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게임 이론 (3)
난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무 억울해할 것 없어요. 어차피 언젠가는 들통났을 테니까.”
“그럴 리가······.”
애초에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움직인 것은 훗날 패트롤이라는 특허괴물 회사가 권리를 확보해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돈이 목적이었지만 난 회사가 목적이라는 것.
“아무튼 잘 오셨어요. 방금 리포트 작성이 끝났거든요.”
“리포트?”
“예. 쿨라우드의 부도덕한 행위를 폭로하는 리포트입니다.”
난 그의 앞에 데이비드 록허트가 작성한 리포트를 올려놓았다. 롤프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넘겨보았다.
“이걸 WST의 트리시 오코너 기자에게 보낼 생각입니다. 아마도 실리콘밸리를 뒤흔들 엄청난 특종이 되겠죠. 이 정도면 퓰리처상 감 아닐까요?”
농담이다.
이 정도로 탈 수 있을 만큼 퓰리처상이 만만친 않지.
롤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며 원래 하얀 얼굴이 더욱 새하얗게 변했다.
“이, 이걸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예.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잖아요. 아직 토머스 모터스 사태로 인한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기사가 터지면 볼 만하지 않겠어요? 실리콘밸리 최고의 스타가 사기꾼이었다니. 이것만큼 사람의 흥미를 끄는 얘기가 또 어디 있겠어요? 모든 언론사들이 대서특필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화력은 폭발하겠죠.”
“······.”
실제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그다지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면 말해줄 필요도 없이 바로 WST에 보내면 그만이다. 굳이 당사자에게 말해준다는 건 당장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평상시라면 그 사실을 쉽게 깨달았겠지만, 지금은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그만큼 궁지에 몰려있기 때문이겠지.
잠시 침묵하고 있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어제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지분을 매각하고 회사를 떠나세요. 그게 저희가 원하는 겁니다.”
롤프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쿨라우드는 내가 만든 회사야! 지금 내 회사를 빼앗겠다는 거야?”
“정확히는 미미르를 훔쳐서 창업한 회사잖아요. 미미르가 없었으면 애초에 쿨라우드는 존재하지도 못했을 텐데.”
롤프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렇다 해도 회사를 키운 건 나야! 난 할 만큼 했어!”
“당신이 뭘 했는데요?”
“창업이 쉬운 줄 알아? 잠도 못 자고 개발에 매달리고, 오류가 있으면 일일이 수정하고, 직원을 고용하고 관리하고, 고객들을 상대하고. 내 3년을 고스란히 쿨라우드에 바쳤다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쿨라우드 역시 없었겠지. 그런 점에서 그가 사업가로서 재능이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니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을 테고.
“게다가 내 돈까지 다 쏟아부었어!”
그는 20살 때 창업한 틴팅을 매칭그룹에 매각해 1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그중 9억 달러를 쿨라우드에 쏟아부었다.
다른 사업하다가 날렸을 돈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 재산을 투자한 셈이다.
물론 그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제이슨이 나처럼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못했겠죠.”
철들기 전부터 창업을 한 롤프와는 달리 제이슨은 자기 사업을 해본 적이 없다. 만에 하나 사업 역량은 있었다 해도 9억 달러는 없었을 테니.
“생각해봐. 어차피 내가 쓰지 않았다면 미미르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거야. 서버 어딘가 묻혀 있다가 사라졌을 거라고.”
“음······.”
개소리긴 한데 제법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이슨 킴 본인을 제외하면 미미르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롤프 부치뿐이었다. 만약 그가 프로그램을 훔치지 않았다면 미미르는 클라우드 서버에 영원히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쿨라우드라는 기업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고, 시드도 그 전에 몸담고 있던 토크잇에서 계속 일했겠지.
어쩌면 클라우드와 관련한 일을 안 했을 수도 있고, 클라우드 일을 했더라도 미미르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면 판게아의 등장이 늦어지거나 아예 등장 안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롤프는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미미르는 원래 아무것도 아닌 프로그램이었어.”
미미르는 딥러닝이 가능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쿨라우드는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벌써 3년 동안 학습을 시켰다. 우리가 가진 미미르가 갓 태어난 아기라면, 쿨라우드의 미네르바는 이미 열 살쯤 되는 소년이라 할 수 있다.
“나를 만나 지금처럼 성장한 거야. 만약 제이슨이 다뤘다면 형편없는 프로그램이 됐을걸.”
“······.”
정확히는 그를 만나 성장한 게 아니라 시드를 만나 성장한 거지만······ 그가 시드에게 미미르를 맡겼으니 이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아이라도 언제 어떻게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런데 미미르는 시드라는 좋은 양육자를 만나 훌륭하게 성장했다.
현실에서 천재를 두 명 길러내기 위해서는 두 배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에서는 그냥 복제를 하면 된다.
