진실 공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누군가 나서서 그의 말을 반박해야 하는데, 그게 내가 되면 곤란하다.

 따라서 나를 대신해 이 일을 제대로 폭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다행히 여기에 딱 맞는 사람이 한 명 있으니, 그게 바로 란진 쿠마르다.

 폭로란 그 내용만큼이나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도 중요하다. 그에 따라 대중들의 반응이 천차만별 차이나기 마련이니까.

 사실 제일 효과적인 건 제이슨 킴의 유족들이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줄리아는 자신과 아들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1회차 때도 그녀는 이 일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안 했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이름과 얼굴도 몰랐던 거고.

 하지만 특허괴물 패트롤의 소송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지자 란진 쿠마루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롤프를 비난했다.

 여기저기 인터뷰를 하는 것은 물론, 나중에는 아예 ‘천재의 거짓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에 대한 책까지 냈다.

 사실 그가 롤프 부치를 저격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MIT 동기이자 동업자였다. 롤프는 대학생 시절 틴팅을 창업했고 란진은 거기서 함께 일했다.

 틴팅의 대박으로 인해 롤프 부치는 부와 명성을 함께 얻었다. 그러나 함께 일했던 란진 쿠마르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롤프는 틴팅이 성공한 게 오로지 자신 덕분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돈도 돈이지만 성공에 대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그 혼자 가져간 셈이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토크잇을 창업했다.

 하지만 회사가 가장 어려운 시점에서 롤프는 시드를 데리고 나가 쿨라우드를 창업했다.

 란진이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롤프는 쿨라우드의 성공으로 승승장구했다.

 게다가 롤프는 여러 인터뷰에서 토크잇에 대해 말하길, 자신이 운영했을 때는 잘됐는데 자신이 떠나고 나니 남아있는 사람들이 형편없이 운용해서 망했다는 식으로 언급했다.

 그걸 지켜보는 당사자의 기분은 어땠겠는가?

 아무리 화가 나고 질투가 나도 이전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천재의 명성을 무너뜨릴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난 화를 내는 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흥분하시는 겁니까? 이걸 꼭 알려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 그건······.”

 그야 당연 롤프에 대한 분노와 질투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걸 그대로 말할 수는 없을 테니, 그는 다른 이유를 꺼내들었다.

 “제가 제이슨 킴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친구요?”

 둘이 별로 안 친하지 않았나?

 “아! 그리고 제가 제이슨을 롤프에게 소개시켜주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보면 여기에는 제 책임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반드시 이 일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난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질투 때문에 폭로하는 건 추한 일이지만, 친구를 위해 나서는 건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지.

 하지만 나는 이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투자자들이 반대할 테니 저희 회사가 나서기는 힘듭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란진 쿠마르는 내 말을 자르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난 짐짓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뭘 하겠다구요?”

 “제가 이 일을 폭로하겠습니다.”

 “정말요?”

 “예.”

 난 진심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쿠마르 씨가 폭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됩니까?”

 “엄청난 유명인이 되실 겁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유, 유명인이요?”

 “예. 수많은 언론들이 쿠마르 씨를 인터뷰하러 달려들 테고,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될 겁니다. 기자들은 롤프 부치의 다른 행동들······ 예를 들어 실제는 실력이 없는데 다른 사람의 업적을 자신의 것으로 포장했다거나, 성공한 사업가처럼 치장만 했다거나, 동업자를 배신하고 직원을 빼내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거나, 철저하게 자신의 몫만 챙겼다거나, 하는 아주 사소한 부정까지도 캐내기 위해 일일이 쿠마르 씨에게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귀찮은 일을 감내하실 수 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어째서인지 그는 폭로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을 알리겠다는 겁니까? 본인이 유명인이 되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까지 감수하면서요?”

 그는 최선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죽은 제이슨 킴도 그걸 원할 겁니다.”

 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더 이상 말려도 소용없겠군요.”

 “전 세상에 진실을 알릴 겁니다. 그게 정의니까요.”

 훌륭하다.

 사람은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할 때 뭐든 열심히 할 수 있는 법이지.

 만약 처음부터 내가 폭로하라고 등 떠밀었다면 그는 나서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모른 척해달라고 하니 오히려 신나서 나서는 모습이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는 법.

 난 그에게 연락처를 하나 내밀었다.

 “월스트리트타임즈의 트리시 오코너 기자 연락처입니다. 쿠마르 씨에게 연락하라고 전해두겠습니다.”

 * * *

 트리시 오코너.

 무명 기자나 다름없던 그녀는 토머스 모터스 사태를 최초로 폭로한 덕분에 유명해졌다. 특히 그녀가 행사장에서 직접 브레드 버튼 CEO를 몰아붙인 모습은 크게 화제가 됐다.

 길에서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하거나 사진을 찍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제보도 밀려들었다.

 ‘특종을 써서 좋긴 한데······.’

 후속기사에 대한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는 무슨 기사를 써야 하나?’

 최근 올라온 기사들을 검토해보던 도중 그녀는 바넷사가 쓴 기사를 보았다.

 “어! 쿨라우드에 대한 기사네. 뭐야? 인터뷰까지 했잖아.”

