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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지혜의 합당한 대가 (3) (82/529)

 83화. 지혜의 합당한 대가 (3)

 내가 다시 눈짓하자 데이비드는 이번에 계약서를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의 권리 일체를 컨티뉴 캐피탈이 샀습니다.”

 롤프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뭐? 제이슨 킴은 죽었잖아!”

 “그에게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죠. 이름은 줄리아 킴. 그녀가 바로 제이슨 킴의 상속자입니다. 설마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죠?”

 “그, 그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메일에 관련 내용도 적혀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저희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된 거죠.”

 콰앙!

 롤프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쳤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야!?”

 “아니, 잘못은 본인이 해놓고 왜 저한테 화를 내나요?”

 이런 걸 보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하는 건가?

 “원하는 게 대체 뭐야!?”

 난 태연하게 말했다.

 “지혜에는 합당한 대가가 필요하죠. 신화에 따르면 오딘은 지혜의 샘물을 마시기 위해 미미르에게 한쪽 눈을 내놓았다고 하는데, 당신들은 뭘 내놓을 수 있나요?”

 “뭘 내놓으라는 건데!? 돈이야?”

 “쿨라우드를 내놓으시죠.”

 “뭐? 너 이 자식······.”

 롤프가 쓸데없는 소리를 할까봐 걱정됐는지 알렉스가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회사를 매각하라는 겁니까?”

 난 고소장을 흔들어보였다.

 “고소와 소송에 시달리고 핵심 프로그램 사용을 못하게 되는 것보다는 그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매각하지 않을 경우 이대로 고소와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뜻이었다.

 “얼마에 말입니까?”

 “글쎄요. 50억 달러 정도면 어떤가요?”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쳐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수중에 50억 달러밖에 없으니까.

 알렉스가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얘기입니까?”

 “아! 오해하지 마세요. 회사 전체의 가치가 아니라 두 분의 지분만을 말한 거니까. 그러니까 실제 기업 가치는 정확히 62억 5천만 달러가 되겠네요.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 70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하지 않았습니까?”

 난 무슨 말이냐는 듯 웃었다.

 “그건 그때 얘기였죠.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700억 달러를 지불하겠지만, 컨티뉴 캐피탈이 보유한 프로그램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상황에서 그 금액을 그대로 지불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가격이 10분의 1 이하로 내려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알렉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지나면 계속 가치가 오를 회사다. 그걸 지금 헐값에 팔고 싶지는 않겠지.

 “제이슨 킴의 아내와 자식들은 임대주택에서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날에도 그의 아내는 자식들을 위해 하루 종일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더군요. 웃기는 일 아닌가요? 두 분이 훔친 프로그램으로 회사를 만들어 떵떵거리며 사는 동안, 정당한 권리를 가진 상속자는 10달러라도 더 벌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있었다니.”

 그들의 한 달 생활비는 롤프의 하루 씀씀이만큼도 안 될 것이다. 쿨라우드의 기업 가치는 끝없이 올랐지만 유족들의 생활고는 점점 힘들어졌다.

 “설마 몰랐다고 말하진 않겠죠?”

 내 말에 롤프는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 난 진짜 몰랐어!”

 정말로 처음 알았다는 것 같은 표정이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정확히는 그의 유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조차 없었을 테니까.

 만약 그가 죽은 친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라도 제이슨의 가족들을 도와줬다면, 그의 아내가 미미르의 권리를 매각하기 전 그와 상의라도 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네요.”

 롤프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걸 알리겠다고?”

 “예. 월스트리트타임즈에 제보할 생각입니다.”

 “어째서!?”

 “그게 진실이니까요.”

 토머스 모터스 사태로 인해 데이비드 록허트와 트리시 오코너 모두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아직까지 사태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쿨라우드의 진실을 폭로하는 기사가 올라오면 어떻게 될까?

 둘이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막을 수 없을 거다.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그런 식의 협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난 등을 기대며 말했다.

 “협박이라니요. 어디까지나 정당한 제안입니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까?”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닐 텐데요. 쿨라우드가 이대로 망하면 가문에서 본인의 입지가 불안해지지 않겠어요?”

 “······.”

 알렉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식, 채권, 원자재 등에 투자를 하는 형제들과는 다르게, 그는 자신의 몫으로 받은 재산 전부를 쿨라우드에 밀어 넣었다.

 여기에 그룹 돈까지 추가로 투자받아서 넣었고.

 이 돈을 다 날리면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실패한 투자자에게 누가 그룹의 운영을 맡기겠는가?

 “사흘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잘 생각해보세요.”

 할 말을 끝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한미루와 데이비드가 돌아간 뒤.

 둘만 남게 되자 알렉스는 쏘아붙이듯 물었다.

 “젠장! 저놈들이 말한 게 사실이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롤프 역시 소리쳤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정말 훔친 게 맞아?”

 “내가 뭘 훔쳤다 그래?”

 “그럼?”

 “제이슨은 죽었다니까! 어차피 그 프로그램은 주인이 없었다고! 난 그냥 그걸 쓴 것뿐이야!”

