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퓨어셀 데이 (4)
개인투자자들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주식을 처분할지 말지 고심했고, 미국 주식사이트 아미앤츠(Army Ants)는 난리가 났다.
-와아! 시총 320억 달러 증발 실화냐?
-65달러에서 12달러까지 한 방에 내리꽂네.
-퓨어셀 데이(Fuel Cell Day)가 아니라 패닉셀 데이(Panic Sell Day)였음.
-수소트럭이라고 공개했는데, 까보니 RC카 웬말이냐?
-그나마도 유선이었음······.
-저 남자가 보닛 뜯어내지 않았으면 몰랐을 뻔~
-그가 들어 올린 건 보닛이 아니다. 진실이다!
-오오! 보닛맨(Bonnet Man)!
-저 남자 누구지? 섹시하네!
-팔뚝에 힘줄 나온 거 봐봐. 얼굴은 왜 저렇게 잘생겼지?
-저 사람 컨티뉴 캐피탈에서 보냈다는 얘기가 있던데.
-제2의 티슬라 좋아하시네.
-끝까지 움직였다고만 할 뿐 주행했다는 말은 절대 안 함 ㅋㅋㅋ
-야! 이 개새끼들아! 내 돈 물어내라!
-애초에 이런 기업이 상장된 것부터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우회상장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브레드 버튼 CEO 알고 보니 유명한 사기꾼임. 일전에 만들었던 기업들도 사기나 다름없었음.
-얘들이 테라피스랑 다를 게 뭐야?
-수소트럭 만든다는 공장은 착공도 안 했고, 태양광으로 수소 만든다는 것도 뻥이고, 핵심기술이라고 했던 연료전지스택은 다른 데서 사온 거고, 신차는 모형이고. 대체 진짜인 게 뭐야?
-저런 사기꾼에게 뭘 믿고 투자한 거지?
-대체 SEC는 저런 놈들 조사 안 하고 뭐 하고 있냐?
-GM이 투자한다는 것도 뻥일 듯.
-조만간 상폐 가겠네.
-시발! 오를 거라는 말에 며칠 전 2000주 샀는데, 수익률 -76퍼센트. 죽고 싶다.
-여보 미안해!
-저 지금 허드슨강 가는 중입니다.
-멈춰! 내가 먼저 간다!
-오늘 허드슨강에서 토머스 모터스 주주들 정모 하것네.
-한 번에 뛰어내리면 혼잡하니 오늘은 사회보장번호 끝자리 1, 6만 뛰어내리세요.
-화씨 38도로 수온 양호합니다!
불길은 GM으로까지 번졌다.
토머스 모터스의 지분 인수 MOU 체결은 GM에게도 큰 호재였다. 덕분에 GM의 주가도 10퍼센트 이상 올랐다.
그런데 한순간에 대형 악재로 돌변했다.
주주들의 문의가 쏟아지자 GM의 제인 카니터 CEO는 해명에 나섰다.
“GM은 토머스 모터스에 어떠한 투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분 인수와 생산에 대한 부분도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토머스 모터스의 기술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투자계획을 진행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 발언은 또다시 토머스의 폭락을 불러왔다.
간신히 10달러 선을 지키던 토머스의 주가는 GM의 부인 이후 6달러까지 떨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미국 금융당국까지 나섰다.
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는 토머스가 허위사실을 공시했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뒷북 대응에 개인투자자들은 울분을 터트렸다.
* * *
언론사들은 일제히 토머스 모터스 사태와 관련해 기사를 썼고, 외신들도 주요 뉴스로 내보냈다.
처음 관련 리포트와 기사를 공개한 것은 월스트리트타임즈의 트리스 오코너 기자. 때문에 다른 언론사들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기사를 인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기사를 쓰면서도 어리둥절했다.
“월스트리트타임즈라는 언론사가 있었나?”
“검색해 보니 나오긴 하는데.”
“트리시 오코너 기자는 또 누구야?”
