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위기는 기회다 (1)
미국에서 토머스 모터스가 난리가 난 사이.
한국의 한 게임사는 다른 이유로 난리가 났다.
LB스튜디오는 몇 개월 전 판타지아 테일즈라는 PC MMORPG를 출시했다. 오랜만에 등장한 대형 PC 온라인 게임에 많은 게이머들이 열광했다.
판타지아 테일즈는 초기 흥행에 성공하며 순항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모카씨’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성기사 클래스 유저는 ‘브론즈맨’이라는 유저에게 샤이닝 소드를 6천만 원 주고 구매했다.
한 서버에 몇 개 없는 최강 무기를 얻은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모카씨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브론즈맨이 다른 곳에서 또다시 샤이닝 소드를 팔고 있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샤이닝 소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다. 그중 가장 얻기 힘든 것은 샌드락이라는 보스몹을 쓰러트렸을 때 나오는 샌드펄이다.
보름에 한 번씩 리젠되는 이 보스몹을 잡기 위해 유저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워낙 강한 보스다 보니 레이드 한 번에 20명이 동원됐다.
이렇게 고생해서 샌드락을 잡는다고 해도 반드시 샌드펄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샌드펄이 나서 샤이닝 소드를 두 개나 만들 수 있었던 걸까?
모카씨는 핵이나 버그로 아이템을 복제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핵과 버그는 게임의 시스템을 망치는 행위인 만큼 모든 게임사들이 단호하게 대처한다.
잘못했다가는 복제된 아이템을 산 자신까지 계정 영구정지나 삭제를 당하게 될 것이다.
모카씨는 이 내용을 정리해 공식게시판에 문의를 올렸다.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그가 올린 글은 바로 삭제되었다. 다시 문의를 올렸지만 역시나 삭제되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카씨는 브론즈맨에게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브론즈맨은 아이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환불을 해주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서로 시비가 붙었고, 브론즈맨은 모카씨를 조롱하는 것도 모자라 죽이기까지 했다.
이에 분노한 모카씨는 작정하고 브론즈맨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브론즈맨이 계정을 생성한 지 20일밖에 안 됐고, 그동안 다수의 고가 아이템을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모카씨는 브론즈맨의 정체를 운영자로 추정했다.
[모카씨: 너 운영자지?]
그러자 브론즈맨은 바로 계정을 삭제하고 사라졌다.
이에 확신을 얻은 모카씨는 게임사 측에 이 사실을 제보했다.
그런데 게임사의 대응은 뜻밖이었다.
이게 알려질 경우 흥행에 찬물을 끼얹을 것은 분명하다. 입소문을 타며 흥행가도를 달려도 모자랄 시기에 대형 악재가 터진 것이다.
이를 우려한 회사 측은 해당 유저에게 따로 연락해 보상을 통해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그러자 모카씨는 더욱 분노했다.
“지금 내가 그깟 아이템 하나 때문에 이러는 줄 아냐?”
그는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공식게시판과 판타지 테일즈 공식게시판, 갤러리, 카페 등에 올렸다.
사건이 알려지자 역시나 유저들은 난리가 났다.
사실 운영자가 사고 치는 건 다른 게임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아이템을 멋대로 복제해 판매한 것도 모자라, 그걸 고발한 유저를 PK하다니!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였다.
이 일은 브론즈맨 게이트, 동남 사태, 동남이 사건 등을 불리며 인터넷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유저들의 탈퇴 인증이 줄을 이었고 언론 기사까지 나왔다.
[판타지아 테일즈, 운영자가 아이템 복제해서 부당이익 챙겨]
[운영자의 권한 남용에 게임 신뢰 흔들려]
[LB스튜디오, 문제를 인지하고도 쉬쉬]
[뒤늦게 해당 직원 징계 나서]
[여성가족부가 강력한 권한을 갖고 게임산업을 규제해야······]
[여가부, 이번 사태도 게임중독과 관련 있어. 셧다운제 더욱 확대해야······]
[진미순 여가부 장관, 게임회사에 기금을 징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주장!]
-ㅅㅂ 게임사가 각종 아이템 판매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운영자가 복제해서 팔아먹네.
-이야! Ctrl+C, Ctrl+V만 하면 무한대로 돈을 벌 수 있네.
-이게 진정한 창조경제다.
-K게임 잘 돌아간다~
-걸리니까 바로 PK. 무서워서 게임 하긋냐?
-유저가 개돼지로 보이냐?
-응. 개돼지 맞음. 이딴 대접 받으며 게임하는 인간이 어디 있음?
-1억 쓰면 백화점이든 마트든 VIP로 대접해준다!
-어떤 면에서는 공평한 거 아닌가? 다른 데는 돈 쓴 만큼 대접해주는데, 한국 게임사들은 100원을 쓰든 1억을 쓰든 똑같이 개돼지로 취급하잖아~
-ㅋㅋㅋ 저희 게임사는 유저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부 개돼지니까요~
-LB스튜디오 게임 전부 탈퇴합니다!
-이딴 쓰레기 게임은 하차가 답이다.
-전 이만 하차할 테니 운영자님들은 상하차나 하세요~
-그건 그렇고 여가부는 갑자기 여기서 왜 등장하는 거야?
-나도 기사 보고 깜짝 놀람.
-이게 게임중독과는 무슨 상관임?
-글쎄요. 저도 잘······.
-ㅎㅎ 이 와중에 기금 걷겠다는 거 보소~
더 이상 묻어둘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커지자 회사는 그제야 부랴부랴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운영자에 대한 징계와 함께 형사고소에 나섰다.
하지만 들끓는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급하게 유저 보상으로 20만 골드와 강화석 300개를 뿌렸다.
