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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특종은 언제나 환영 (2) (70/529)

 71화. 특종은 언제나 환영 (2)

 [먼저 리포트만 공개하고, 제대로 된 기사는 행사 끝나기 전에 올리면 돼요.]

 “행사요?”

 [사흘 후, 앨라바마주에서 퓨어셀 데이 행사가 열려요. 프레스 초청장 보내드릴 테니 올 수 있죠?]

 그녀는 환호성을 지르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정말요? 그, 그럼 일단 비행기 표를 한번 알아볼게요.”

 ‘통장 잔고가 지금 얼마 남았더라?’

 [비행기 표와 숙소 모두 주최 측에서 제공합니다.]

 그 말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네네. 그럼요! 갈게요! 바로 출발할게요!”

 * * *

 월스트리트타임즈의 트리시 오코너 기자는 컨티뉴 캐피탈의 리포트와 기사를 홈페이지에 실었다.

 인터넷 언론사의 무명 기자, 그리고 이름 모를 사모펀드가 작성한 리포트인 만큼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우리는 좀 더 큰 방으로 옮겼다.

 호텔 방은 어느새 여러 대의 컴퓨터와 노트북이 늘어선 트레이딩룸처럼 변해있었다.

 데이비드는 농담처럼 말했다.

 “블룸버그 단말기가 없다는 게 아쉽군요.”

 “지금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우리가 매매할 종목은 하나다.

 이제 고민해야 할 건 투자 방법이다.

 주가가 오를 것으로 기대되면 주식을 사거나 콜옵션에 투자해야 하고, 떨어질 것으로 기대되면 공매도를 하거나 풋옵션에 투자해야 한다.

 모리스 피어슨은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며 토머스 모터스 풋옵션을 알아보고 매수했다. 일단 가능한 풋옵션은 전부 매수했지만 물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일단 토머스 모터스가 증시에서 그리 비중이 큰 종목이 아닌 데다가, 애초에 수요가 없으니 발행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가능한 물량은 풋옵션을 구매하고, 나머지는 공매도로 진행해야 한다.

 일반 공매도 방식으로는 100퍼센트 이상의 수익을 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난 슬쩍 말을 꺼냈다.

 “CFD 거래는 어떨까요?”

 데이비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심이십니까?”

 CFD(Contract For Difference)란 차액결제거래.

 직접 주식을 사거나 파는 게 아니라 증거금만 내면 금융회사가 주식을 대신 매도나 매수를 한 다음, 매매에 대한 손실과 수익을 투자자가 가져가는 신종 파생상품이다.

 10퍼센트의 증거금으로 주문을 낼 수 있어 10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웬만한 옵션보다도 더 큰 레버리지가 가능하다.

 문제는 주가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다.

 만약 10배 레버리지로 공매도를 할 경우, 주가가 10퍼센트만 올라도 모든 투자금을 잃게 된다.

 “설마 리포트를 쓴 당사자가 확신을 못 하는 건 아니죠?”

 내 말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토머스 모터스가 부실기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걸 믿어줄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 하겠군요.”

 “자신감을 가져요.”

 데이비드 록허트는 향후 10년 사이 가장 뛰어난 투자자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능력만 놓고 보면 그가 내 밑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의 밑에서 일해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밑에서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겠지.

 그는 여러 차례 회사에 경고했음에도 실패한 투자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단 하나의 리포트로 자신의 평판을 180도 뒤집었다.

 그게 바로 이 리포트다.

 난 데이비드와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연주자는 조금이라도 좋은 연주를 하고 싶어 하고, 운동선수는 조금이라도 좋은 기록을 내고 싶어 하죠.”

 여기에 대단한 이유는 없다.

 그게 그들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투자자는 투자할 기회가 왔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합니다.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습니까?”

 사실은 앞으로도 많이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 돈 다 날려먹어도 상관없습니다. 투자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월스트리트의 모두가 컨티뉴 캐피탈이 어떤 곳인지, 데이비드 록허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데이비드는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확신하십니까?”

 “예. 전 확신해요. 그러니까 모두에게 제대로 보여주세요.”

 그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화안에너지 사장 방수환.

 그는 월급쟁이로 입사해 사장 자리까지 오른, 그야말로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룬 사람이었다.

 화안에너지가 지주회사에서 분리된 뒤 그는 안정적인 조직관리로 회사를 이끌었다.

 사실 그의 스타일은 하던 일을 하는 건 잘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신산업 진출은 어차피 허민웅 팀장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종의 후견인 역할이었다.

 아마 그가 퇴임하는 시기에 맞춰 허민웅 팀장이 사장직으로 올라설 것이다.

 정해진 수순인 만큼 별 불만은 없었다. 그저 퇴임 이후에도 하청업체 사장 자리 하나 맡아 계속 월급 타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허민웅이 잘하고 있겠지?’

 그는 현재 토머스 모터스와의 업무협약을 위해 미국에 가 있었다. 이번 업무협약은 그의 치적으로 포장돼 대중들에게 알려질 예정이다.

 이미 홍보팀에서 관련 보도자료까지 다 작성해 놓았다. 업무협약이 끝난 뒤 언론사에 일제히 보낼 생각이었다.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허민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미국에서 일은 잘 되어가고 있나요?”

