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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화안그룹 망나니 (4) (68/529)

 69화. 화안그룹 망나니 (4)

 허민웅은 토머스 모터스의 CEO 브레드 버튼을 만났다.

 안경을 쓴 건장한 중년 백인 남성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악수했다.

 이번 만남은 세 번째. 브레드 버튼의 표정과 몸짓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재벌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허민웅과는 달리 그는 맨바닥에서 400억 달러 기업을 일궈냈다.

 ‘400억 달러라.’

 화안그룹은 한국 재계에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룹사의 시총을 전부 합치면 약 60조 원. 그런데 차 한 대 팔지 않은 자동차회사의 시총이 40조 원을 돌파했다.

 ‘이게 과연 정상일까?’

 한번 의심을 갖고 보니 모든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허민웅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T1의 양산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계획대로 진행 중입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1차 생산분을 양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장 건설은 아직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브레드 버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티슬라가 그랬던 것처럼 공장 건설과 함께 생산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GM이 토머스 모터스의 지분 10퍼센트를 인수하고 생산 분야에서 협업해 나갈 예정입니다. GM측에서는 토머스 모터스를 위한 생산 라인을 만드는 중이고, 이렇게 하면 양산 계획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정말이지 말은 그럴듯했다.

 아직 기초공사도 끝나지 않은 공장 부지를 보지 않았다면 믿을 뻔했다.

 허민웅의 표정을 본 브레드 버튼은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이번에 공개될 T2 FCV는 T1 FCV보다 더 긴 주행거리와 더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월마트와 페덱스 등 물류업체들의 선주문을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수소트럭의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향후 3년 안에 전체 트럭 시장의 30퍼센트를 수소트럭이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한참 동안 T2 FCV에 대한 자랑이 이어졌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기존의 트럭들을 오징어로 바꿀 수 있는 수준이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지금이라도 추가 투자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T2 FCV를 타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브래드 버튼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재 전시 준비 중에 있습니다. 당일에 공개할 예정이라서요.”

 “그럼 차를 자세히 살펴볼 수는 있겠습니까?”

 “아직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기술들이 있어서요. 혹시 필요한 자료가 있다면 정리해서 추후 회사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얘기 저 얘기 늘어놓긴 했지만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다.

 “작년에 공개한 T1 FCV의 주행 영상 말인데요.”

 “예. 왜 그러시죠?”

 “혹시 그 영상을 찍은 장소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왜 물으십니까?”

 허민웅은 질문을 하며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브레드 버튼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선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허민웅은 웃으며 말했다.

 “영상을 보니 배경이 참 예뻐 보여서요. 미국에 온 김에 시간 되면 한번 가서 직접 차를 몰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정확한 위치는 저도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드라이브를 좋아하신다면 더 좋은 곳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앨라바마만 해도 멋진 곳이 참 많습니다.”

 브레드 버튼은 재빨리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고, 허민웅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 새끼 눈동자 흔들리는 거 보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주행한 게 맞다면 알려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굳이 촬영한 장소를 숨기는 이유는 하나.

 정말로 언덕에서 굴렸기 때문이다.

 허민웅은 이를 통해 한미루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새끼가 그동안 입만 벌리면 구라를 친 거였어?’

 대체 자신을 얼마나 바보 취급하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섣불리 상대를 죽이려 들었다가는 자신도 함께 죽는 수가 있다.

 “이번 협력에 기대가 아주 큽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기업은 함께 미국 전역에 수소 생산설비와 수소충전소를 지을 계획이었다.

 정확히는 토머스 모터스가 주도하는 사업에 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이 함께 투자를 하는 형태다.

 완공 이후 운용은 화안에너지가 맡을 예정이었다.

 초기에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가지만,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정부 보조금도 받을 수 있을 테고 3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말이지.’

 열심히 수소충전소를 만들어 놓으면 뭐 하나?

 충전소에 채워 넣을 수소가 없고, 충전소를 이용할 수소차가 없는데.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두 기업 모두 수소에너지 분야에서 선두주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말이지.’

 실무진들 사이에서 얘기를 끝냈고 협약식만을 남겨 놓은 상황. 협약식은 퓨어셀 데이 행사 전에 하고 행사에서 발표할 예정이었다.

 일단 지금은 시간을 끌어야 했다.

 “협약식을 행사 이후로 미뤄도 되겠습니까?”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저희 쪽에서 검토를 할 사안이 몇 가지 있어서요.”

 브레드 버튼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미 실무진들이 협상을 다 끝내지 않았습니까? 혹시 문제라도······?”

 허민웅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남한테 사기 치는 놈일수록 눈치가 빠르기 마련.

 그는 상대가 의심을 품기 전 재빨리 다른 변명을 둘러댔다.

 “대표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수소인프라 협약은 화안에너지뿐 아니라 그룹 차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보고를 받으실 만큼 관심이 큰 사안이기도 하구요.”

 브레드 버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서 같이 발표하려는 것 아닙니까?”

