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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1) (92/529)

 93화.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1)

 알렉스는 약속대로 경영권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잔금 납입 전이지만 쿨라우드의 경영권은 이제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난 시드에게 말해 직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휴가 중이거나 재택근무 중인 직원을 제외하고 80명 정도의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몇몇 직원들은 내 얼굴을 기억하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전에 롤프 부치를 향해 얼간이라고 말하고 쫓겨났던 사람이 회사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난 먼저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구신가요?”

 “제 소개는 나중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모이시라고 한 이유는 중요한 전달 사항이 몇 가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동안 회사를 운영하던 롤프 부치와 알렉스 프레스턴 공동대표 두 분께서는 이 시간부로 회사를 떠나기로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창업자이자 공동CEO인 두 사람이 회사를 떠난다는 말에 직원들은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둘은 단순 경영자가 아닌, 쿨라우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설마 그들이 회사를 떠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난 해고자 명단을 꺼내들었다. 기존 경영자는 여러 이유로 직원을 자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명단에 있는 이름 중에는 시드처럼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는 직원도 여럿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창업자가 잘라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외부인은 다르지. 난 이들과 어떠한 인간적인 관계도 없으니까.

 “안타깝지만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분들은 회사를 떠나주시면 됩니다.”

 난 당황하는 사람들을 향해 미리 작성해온 명단을 읽었다.

 “앤소니 로버트슨, 스캇 잭슨, 마크 카터, 미차 칼리니, 라이더 프레이저, 로렌 힐, 킴벌리 플럼머······.”

 차례차례 이름이 불렸고, 그때마다 한 사람씩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총 93명의 직원들 중 무려 22명이 해고 대상이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이들은 다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재무팀과 영업팀에서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잘려나갔다.

 40대 초반의 백인 남성은 소리치듯 말했다.

 “아니, 이 사람들 다 내보내면 누가 일을 합니까?”

 난 그를 보며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마빈 그레이츠입니다.”

 “직책은요?”

 “재무팀장입니다.”

 “아! 실수로 빼먹었네요. 당신도 나가세요.”

 “······.”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다시 소리쳤다.

 “저, 저도 나가라구요? 저 없이 쿨라우드가 돌아갈 것 같습니까?”

 “잘 돌아갈 테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짐 싸세요.”

 자신이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직장인의 흔한 착각이지.

 뭐, 인원이 적은 스타트업의 경우 직원 개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긴 하다. 때문에 인사는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난 그의 뒤에 있던 한 여성을 가리켰다.

 “그쪽 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죠?”

 커다란 안경을 쓴 통통한 체형의 30대 중반의 흑인 여성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캐시 볼로드입니다.”

 “지금 하는 일은 뭔가요?”

 “회계 보조를 맡고 있습니다만······.”

 “그 일은 그만두세요.”

 내 말에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오! 하느님! 이러지 마세요! 전 혼자서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 일이 꼭 필요해요. 제발 다시 생각해주세요.”

 “오늘부터 당신이 CFO입니다.”

 “······예?”

 그녀뿐 아니라 모두가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후, 화들짝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제, 제가 CFO라구요?”

 “전공이 회계학 맞죠?”

 “그, 그렇긴 하지만 전 대학만 졸업했는데요?”

 “석사든 박사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일하면서 따세요. 업무는 다른 직원들에게 전부 인수인계받고, 본인이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사람을 뽑거나 다른 사람에게 시키세요.”

 시드는 전형적인 공돌이 스타일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회계나 재무 쪽에는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을 누군가가 적절하게 보조해 줘야 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캐시 볼로드다.

 그녀는 스노우 크래시 CFO로서 시드를 도와 회사를 잘 이끌어나갔다. 그녀가 적절하게 예산을 집행한 덕분에 스노우 크래시는 재정적인 문제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원래 수년 뒤의 얘기. 현재는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모르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하시구요.”

 난 그녀에게 에드워드 밴슨의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그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잘 알려줄 것이다.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 회사는 누가 운영하나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난 시드를 가리켰다.

 “여기 계신 시드 루카스 씨가 오늘부터 CEO를 맡을 겁니다.”

 그 말에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경력만 놓고 본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실력만 놓고 본다면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먼저 박수를 치자 직원들은 얼떨결에 따라서 박수를 쳤다.

 난 시드에게 말했다.

 “직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직원들은 입을 다문 채 신임 CEO가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이윽고 시드가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회사 이름을 바꿀게요.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쿨라우드라는 이름은 너무 구려요.”

 그 말에 몇 명은 동감한다는 표정이었다.

 시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회사 이름은 스노우 크래시입니다.”

