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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위기는 기회다 (2) (78/529)

 79화. 위기는 기회다 (2)

 수소인프라 협약을 맺은 이후 주식을 팔았다면 이는 신의성실원칙에 위반된다.

 협약 자체가 주가 상승 역할을 한 만큼, 증권거래위원회에서 주가 조작으로 조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었다.

 임택주 사장은 따지듯 물었다.

 “토머스 모터스 주가가 이 정도로 크게 떨어진 것에는 화안에너지의 발표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번 일로 화안솔루션이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는지 아십니까?”

 허민웅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부분은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화안에너지 팀장입니다. 그러니 화안에너지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최영석 상무가 말했다.

 “수소인프라 사업은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룹 전체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여러 임원들이 동조했다.

 허민웅은 말을 한 임원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그룹에 손해를 끼치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화안솔루션과 화안에너지 양쪽의 손익을 합치면 엇비슷할 겁니다. 만약 협약을 맺고 투자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번 일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화안에너지뿐 아니라 화안솔루션 역시 지금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을 텐데요.”

 “그, 그건······.”

 투자비가 들어간 상태에서 일이 터졌다면 주가 하락에 더해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기업 이미지 하락까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민웅은 입꼬리를 말며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묻죠. 토머스 모터스는 우리 그룹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업이 정말 기술력이 있는지 없는지 정말 아무도 몰랐습니까? 저쪽에서 공개한 영상을 보고 그게 정말 주행을 한 건지 언덕에서 굴린 건지 확인 한 번 안 해봤습니까? 만약 이대로 협약을 맺었다면 화안그룹 전체가 웃음거리가 됐을 겁니다. 그렇게 그룹을 먼저 생각하신다면 그런 상황을 피하게 한 저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크흠.”

 “그리고 전 분명히 공문을 보내 사실을 알렸습니다. 화안솔루션에서 그 공문을 검토한 사람이 누굽니까?”

 “······.”

 그 물음에 누구 하나 대답을 하지 못했다.

 허성훈 회장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회의장 안을 둘러보았다.

 ‘다들 책임 피하기에만 급급하군.’

 재벌이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은 오해다.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빠르게 산업의 변화를 캐치한 덕분이다.

 화안그룹 역시 그러했다.

 덩치가 큰 대기업의 경우 스타트업에 비해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 분야로 확장을 하거나, 전통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신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에너지의 경우 대규모 자본과 설비투자가 필요한 만큼 스타트업들이 쉽게 진출하지 못하는 분야 중 하나.

 화안그룹은 태양광에너지와 수소에너지를 미래 먹거리로 삼아 투자에 박차를 가했다.

 태양광의 경우 치킨게임의 끝이 보이며 조금씩 안정세를 찾고 있었다. 반면 수소에너지는 이제 막 시작 단계였는데, 이번 일로 인해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허성훈 회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책임소재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지금은 일단 수소에너지 사업을 어떻게 할지부터 논의하도록 하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허민홍이었다. 이걸 가만히 놔두면 계속해서 잡음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이 사업을 치워버리는 게 이익이었다.

 때문에 허민홍 라인에 선 임원들은 수소에너지 사업을 중단하고 매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소차 없이 수소에너지 사업은 무리입니다.”

 “수소차 대중화가 실패한다면 결국 수소에너지 사업은 중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주들의 우려가 매우 큽니다.”

 “사업을 매각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화안에너지 쪽 임원들 역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산업의 앞날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허민웅 역시 토머스 모터스의 몰락을 보며 사업을 접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소차는 조만간 뜰 거라고 했지?’

 그는 처음 한미루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만약 그때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자신은 끝장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한 번 맞힌 놈이 두 번은 못 맞히겠어?’

 그렇게 생각한 허민웅은 입을 열었다.

 “사업은 이대로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임택주 사장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수소인프라 협약을 파기하더니 이번에는 진행하자는 겁니까? 그럴 거면 토머스 모터스와 계속 진행했어도 상관없지 않았습니까?”

 “그건 아니죠. 협약대로 진행했다면 토머스 모터스가 주도하는 사업에 우리가 끌려다녔을 겁니다. 그리고 토머스 모터스가 무너질 때 우리도 같이 쓰러졌겠죠. 제가 말하는 건, 화안그룹이 독자적이고 주도적으로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원래 토머스 모터스와 함께하려던 사업을 단독으로 진행하자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리스크도 그만큼 커질 텐데요.”

 “잘못된 파트너와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죠.”

 김봉준 전무가 말했다.

