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게임 이론 (1)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터넷은 사람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디지털화의 바람을 타고 IT기업들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과거 시총상위 그룹은 에너지, 자동차, 철강 등 실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차지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며 그 자리를 엔플, 구블, NS, AMZ 등의 IT기업들이 차지했다.
이제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인터넷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인터넷 없이 인류문명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정도다.
미래는 인터넷에 있고, 그 중심에는 클라우드가 존재한다.
알렉스 프레스턴은 클라우드의 성장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IT기업들은 이미 시장에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AMZ의 ZWS, NS의 에이저, 구블의 빅스토리지는 클라우드 빅3로 불리며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시장이 성장세에 있는 만큼 그 안에서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시장의 진입을 노리고 있던 그는 롤프 부치를 만났다.
롤프 부치에게는 그가 개발한 미네르바라는 프로그램과 실리콘밸리의 천재라는 명성이, 알렉스 프레스턴에게는 자본과 그것을 운영할 능력이 있었다.
두 사람의 궁합은 최상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도 쿨라우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며, 빅3의 점유율을 잠식했다. 고객들은 쿨라우드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만족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알렉스는 자신이 최고의 파트너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직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이런 멍청한 놈과 동업을 했다니!’
IT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특허와 저작권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하는 것도 알렉스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특허를 해결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핵심 프로그램이 훔친 거였다니!
특허를 헐값에 구매해 기업을 공격하는 것은 전형적인 특허괴물들의 수법이나 다름없다.
아니, 차라리 특허괴물의 손에 넘어갔다면 나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얼마든지 돈으로 해결이 가능했을 테니까.
그러나 상대가 원하는 것은 쿨라우드 그 자체였다.
알렉스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일단 프레스턴 가문 소유의 로펌 변호사들부터 만났다. 서류를 검토한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내저었다.
“증거가 너무 확실합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없습니다.”
“권리 인수 계약에도 아무런 빈틈이 없습니다.”
하기야 데이비드 록허트 본인이 투자자이자 변호사다. 그런 만큼 계약에 있어서 허점을 남겼을 리 없다.
“지금으로서는 소송을 최대한 끄는 게 최선입니다만······.”
그것도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클라우드 기업은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특허 소송에 시달리고, 언제 핵심 프로그램 사용이 중단될지 모른다면? 이런 기업과 누가 거래를 지속하겠는가?
게다가 단순 특허 침해도 아니고 도덕적인 문제까지 얽혀있다. 소송을 벌이는 사이 쿨라우드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쿨라우드는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1000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받은 것은 압도적인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자 폭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의 적자 역시도 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것일 뿐,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수익을 냈을 것이다.
그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것이 미네르바였다.
미네르바가 없으면 회사 가치는 얼마까지 내려가게 될까?
알렉스는 자신의 몫으로 받은 투자금을 전부 쿨라우드에 밀어 넣은 것은 물론 가문의 돈까지 끌어다 투자했다.
창업할 때 5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후 12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 그리고 그룹 산하의 프레스티지A PE의 투자를 유치해 지분 20퍼센트를 32억 달러에 매각했다.
따라서 그가 쿨라우드에 투자한 금액은 총 49억 달러.
일반적으로 사모펀드의 투자는 5년에 100퍼센트 수익을 목표로 한다. 100퍼센트라고 하면 엄청나 보이지만, 연수익으로 따지면 14퍼센트 수준.
여기에 각종 비용과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수익률은 1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VC(벤처캐피탈)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리스크가 큰 만큼 성공했을 때의 수익률은 2배 3배가 아닌, 10배 100배도 될 수 있다.
이대로 회사를 최대한 키운 다음 IPO에 성공하면 그가 투자한 59억 달러는 500억도 1000억도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까지는 이제 코앞이었다. 모든 것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튀어나온 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만약 이대로 실패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는 프레스턴가의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될 것이다.
첫 만남 때 느꼈던 위화감은 사실이 되어 나타났다.
‘설마 그때부터 쿨라우드의 약점을 알고 있었던 건가?’
그들은 처음부터 쿨라우드를 인수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때 눈치를 챘다면 미리 대응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늦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거지?’
롤프 부치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천재 개발자였다. 때문에 그가 미미르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실력과 명성에 모두가 속아 넘어간 것이다. 심지어는 동업자인 그마저도.
그런데······.
‘3년 동안 같이 지낸 나도 눈치채지 못한 걸 이렇게 쉽게 알아냈다고? 대체 어떻게?’
생각해보면 다른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다.
펀드 부실을 알아내 폭로한 것, 토머스 모터스의 문제점을 터트린 것, 그리고 이번 일까지.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골라서 공격했다.
‘이런 놈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그게 말이 돼?’
혹시 위장이었나?
