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퓨어셀 데이 (2)
바넷사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너 설마 진짜 그 리포트를 믿는 건 아니지?”
“믿는데.”
“그럼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전부 속고 있다는 거야?”
“바로 그거야. 그 이유는 언론들이 그동안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기사를 썼기 때문이고.”
‘얘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바넷사는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
“근거는 있어?”
“그럼.”
트리시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 다음,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T1 FCV 주행 영상 봤지?”
“그게 왜?”
“그거 사실은 주행한 게 아니라 언덕에서 굴린 거래.”
“······응?”
“이번에 발표되는 신차도 껍데기만 있는 가짜래.”
“······.”
너무 황당한 얘기다 보니 뭐라고 반론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트리시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 다 밝혀낼 거야. 특별히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니까 기사 쓸 때 참고해.”
바넷사는 트리시가 이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차피 남들과 비슷한 기사를 써봐야 주목받기 힘드니, 남들이 쓰지 않는 기사를 쓰려는 건가?’
모두가 맞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하면 잠시 대중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다. 그래서 음모론 같은 기사가 종종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대중들의 비난이 쏟아질 테고, 토머스 모터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본인이 올리겠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한번 고소당해 보면 정신 차리겠지.’
* * *
퓨어셀 데이 행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토머스 모터스의 발표가 시작됐다.
조명이 커지며 브레드 버튼 CEO가 단상 위에 등장했다.
그는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퓨어셀 데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와아아아!”
함성과 함께 세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관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토머스 에디슨은 1천 번의 실험 끝에 전구를 상용화했습니다. 999번의 실패를 어떻게 견뎠냐는 질문에 그는 ‘999번 실패한 게 아니라 전구가 켜지지 않은 999가지 이유를 발견한 거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소차가 달리지 못하는 수백 가지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수소차가 도로를 달릴 하나의 이유를 발견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T2 FCV를 공개합니다!”
스크린이 좌우로 열리며 뒤에서부터 거대한 흰색 트럭이 앞으로 나왔다.
유선형으로 생긴 차체에는 ‘THOMA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미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유려한 디자인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까지 출시된 전기트럭의 주행가능거리는 고작 300마일에, 충전시간은 최소 1시간이 걸립니다. 아무리 급한 화물을 운송하더라도 충전기를 꽂아놓고 한 시간 동안 놀고 있어야 합니다. 대체 어떤 바보들이 이런 차를 만들었을까요?”
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T2 FCV는 다릅니다. 220kw급 수소연료전지 시스템과 12개의 고압수소탱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1000마일을 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차의 충전시간은 얼마나 될까? 단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와아아아!
여기저기서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브레드 버튼은 계속해서 자료화면을 띄우며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각의 모터가 따로 동작해 트레일러와 캡이 접히는 잭 나이핑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체를 제어하고, 연료탱크를 아래에 탑재해 무게중심을 낮춰 사고시 차가 전복된 가능성을 줄였습니다. 토머스 모터스만의 특수설계로 공기저항계수를 0.35까지 줄여 연비를 향상시켰고, 플래투닝이 가능한 최첨단 자율주행기술을 장착해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주행이 가능합니다!”
이어서 새로운 그래프가 나타났다.
내연기관 트럭과 수소트럭의 경제성을 비교한 그래프다.
“T2 FCV는 토머스 모터스만의 연료절감기술 덕분에 기존 트럭 대비 연료비는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T2 FCV는 사고율을 낮추고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해 운송업 노동자들은 물론,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주행거리 1000마일에 충전시간은 10분이라니! 최첨단 자율주행이라니! 연료비가 20퍼센트라니!
그야말로 꿈의 트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브레드 버튼은 더 환호하라는 듯 손짓을 하며 소리치듯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안 될 거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 저희는 태양광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한 수소를 수소트럭으로 미국 전역에 운송합니다. 수소는 조금의 화석연료도 사용하지 않는 100퍼센트 친환경 에너지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수소경제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토머스의 수소트럭은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누비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화안에너지와 협력해 미국 전역에 150개의 수소충전소를 건립할 계획입니다.”
스크린에 미국 지도가 나왔고 이어서 충전소가 들어설 예정지에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또다시 박수를 쳤다.
행사장 분위기가 한창 고조된 상황에서 브레드 버튼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는 미모의 여성 기자를 지목했다.
“첫 번째 줄의 여성 기자분. 질문하세요.”
무작위로 뽑은 것처럼 보였지만 질문할 기자들은 미리 선별해놓았다. 또한 사전에 질문지를 나눠주었고 그 안에서만 질문을 하도록 했다.
