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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지혜의 합당한 대가 (2) (81/529)

 82화. 지혜의 합당한 대가 (2)

 롤프 부치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였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쳤고,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바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학교 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9살 때부터 코딩을 시작했고 12살 때 처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7살 때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대기업에 300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그는 MIT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틴팅이라는 데이트앱을 개발해냈다. 이 앱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2년 만에 15억 달러에 매각했다.

 지분 80퍼센트를 가지고 있던 그는 한순간에 1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손에 쥐었고, 실리콘밸리 스타가 됐다.

 언론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그의 성공담을 쓰기에 바빴고, 그는 내로라하는 명사들과 교류하며 할리우드 여배우와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들과 염문을 뿌려댔다.

 파파라치는 그의 뒤를 쫓아다녔고 그의 사진을 가십지에 실었다.

 롤프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더 큰 명성과 더 큰 부를 원했다. 자신은 아직 젊었고 얼마든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 창업한 회사들은 성적이 별로 좋지 못했다.

 어떤 건 프로그램이 형편없어서, 어떤 건 경쟁자에게 밀려서, 어떤 건 아무도 찾지 않는 서비스라서, 어떤 건 수익 모델이 마땅치 않아서 등등.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하며 돈을 날리기도 했다.

 여전히 그에게는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자산이 있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그의 명성은 점점 하락 중이었다.

 언론의 관심 역시 사그라들었고 더 이상 그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새로운 천재들과 신생 스타트업들이 차지했다.

 그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 천재는 많다.

 자신은 그들보다 잠시 앞서 나가고 시기를 잘 탔을 뿐이다. 한때는 천재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실력이 뛰어난 개발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롤프는 점점 초조함을 느꼈다.

 ‘큰 거 한 방이 필요해.’

 그러나 시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그가 만든 회사는 투자금만 까먹으며 몰락해가고 있었다. 언론은 그의 기업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그는 MIT 동기의 연락을 받았다.

 제이슨 킴.

 롤프가 채 2년을 채우지 않고 대학을 중퇴한 만큼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다만 어렴풋한 인상은 남아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제이슨 킴은 소심하고, 말을 잘 못하고, 간신히 낙제를 면할 정도로 멍청했다는 것이다.

 자신 같은 천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제이슨은 그에게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한번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미미르.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는 AI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멍청한 놈이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해봐야 뻔하지.’

 원래 그의 성격대로라면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변덕이 생겼는지 승낙했다.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한번 봐주지.’

 형편없는 프로그램이면 가차 없이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이슨이 만든 프로그램을 본 순간 롤프는 경악했다. 아직 완성 전이었지만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오류가 많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단지 충분한 컴퓨터 자원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멍청한 놈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미미르는 어느 분야에도 사용이 가능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딥러닝으로 자율주행, 로봇, 게임 등등.

 ‘만약 이걸로 회사를 만든다면······.’

 돈도 돈이지만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는 재빨리 제이슨 킴에게 공동창업을 제안했다.

 “나와 함께 회사를 만드는 건 어때? 내가 투자할게.”

 실리콘밸리의 혁신가이자 천재로 유명한 그가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자 제이슨 킴은 뛸 듯이 기뻐하며 수락했다.

 두 사람은 그 후로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미미르는 나 혼자 만들었어.’

 ‘아내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라. 컴퓨터는커녕 스마트폰도 잘 못 쓰는 사람이거든.’

 ‘동업하기로 한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회사를 만드는 날 네가 등장하면 모두가 깜짝 놀라겠지?’

 ‘도와줘서 고마워, 롤프.’

 ‘니가 아니었다면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야.’

 ‘전부 니 덕분이야.’

 ‘네 발목을 잡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

 그런데 창업을 코앞에 두고 누구도 예기치 못한 일이 터졌다.

 제이슨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창업은 당연히 중단되었다.

 기존의 회사를 슬슬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던 롤프는 망연자실했다. 일생일대의 기회가 눈앞에서 날아간 것이다.

 잠시 실의에 빠져있던 도중, 그의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다.

 ‘제이슨은 죽었고 프로그램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어. 그 프로그램에 대해 아는 건 나랑 제이슨밖에 없고. 그런데 제이슨이 죽었으니······.’

 이제 프로그램의 존재는 자신밖에 모른다!

 ‘그럼 내가 그 프로그램을 세상에 공개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제이슨 역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이대로 묻히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 이건 제이슨을 위한 일이기도 해.’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시킨 롤프는 미미르를 기반으로 쿨라우드를 창업했다. 여기에 알렉스 프레스턴이 합류하며 자금 문제도 쉽게 해결되었다.

