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형만 한 아우 (2)
“한번 솔직하게 말해봐. 누가 그러는데, 일이 잘되면 사업성과가 나올 시점에서 날름 가로채고, 안 되면 내 탓으로 몰아붙여 그룹에서 내쫓았을 거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구한테 뭔 소리를 들은 건데?]
정말로 모르겠다는 투다.
과연 연기일까 아닐까? 어차피 이제 와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 상관없다. 어쨌거나 일은 잘못되었고 그는 책임을 피했으니까.
“그러게. 내가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었을까?”
그 말에 허민홍은 사전에 누군가 동생에게 정보를 알려줬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어디서 이상한 헛소리를 듣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그 헛소리 덕분에 살았다면 얘기가 다르지 않아?”
[그것 때문에 일부러 날 엿 먹였어?]
“무슨 말이야. 정말 바빴다니까.”
허민홍은 경고하듯 말했다.
[이번 일 절대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주가 관리나 잘하지? 분위기 보니까 내일도 하한가 맞을 것 같던데.”
[······.]
허민홍은 대답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원래 우애가 좋은 형제는 아니었지만, 이번 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던 만큼 허민웅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먼저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으면 난 끝장났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정말이지 죽다 살아났다.
그는 유재호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서가 아닌 당사자가 직접 받았다. 허민웅은 공손하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허민웅입니다.”
[기사 봤습니다. 위기를 잘 빠져나왔더군요.]
“회장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한다니 저도 기쁘네요. 하지만 감사는 저보다 다른 사람에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말에 허민웅은 자신을 찾아왔던 남자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건방진 놈이라 생각했는데,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알겠습니다.”
* * *
토머스 모터스 CEO 브레드 버튼.
언론과 주주들의 요구에도 침묵을 이어가던 그는, SEC와 검찰이 조사에 나서겠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이건 주가 하락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공매도 세력의 음모입니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사이 그들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SEC는 토머스 모터스를 조사할 게 아니라 공매도를 일삼는 헤지펀드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신차와 주행 영상에 대한 해명 요구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이해를 돕기 위해 공개한 모형이었습니다. 전 신차라고만 했지, 100퍼센트 완성된 차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발표 당시에는 이런 오해가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또한 어디까지나 영상에서 차가 ‘움직인다(In motion)’고 했을 뿐 ‘주행했다(Powertrain driven)’고 말한 적은 없는데, 설마 이를 주행 영상이라고 오해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언론의 잘못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멋대로 기사를 쓴 언론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본인이 실컷 오해하게 만들어놓고, 막상 걸리고 나자 언론을 탓하는 그의 모습에 투자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변명을 늘어놓았다.
“토머스 모터스는 단지 자동차 회사가 아닌 종합수소에너지 기업입니다. 수소차 출시는 어디까지나 전체 사업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우리는 애리조나주에 지어지는 수소 생산 공장의 지분 20퍼센트를 확보하고 수소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수소차 역시 계속해서 개발 중이고 출시를 준비 중입니다. 언론과 금융사들의 마타도어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지만 비난 여론은 가라앉을 줄 몰랐고, 결국 브레드 버튼은 CEO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나마 이건 효과가 있었는지 그의 사퇴 소식이 전해지자 5.7달러까지 떨어졌던 주식은 10달러로 불꽃 같이 반등했다.
* * *
이대로 상폐까지 갈 건 아닌 만큼, 우리는 6달러까지 폭락한 시점에서 미련 없이 포지션을 청산했다.
공매도를 했으면 판 주식 수만큼 다시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한다.
다행히 매도 물량은 넘쳐났기에, 바닥에 떨어진 주식을 긁어모아 상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컨티뉴 캐피탈이 직접 투자한 금액은 1억 2700만 달러. 수수료와 세금을 제외하고 풋옵션과 공매도를 합쳐서 번 수익률은 3630퍼센트.
여기서 끝이 아니다.
GTiger PE에서 투자받은 1억 달러는 전부 CFD 방식으로 공매도했고, 8억 6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수익은 계약대로 절반씩 나눠 가졌다.
결국 이번 투자로 올린 충 수익은 50억 4200만 달러.
“······.”
데이비드를 포함해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 역시 충격적이긴 하다.
그야말로 경이적인 수익률이다. 공매도로 이 정도 수익을 거둔 투자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세상에 돈 벌기가 이렇게 쉬웠나?
난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GTiger PE에 보고서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GTige PE에 투자원금과 수익금을 돌려준 뒤.
난 유재호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성공했네요.]
“다 회장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허민웅을 소개시켜준 거야 그렇다 쳐도, 대체 뭘 믿고 나한테 1억 달러나 투자한 건지 아직도 신기하다.
뭐, 덕분에 둘 다 돈 벌었으니 잘 된 거지.
[한국 오면 밥 한번 먹죠. 제가 사겠습니다.]
“밥은 제가 살 테니, 전에 말씀드린 대로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어떤 부탁인가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절대 손해가 될 만한 일도 아니구요.”
[그건 들어보고 판단하죠.]
“뭐냐면······.”
내 부탁을 들은 유재호 회장은 바로 대답했다.
[확실히 어려운 부탁은 아니로군요. 그런데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서요.”
유재호 회장은 흔쾌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우리는 호텔에서 다 함께 축배를 터트렸다.