“어떻게 이 리포트를 단독 공개한 거지?”
“컨티뉴 캐피탈과 인터뷰 안 되나?”
“WST에서 단독으로 따겠죠.”
“화안에너지 쪽은 연락 안 돼?”
“그쪽도 WST와만 독점으로 인터뷰하겠다고 합니다.”
“제길! 특종 낸 것도 모자라 후속보도까지 싹쓸이하겠는데.”
“기자라도 인터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코너 기자와는 연락돼?”
“혹시 WST에 아는 사람 없어?”
이번 일로 월스트리트타임즈와 트리시 오코너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월스트리트 투자전문가들과 주류 언론들이 몰랐던 사실을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혼자서 밝혀낸 것이다!
그야말로 기자에게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특종이다.
문제는 토머스 모터스를 칭찬하는 기사를 올렸던 언론사들이다. 그 기사들은 졸지에 가짜 뉴스(Fake News)가 됐다.
비난이 쏟아지자 해당 언론사들은 잘못된 내용에 대해 사과하고 정정기사를 올렸다.
바넷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행사 직전에 올렸던 기사에는 수천 개의 악플이 달렸다.
-뭐? 종합수소에너지 기업?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 신차 공개로 밸류에이션이 개선돼?
-행사장에서 질문하는 거 봤는데 짜고 하는 티가 팍팍 나던데ㅋㅋㅋ
-기자가 토머스 모터스에서 돈 받아먹었나?
-제대로 알아보고 쓴 거 맞냐?
-ㅅㅂ 뉴욕타임즈가 가짜 뉴스를 쓰다니.
-뉴욕타임즈도 한물갔네. 이런 기레기를 기자라고 데려다가 기사 쓰게 하고.
-이 기사 보고 투자했다가 망했네.
-다 같이 기자 고소합시다!
-이딴 기사 쓰고도 기자라고 하기 부끄럽지도 않나?
-나 같으면 벌써 허드슨강에 뛰어들었음.
-기자가 아니라 기레기였네~
-이딴 기사 써서 투자자들 끌어모은 다음 고점에서 매도한 거 아니야?
-뉴욕타임즈 구독 취소 완료!
-기자 계좌 한번 탈탈 털어봐야 한다.
그녀는 뉴욕타임즈의 공식 에이튜브 채널을 운영할 정도로 인기 기자였다. 그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만큼 비난 역시 거셌다.
바넷사 로즈는 댓글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냥 관심 끌려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다 진짜였다니!’
트리시의 얘기를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었다면 좀 더 신중하게 기사를 썼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런 비난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얘는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고소당할 수도 있을 거라고 놀리듯 말했는데, 이러다가 자신이 고소당하게 생겼다.
바넷사는 상사에게서 거센 질책을 받았다.
[잘 알아보고 기사를 썼어야지! 잘못된 기사를 쓰면 어떡해? 지금 회사로 항의가 빗발치고 있어! 구독 취소하겠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고, 고소하겠다는 사람도 있어!]
“죄, 죄송합니다.”
[당장 사과문 쓰고, 정정기사 작성해!]
“······네.”
정정기사는 기자에게 굴욕적인 일이다. 잘못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 특종 낸 WST 트리시 오코너 기자와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 우리 회사에도 같이 지원했었고.]
“예. 그렇긴 한데······.”
[잘됐네. 그럼 오코너 기자에게 연락 좀 해봐.]
“예?”
[친구면 연락처도 있을 거 아니야? 지금 모든 언론사들이 그 기자만 찾고 있어. 다른 곳보다 1초라도 빨리 연락해야 해.]
“연락해서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정정기사 쓰려면 뭐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자료를 받아오든 기자를 인터뷰하든, 사소한 거 하나라도 알아와! 당장!]
“아, 알겠습니다.”
바넷사는 울상을 지었다.
