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M&A (1) (90/529)

 91화. M&A (1)

 사실 이런 문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리포트로 토머스 모터스 주식 90퍼센트를 폭락시켰다.

 정확히는 허위사실로 인해 고평가된 주식을 적정가격으로 되돌린 거지만, 소액주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어쩌면 그들 중에는 전 재산을 날린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걸 일일이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지.

 거기에는 그저 돈이 있을 뿐이다. 그게 투자자가 하는 일이고.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잖아요. 만약 데이비드가 없었다면 저 혼자서는 절대 못 했을걸요.”

 인수한 기업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그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는 회상에 잠긴 듯 말했다.

 “뜬금없이 저를 고용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고는 좀 놀랐습니다. 처음 카페에서 만났을 때는 더욱 놀랐구요.”

 “그러고 보니 제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해보세요.”

 “신입사원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신입사원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DA증권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1년도 안 걸렸다. 회귀 전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10년이 넘게 걸렸지만 말이다.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회사에서는 어땠습니까?”

 “그냥 말단 직원이었죠.”

 “애널리스트였다고 했죠?”

 “정식 애널리스트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배우는 과정이었죠. RA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RA란 리서치 어시스턴트(Research Assistant). 애널리스트가 되기 전 수련생 정도로 보면 된다.

 데이비드는 실소를 흘렸다.

 “몇 개월 전까지 증권사 말단 직원이었던 사람이 토머스 모터스 사태를 터트리고, 쿨라우드를 인수한다고 하면 누구도 믿지 않을 겁니다.”

 “사실 저도 잘 믿기지 않아요.”

 “처음 계약을 했을 때만 해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계약에 응한 건 단지 돈 때문이었죠.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재밌죠?”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실 샤크 매니지먼트의 제안을 거절한 걸 한동안 후회했습니다. 많은 투자금을 운용하는 사모펀드에서 일하는 건 모두가 꿈꾸는 일이니까요.”

 “지금은요?”

 “컨티뉴 캐피탈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평생 해보지도 못한 경험을 실컷 하게 되었으니까요.”

 난 웃으며 말했다.

 “벌써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진짜 재밌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쿨라우드를 사겠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해내는군요.”

 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일이 돼봐야 알지 않겠어요? 알렉스가 협상에 나설지 안 나설지 알 수 없고.”

 “과반의 지분을 확보한 이상, 그에게서 경영권을 빼앗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경영권은 내놓더라도 지분은 계속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데이비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는 매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째서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의 말대로다.

 알렉스는 우리에게 지분을 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알렉스는 롤프와 달리 바보가 아닐 테니까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은 어느 정도 값을 쳐줘야겠죠.”

 문제는 그만큼의 돈이 없다는 거지만. 그건 어떻게든 해결해야겠지.

 “어쨌거나 내일이면 끝이 나겠군요.”

 그러면 미국에서의 긴 여정도 마무리가 되겠지.

 “이것만 마시고 들어가죠.”

 우리는 맥주병을 가볍게 부딪쳤다.

 * * *

 난 눈앞의 남자를 보았다.

 195센티나 되는 키에 선이 굵은 얼굴. 떡 벌어진 어깨와 굵은 팔뚝. 학력은 무려 하버드대 경제학과 수석졸업.

 게다가 미국의 금융재벌 프레스턴가의 사람이니, 나랑은 태생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서로 말을 섞을 일조차 없었을 텐데, 지금은 협상을 위해 이렇게 만났다.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알렉스 프레스턴은 내 손을 붙잡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나와 데이비드 록허트가 앉았고, 맞은편에는 알렉스 프레스턴과 두 명의 변호가 함께했다.

 “프레스티지A PE 대표님은 안 계시네요.”

 알렉스는 위임장을 보여주었다.

 “제가 위임을 받았습니다.”

 “자, 그럼 협상을 진행해 볼까요?”

 분위기가 제법 살벌하다. 하기야 적대적 M&A를 하는데 하하호호 웃을 수는 없겠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원하는 건 알렉스 프레스턴 씨와 프레스티지A PE의 지분을 전부 인수하는 겁니다.”

 알렉스는 딱딱한 억양으로 물었다.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요?”

 “그럼 그동안의 미미르 무단 사용에 대한 배상금과 앞으로의 로열티를 협상해야겠죠.”

 “금액은 컨티뉴 캐피탈이 멋대로 책정하겠군요.”

 난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매각에 대해 얘기해보죠. 금액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난 바로 생각해온 금액을 꺼냈다.

 “40억 달러는 어떻습니까?”

 그는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말했다.

 “10억 달러가 줄었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롤프 부치 씨의 지분을 제외한 프레스턴 씨와 프레스티지A PE 지분에 대한 금액이니 오히려 오른 겁니다.”

 “저와 펀드가 이제까지 투자한 돈이 49억 달러라는 건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블루펄로부터 100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건요?”

