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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M&A (2) (91/529)

 92화. M&A (2)

 사실 200억 달러라고 해도 훗날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헐값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지금 가진 돈에서 무려 160억 달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그 고생을 하며 번 돈이 겨우(?) 50억 달러인데, 앞으로 160억 달러를 더 벌어야 한다.

 아무리 내가 회귀를 했다고 해도 무리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기업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다.

 이전 생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안 될 이유를 말하라면 100개는 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지도 못했겠지.

 되냐 안 되느냐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지금 필요한 건 눈앞에 온 기회를 잡을 용기다.

 생각을 끝마친 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단 조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정말로 받아들일 줄 몰랐는지 알렉스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데이비드 역시 놀라는 기색이었다.

 “계약금은 20억 달러. 나머지 잔금 180억 달러는 1년 후 지불 어떻습니까? 계약 이후 바로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게 조건입니다.”

 일단 계약부터 하고 남은 20억 달러를 1년 안에 9배로 불리기만 하면 해결된다.

 “당장 전액을 지불할 여력은 안 되는 모양이군요.”

 “원래 계약금은 보통 매각대금의 10퍼센트 아닌가요?”

 부동산 계약을 해도 계약일과 잔금일이 다르듯, 이런 대규모 M&A의 경우 먼저 계약을 맺은 다음 이후 대금을 지불한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자금 마련에 실패해서 계약이 깨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돈이 많으면 바로 지불하는 게 최고지만.

 “당장 경영에서 물러나라는 조건이 붙어있으면 얘기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시간이 걸릴 뿐, 경영에서는 물러나야 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지분 51.16퍼센트를 확보했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알렉스는 입을 열었다.

 “계약금은 50억 달러. 그리고 6개월 후 75억 달러, 1년 후 75억 달러를 납입하는 걸로 하죠.”

 “계약금을 50억 달러나요?”

 “방금 시장에 투자할 곳은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적어도 투자한 돈은 당장 회수해야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겠죠.”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계약금은 늘고 기한은 줄었다. 6개월 안에 75억 달러를 마련하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계약금 50억 달러도 없다.

 “이 정도면 충분히 양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스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의 입장에서도 잔금이 들어올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겠지.

 “기왕 양보해주시는 김에 좀 더 양보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계약금 40억 달러. 6개월 후 80억 달러, 1년 후 160억 달러를 납입하겠습니다. 단, 매도인 측의 계약 파기는 인정하지 않고 바로 경영에서 물러나는 게 조건입니다.”

 “50억 달러도 없는 모양이군요.”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자금을 마련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입니다.”

 “만약 그때까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요?”

 “그때는 관례에 따라 계약금을 포기해야겠죠.”

 계약 파기시에는 보통 매수자 측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자 측은 받은 계약금의 두 배를 돌려준다.

 하지만 경영권과 관련이 있는 만큼 실제로는 계약 파기를 못 하도록 여러 조건들이 붙어있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데이비드가 재빨리 말했다.

 “그럼 조건은 이걸로 합의됐군요. 더 이상의 변경이나 추가는 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만약 여기서 또 조건을 내걸면 협상은 무산된다는 뜻이다.

 알렉스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데이비드는 계약서를 수정해서 작성했다. 계약서가 완성되자 상대측 변호사는 이를 확인했다.

 알렉스가 먼저 사인했고, 이어서 나와 데이비드가 사인했다. 우리는 각자 계약서를 나눠 가졌다.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일단 끝난 건가?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난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알렉스는 이번에는 내 손을 붙잡았다.

 그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 하필 쿨라우드였습니까?”

 사실 꽤나 무리한 인수였다. 고작 50억 달러로 100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회사를 인수한 거니까.

 약점을 잡아서 싸게 샀다고 하지만 160억 달러의 빚이 생겼다.

 게다가 쿨라우드는 바로 수익을 뽑아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돈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

 뭐 하나 잘못되면 컨티뉴 캐피탈은 그대로 파산하게 될 것이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며 인수에 나선 것이다.

 계약이 끝났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겠지.

 “좋은 기업이니까요. 이제부터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볼 생각입니다.”

 아마 이 기업이 어느 정도로 성장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겠지.

 “프리머스 펀드의 부실, 토머스 모터스의 사기, 그리고 롤프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까지. 이걸 다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난 롤프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대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알렉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운이라······.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롤프 부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보면 그는 롤프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장본인이다. 당연히 감정이 좋을 리 없겠지.

 “글쎄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지 않겠어요?”

 * * *

 인수계약은 끝났지만,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M&A에서 인수는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중요한 건 이다음부터다.

 데이비드는 회사와 관련한 자료를 인계받았다. 약속한 대로 알렉스는 순순히 모든 서류와 자료, 계약서 등을 정리해서 넘겨주었다.

 그 이후에는 시드와 함께 다 같이 호텔방에 모여서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했다.

 왠지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해고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경영 전반에 대한 개혁 작업을 뜻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잘려나가긴 하지만.

 기업 투자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돈만 투자하고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으로 경영과 인사에 개입해 조직문화를 바꾸는 방식이다.