그동안 인터넷 언론사에서 일한다고 은근슬쩍 무시했는데, 이제 도와달라고 사정사정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 * *
단지 리포트와 그를 받아쓴 기사뿐이었다면 이 정도로 충격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행사에서 신차는 모형임이 밝혀졌고, 수소인프라 구축에 협력할 것으로 알려졌던 화안에너지는 협력을 취소하고 주식을 전부 팔아치웠다.
GM마저 협력을 부인하자 토머스 모터스 주가는 무려 90퍼센트가 폭락했다. 순식간에 시총 360억 달러가 증발한 것이다.
관련 기업들까지도 줄줄이 내려가며 증시 전체에 충격을 안겼다.
폭락세는 도저히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토머스 모터스에 직접 투자한, 그리고 관련 기업들에 투자한 투자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리포트 낸 곳이 어디라고?”
“컨티뉴 캐피탈이라고 합니다.”
“작성자는?”
“데이비드 록허트입니다.”
“설마 그 록허트? 빅토리아 인베스트먼트에서 일했던?”
“그 사람 월가에서 퇴출된 거 아니었어?”
“아직 안 죽었네.”
“설마 그 리포트를 공개하며 풋옵션을 매수하고 공매도를 쏟아낸 건가?”
“젠장! 한몫 제대로 챙겼겠는데.”
월스트리트에는 기업의 회계부정이나 허위사실 등을 적발해 주가 폭락에 배팅한 다음, 이를 폭로해 돈을 버는 헤지펀드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었고, 일부는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은 리포트 하나로 단 하루 만에 90퍼센트를 폭락시켰다!
당연히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금융시장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다들 컨티뉴 캐피탈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했다.
알려진 정보라고는 과거 빅토리 인베스터먼트에 있던 데이비드 록허트가 대표로 있다는 것뿐.
“대체 언제 투자를 받아서 언제 회사를 차린 거야?”
“제길! 진작 데려왔어야 했는데!”
“우리 회사에 지원서 넣지 않았나? 어떤 놈이 떨어트린 거야?”
데이비드 록허트는 빅토리 인베스트먼트가 망한 뒤 한동안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때가 있다.
투자회사들은 그때 그를 데려오지 못한 걸 후회했다.
사방에서 투자자들의 전화가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낙폭이 워낙 크다 보니 지금이라도 주식을 처분해야 할지, 반등을 기다려야 할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샤크 매니지먼트의 대표 마이클 프레스턴은 폭락하는 주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샤크 매니지먼트는 토머스 모터스의 주요 투자자 중 하나였다. 지분 3.9퍼센트를 보유했고, 이는 약 16억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주가 90퍼센트가 단 하루 만에 날아갔다. 오전까지만 해도 16억 달러였던 주식은 이제 1.6억 달러로 변해있었다.
펀드에 있던 자산은 14억 달러 넘게 증발했다.
다행히 비교적 초기에 투자한 덕분에 손실률은 -90퍼센트가 아닌 -35퍼센트에 머물렀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이번 일의 기폭제가 된 리포트를 읽어보았다.
부실 리포트를 작성한 사람은 다름 아닌 데이비드 록허트. 그리고 행사장에서 수소트럭의 보닛을 뜯어서 모형임을 밝혀낸 사람은 그의 밑에서 일했던 직원이다.
이는 애초에 그가 주가를 폭락시키기 위해 모든 걸 계획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최근 수년 사이 공매도로 이 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상황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에리카 프레스턴.
다름 아닌 그의 여동생이다.
그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불패의 명성이 깨졌네요.]
“투자를 하다 보면 손실을 보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오빠는 이제까지 한 번도 손실을 보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불패라는 명성도 었었구요.]
“명성에 집착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지.”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보다 바보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명성은 항상 중요하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데이비드 록허트가 샤크 매니지먼트에 지원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진작 그를 영입했다면 이번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이클은 태연하게 말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건 소용없는 짓이야.”
[맞아요. 저도 그냥 아쉬워서 해본 말이에요. 그럼 전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