 미미르의 뛰어난 성능과 초기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덕분에 쿨라우드는 날개 돋친 듯 성장했다.

 언론은 다시금 그의 천재성을 극찬했고, 그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부와 명예를 누렸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펜트하우스를 사들였고, 슈퍼카를 몰고 다녔다. 여기저기서 인터뷰와 강연 요청이 쇄도했고, 유명 여배우와 데이트를 즐길 때는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녔다.

 대중들은 기꺼이 그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

 강연에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할 때면 가끔은 자신이 진짜 미미르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원하는 삶을 손에 넣었다.

 그는 마음껏 삶을 즐겼다. 그러나 가끔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중 누군가는 진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때로는 술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만약 그게 알려지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리 없어. 3년이 지나는 동안 아무 일 없었잖아.’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러니 누구도 알아챌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그의 앞에 진실을 가지고 나타났다.

 * * *

 서류를 본 롤프는 사색이 된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알렉스는 그의 손에 있는 서류를 빼앗다시피 해서 보았다. 그것을 읽는 내내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알렉스는 따지듯 물었다.

 “이게 뭡니까?”

 “보다시피 고소장입니다. 캘리포니아 법원에 제소하기 전에 쿨라우드 측 입장을 듣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대체 뭘 고소하겠다는 겁니까?”

 “쿨라우드에서 미네르바라고 부르는 프로그램의 무단 사용에 대해서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말 모르고 계신 겁니까?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뭘 말입니까?”

 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롤프를 보았다.

 “프레스턴 씨는 모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롤프 부치 당신이 모르면 안 되지. 안 그래요?”

 “······.”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에게 계속 말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미네르바가 아닌 미미르죠. 개발자는 당신이 아니라 제이슨 킴. 다름 아닌, 교통사고로 죽은 당신의 친구입니다.”

 내 말에 롤프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뭔 헛소리야!? 증거 있어!?”

 “진정하세요. 그렇게 소리 지르면 찔려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뭐, 뭐?”

 소리부터 지르는 걸 보니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알렉스는 롤프의 어깨를 붙잡고 진정시키며 나에게 물었다.

 “증거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롤프는 놀라 소리쳤다.

 “뭐!?”

 “21세기에 중요한 자료는 클라우드에 저장하기 마련이니까요. 제이슨 킴은 미미르의 개발과정 전체를 클라우드에 남겼습니다. 제이슨 킴의 프로그램과 미네르바의 초기 버전을 비교해보면 같은 프로그램이라는 걸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알렉스는 침착하게 말했다.

 “설사 프로그램의 일부가 비슷하다고 해서 그걸 베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차용하거나 일부 도용한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째로 훔쳤죠. 아닌가요?”

 “어떻게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코드를 비교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 보고 소스코드를 공개하라는 겁니까?”

 누군가 새로운 걸 만들면 누군가 베낀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이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걸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쿨라우드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쉽게 내놓을 리도 없을 테고. 법정 싸움으로 가면 판결이 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뭐, 귀찮게 그럴 것까지 있나요?”

 내가 눈짓을 하자 데이비드는 인쇄해온 다른 서류를 롤프에게 내밀며 말했다.

 “제이슨 킴이 당신과 주고받은 메일입니다. 그는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메일만 봐도 그가 당신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알 것 같더군요. 굳이 재판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것만 공개해도 누가 그 프로그램을 개발했는지는 모두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차마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롤프를 대신해 알렉스가 살펴보았다.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변했다.

 “이야! 정말이지 놀랍네요. 업계의 혁신이라 불리던 기업의 창업자가, 죽은 친구가 만든 프로그램을 훔쳐서 쓴 사기꾼이라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고객사와 투자자들이 과연 뭐라고 생각할까요?”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 역시 중요하게 여겨진다. 특히 이는 선진국의 첨단산업일수록 두드러진다.

 이제쯤 슬슬 ESG 경영이라는 말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경영에 있어서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이러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

 소비자단체들은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 아동이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 거래처에 갑질을 일삼는 기업, 독재자나 부패한 정부를 지원하는 기업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서는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렇다 보니 투자사와 연기금들 역시 투자에 있어서 ESG를 중요한 가치로 평가했고, 이를 의사결정에 반영했다.

 “클라우드 기업은 보안이 생명인데, 정작 본인들은 남의 프로그램을 훔쳐다 쓰고 있다니. 이런 회사에 데이터를 맡겨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몸을 부르르 떠는 롤프와는 달리 알렉스는 냉정하게 말했다.

 “이게 문제가 된다고 해도 쿨라우드와 그쪽이 해결할 문제입니다. 컨티뉴 캐피탈이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겁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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