 쿨라우드 가치를 1000억으로 보면 그의 지분은 약 49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

 데이비드는 그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

 “쿨라우드의 기업 가치에는 CEO의 역량도 크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두 CEO가 지분을 팔고 떠난다면 어차피 기업 가치는 크게 떨어지게 될 겁니다.”

 최고경영자라는 명칭답게 CEO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누가 CEO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멀쩡하던 기업이 망하기도 하고, 망해가던 기업이 살아나기도 한다.

 NS만 하더라도 CEO가 스티븐 헤이든에서 사티아 샤말란으로 바뀐 뒤 주가가 2배 이상 올랐다.

 세계적인 IT 대기업이 이러한데 스타트업은 오죽하겠는가?

 규모가 작은 만큼 스타트업은 CEO의 역량이 사업에 미치는 비중이 훨씬 크다. 잘나가다가도 CEO가 팔고 떠난 뒤 엉망이 된 기업이 어디 한둘인가?

 물론 쿨라우드는 시드가 알아서 잘할 테니 별 걱정 없지만.

 “그 말은 매각과 동시에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군요.”

 “비록 미미르를 무단으로 사용한 덕분이긴 하지만, 그동안 회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서로 최악까지 가는 건 피하죠.”

 “그럼 현실적인 금액을 제안해야 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롤프와는 달리 알렉스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떻게 보면 멀쩡히 잘 운영하던 기업을 나에게 빼앗기는 셈이다.

 게다가 그는 쿨라우드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었다. 투자에 실패했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면 자신의 몫은 챙겨야겠지.

 “100억 달러는 어떻습니까?”

 “진심이라면 더 이상의 협상은 불필요하겠군요.”

 “그러면 얼마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알렉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250억 달러.”

 난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네요.”

 “원래 1000억인 기업 가치를 절반으로 낮춘 겁니다. 이 정도면 꽤 많이 양보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금액 이하라면 굳이 매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250억 달러는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그럼 얼마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150억 달러는 어떻습니까?”

 알렉스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솔직하게 얘기해보죠. 어째서 제 지분을 인수하려는 겁니까? 경영권이 목적이라면 굳이 인수할 필요가 없을 텐데. 제 지분까지 인수한다는 건 쿨라우드를 자회사로 두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생각이라는 거겠죠. 컨티뉴 캐피탈이 인수한다면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리스크도 소멸될 테니까요. CEO 두 명이 퇴진한다 해도 시드 루카스가 있으면 기업 운영에는 큰 지장이 없을 테고. 그런데 제가 굳이 지분을 헐값에 매각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수익이 로열티로 다 빠져나가면 소용없을 테니까요.”

 “그건 차선책 아닙니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런 협상을 할 필요조차 없겠죠. 안 그렇습니까?”

 “······.”

 내가 원하는 건 가능한 한 온전하게 쿨라우드를 인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렉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51.16퍼센트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협상에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 그에게 말했다.

 “프레스턴 씨라면 아실 겁니다. 지금은 산업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기이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시장에 투자할 기업은 많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괜한 소모전은 피하는 게 좋다는 거죠. 기업을 매각한 뒤 다른 곳에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컨티뉴 캐피탈에도 해당되는 얘기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여기서 시간을 끌 만큼 나도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빨리 인수 문제를 매듭짓고 다음 일을 해야 한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200억 달러에 전부 매각하기로 하죠.”

 “200억 달러요?”

 “그 이하로는 단 1페니도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 150억 달러를 챙겨 엑시트하는 셈이다. 투자기간을 고려하면 꽤나 성공적인 투자다.

 물론 이런 일이 생기지 않고 상장까지 갔다면 초대박 투자였겠지만.

 알렉스는 한마디 덧붙였다.

 “이 금액을 받아들인다면 인수 과정에도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합의하에 이뤄지는 M&A는 인수 전 기업 상태에 대해 각종 실사를 벌여 기업의 현황을 파악하지만, 적대적 M&A는 실사 없이 이뤄진다.

 때문에 인수 후에도 회사 장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별 하는 일도 없이 CEO 자리에 앉아있던 롤프와는 달리, 회사의 재무와 영업과 관련한 모든 건 알렉스의 손을 거쳤다.

 인수 후 잡음 없이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자.

 나는 반드시 그의 지분을 사고 싶고, 그는 나한테 밖에 팔 수 없다. 사실상 매도자와 매수자가 1대1 상황이다.

 200억 달러가 엄청난 금액이긴 해도 원래 그의 지분은 약 490억 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그걸 절반도 안 되는 금액에 강제로 파는 것이다.

 이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알렉스 프레스턴은 CEO.

 그를 회사에서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사회는 사실상 그가 장악하고 있다.

 물론 과반의 지분을 우리가 가진 만큼 주총을 열면 이기겠지만, 그를 쫓아낸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그는 자신과 펀드 명의로 여전히 쿨라우드 지분 48.84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절대로 이 지분을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유상증자를 하면 참여할 테고,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면 법원에 각종 소송을 걸어 막을 것이다.

 그런 진상짓(?)을 못하게 만들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지분을 전부 인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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