 미네르바 개발의 비화와 향후 클라우드 시장의 미래, 그리고 쿨라우드 상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중요한 건 롤프 부치와 인터뷰를 했다는 것. 이번 인터뷰에서는 상장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언급됐다.

 ‘LA에 놀러 갔을 때 파티에서 롤프 부치를 만나 친해졌다고 자랑하더니 농담이 아니었나 보네. 이래서 인맥이 중요하구나.’

 쿨라우드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잘나가는 회사다. 현재는 비상장이라 투자가 힘들지만, 상장만 하면 투자의 길이 열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기사에 대한 관심이 꽤 높았다.

 ‘좋았어. 오늘부터 열심히 취재해야지.’

 그전에 일단 들어온 제보부터 훑어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본 그녀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 미루 씨. 아직도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중이에요?”

 [예. 하던 일이 끝나서 슬슬 돌아가려구요.]

 “무슨 일이었는데요?”

 [쿨라우드를 인수했어요.]

 “쿨라우드면······.”

 그녀는 깜짝 놀랐다.

 “뭐라구요? 쿨라우드를 컨티뉴 캐피탈이 인수했다구요?”

 [예.]

 쿨라우드가 한두 푼 하는 기업도 아니고 무려 1천억 달러나 하는 기업이다. 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이 기업을 인수한 걸까?

 ‘연기금 투자라도 받았나?’

 [그보다 제보를 하나 하려구요.]

 그 말에 트리시는 눈을 빛냈다.

 “설마 특종이에요?”

 [글쎄요. 지금 자료 정리해서 보냈으니, 특종인지 아닌지는 보고 판단하세요.]

 “잠시만요.”

 메일함을 열어서 한미루가 보낸 자료를 본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진짜예요?”

 [그럼요. 전 항상 진실만을 제보합니다.]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 기사가 나가면 실리콘밸리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란진 쿠마르의 연락처 보내드릴 테니 한번 연락해보세요. 기사 쓰려면 서두르세요.]

 트리시는 재빨리 말했다.

 “알았어요!”

 * * *

 컨티뉴 캐피탈에 지분을 매각한 뒤.

 롤프 부치는 이후 예정됐던 TV 출연과 인터뷰, 강연 등을 전부 취소하고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직원을 통해 알렉스 역시 지분을 전부 매각하고 회사를 떠났다는 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CEO는 시드 루카스였다.

 누군가는 회사를 매각하고 조용한 삶을 즐기고 싶어 하겠지만, 롤프 부치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모두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삶이었다.

 쿨라우드를 떠난 지금은 이전처럼 그렇게 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는 대중들의 관심이 얼마나 빠르기 식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은 이대로 서서히 잊힐 것이다.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쿨라우드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으로 남을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절망에 빠져있을 생각은 없었다.

 ‘또 다른 기업을 창업해야 하나?’

 이미 몇 차례 해본 일이다.

 그는 개발자로서도 실력이 뛰어났고, 사업 역량도 뛰어났다. 게다가 유명세까지 있으니, 창업을 한다고 하면 자금을 댄다는 투자자들이 줄을 설 것이다.

 ‘내 성공이 미네르바 때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 혹시 알아? 쿨라우드보다 더 잘나가는 기업을 만들어 낼지.’

 자신의 말 한마디면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인다. 그러면 기업을 만들어 키우는 건 쉬운 일이다.

 ‘핀테크 기업을 창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온라인 쇼핑 비중이 높아지며 결제 역시 늘어나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점들이 몇 가지 남아있었다.

 특히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은 여러 제약이 따랐다.

 ‘클릭 한 번으로 쉽게 결제가 이뤄지도록 만들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의 신용도를 분석해 후불결제를 하게 만드는 건 어떨까?’

 머릿속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넷사 로즈. 뉴욕타임즈 기자였다. 일전에 그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가 바로 어제 나갔다.

 기자와는 친하게 지내 나쁠 게 없다. 기사만 잘 써주면 돈 안 내고도 사업을 홍보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꽤 예뻤지?’

 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게 사실인가요?]

 ‘갑자기 무슨 말이야?’

 잠시 생각하던 롤프는 그녀가 뭘 말하는지 눈치챘다.

 “아! 제가 쿨라우드를 나온 게 벌써 알려진 모양이네요. 지금 새로운 사업을 할 생각이라······.”

 [그게 아니라, 롤프 부치 씨가 미네르바를 개발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개발한 걸 훔쳤다고 하던데.]

 그 말에 롤프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아니, 누가 그딴 소리를 합니까!?”

 [란진 쿠마르라는 사람이 폭로했어요.]

 그 말에 롤프는 깜짝 놀랐다.

 “뭐라구요?”

 란진 쿠마르는 그의 대학 동기이자 동업자. 그리고 그에게 제이슨 킴을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지금 WST에서 기사 떴어요.]

 “······.”

 바넷사는 다그치듯 물었다.

 [이거 가짜 뉴스 맞죠? 지난번 저랑 인터뷰에서 분명 개발 비화까지 애기했잖아요. 제 기사 나간 지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

 전화가의 소리가 멀어지며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돼. 란진이 그 사실을 알 리가······.’

 롤프는 일단 전화를 끊은 다음 재빨리 기사를 찾아보았다. 검색하고 말 것도 없이 뉴스란의 가장 위에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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