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퓨어셀 데이 (1)
토머스 모터스는 최근 미국 증시에서 가장 핫한 주식이었다.
지금을 놓치면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추격 매수에 나섰고, 주가는 올해에만 700퍼센트 올랐다.
주가 상승률만 놓고 보면 제2의 티슬라라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이번 퓨어셀 데이에 신차 공개와 함께 수소인프라 투자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GM이 지분을 인수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것도 기정사실이라던데.”
“빠르면 내년 상반기에도 양산을 시작할걸.”
“양산 문제만 해결되면 주가 상승은 이제부터지.”
“더 늦기 전에 매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애널리스트들은 앞다투어 목표 주가를 올려 잡았고, 언론들은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이러한 기대감으로 투자자들은 토머스 모터스의 주식을 사기 위해 일제히 매수 주문을 넣었고, 거래량은 폭증했다.
그런데 주가가 예상만큼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거래량이 많은데도 상승 폭이 제한된다는 것은 그만큼 매도자가 많다는 의미였다.
“매도량이 상당한데.”
“대체 어디서 팔고 있는 거지?”
“행사를 앞두고 차익실현하려는 건가?”
매도세라고 해도 전체 주식의 10퍼센트 미만. 시장이 소화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상승세를 꺾지는 못했다.
매수세가 몰리며 토머스 주가는 전고점이었던 62달러를 넘어섰다.
* * *
유재호 회장은 박수찬 비서실장에게 보고를 받았다.
“타일러 박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GTiger PE는 세인트루시아에 있는 회사로 겉으로는 사모펀드지만, 실제로는 유성그룹의 해외 비자금을 관리하는 창구 중 하나였다.
대표인 타일러 박은 핏줄로 따지면 순수 한국인이지만, 영국과 세인트루시아 이중국적을 가진 검은머리 외국인.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돈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뭐라고 하던데요?”
“말씀하신 대로 1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투자를 받은 회사의 이름은 컨티뉴 캐피탈.
유재호는 한미루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남 밑에서 일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자신의 회사를 차린 모양이다.
대표 이름은 데이비드 록허트.
“이 사람은 누굽니까?”
“변호사 출신의 투자자입니다. 알아보니 월가에서는 제법 유명인이더군요.”
“그래요?”
박수찬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보다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뭔가요?”
“투자받은 1억 달러로 토머스 모터스 주식을 공매도했다고 합니다.”
먼저 공매도를 한 다음 매도 리포트를 내서 주가를 하락시켜 이익을 취한다. 헤지펀드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역시 그렇군요.”
이미 예상했던 만큼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CFD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유재호는 살짝 당황했다.
“레버리지는요?”
“열 배입니다.”
어이가 없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투자금을 열 배로 배팅했다고?’
박수찬 비서실장은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거래비용을 생각한다면 주가가 5퍼센트만 올라도 전부 청산될 수 있습니다.”
증권사에서 직원으로 일한 만큼, 한미루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했다는 건······.
‘그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가 주가를 떨어트릴 생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언제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공매도 세력들이 리포트를 내고도 역풍을 맞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토머스 모터스는 변동성이 큰 편이라 하루 5퍼센트 이상 오르고 내리는 건 드문 일도 아니다.
만약 주가가 상승하고 증거금을 추가로 납입하지 못한다면 1억 달러를 전부 날리게 될 것이다.
1억 달러면 유재호에게도 큰돈이다.
재벌이라고 해서 돈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현금은 언제나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어떻게 할까요? 중단하라고 할까요?”
지금이라도 뺀다면 큰 손해 없이 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던 유재호는 입을 열었다.
“한번 지켜보죠.”
아무도 몰랐던 펀드의 부실을 알아냈고, 전문가도 몰랐던 동우정밀의 가치를 알아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이 투자를 과연 성공시킬 수 있을까?
동우정밀 인수, ADM 지분 인수, RD쿼넷과 NP세미의 인수까지.
인수한다고 끝이 아니다. 당장 동우정밀만 해도 막대한 개발비를 쏟아붓는 중이다. 다른 기업들 역시 얼마의 투자를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이 모든 일들이 한미루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그가 이번에도 성공한다면,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들을 믿고 계속 진행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어차피 그거밖에 안 되는 거겠지.’
그 경우 지금 하는 일들을 전부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왠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 * *
퓨어셀 데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NBC와의 인터뷰에 나온 토머스 모터스의 CEO 브레드 버튼은 선언하듯 말했다.
[내일의 행사를 기점으로 토머스 모터스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이 완전히 바뀔 겁니다.]
나도 똑같이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일 행사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난 TV를 끈 다음 에드워드를 보며 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타투가 멋있네요.”
“감사합니다.”
그의 몸에는 목에서부터 어깨까지 이어지는 타투가 있었다.
“할렘가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커다란 덩치에 근육질 몸. 얼굴에는 작은 흉터도 하나 있다. 주먹깨나 썼을 것 같은 모습이다.
이런 자리가 아니라 밤길에 마주쳤다면 바로 피해갔을 것이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맞습니다. 고등학생 다닐 때까지 뉴욕 할렘가에서 살았죠. 어렸을 때는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소년원에 잠깐 다녀온 적도 있구요.”
“어쩌다가 이쪽 일을 하게 되신 거예요?”