여성 기자는 마이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뉴욕타임즈의 바넷사 로즈 기자입니다. 먼저 T1 FCV와 T2 FCV의 차이점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T1 FCV는 앞이 평평한 캡 오버(Cab Over) 타입이고, 보닛이 앞으로 긴 컨벤셔널(Conventional) 타입으로, T2 FCV의 적재량과 항속거리가 더 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두 모델 모두 편의성을 더 강화한 더블캡 모델을 함께 출시할 예정입니다.”
“지금 많은 기업들이 토머스 모터스의 수소트럭 출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식 판매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 부분은 GM과 협의 중에 있습니다. 생산 물량 일부를 GM 공장이 담당하기로 MOU를 체결했고, 미시건주의 공장에 기존 생산 라인 변경을 진행 중입니다. 그곳에서 먼저 T1 FCV의 생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 발언은 GM과의 생산 협업을 공식 발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일제히 박수를 쳤다.
“토머스 모터스에 대해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 진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수소트럭의 경제성은 이미 입증되었습니다.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선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희는 먼저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해외지사를 설립하고, 내년에는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설 계획입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한 로즈 기자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이상 뉴욕타임즈의 바넷사 로즈 기자였습니다.”
관객들은 박수를 쳤고, 다른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을 알고 있는 만큼 대답은 술술 나왔다. 브레드 버튼이 답변을 할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또 다른 기자가 질문을 위해 마이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월스트리트타임즈의 트리시 오코너 기자입니다.”
처음 듣는 언론사의 이름에 브레드 버튼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월스트리트타임즈? 화안에너지 쪽에서 섭외한 언론사인가?’
오코너 기자는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를 꺼냈다.
“얼마 전, 컨티뉴 캐피탈에서 공개한 리포트에 따르면 토머스 모터스의 기술력이 전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매도 의견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전 질문지에는 없는 질문이었다.
브레드 버튼은 당황했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우리 기술력이 전부 거짓이라고요? 그런 어이없는 얘기는 처음 듣네요. 대체 컨티뉴 캐피탈은 뭐 하는 곳입니까? 양복 입고 안경 쓴 멍청이들이 계산기 두드리며 그럴듯한 헛소리를 리포트랍시고 내는 곳입니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 주식을 사지 못해서 배가 아팠나 보네요.”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토머스 모터스를 공격하는 리포트는 많았습니다. 누군가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에 도전할 때, 누구는 그저 ‘안 된다’, ‘위험하다’라는 불평만 늘어놓습니다. 토머스 모터스가 기술력이 없다면 GM이 지분 인수에 나섰겠습니까? 화안에너지가 수소인프라 사업에 나섰겠습니까? 바로 이게 우리가 이룬 성과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기자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오코너 기자는 개의치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컨티뉴 캐피탈 측에서는 일전에 토머스 모터스가 공개한 T1 FCV의 영상에 대해, 주행 영상이 아니라 동력이 없는 차를 언덕에서 굴린 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넷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이게 대체 뭔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이야? 얘 혹시 뜨고 싶어서 생쇼하나?’
관객들 역시 다들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기자가 아니라 기레기인가?’
‘뭐? 언덕에서 굴려? 혹시 미친 건가?’
‘저런 것도 기자라고.’
언론이 토머스 모터스를 물어뜯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하지만 트집을 잡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지나쳤다.
멀쩡히 차가 달리는 영상을 보고도 언덕에서 굴렸다니!
바넷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얘 진짜 사고 제대로 치네. 망신당하려고 작정했나?’
관객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코너 기자는 추궁하듯 계속 물었다.
“공개된 영상에서 T1 FCV가 수소연료전지로 주행을 한 게 맞습니까?”
브레드 버튼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대체 이 자리에서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꿋꿋하게 질문했다.
“사실입니까, 아닙니까? 그것만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설마 영상이 조작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영상에서 T1 FCV가 동력으로 주행한 게 맞습니까?”
“영상에는 어떠한 조작도 없습니다!”
“전 영상 조작에 대해 묻는 게 아닙니다. 주행한 게 맞는지 아닌지 묻는 겁니다. 주행한 게 맞으면, 맞다고 한마디만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보셨으면 아실 것 아닙니까? 본 그대로입니다.”
“본 그대로의 장면이 주행입니까, 아닙니까?”
“T1 FCV는 움직였습니다. 시속 60마일의 속도로 말이죠.”
“그러니까 그게 동력에 의한 겁니까, 관성에 의한 겁니까? 왜 자꾸 대답을 피하는 겁니까?”
브레드 버튼은 당혹감을 숨기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대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따위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조차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