 “······.”

 그런 걸 보통 훔쳤다고 하지 않나?

 롤프는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미르는 처음에는 형편없는 프로그램이었어! 나를 만나서 진화한 거야! 나 없으면 미미르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무리 그럴듯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한들 훔쳤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알렉스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어쨌든 나한테는 말을 했어야 할 거 아니야!?”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데?”

 “말했으면? 그럼 니가 나랑 동업을 했을 것 같아?”

 “······.”

 그와 동업을 하기로 한 건 그가 미네르바, 아니 미미르의 개발자였기 때문이다. 그 권리를 따로 사들일 수 있다면 굳이 그와 동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알렉스는 버럭 소리쳤다.

 “제길!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해?”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제이슨은 누구에게도 프로그램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했어!심지어는 아내한테도! 미미르는 그와 나만 아는 거였어!”

 “이젠 저놈들도 알고 있잖아!”

 “나도 몰라! 모른다고!”

 마음 같아서는 멱살을 잡고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알렉스는 지금 최대한의 자제를 하는 중이었다.

 롤프 부치는 천재이자 혁신가, 그리고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스타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죽은 친구가 만든 프로그램을 훔쳐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공개한 사기꾼이었다!

 롤프 본인은 그동안 잘 숨겼다고 생각했겠지만, 알렉스는 같이 일하며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롤프가 제작에 참여는 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럿이서 공동으로 개발했다면 누가 어느 정도 기여를 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제작에 조금이라도 관여했다면 사용권을 주장할 수 있다. 법적 시비가 생기더라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죽은 친구가 만든 프로그램을 통째로 훔쳤다면 얘기가 다르다.

 저쪽에서 보여준 자료만 봐도 법정으로 가면 무조건 패소다. 아니,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비난이 쏟아지고 고객사들이 등을 돌릴 것이다.

 ‘진작 알았다면 100만 달러든 1000만 달러든 주고 사왔을 텐데!’

 누가 처음 개발했든 정식으로 권리를 확보하기만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제 그 권리가 컨티뉴 캐피탈에게로 넘어갔다.

 롤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이게 알려지면 난 끝장이야.”

 토머스 모터스 사태가 터졌을 때만 해도 알렉스는 사기를 친 창업자를 비웃고, 거기에 속아 넘어간 투자자들을 비웃었다. 그중에는 그의 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잘못했다가는 자신이 그 꼴이 되게 생겼다. 아니, 쿨라우드 하나에 모든 걸 걸었던 만큼 타격이 훨씬 크다.

 알렉스는 이를 갈듯 말했다.

 “너만 끝장나면 다행이지. 지금 나까지 끝장나게 생겼어.”

 * * *

 데이비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뭐가요?”

 “어째서 롤프 부치는 이 프로그램을 사지 않은 걸까요? 우리가 한 것처럼 아내를 만나 권리를 구매했으면 됐을 텐데요.”

 다른 사람이 만든 기술을 사서 사업을 하는 건 흔한 일이다.

 NS의 창업자인 베일 게이츠만 해도 초창기 운영체제인 NS-DOS를 그가 개발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개발자를 영입하고 프로그램을 돈 주고 샀을 뿐이다.

 그런데도 막대한 수익과 명예는 베일 게이츠의 몫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베일 게이츠 이름은 알아도, NS-DOS를 만든 개발자 이름이 뭔지 누가 기억이나 하겠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롤프는 프로그램을 구매하지 않았을까?

 공짜로 쓰고 싶어서? 돈 몇 푼이 아까워서?

 “혹시 리플리라는 영화 봤어요?”

 “예전에 봤습니다.”

 주인공 리플리는 친구인 리키를 너무 동경한 나머지 그를 죽이고, 자신이 리키의 행세를 한다.

 여기서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 정신질환은 아니지만,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에 가깝게 타인을 속이는 행위를 뜻한다.

 롤프는 항상 자신이 모두의 주목을 받는 독보적인 천재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처음부터 훔칠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동개발 정도로 숟가락을 얹을 생각이었겠지. 그런데 제이슨이 죽고 나자 생각이 바뀌었겠지.

 그는 진실을 숨긴 채 자신이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데이비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황당한 얘기로군요.”

 “뭐, 사람마다 추구하는 게 다르기 마련이잖아요.”

 단지 돈만 생각했다면 이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가 추구한 것은 천재라는 이미지와 대중들의 찬사였다.

 덕분에 충분히 즐길 만큼 즐겼고.

 데이비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알렉스 프레스턴이 불쌍하군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작은 스타트업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때에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미미르와 시드 루카스가 있었다고 해도, 알렉스가 제때 자본을 공급하지 않았다면 쿨라우드가 지금처럼 빠르게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돈을 쏟아부은 것은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회차 때는 그에 걸맞은 보상을 얻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로 인해 상황이 좀 달라졌다.

 롤프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대가를 치르는 거지만, 알렉스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동업자를 잘못 만났을 뿐.

 나 역시 그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

 하지만······.

 “돈에는 선도 악도 없는 법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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