에드워드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저에게는 나이 많은 형이 한 명 있습니다. 같은 남자가 봐도 강하고 멋있는 사람이었죠. 무엇보다 상대가 누구든 절대 주눅 들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형은 저에게 우상이나 다름없었죠.”
“호오, 그랬군요.”
“그러다가 어린 나이에 애가 생겼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운전기사 겸 경호원으로 취직했습니다.”
“그래서요?”
“어느 날, 형이 일하는 모습을 봤는데 100달러짜리 한 장에 설설 기더군요. 평소에 그렇게 무시하던 배 나온 부자 앞에서요. 그 순간, 주먹 잘 쓰는 것보다 돈 잘 쓰는 게 최고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 인생의 진리를 깨우쳤군요.”
누가 뭐래도 돈이 최고다.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해 간신히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들어간 대학교가 뉴욕대인 걸 보면 원래 머리가 좋았거나 정말 필사적으로 공부했던 모양이다.
욕망은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동기지.
뭐, 그건 그렇고······.
“혹시 주위에 힘 좀 쓰는 친구 있어요?”
“무슨 일입니까?”
“아! 불법적인 일은 아니에요. 사람을 때리거나 싸우거나 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구요. 말 그대로 힘만 좀 쓰면 됩니다. 일당 1천 달러인데 소개시켜줄 만한 사람이 있나요?”
에드워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절반만 준다고 해도 100명은 달려올 겁니다.”
돈은 귀신도 부릴 수 있는 법이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그중 네다섯 명 뽑아서 행사장에 좀 다녀와요.”
* * *
앨라바마주 몽고메리(Montgomery).
이곳의 컨벤션장에서 퓨어셀 데이 행사가 열렸다.
최근 미국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주주들과 관람객, 업계 관계자, 그리고 취재진들이 모여들었다.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기자들은 사진과 영상을 찍고, 즉석에서 기사를 써서 올렸다.
뉴욕타임즈 기자 바넷사 로즈는 마이크를 들고 다니며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저는 지금 퓨어셀 데이 행사장에 나와 있습니다. 모두의 관심이 대단한데요. 과연 이번 행사에서 어떤 발표가 있을지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그녀는 에이튜브에 짧은 영상들을 업로드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영상들은 전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바넷사는 프레스룸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노트북으로 기사를 썼다.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수소차의 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토머스 모터스가 있다. 투자전문가들은 토머스 모터스의 성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수소차의 성장성을 감안한다면 지금이라도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던 도중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났다.
“어!”
바넷사를 본 트리시는 반갑게 말랬다.
“안녕! 여기서 또 보네.”
“니가 왜 여기에······?”
기사를 쓰고 있던 트리시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난 여기에 있으면 안 돼?”
바넷사는 재빨리 웃음을 지었다.
“아, 아니. 너무 반가워서. 관람하러 온 거야?”
“아니. 나도 초청받아서 기자로 왔는데.”
그녀는 보란 듯이 목에 걸린 기자증을 보여주었다. 하기야 프레스룸에 들어올 수 있는 건 기자뿐이다.
‘이름도 잘 모를 인터넷 언론사 기자를 누가 초청해준 거지?’
행사를 취재하고 싶어 하는 언론사들은 많다. 하지만 토머스 모터스의 프레스 초청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특히나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기사를 쓴 기자는 절대로 초청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기사 쓰고 있었나 보네.”
“응.”
바넷사는 트리시가 쓰고 있던 기사를 슬쩍 보았다.
[······토머스 모터스에 대해서는 여러 의혹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브레드 버튼 CEO는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다수의 언론들이 토머스를 티슬라와 비교하지만, 전 세계에 수만 대의 차를 팔고 있는 티슬라와는 달리 토머스는 고작 시제품을 한 대 내놓았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시제품도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거 니가 쓴 거야?”
“응.”
트리시는 대답을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남이사 뭘 쓰든.’
바넷사는 재차 물었다.
“설마 이 기사 올릴 거야?”
“왜? 안 돼?”
트리시의 대답에 바넷사는 짐짓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그러다가 정말 고소당할 텐데.”
그런데 트리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그쪽에서 고소하든 말든. 사실이면 상관없잖아.”
‘갑자기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지난번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에 살짝 당황스럽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는 거야?”
트리시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말했다.
“응. 컨티뉴 캐피탈이라는 곳에서 작성한 리포트에 따르면, 토머스 모터스가 발표한 건 전부 거짓이래.”
“······.”
바넷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당황하는 바넷사에게 트리시는 사흘 전 올린 리포트를 첨부한 짧은 기사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바넷사는 깜짝 놀랐다.
“이 리포트 쓴 사람이 데이비드 록허트야? 예전에 빅토리 인베스트먼트에서 일했던?”
“맞아.”
바넷사는 과거 빅토리 인베스트먼트 파산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그 기사에서 그녀는 데이비드 록허트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실패한 투자자잖아.”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사람 때문에 빅토리 인베스트먼트가 망했으니까.”
당시 월스트리트에는 그 소문이 크게 돌았고 당사자도 부인하지 않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들이 그렇게 기사를 썼다.
트리시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루머에 불과해. 그는 빅토리 인베스트먼트 파산에 아무런 책임이 없어.”
바넷사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내가 기사를 잘못 썼다는 거야?”
그 물음에 트리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