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퓨어셀 데이 (3)
이쯤 되자 관객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이지만, 주행한 게 맞다고 한마디만 하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브레드 버튼은 끝까지 말을 돌리며 대답을 피했다.
관객과 취재진 모두 똑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왜 대답을 안 하지?’
정확히는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하는 거였다.
수천 명의 관객들이 모여 있는 행사장이다.
여기서 거짓말을 했다가는 나중에 사기죄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때문에 그는 절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야유와 함께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브레드 버튼은 기자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어쩌면 상황을 이쯤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건장한 흑인 남성들이 일어나 소리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왜 대답을 안 합니까?”
“뭐가 문제인데?”
“정말로 언덕에서 굴린 거 아니야?”
“주행 영상이 맞다고 한마디만 해봐!”
그러자 관객들 사이에서도 동조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째서 대답을 못 하는 거지?”
“뭔가 좀 이상한데.”
“대답을 해!”
“설마······.”
일단은 이 상황을 진정시켜야 했다.
브레드 버튼은 진행요원들에게 눈짓을 했다.
진행요원들은 재빨리 기자와 소란을 피우는 남성들을 끌어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소리치던 흑인 남성들이 단상 위로 뛰어 올라온 것이다.
“이게 진짜 수소트럭이 맞는지 한번 확인해봅시다.”
브레드 버튼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안 돼! 막아!”
놀란 진행요원들이 앞을 막자 건장한 흑인 남성들이 그들을 밀쳐냈다. 진행요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지는 사이 에드워드 밴슨은 트럭 앞에 섰다.
진행요원들이 달려들었지만 다른 흑인 남성이 막아줬고, 그사이 에드워드는 두 손으로 T2 FCV의 보닛을 붙잡고 힘차게 들어 올렸다.
“으랏챠!”
우지끈!
힘찬 기합과 함께 고정 고리가 부서지며 보닛이 뜯기듯 위로 들렸다.
행사장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소리쳤다.
“아!”
“어어!”
바넷사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야?’
연료전지스택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한마디로 트럭은 껍데기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관객들은 동시에 같은 의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럼 저 커다란 트럭이 대체 어떻게 움직인 거지?’
그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에드워드는 트럭 밑에 숨겨져 있던 전선을 들어서 밖으로 빼 보였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수소트럭은 외부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움직인 것이다!
순간 시끄럽던 행사장 안이 조용해졌다.
싸늘한 침묵 속에서 브레드 버튼은 당황하며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어디까지나 모형이라서······.”
하지만 그 변명은 이내 사방에서 터져 나온 고성에 묻혔다.
“이게 대체 뭐야?”
“신차라며?”
“껍데기만 있는 게 무슨 자동차냐?”
“기사가 진짜였어?”
“어떻게 된 일인지 당장 해명해!”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소리쳤고 일부는 단상으로 달려들었다.
진행요원들이 사람들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궁지에 몰린 브레드 버튼은 도망치듯 행사장을 빠져나갔고, 그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에 담겨 전 세계로 송출됐다.
* * *
[(WST 단독) 토머스 모터스, 혁신인가 사기인가?]
(전략) ······이 리포트의 작성자는 컨티뉴 캐피탈 대표 데이비드 록허트다.
그는 인터뷰에서 ‘토머스 모터스는 모든 것이 거짓이다. 당장이라도 주식을 파는 것이 조금이라도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더 이상 투자자들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정보를 전부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행사에서 공개한 T2 FCV는 실제 차가 아닌 주행이 불가능한 모형이고, GM의 지분 인수와 수소트럭 생산 협력 역시 실제로 진행된 것은 전혀 없다고 한다.
(중략)
모두가 알다시피 토머스 모터스는 이제까지 단 한 대의 차도 출시하지 않았다. 수소 생산, 수소충전소, 수소 스타트업의 지분확보 등 그동안 여러 발표를 했지만 현재까지 어떠한 수익 모델도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CEO인 브레드 버튼은 작년에만 3천만 달러의 성과급을 챙겨갔다.
이는 투자자들의 돈이 꾸준히 유입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데이비드 록허트는 토머스 모터스가 전형적인 폰지 사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투자자들이 더 이상 돈을 넣지 않고 돌려달라고 하는 순간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누구도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은 걸까?
여기에는 주류언론의 책임이 크다. 언론들은 그동안 제대로 된 사실 확인 없이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를 써 내리기에 바빴다.
토머스 모터스는 테라피스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아무런 성과 없이 미래가치만을 내세우며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은 것, CEO 개인의 인기에 기댄 것, 그렇게 모은 돈을 기술개발과 생산에 투자하는 대신 대규모 행사 개최와 언론 홍보에만 치중한 것 등등.
테라피스 사태가 터진 후 언론도 공범이라는 비난이 일었고, 당시 언론들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언론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토머스 모터스가 공개한 T1 FCV 영상의 경우, 해당 장소에서 실험 한 번만 해보면 간단하게 진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언론사들 중 단 한 곳도 검증에 나서지 않은 채 이를 ‘수소트럭 주행 영상’이라고 기사를 썼다. 심지어는 CEO가 ‘주행했다’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데이비드 록허트는 이번 사건이 테라피스에 이은 또 다른 사기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며 투자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트리시 오코너의 기사를 읽은 브레드 버튼은 사무실 안에 물건을 부수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이런 젠장!”