 그의 물음에 허민웅은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토머스 주식을 전부 매도하세요.]

 “······예?”

 화안에너지는 토머스 모터스 주식 4.3퍼센트를 가진 주요주주다.

 이미 15배의 수익을 올렸지만 향후 협력관계를 위해 더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판이다.

 ‘협약을 맺으러 가서 주식을 다 팔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이야?’

 방수환 사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료 보내드렸으니 한번 확인해 보시고 바로 연락 주세요.]

 그는 전화를 끊고 바로 메일을 확인해보았다.

 그것은 토머스 모터스를 분석한 리포트였다.

 영어로 작성되어 있었지만, 미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오래한 방수환 사장은 직원의 도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방수환 사장은 리포트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토머스 모터스는 수소 생산, 운송은 물론, 수소차를 만들 기술력이 전혀 없고, 그동안 발표한 것은 전부 눈속임이라는 내용이었다.

 방수환 사장은 다시 허민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마 이 리포트를 보고 팔라고 하신 겁니까?”

 [예.]

 “이런 리포트는 시장에 많지 않습니까?”

 토머스 모터스는 화안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였다. 때문에 시장에 나온 웬만한 리포트는 전부 읽어보았다.

 주식을 산 쪽은 주가를 올리고 싶어 하고, 주식을 판 쪽은 주가를 내리고 싶어 한다. 시장에 이러한 매도 리포트가 나오는 것은 일상이나 다름없다.

 이제까지 토머스 모터스의 기술력을 지적하는 리포트는 많았지만, 주가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전부 사실입니다.]

 “예?”

 [거기서 지적한 모든 게 사실이고, 입증자료가 있습니다.]

 “자, 잠깐만요. 그럼 차를 언덕에서 굴렸다는 것도······?”

 [예.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

 방수환 사장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말로 차를 언덕에서 굴렸다고? 이게 말이 돼?’

 너무 상식 밖의 일이다 보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방수환 사장은 재차 물었다.

 “토머스 측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그 새끼들 말은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전부 거짓말이에요. 이번 행사에서 공개할 신차를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아예 차량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게 하더군요.]

 화안에너지는 주력 사업인 태양광이 적자투성이임에도 그동안 주가가 계속 올라왔다.

 요인은 두 가지.

 첫째는 보유하고 있는 토머스 모터스의 지분 가치 상승 덕분이고, 둘째는 수소인프라 사업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수소인프라 협업 파트너인 토머스가 사기꾼이라는 게 알려진다면?

 주가는 대폭락할 것이다.

 방수환 사장은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다.

 그래도 허민웅은 오너 일가 사람이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언제든 그룹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월급쟁이 사장은 한번 잘리면 그걸로 끝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일단 행사 열리기 전에 주식부터 전부 매도하세요. 단 한 주도 빠짐없이요.]

 토머스 모터스 주식을 처분한다는 것은 수소인프라 사업에서 발을 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수소인프라는 화안솔루션은 물론 지주회사인 화안까지도 연계되어 있는 사업이다. 이게 엎어지면 그룹사들 전체가 난리가 날 것이다.

 “시간을 두고 그룹사들과 논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민웅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 리포트는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가 되었습니다.]

 그 말에 방수환 사장은 깜짝 놀랐다.

 “저, 정말입니까?”

 [예. 다행히 입증자료는 빠졌지만요.]

 “그, 그럼 그 자료들은 어디서 구한 겁니까?”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말씀드리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잘못하면 우리 회사가 떠안게 생길 판입니다. 당장 매도하고 발을 빼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그럼 적어도 돈이라도 건질 것 아닙니까?]

 토머스 모터스 주식을 전량 매도하면 그것만으로 대략 17억 달러. 원화로는 1조 9천억 원이 넘는다.

 이 정도 현금이 회사로 들어오면 주가 하락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화안솔루션 측에는 뭐라고 할까요?”

 토머스 모터스의 지분은 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이 공동으로 사들였다. 화안솔루션 역시 4.2퍼센트를 들고 있다.

 허민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알려주긴 해야죠. 공개된 리포트 첨부해서, 매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공문 보내요. 그럼 그쪽 부사장이 보고 알아서 판단하지 않겠어요?]

 화안솔루션의 부사장은 회장의 장남.

 차기 회장이 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사람이다.

 ‘정말 입증자료가 있다면 어째서 그건 보내지 않는 거지?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허민웅이 물었다.

 [사장님은 누구 편입니까?]

 “예?”

 [잘 들으세요. 이거 이대로 터지면 저나 사장님 모두 끝장입니다. 이제까지 누구 편이었든 상관없지만, 지금은 저와 함께 가야 합니다.]

 사장 역시 직장인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직장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존이다.

 [어차피 이번 일 터지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그게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수소에너지 사업은 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 두 기업의 합작품이다.

 같은 화안그룹에 속해 있고 같이 수소에너지 사업을 하는 만큼 대중들 입장에서는 그 기업이 그 기업 같아 보이지만, 엄연히 별개의 기업이다.

 업무협약이 파기된 이상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문제가 터지면 책임소재를 놓고 서로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화안에너지는 눈치채고 손실을 피한 반면, 화안솔루션은 손실을 입는다면?

 방수환 사장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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