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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게임 이론 (2) (84/529)

 85화. 게임 이론 (2)

 난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그램 사용을 중단하고 당사자가 책임을 지고 나간다면 회사로 쏟아지는 비난은 피할 수 있겠네요.”

 물론 롤프 부치가 순순히 나갈 때의 얘기지만.

 “그다음 컨티뉴 캐피탈과 미미르 사용에 대한 협상에 나서겠죠. 프로그램을 매수하거나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요. 그게 결렬되면 매각을 검토할 테구요.”

 “쿨라우드를 살 만한 회사가 있을까요?”

 “구블이 오래전부터 접촉하고 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AMZ의 ZWS, NS의 에이저, 구블의 빅스토리지는 흔히 클라우드 빅3로 불린다.

 하지만 정확히는 2강 1약이라고 할 수 있다.

 점유율로 보면 ZWS가 32퍼센트, 에이저가 20퍼센트인데 비해 빅스토리지는 고작 8퍼센트에 불과하니까.

 때문에 구블은 오래전부터 클라우드 사업에서의 확장을 꾀했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한 가장 편하고 안전한 방법이 인수합병이다.

 구블 입장에서는 쿨라우드가 확보한 고객과 인수 후의 시너지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인수할 만하다는 판단이 설 것이다.

 “미네르바를 못 쓰는 건 치명적이지만, 어차피 구블 역시 자체 프로그램이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일종의 볼트온(Bolt-on) 기법이네요.”

 관련 업종 내의 사업영역이 겹치는 기업을 추가로 인수합병하면 덩치를 키우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인수 과정에서 누구도 훼방을 놓지 않았을 때나 가능한 일 아닌가요?”

 데이비드는 피식 웃었다.

 “훼방을 놓겠다는 거군요.”

 “구블의 모토는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죠.”

 창업 초기에 나쁜 짓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막상 공룡기업이 되니 돈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악행을 저지르다가 나중에는 은근슬쩍 ‘옳은 일을 하자(Do the right thing)’로 변경했다.

 물론 그 뒤로도 옳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 돈 되는 일을 했을 뿐이지.

 “죽은 친구의 프로그램을 훔쳐서 창업했다고 소문난 기업을 인수하려면 큰 부담이 따르지 않겠어요?”

 “가격만 싸다면 얼마든지 악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벌써부터 구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럼 배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매각 못 하도록 소송이라도 해야죠.”

 데이비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소송까지 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적어도 3년, 길면 10년까지도 끌 수 있을 겁니다.”

 “그 사이 기업은 회생불가능이 되겠네요.”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끝장이다.

 디지털 산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독과점이다.

 대형 음식점이 생긴다고 해서 주위의 작은 음식점이 망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수용 인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음식점의 자리가 다 차고 나면 다른 사람들은 어차피 주변 음식점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인터넷 기업은 다르다.

 수요가 많다 싶으면 서버를 확장하면 그만이다. 음식점이든 쇼핑몰이든 수요에 맞춰 무한대로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쿨라우드가 소송에 시달리다 보면 그사이 다른 기업들이 고객을 빼앗고 시장을 먹어치울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빠르고 온전한 상태로 인수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비용은 감내해야겠지.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쿨라우드가 비상장 회사라는 겁니다. 과반의 지분을 창업자 두 명이 들고 있는 만큼, 이들이 팔지 않겠다고 버티면 적대적 M&A는 애초에 불가능해지죠.”

 가격이란 매도자와 매수자가 있어야 성립된다. 매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가격은 위로 무한대로 치솟게 된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업자가 둘이라서 정말 다행이네요.”

 내 말뜻을 눈치챈 데이비드는 피식 웃었다.

 “게임 이론인가요?”

 게임 이론 중 가장 유명한 게 바로 죄수의 딜레마다.

 구성원 모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서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 법이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그 틈을 노려야 한다.

 * * *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내려다보이는 고층 펜트하우스.

 복층 구조의 펜트하우스에는 테라스에 수영장까지 달려 있었다.

 월 렌트비만 해도 웬만한 직장인 연봉에 해당되는 이곳이 롤프 부치의 집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이곳에서 연예인과 모델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고, 많은 여자들이 그와 데이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혼자였다.

 알고 지내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지금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상의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두운 집 안에 혼자 있으니 머릿속에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어째서 제이슨은 그 자료들을 남긴 거지? 그의 아내는 정말로 몰랐을까? 왜 하필 지금인 거야?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반성이나 죄책감보다는 후회와 억울함이 앞섰다.

 자료를 남긴 제이슨, 그 권리를 넘긴 그의 아내, 그걸 사들인 한미루와 데이비드 록허트,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알렉스.