하도 믿기지 않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제까지 클라우드를 사겠다는 기업들은 많았다. 다들 거액을 제시하며 팔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전혀 달랐다.
약점을 틀어쥐고 팔라고 협박하고 있다. 말이 좋아 인수지, 강탈이나 다름없다.
‘저쪽에서 인수를 원하고 있는 이상, 당장 고소를 진행하거나 사실을 알리진 못할 거야.’
알렉스는 절대 헐값에 회사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번 일은 회사의 잘못이 아닌 롤프 부치 개인의 잘못이다. 그 역시 동업자의 거짓말에 속았을 뿐이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롤프가 공동CEO직을 사임하고 회사를 떠나면 논란을 최소화시킬 수도 있을 거야.’
롤프를 내보내면 저쪽에서 폭로를 해봐야 타격은 미미하다.
그렇게 되면 컨티뉴 캐피탈과 미네르바 사용에 대한 협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협상이 결렬돼 더 이상 미네르바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 부분은 시드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지.’
저작권을 피하는 방식으로 베껴서 미네르바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시장에는 클라우드 관련 기업들은 넘쳐난다.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얼마든지 사들이면 그만이다.
만약 그게 실패한다면 회사를 매각해야 한다. 미네르바가 없어도 쿨라우드를 사갈 회사는 얼마든지 있다.
어쨌거나 결론은 하루빨리 롤프를 회사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것.
롤프 부치는 쿨라우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금도 홍보와 대외활동은 그가 전부 맡아서 했다.
그러나 이제는 쿨라우드의 가장 큰 약점이 됐다. 쿨라우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그를 내보내야 한다.
알렉스는 속마음을 숨긴 채 롤프에게 말했다.
“일단 향후 일정은 전부 취소해.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회사에 나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당분간 휴가라고 생각하고 쉬어. 그사이 내가 해결 방법을 찾아볼 테니.”
그 말에 롤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현재 쿨라우드의 기업 가치는 1000억 달러.
700억 달러 얘기 나온 게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그새 300억 달러가 올랐다. 이 가격에 지분을 판다고 한 것도 아니니, 실제 가치는 이보다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1회차 때 쿨라우드가 IPO 직전 투자를 받았을 당시 가치는 1500억 달러였다. 이 가격에도 투자자들이 사겠다고 줄을 섰다.
어쨌거나 쿨라우드 가치를 1000억 달러라고 가정해보자.
이게 어느 정도냐면 코스피에 상장하면 당장 시총 2위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고, 미국 비상장기업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클라우드 시장에서 빅3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50억 달러에 인수할 생각입니까?”
“안 될까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컨티뉴 캐피탈의 자본은 1억 2700만 달러였다. 하지만 토머스 모터스 투자로 인해 50억 4200만 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이중 관련 비용 지출을 제외하고, 1억 달러를 넥스트로젠이라는 회사에 투자해서 현재 자본은 대략 50억 6800만 달러.
원화라는 6조 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다.
지금부터 놀고먹어도 이 돈 절반도 못 쓰지 않을까?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그럭저럭 많은 수준이다.
데이비드는 딱 잘라서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요?”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로 미네르바의 사용을 포기하고 기업을 쪼개서 팔아도 그 이상은 나올 겁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동안 확보한 고객과 노하우, 영업망, 데이터 등도 자산이니까요.”
“둘째로 알렉스 프레스턴이 쿨라우드에 투자한 돈만 해도 49억 달러입니다. 그 이하로 매각하면 손실을 입게 될 테니 응할 리 없습니다.”
“그렇겠네요.”
현재 가치로 1000억 달러가 넘는 회사다. 아무리 약점을 잡았다고 해도 50억 달러에 인수는 힘들겠지.
“그럼 얼마까지 깎을 수 있을까요?”
“얼마까지 깎고 싶으십니까?”
“······.”
이런 비슷한 대화를 핸드폰이나 중고차 살 때 해봤던 것 같은데.
“아시겠지만 쿨라우드 인수는 이제까지의 투자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제까지 투자는 투자금을 원하는 기업들에게 투자하고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팔기 싫다는 기업을 강제로 인수하는 것이다.
“적대적 M&A를 해본 적 있으십니까?”
“아니요.”
1회차 때도 남들이 하는 거 지켜본 게 전부다.
“M&A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대적 M&A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적대적 M&A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추진하는 인수합병.
사실 대부분의 M&A는 당사자들끼리의 동의하에 이뤄지는 만큼, 강제로 진행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방어하는 측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 마련이죠.”
“데이비드가 알렉스 프레스턴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는 잠시 생각을 한 다음 대답했다.
“하루빨리 롤프 부치를 회사에서 내보내고 그와의 연관성을 지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