 전자의 방식은 그저 주주만 바뀌는 거니 별 상관이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 과정에서 체질 개선을 통해 더욱 도약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멀쩡하던 회사가 망가지는 일도 있다.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탈(VC)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 경영에 대한 조언과 지원을 해줘도 직접적으로 경영에 간섭하지는 않는 편이다.

 스타트업들은 각자 고유의 기업 문화를 지니고 있는 만큼, 이를 어설프게 건드리면 경쟁력이 훼손되거나 핵심인재가 반발해 회사를 떠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우리가 이제까지 투자한 회사들에 대해서는 전자의 방식을 취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지분 투자가 아닌 M&A였고, 게다가 적대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CEO부터 갈아 치우는 만큼 인사부터 조직까지 전부 개편할 필요가 있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 세 가지는 CEO(최고경영자), COO(최고업무책임자), CFO(최고재무책임자)다.

 쿨라우드의 경우 알렉스 프레스턴이 공동CEO와 CFO를, 롤프 부치가 공동CEO와 COO를 맡았다.

 어차피 롤프 부치는 그동안 얼굴마담이나 다름없었고 시드가 모든 걸 맡아서 해 왔으니, 이쪽은 그가 사라져도 별문제 없다.

 개발자들도 전부 시드를 믿고 따르고 있으니 반발도 없을 테고.

 문제는 영업팀과 재무팀이다.

 이쪽은 그야말로 알렉스 프레스턴이 꽉 잡고 있고 그의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들을 계속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나는 누가 남아야 할 사람이고, 누가 떠나야 할 사람일지 대충 알고 있다.

 왜냐하면 쿨라우드는 훗날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거듭나고, 난 이 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실리콘밸리는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편이다.

 인사 문제는 정리했고, 그다음은 사업 재편이다.

 기존에 하던 사업을 그대로 하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시드의 생각은 달랐다.

 “빅3 눈치 볼 것 없이 갈 길을 가야 해요.”

 알렉스는 안정적인 경영에 초점을 맞췄다.

 때문에 사업 초창기부터 빅3와 제휴를 맺고 협력하며,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사업을 이어나갔다.

 AMZ의 ZWS, NS의 에이저, 구블의 빅스토리지는 서로 견제하는 입장이다. 때문에 서로의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쿨라우드는 이들과 제휴하여 데이터에 접속할 권한을 얻어냈다.

 예를 들어 A회사와 B회사가 협력을 한다고 치자.

 그런데 A회사는 ZWS를, B회사는 에이저를 사용하고 있다면? 쿨라우드는 양사의 동의하에 접속해 각 클라우드에 있는 데이터를 가져와서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이는 쿨라우드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었다. 그런데 시드의 얘기는 이 강점을 버리고 독자적인 노선으로 가자는 거다.

 “그렇게 하면 돈은 좀 아낄 수 있겠네.”

 현재 쿨라우드의 지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빅3에 내는 돈이다.

 데이비드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렇게 하면 빅3와는 적대관계가 되지 않겠습니까? 고객들이 이탈할 우려가 있을 텐데요.”

 이게 상식적인 생각이겠지.

 하지만 이건 미미르의 성능과 시드의 실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반면 나는 잘 알고 있고.

 시드는 자신 있게 말했다.

 “데이터를 전부 쿨라우드 서버로 옮기게 하면 돼요.”

 특정 회사의 클라우드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지 그 안에 정보를 저장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회사가 제공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락인(Lock In) 효과로 인해, 기존에 사용하던 클라우드를 변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미르의 알고리즘을 따라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그동안 빅3 눈치 보느라 만들어 놓고도 실행하지 않은 서비스들이 많아요. 그걸 선보이면 고객들도 결국 쿨라우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걸요.”

 난 시드의 편을 들었다.

 “일부 고객 이탈은 있을 수 있어도 크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앞으로 빅3의 견제가 심해지긴 하겠죠.”

 “어차피 걔들 서비스는 쓰레기예요.”

 빅3 클라우드 기업을 향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시드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긴 하지.

 “이제부터는 네 기업이니까 원하는 대로 해. 정리 끝나고 나면 경영에 간섭하는 일도 전혀 없을 거야.”

 “헤헷.”

 데이비드는 약간 못 미덥다는 눈빛이었지만 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쿨라우드가 진짜 제대로 성장하기 시작한 건 알렉스와 롤프가 물러나고 시드가 CEO가 된 뒤부터였다.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잘하는 사람이 있다. 맹수는 목줄을 풀어놨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지.

 난 시드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아! 여기에 서명해.”

 “뭔가요?”

 “주식 양도 계약서야. 쿨라우드 지분 10퍼센트를 넘길게.”

 스톡옵션도 아니고 바로 주식을 양도하는 거다. 이렇게 하면 시드의 지분은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올라간다.

 시드는 눈을 크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회사 주식을 그렇게 막 줘도 되는 거예요?”

 “내 주식 내가 주는 건데.”

 “하긴 그러네요.”

 시드는 내가 내민 서류에 사인했다.

 10퍼센트면 현재를 기준으로 대략 100억 달러 정도의 가치가 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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