정체 모를 놈들에게 완전히 당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행사장에 들어온 게 분명했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돈은 거짓을 진실로 바꿀 수 있고,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투자를 하겠다는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수소에너지가 가져올 찬란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당장의 손실쯤이야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술이 없으면 돈을 주고 사오면 그만이다.
화안에너지와 GM 등 다양한 회사들과 제휴를 맺었고, 대연자동차에도 계속 구애 중이었다. 이렇게 글로벌 밸류 체인을 구성하면 정말로 수소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괜찮아. 충분히 대중과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이런 위기는 이제까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극복하고 회사를 여기까지 키웠다.
적당히 둘러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될 것이다.
‘일단 바로 화안에너지와 수소인프라 협약을 발표해서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야 해.’
화안그룹은 토머스 모터스의 지분 8.5퍼센트를 들고 있다. 자신들의 지분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나서줄 것이다.
재빨리 언론에 낼 해명자료를 준비하려는데······ 충격적인 기사가 떴다.
[화안에너지, 토머스 모터스 주식 전량 매각 공시!]
[수소인프라 협력 전면 취소!]
[화안에너지 방수환 사장, 토머스 모터스 측에서 먼저 신의성실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
[허민웅 해외투자팀장, 브레드 버튼 CEO의 말 하나도 믿을 수 없어]
[화안에너지, 토머스 모터스 상대로 고소 검토]
그것을 본 브레드 버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안에너지가 협약을 파기하고,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화안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화안에너지 팀장인 허민웅이 수소인프라 협력을 위해 미국에 와있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협력방안을 논의했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행사장에서 질문한 기자는 화안에너지 측에서 보냈다. 그녀와 같이 있던 사람들 역시.
‘서, 설마?’
브레드 버튼은 바로 화안에너지 허민웅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듯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허민웅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뭐가요?]
“주식을 다 팔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아아, 그거요? 예. 사실입니다.]
“그, 그럼 수소인프라 협약은요?”
[협약이 의미가 있나요?]
“무슨 뜻입니까?”
[수소차도 없는데 수소충전소를 만들어봐야 뭐합니까?]
“뭐라구요?”
허민웅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행사장에서 껍데기만 있는 차를 신차라고 공개했던데.]
“그, 그건 사정이 있어서······.”
[대체 어떤 사정이 있기에 저한테까지 숨긴 건지 궁금하네요.]
“그건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 전에 저도 한번 물어보죠. 지난번에 공개한 T1 FCV 주행 영상. 언덕에서 굴린 겁니까, 아닙니까? 통화 녹음 중이니 신중하게 대답하세요.]
“······.”
그 물음에 브레드 버튼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허민웅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당신, 내가 바보로 보여?]
“좀 진정하시고······.”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이제까지 말한 것들 중 사실이 있기나 해?]
브레드 버튼은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말했다.
“이, 일단 만나서 얘기하시죠.”
[됐고. 그동안 저희 회사로 보낸 공문 중 거짓인 내용 확인해서 귀사에 소송을 진행할 테니, 그거나 대응 준비 잘하세요.]
“······.”
* * *
[토머스 모터스 T2 FCV 모형으로 밝혀져!]
[엉망이 된 퓨어셀 데이 행사]
[T1 FCV 정말로 언덕에서 굴렸나?]
[브레드 버튼 CEO, 주행 영상에 대해 끝까지 대답을 회피]
[월스트리트타임즈, 해당 장소에서 실험한 영상 공개!]
[T1 FCV 정말로 언덕에서 굴렸나?]
[트리시 오코너 기자, 화안에너지와의 단독 인터뷰 진행······.]
[토머스 모터스 주가 폭락]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토머스 모터스 주가는 상승세였다.
전고점을 돌파하며 주가는 65달러까지 찍었다. 그런데 공개된 신차가 모형임이 밝혀졌고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장면이 나가자 주가는 순식간에 30퍼센트 날아갔다. 충격이 크긴 했지만 저가매수세가 들어오며 40달러 선을 지켰다.
행사가 엉망이 되는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다들 브레드 버튼 CEO의 해명을 기다렸다.
그런데······.
해명이 나오기도 전에 월스트리트타임즈의 트리시 오코너 기자가 데이브드 록허트의 인터뷰와 함께 각종 입증자료들을 공개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화안에너지는 협약을 파기하고, 주식을 전량 매도했다고 밝혔다.
사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토머스 모터스가 독보적인 기술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가 힘들다.
대기업과의 제휴는 그들이 기술력을 보증해준 것이나 다름없었고, 토머스 모터스 역시 그렇게 홍보해왔다.
그런데 그 보증이 휴지 조각이 됐다!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등을 돌렸다는 사실에 토머스 모터스 주가는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65달러까지 올랐던 주가는 순식간에 12달러까지 폭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