 “이번 행사에서는 신차를 공개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언론들의 관심이 업무협약보다는 신차 쪽에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큽니다. 때문에 행사 이후 다른 자리에서 따로 발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브레드 버튼은 납득이 잘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신차와 수소인프라 협약을 함께 발표하면 더 크게 이슈가 될 텐데 어째서?’

 허민웅은 상대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못 박듯 말했다.

 “허성훈 회장님께서도 그쪽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 말에 브레드 버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께서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알겠습니다.”

 * * *

 만남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허민웅은 넥타이를 풀며 소리쳤다.

 “이런 시발! 이 개새끼가 사람을 호구 취급해? 내가 병신으로 보여?”

 놀랍게도 한미루의 말이 전부 맞았다.

 수소트럭은 주행이 아니라 내리막길을 굴러갔을 뿐이고, 공장은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본사에 잔뜩 태양광 패널을 깔아놓긴 했으나 아직 수소 생산은 시작도 안 했고, 직접 개발했다던 인버터와 모터는 카르멘이라는 독일 회사에서 사온 거다.

 그리고 역시나 신차는 구경도 못 하게 했다.

 사기라는 여러 증거를 보고 오긴 했지만, 최소한 수소차에 대한 핵심기술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시장은 어떻게 반응할까?

 투자자들은 빠져나가고 주가는 폭락할 것이다. 문제는 수소인프라 협력이다. 차가 없는데 충전소와 생산설비를 지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처음 브레드 버튼을 만나서 지분을 인수하고 협약을 맺은 것은 형인 허민홍이었다. 하지만 사업 영역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협력의 주축이 화안에너지가 되며 그 일을 둘째인 허민웅이 이어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허민웅은 차세대 에너지 분야를 자신의 몫으로 주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완전히 독이 든 성배였다.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자 오히려 냉정해졌다.

 허민웅은 성격이 더럽긴 해도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냥 협업을 엎고 지분을 팔고 나가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룹 전체가 수소에너지 사업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괜히 어설프게 대응했다가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판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허민웅은 한참의 생각 끝에 핸드폰을 들고 명함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 *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바로 질문이 날아들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겠다. 평소처럼 싸가지 없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 불안감이 담겨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토머스 모터스 CEO는 만났나요?”

 [알면서 뭘 물어?]

 하기야 그러니까 나한테 전화를 한 거겠지.

 “수소인프라 협약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니 말대로 일단 행사 뒤로 미뤘어.]

 “오! 잘했어요.”

 [됐고.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나 말해봐.]

 어지간히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난 괜히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방법을 알려주었다.

 “주식 전부 매도하고 수소인프라 협력 취소하겠다고 하세요.”

 허민웅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게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인 줄 알아?]

 “어차피 토머스 모터스의 실체가 시장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예요. 저희 쪽에서 먼저 리포트를 언론에 공개할게요. 그거 보고 결정했다고 하세요.”

 허민웅은 깜짝 놀랐다.

 [뭐? 리포트를 먼저 공개하겠다고?]

 “입증자료 없이 올릴 거니까 걱정 마세요. 당장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시장에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의 리포트가 쏟아진다.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회사에서 낸 매도 리포트에 누가 관심이나 갖겠는가?

 “제대로 터트리는 건 퓨어셀 데이 행사 때죠.”

 [잠깐.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그 정도 이벤트는 돼야 크게 터트릴 수 있지 않겠어요?”

 생각을 하는 듯하던 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진짜 제대로 터트릴 수 있어?]

 뭘 걱정하는지 안다.

 만약 먼저 협약을 파기하고 매도했는데 토머스 모터스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다면, 그만 바보가 될 것이다.

 “도움이 좀 필요해요.”

 [어떤 도움?]

 “행사장에 기자 한 명과 저희 쪽 인원 대여섯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질문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토머스 모터스는 행사장에는 초청을 받은 기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사전에 약속된 기자에게 사전에 약속된 질문만 받는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랄까?

 참고로 이건 토머스 모터스만 이러는 건 아니고, 행사를 진행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이런 방식을 취한다.

 어느 주최자가 잔칫상에 재 뿌리는 사람이 오는 걸 반기겠는가?

 [화안에너지야 그렇다 치고, 화안솔루션은?]

 화안에너지는 토머스 모터스 주식을 4.3퍼센트, 화안솔루션은 4.2퍼센트를 들고 있다. 그룹 전체를 생각한다면 다 같이 매도를 하는 편이 좋겠지.

 사실 화안솔루션이 어떻게 되든 나와는 별 상관없다. 하지만 그와는 큰 상관이 있겠지.

 “처음 토머스 모터스와 계약을 맺고 지분을 인수한 건 화안솔루션이었죠. 그리고 그 일을 화안에너지가 이어받았고.”

 [그래서?]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질 곳이 어딘지 궁금해서요. 전 화안솔루션이 뭐 하는 회사인지도 잘 모르니 알아서 하세요.”

 이쯤 얘기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허민웅이 말했다.

 [그럼 계속 모르고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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