 그들 모두가 원망의 대상이었다.

 롤프는 자신을 바라보던 알렉스의 시선을 떠올렸다. 그 눈에는 경멸의 빛이 어려 있었다.

 알렉스는 해결책을 찾는 동안 쉬고 있으라고 말한 뒤 연락이 없었다.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그들이 제시한 기한은 사흘.

 사흘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과연 그사이 알렉스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삶을 손에 넣었다.

 모두가 그를 존경했고, 모두가 그를 부러워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혁신가이자 최고의 스타였다.

 젊고 잘생긴 외모. 천재적인 두뇌에 뛰어난 개발 실력. 여기에 돈도 많고 언변도 뛰어났다. 매스컴은 그를 주목했고, SNS에 올린 사소한 글 하나까지도 기사화됐다.

 사방에서 인터뷰와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수많은 개발자와 프로그래머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았고, 그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성공한 개발자에게는 ‘제2의 롤프 부치’라는 호칭이 붙었고,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마치 할리우드 배우나 락스타와도 같은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생겼다.

 진실이 알려지면 테라피스의 메르세데스 왓슨이나, 토머스 모터스의 브레드 버튼이 그러했듯 그 역시 대중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아니, 그들보다 훨씬 높은 명성과 인기를 누렸던 만큼 떨어질 때의 충격도 클 것이다.

 모두가 그를 욕하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건 막아야 돼!’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나마 첫 만남에서 이 얘기를 꺼냈다면 대응할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록허트는 몰락한 투자자였고, 컨티뉴 캐피탈이라는 회사는 이름도 없는 투자사였으니까.

 그들이 폭로한다고 해봐야 귀 기울일 사람은 얼마 없을 테고, 어쩌면 자본과 명성으로 짓누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사이 협상을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데이비드 록허트가 토머스 모터스 사태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가 나서서 폭로한다면 모든 언론들이 대서특필할 것이다.

 “안 돼······.”

 명성을 잃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 순간,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상대가 원하는 것은 쿨라우드다.

 그렇다면 그걸 넘겨주면 되지 않을까?

 롤프는 정신없이 서랍을 뒤져서 구겨진 명함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명함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 *

 난 전화를 끊은 다음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롤프가 만나자고 하네요.”

 “하루 만이로군요. 이틀은 버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오래 버틴 셈이죠.”

 “사실이 알려지는 게 어지간히 두려운 모양이군요.”

 “사람은 각자 중요한 게 다르잖아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명예. 애초에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런 약점을 만들지도 않았겠지.

 덕분에 나한테도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데이비드도 중요한 게 있지 않나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중요한가요?”

 “제 목숨보다도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난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다.

 “보스께서는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음······.”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아, 그게 아니라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이전 생에서는 회사가 망한 뒤 모든 걸 포기하고 별 생각과 목표 없이 그냥저냥 살았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고 어느새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생각해보면 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열심히 살았거나 가진 게 있는 사람의 얘기다.

 그러니······.

 “이제부터 중요한 걸 좀 만들어 봐야겠네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하나가 쿨라우드가 되겠군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어떻게 협상을 하실 생각입니까?”

 1회차 때도 가끔 고객들이나 상대했지, 인수합병 협상을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많을 테니 이제부터 익숙해져야겠지.

 “생각은 해놨는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도움이 필요하면 신호 드릴 테니, 그때 나서 주세요.”

 “상황에 따라서는 좀 세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잘됐네요. 세상에 좋은 경찰이 있으면 나쁜 경찰도 있는 법이니까요.”

 롤프 부치는 우리가 머무는 호텔로 찾아왔다.

 난 데이비드와 함께 그를 맞았다. 그의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롤프 부치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지녔다. 그의 인기 중 절반은 잘생긴 얼굴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본인도 자신이 잘생긴 걸 아는지 적극적으로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하루 만에 10년은 늙어 보였다.

 어제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가 힘들 정도다. 자랑거리였던 찰랑찰랑하고 윤기가 흐르던 금발은 누렇고 퍼석퍼석하게 변해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니 마리 앙투아네트 신드롬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는 모양이다.

 특유의 당당한 표정과 사람을 깔보는 듯한 태도 역시 사라졌다.

 하루 동안 어지간히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지만 별로 동정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자업자득이니.

 난 태연하게 물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건가요?”

 그는 바짝 마른 입술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가요?”

 “제이슨 킴이 미미르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건 그와 나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는데.”

 “뭐, 운이 좋았다고 해두죠.”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회귀를 한 것 자체가 운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니들만 아니었으면 끝까지 누구도 몰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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