그런데 이게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20만 골드와 강화석 300개는 초급 유저가 한 달은 사냥해야 얻을 수 있는 재화다. 이걸 모든 유저들에게 뿌리자 재화의 가치가 급락했다.
게다가 이 보상은 유저끼리 이전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서브캐릭터를 마구잡이로 생성한 다음 본캐로 보상만 이전할 수 있는 것이다.
뒤늦게 보상 아이템 이전을 막아 보았지만, 이미 다수의 유저가 그렇게 한 뒤였다. 이는 신규 유저들과의 격차를 크게 벌려서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이전한 보상에 대해서는 롤백하겠다고 하자 또다시 유저들이 반발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자 운영진들은 그제야 다시 개발팀으로 일을 떠넘겼다. 결국 밤을 세워가며 문제를 찾아 뜯어고치는 것은 개발팀의 역할이 됐다.
개발3팀은 퇴근도 못 한 채 하루 종일 시스템을 손봐야 했다.
강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박 날 거라고 여기저기 큰소리쳐놨는데.’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먼저 판타지아 테일즈를 대박 쳐서 개발자로서 이름을 알린 다음, 투자를 받아 자신만의 게임사를 만들겠다는 꿈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망하게 생겼다.
‘뼈 빠지게 개발하면 뭐 하나? 운영을 그지같이 하면 소용없는 것을.’
대규모 인원이 접속하는 게임은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다. 그런데 균형을 이루고 있는 세계를 멋대로 건드리다 보니 밸런스가 엉망이 됐다.
특히 보상이랍시고 대규모 재화를 푸는 바람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사실상 경제 시스템이 붕괴됐다.
몇 시간째 계속 시스템을 일일이 수정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커피를 내밀었다. 깨끗한 피부에 하나로 묶은 생머리.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수수한 복장의 여성이었다.
“그러다가 거북목 되겠어요. 잠깐 쉬었다 해요.”
“네.”
차수연의 말에 강선우는 그제야 잔뜩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허리를 폈다.
같은 개발3팀이라고 해도 그녀는 디자인 담당.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다른 직원들과 함께 남아서 일을 거들어주었다.
“아! 공범은 어떻게 됐어요? 정말로 건휘 씨가 그랬대요?”
“그런 모양이에요. 운영팀 김동남 씨랑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중인가 봐요.”
처음에는 운영자가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공범이 드러났다.
그 공범은 바로 경영팀 매니저 박건휘.
김동남의 말에 따르면 박건휘가 먼저 범행을 제의했고 친절하게 방법까지 알려줬다고 한다.
두 사람이 아이템 판매로 챙긴 이익은 무려 3억 8천만 원으로, 이를 절반씩 나눠가졌다고 한다.
얘기를 전해 들은 강선우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김동남 씨야 그렇다 쳐도 박건휘 씨는 박현종 전무님 아들이잖아요.”
“그렇죠.”
“집도 잘 사는 사람이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대요?”
“주식 때문이래요. 그 돈으로 또 주식했다고 하네요.”
박건휘는 LB스튜디오로 오기 전 미래투자증권에서 일했다.
그전까지 주식으로 제법 돈을 번 걸로 알려져 있었는데, KNC인터내셔널이라는 작전주에 투자하는 바람에 그동안 번 돈을 전부 날렸다.
‘그때 내 멱살까지 잡았지.’
뭐, 나중에 사과를 받긴 했지만.
강선우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벌었대요?”
차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토머스 모터스라는 회사에 투자했다가 몽땅 날렸대요.”
“토머스 모터스요? 뭐 하는 회사예요?”
“미국에 있는 수소차 만드는 회사래요. 원래는 꽤 수익을 내고 있었는데, 며칠 전 갑자기90퍼센트가 폭락했대요.”
그 말에 강선우는 당황했다.
“······예?”
대체 뭔 주식이기에 90퍼센트나 폭락한단 말인가?
그보다 신기한 건······.
“아니, 어떻게 손대는 주식마다 그렇게 폭락할 수 있죠?”
차수연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마이너스 90퍼센트 떨어지는 주식 고르기가 더 힘들 텐데.”
이쯤 되면 재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혹시 작전주였나요?”
“그런 건 아닌데 그동안 공개했던 기술들이 전부 사기였대요. 무슨 캐피탈이라는 사모펀드가 폭로했다고 하던데. 역시 주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요.”
“으음.”
이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주식을 심하게 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은 미국에서 잘하고 있으려나? 설마 몽땅 날려먹고 한국으로 못 돌아오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그의 재산은 차곡차곡 불어나는 중이었다.
* * *
허민웅은 한국으로 귀국했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는 바로 지주회사 화안 본사로 향했다. 그곳에는 허성훈 회장은 물론이고 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 임원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허민웅은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회의가 시작되자 화안솔루션 임원들은 일제히 불만을 토로했다. 어째서 사전에 상의도 없이 멋대로 협약을 파기하고 주식을 팔았냐는 것이다.
허민웅은 담담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브레드 버튼 CEO를 만나 얘기를 듣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일단 협약식을 행사 뒤로 미루고 나름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던 도중 월스트리트타임즈에서 공개한 컨티뉴 캐피탈의 리포트를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바로 방수환 사장님께 연락해 지분을 매각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은 한미루에게 자료를 전달받았을 뿐 내가 따로 알아본 건 거의 없지만.’
화안에너지 방수환 사장은 허민웅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화안솔루션 임택주 사장이 말했다.
“수소에너지 협약은 화안에너지뿐 아니라 화안솔루션도 관련되어있는 사업입니다. 매각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함께 논의를 진행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허민웅은 고개를 저었다.
“매각을 건의했을 당시에는 의심이 갔을 뿐 확실한 건 없었습니다. 다만 협약이 발표되고 난 뒤라면 지분 매각이 불가능했을 테니 서둘러 처분한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