난 데이비드와 다른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세 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약속한 금액은 입금해드렸으니 확인해보세요.”
내 말에 세 사람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다.
에드워드 밴슨이 대표로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요?”
“컨티뉴 캐피탈에서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세 분 다요?”
“예.”
난 웃으며 물었다.
“저희는 아직 사무실도 없는 신생기업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습니다. 두 분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나와 데이비드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드가 여러분들을 추천했습니다. 계속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먼저 제안을 주셔서 다행이네요.”
난 미리 준비해놓은 서류를 내밀었다.
“뭔가요?”
“고용계약서입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세 사람은 각자 서류를 읽어보았고, 길게 고민할 것 없다는 듯 고용계약서에 사인했다.
“자, 그럼 한 식구가 된 기념으로 한잔하러 갈까요?”
한창 신나게 퍼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다짜고짜 말했다.
[나야.]
“어쩐 일로 연락했어요?”
내 물음에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난 연락하면 안 돼?]
“일 다 끝났으니 연락 안 할 줄 알았는데.”
[이거 왜 이래? 내가 그렇게 정 없는 사람이 아니야.]
“풋!”
[비웃냐?]
“아니, 잠깐 사레가 들려서요.”
[이번 일로 돈 좀 벌었어?]
“그럭저럭요.”
얼마 벌었는지 알면 기절하겠지.
“기사 봤어요. 과감하고 빠른 결단으로 기업을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칭찬이 자자하던데요.”
[사람 놀리냐?]
“놀리긴요. 잘한 건 사실이잖아요.”
[쳇! 덕분에 살았으니 고맙다는 말은 해두지.]
“어! 지금 저한테 고맙다고 한 거예요?”
[왜왜? 뭐? 불만이야?]
왠지 대단히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의 도움이 아니었어도 어쨌거나 주가는 폭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안에너지가 등을 돌리지 않았다면 잘해봐야 반토막 나는 정도로 그쳤겠지.
90퍼센트까지 폭락시킨 데는 그의 도움이 컸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
“글쎄요. 아직 여기서 할 일이 좀 있어서요. 허민웅 씨는요?”
[난 오늘 돌아가야지. 돌아가면 형이 아주 난리를 쳐댈걸.]
지금쯤이면 화안그룹 전체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향후 수소에너지 투자를 어떻게 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겠지.
도움을 받은 만큼 난 그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조언 하나 할까요?”
[뭔데?]
“위기는 기회라는 말 들어봤죠?”
[그게 왜?]
“수소차는 조만간 뜰 겁니다.”
[······뭐?]
투자자들이 바보라서 토머스 모터스에 투자한 게 아니다.
상용차 분야에서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확실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직 시기가 이를 뿐, 수소에너지는 훗날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게 된다.
1회차 때는 화안그룹이 에너지 사업부 전체를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수소에너지 분야를 중국 측에 매각했다.
사업 자체를 시작한 건 허민홍이었던 만큼 일종의 흔적 지우기라 해도 좋았다.
그렇다면 중국 기업에 인수된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향후 수소차는 정말로 한자리 차지했고, 수소에너지의 선두주자는 중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허민웅이 살아남으며 상황이 좀 달라졌다.
어쩌면 향후 수소경제의 주도권을 한국이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토머스 모터스의 실패는 수소차의 실패가 아닌 토머스 모터스의 실패일 뿐, 친환경차로의 변화는 세계적인 흐름이에요. 속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이 흐름 자체가 바뀌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미국은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지니고 있고, 유럽은 아예 10년 내에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현재 전기차가 대세이긴 해도 수소차가 가진 강점은 분명히 있다. 따라서 수소차는 상용차 분야에서 한자리 차지하게 된다.
토머스 모터스 사태가 터진 이후 수소차와 수소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누군가는 이제 수소차는 끝났다며 전부 팔고 빠져나갔지만, 누군가는 여기서 새로운 기회를 보고 뛰어들었다.
“그냥 참고하라구요.”
이 정도로 말해줬으면 알아들었겠지?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 없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얘기를 듣던 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오케이. 참고할게.]
“그럼 전 이만.”
이제 할 말 다한 것 같아서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가 말했다.
[나중에 한국 오면 형한테 연락해. 술 정도는 얼마든지 사줄 테니까.]
뜬금없는 단어가 하나 나왔다.
“형이요?”
허민웅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나이가 더 많잖아.]
이건 회귀하기 전의 나이까지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뭐, 그런 걸 떠나서······.
“아, 제가 아무나랑 호형호제하고 그러지 않아서요.”
[······아무나?]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혹시 전화가 끊겼나?
“여보세요.”
허민웅은 소리치듯 말했다.
[아, 됐어! 싫으면 말고!]
그러더니 바로 전화를 끊었다.
뭐지? 설마 삐졌나?
난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1회차 때 허민웅은 투자 실패의 책임을 지고 그룹에서 쫓겨난다. 덕분에 허민홍은 큰 분쟁 없이 화안그룹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민웅은 내 말을 듣고 화를 피했고, 허민홍만 피해를 뒤집어썼다.
이게 과연 화안그룹 후계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
뭐, 거기까지야 내가 알 바 아니지.
내 일 신경 쓰기도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