 “이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국내외 수소에너지 회사들도 전부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잘된 거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씀하신 대로 다들 사업에서 발을 빼는 중입니다. 화안그룹이 매각을 검토할 정도라면 다른 기업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럴 때가 기회입니다. 경쟁자들이 주춤한 사이 투자를 더 늘려야 합니다. 헐값이 된 기업을 인수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덩치를 키워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후발주자들이 넘보지 못할 장벽을 쌓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허민웅은 선언하듯 말했다.

 “토머스 모터스의 실패는 토머스 모터스의 실패지, 수소차의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에 수소에너지를 추구했던 가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수소차는 멀지 않은 시기에 대중화될 거고 수소경제의 시대가 열릴 겁니다. 우리는 그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동안 허민웅은 형인 허민홍에 비해 그룹 내에서 그다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자신의 주장을 크게 내세운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마치 사람이 바뀐 것 같은 모습이다.

 임원들은 다들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호랑이 새끼라는 건가?’

 이런 변화에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허민홍이었다.

 ‘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임원들은 어느새 입을 다문 채 허민웅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좋지 않다.

 그는 흐름을 끊기 위해 동생을 향해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직접 맡아보는 건 어때?”

 언제나 그러하듯 신사업 진출은 위험이 따르기 마련. 가뜩이나 업계의 선두주자가 무너진 만큼 사업의 위험성은 더욱 커졌다.

 ‘말은 잘해도 본인이 맡아서 하라고 하면 못하겠지?’

 그런데 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허민웅은 피하지 않았다.

 “맡겨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 말에 허민홍은 당황했다.

 ‘이걸 진짜로 맡겠다고?’

 허성훈 회장은 놀란 눈으로 둘째 아들을 보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위기를 겪게 된다. 문제가 없을 때 잘하는 걸 누가 못하겠는가?중요한 건 문제가 생겼을 때다.

 사람은 위기를 만났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위기는 기회라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기회를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모두가 피하자고 할 때 허민웅만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트너가 사라진 만큼 이제까지 투자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 실패하면 화안그룹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룹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허성훈 회장은 다짐을 받듯 물었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나?”

 도중에 그만두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수소에너지 사업을 이대로 매각하면 허민웅이 책임질 건 전혀 없다. 그러나 이 사업을 맡는 순간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허민웅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예. 맡겨만 주시면 제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허성훈 회장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거대 그룹을 운영하는 경영자는 당장의 손익이 아닌 미래의 손익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소에너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기후 문제는 이제 국제적인 문제가 됐다.

 현재 전 세계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를 찾기 위해 분주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수소다.

 수소를 생산, 저장, 수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자동차, 열차, 선박, 기계, 발전소 등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소경제다.

 수소경제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재생에너지와 맞닿아있다는 것이다.

 화안솔루션은 세계최대 태양광에너지 회사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계절, 지역에 따라 생산량 조절이 힘들다.

 이렇게 남는 전기로 수소를 만들면 생산된 전력을 100퍼센트 활용할 수 있다.

 전기는 저장과 운송이 힘들지만 수소는 다르다. 석탄이나 석유처럼 얼마든지 차와 열차로 필요한 곳에 공급할 수 있다.

 각국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가고 있는 만큼 이와 보완 관계가 있는 수소에너지는 결국 차세대 에너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기가 언제냐는 것과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느냐다.

 아무리 미래에 거대한 시장이 열린다고 해도 그때까지 수익 없이 투자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 바로 수소충전소다.

 수소차가 늘어나면 수소충전소를 늘릴 수 있고, 수소충전소가 늘어나면 수소차를 늘릴 수 있다.

 수요가 늘어나면 그에 맞춰서 수소 생산과 운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면 수소에너지 시장의 파이를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번에 토머스 모터스와 진행할 예정이었던 수소인프라 사업은 수소경제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었다.

 그런데 바로 시작부터 어긋난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만약 화안에너지까지 손실을 입었다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화안에너지는 오히려 큰 이익을 얻음으로써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은 토머스 모터스 사태로 인해 업황 전체에 대한 불안감이 만연한 상황. 이런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사업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여기에 허민웅은 적임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일이 터지기 직전 위험을 눈치채서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려냈다. 모두가 그의 혜안과 결단력을 칭찬했다.

 허민웅이 이 사업을 계속 맡아서 진행하겠다고 하면 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굳힌 허성훈 회장은 입을 열었다.

 “수소에너지 사업은 앞으로 화안에너지가 전부 맡아서 진행하는 게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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