실제로 미미르는 향후 디지털화가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활용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판게아를 통해 연결돼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롤프 부치가 죽은 친구의 프로그램을 훔쳤기 때문에 내가 아는 미래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성이 쓰레기라서 그렇지 나름 세상에 큰 공헌을 한 셈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 행동이 용서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변명을 늘어놓는 걸 보면 지금도 죄책감보다는 억울함이 앞서는 듯했다.
“뭐라고 하든 미미르를 훔쳤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죠.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요.”
“······.”
반박할 말이 없는지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난 그가 먼저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원래 아쉬운 놈이 먼저 입을 열기 마련이다.
역시나 롤프는 먼저 입을 열었다.
“지분을 팔면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는데?”
생각 같아서는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그가 작정하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나오면 나도 답이 없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회유를 해야겠지.
“고소와 소송은 피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라는 사람이 죽은 친구 프로그램을 훔친 죄로 검찰청이나 법원 들락날락거리면 사람들 보기 안 좋지 않겠어요?”
“얼마에 사줄 수 있는데?”
난 미리 생각하고 있던 금액을 말했다.
“10억 달러 어때요? 그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뭐!?”
전혀 예상치 못한 금액이었는지 롤프는 화들짝 놀랐다.
“고작 10억 달러?”
“10억 달러면 고작은 아니지 않나요? 괜한 헛짓거리만 하지 않는다면 남은 생 동안 흥청망청 써도 다 쓰지 못할 겁니다.”
“내가 쿨라우드에 투자한 돈이 9억 달러야!”
“예. 그래서 10억 달러를 제시한 겁니다.”
더 후려치고 싶지만, 투자한 돈 이하로 제시한다면 쉽게 응할 리 없을 것이다. 최소한 손실이 아니라는 인상은 심어줘야겠지.
“심지어는 지난번에 제시한 금액보다도 적잖아!”
그가 가진 지분은 31.16퍼센트.
지난번에 제시한 50억 달러를 기준으로 보면 약 19억 5천만 달러다.
못해도 그 정도는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대신 고소와 소송을 포기하는 조건이잖아요. 그동안의 무단 사용에 대한 로열티만 해도 꽤 되지 않겠어요?”
사실 이건 우리 쪽에서도 상당히 부담이 되는 조건이다. 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카드를 포기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분을 넘기지 않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런 헐값에 지분을 넘기라는 게 말이 돼?”
쿨라우드의 가치를 1000억 달러라고 한다면 그의 지분에는 약 31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 그걸 10억 달러에 넘기라고 하니 속이 쓰릴 만도 하겠지.
“어차피 회사가 망하면 0달러잖아요. 그러느니 10억 달러에 파는 게 낫지 않나요?”
롤프는 이를 갈듯 말했다.
“미네르바가 없다고 쿨라우드가 그렇게 쉽게 망할 것 같아?”
“시드까지 없으면요?”
“뭐?”
“인수를 못 할 경우, 전 시드와 개발자들을 전부 빼갈 생각입니다.”
“그, 그게 될 것 같아? 시드는 쿨라우드 지분 20퍼센트를 가지고 있어.”
“소송에 시달리고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망해가는 회사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미미르를 가지고 자기 회사를 만드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리고 시드 성격 몰라요? 미네르바가 훔친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면 자기 지분이고 뭐고 당장 때려치우고 나올 것 같은데. 시드가 나간다고 하면 개발자들도 따라서 나올 테고.”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시드를 가까이서 봐온 만큼 성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시드는 이 사실을 알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며 자기 지분을 포기하고 나가겠다고 말했었다.
물론 그때는 20퍼센트가 아닌 5퍼센트였지만.
“못 믿겠으면 이 자리에 시드를 불러서 한번 물어볼까요?”
미미르와 시드가 없으면 쿨라우드는 껍데기만 남는 회사다. 실제로는 그 껍데기만 해도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난 그에게 말했다.
“쿨라우드가 이대로 망해도 우리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면 그만이에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최악이죠.”
“어째서?”
“투자금을 전부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죽은 친구의 프로그램을 훔치고 회사를 망하게 만든 사람으로 모두에게 기억될 테니까요. 그러느니 지분을 매각하고 돈이라도 챙기는 게 낫지 않겠어요?”
말은 이렇게 해도 쿨라우드가 망하면 내가 제일 곤란하다.
가뜩이나 내 개입으로 인해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만큼, 가능한 온전하게 인수를 해야 한다.
알렉스가 헐값에 자신의 지분을 넘길 리 없으니 무조건 롤프의 지분을 사야 한다.
속마음은 초조했지만 난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조건이 하나 있어.”
“고소와 소송을 면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일단 들어나 보죠.”
“미네르바와 관련된 사실을 비밀로 해줘.”
“예?”
데이비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 표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어째서?”
“계약을 하면서 그의 아내에게 제이슨 킴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설마 계약서에 그런 내용도 적었어?”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건 그냥 약속한 거죠.”
롤프는 살짝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네. 말로 한 약속이면 안 지켜도 되는 거 아니야?”
“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기야 이런 캐릭터니까 죽은 친구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가져다 썼겠지.
데이비드를 보니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은 걸 참는 것 같은 표정이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