 * * *

 쿨라우드······ 아니, 이제는 스노우 크래시가 된 기업의 인수 작업을 끝낸 뒤.

 난 위스키바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예. 반갑습니다.”

 인도계 미국인인 그의 이름은 란진 쿠마르.

 내가 만나자고 연락을 하자마자 그는 바로 달려왔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기사 봤습니다. 그사이 엄청난 일을 했던데요.”

 “어떤 거요?”

 “토머스 모터스 사태 터트린 게 컨티뉴 캐피탈이라면서요?”

 “네. 록허트 대표님께서 직접 진행하신 일이라 저는 잘 모르지만요.”

 그 일 전까지 컨티뉴 캐피탈이 정체 모를 투자사였다면, 이제는 유명하고 돈도 많은 투자사가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돈 많은 투자자는 언제나 환영받기 마련. 그래서인지 지난번과는 나를 보는 눈빛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이래서 유명세라는 게 중요한 거겠지.

 난 싱글 몰트 위스키를 한 병 시켰다.

 “오늘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일전에 만났을 때 난 그에게 롤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제이슨 킴의 아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래서인지 혹시 내가 뭔가 알아낸 게 있는지 기대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덕분에 쿨라우드를 인수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내 말에 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쿨라우드를 인수했다구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아마 조만간 발표가 나갈 겁니다.”

 그는 재빨리 물었다.

 “얼마에 말입니까?”

 특정 기업이 얼마에 팔렸느냐는 실리콘밸리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그게 다른 기업의 가치를 산정할 때 기준점이 되기도 하니까.

 저쪽이 얼마라면 이쪽은 얼마라는 식이랄까?

 “정확한 금액은 저도 잘 모르지만, 상당한 돈을 내고 과반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롤프가 매각을 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서, 설마 그때 말한 것 때문입니까?”

 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말한 거라니요?”

 “롤프에 대해 조사해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이슨 킴의 아내는 만나 봤나요?”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만나 봤습니다.”

 “뭔가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이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내가 뜸을 들이자 그는 목이 타는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괜찮으니 말해보세요.”

 “쿠마르 씨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맞았다니요?”

 그는 화들짝 놀랐다.

 “역시 미네르바 제작에 제이슨이 도움을 줬나요? 아니면, 롤프가 제이슨의 프로그램을 일부 베꼈나요?”

 아무리 의혹을 가졌더라도 설마 프로그램을 통째로 베꼈다고는 생각을 못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지.

 “그게······ 아마 안 들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계속 머뭇거리자 그는 몸이 잔뜩 달아오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서 말해보세요. 전 들을 자격이 있습니다.”

 “꼭 들으셔야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쿠마루 씨께서 알려주신 거니 일단 말씀은 드려야겠네요. 어떻게 된 일이냐면······.”

 난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얘기를 듣는 동안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내 얘기가 다 끝나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 전부 사실입니다.”

 “말도 안 돼! 미네르바가 제이슨 킴이 만든 거였다니!”

 “프로그램 이름도 미네르바가 아닌 미미르였습니다. 롤프 부치 씨는 그걸 그대로 복제해서 창업을 했을 뿐입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설마 그의 아내의 말뿐인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제이슨 씨는 관련 자료를 전부 클라우드 안에 보관 중이었습니다. 둘이 나눈 메일도 있구요.”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난 태블릿으로 메일 내용들을 보여주었다. 그걸 보는 그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이거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의문을 나타냈다.

 “잘 모르겠다니요?”

 난 잠시 머뭇거린 다음 입을 열었다.

 “롤프 부치 씨는 그동안 자신이 미네르바를 개발했다고 수십 차례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죽은 친구의 프로그램을 가져다 쓴 것뿐이었죠. 이건 대단히 심각한 불법행위겠죠?”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죠. 개발자들끼리는 코드 한 줄 베끼는 것도 민감한데 프로그램을 통째로 훔친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큰일이 나지 않겠습니까? 아마 롤프 부치 씨는 실리콘밸리의 혁신가이자 천재 개발자에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거짓말쟁이가 될 겁니다.”

 “그, 그렇겠죠.”

 “사실 오늘 뵙자고 한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해 쿠마르 씨와 상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상의요?”

 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사실을 이대로 묻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말에 그는 당황했다.

 “뭐라구요?”

 “말씀드렸다시피 컨티뉴 캐피탈은 쿨라우드를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런 일이 알려지게 된다면 기업 가치가 크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우려가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죠.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 쿠마르 씨께서도 모른 척해주시는 게 어떤가요?”

 그러자 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버럭 화를 냈다,

 “지금 기업 가치가 떨어질까봐 진실을 외면하겠다는 겁니까?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건 정의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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