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화안그룹 망나니 (3) (67/529)

 68화. 화안그룹 망나니 (3)

 난 설명을 해주었다.

 “저기는 유타주의 그랜츠빌이라는 곳입니다. 경사는 3도에 길이는 2마일. 그냥 자동차를 밀어도 약 60마일, 그러니까 시속 96킬로 정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영상을 틀어 보였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이번에는 SUV가 도로를 달렸다.

 “이건 저희 직원이 가서 찍은 겁니다. 어때요? 주행하는 것처럼 보이죠? 실제로는 기어 중립에 놓고 굴린 건데. 아까 영상과 움직이는 모습이 똑같지 않나요?”

 잠시 어이없어하던 허민웅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럼 무대에 등장한 건? 설마 그것도 내리막길이라는 건 아니지?”

 “아! 그건 무대 밑에 전선을 트럭과 연결해 모터를 구동시킨 거예요. 일종의 유선 RC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난 행사 당시 영상을 캡처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트럭 아래로 전선이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본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겠지. 내가 말하면서도 뭔 개소리인가 싶다.

 시총 400억 달러짜리 회사가 공개 행사에서 이런 장난질을 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난 이번에는 사진을 띄워 보였다.

 “미시시피에 짓는다는 수소차 공장입니다. 발표는 1년 전에 했는데 아직 기초공사도 시작 안 했습니다. 대체 언제 공장을 짓고 언제 수소차를 양산한다는 겁니까?”

 “그 부분은 GM과······.”

 “아아, GM과 협업이요?”

 GM은 토머스의 지분 12퍼센트를 취득하기로 했다.

 현금 지불이 아닌 전기배터리 등의 부품을 현물로 납부하고, 수소트럭을 공동개발해 생산을 담당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MOU 발표 이후 토머스의 주가는 50퍼센트 이상 뛰었다.

 “아시겠지만 MOU는 아무 구속력이 없습니다. GM은 아직 토머스에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죠. 진행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언제든 발을 빼면 그만입니다.”

 실제로 사기임이 밝혀진 이후 GM은 지분 인수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결국 화안그룹만 물 먹은 셈이다.

 “브레드 버튼 CEO는 GM과의 MOU 체결 과정에서 화안그룹을 팔아먹었습니다. 실사를 하겠다는 GM 측에, 자신들이 기술력이 없으면 어떻게 화안그룹과 협력을 했겠냐고 큰소리 쳤죠. 아마 이번 화안에너지와의 협상 과정에서 똑같은 소리를 했을 겁니다. 자신들의 기술력이 없었다면 GM이 지분을 인수하겠냐고 말이죠. 제 말이 틀렸나요?”

 “······.”

 말 못하는 걸 보니 이미 똑같은 말을 들은 모양이다.

 이게 바로 다수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속은 사람이 사기꾼의 보증인이 되어주는 셈이다.

 “정말로 토머스가 수소차를 만들 기술력이 없다고?”

 “예.”

 사실 전기차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구조가 간단하다 보니 배터리와 모터만 사오면 누구든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들도 전기차를 출시하는 거고.

 하지만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구조가 복잡해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없다.

 연료전지란 일종의 소형발전기.

 배터리만 넣으면 되는 전기차와는 다르게 고압수소탱크와 연료전지스택 등이 들어가야 한다.

 또한 전기 생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열을 낮추기 위한 라디에이터도 필요하다.

 꽤나 기술력이 필요한 만큼, 실제 수소차 양산에 성공한 회사는 전 세계에 세 곳밖에 안 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대연자동차다.

 “토머스는 수소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료전지스택과 고압수소탱크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했죠. 그러면서 정작 대연자동차에 여러 차례 협력을 제안했습니다. 인프라는 화안그룹과 협력하면 되고, 생산은 GM과 협력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대연자동차와는 뭘 협력하기 위해 그렇게 매달리는 걸까요?”

 “······.”

 거짓은 항상 진실 속에 숨겨져 있다.

 놀랍게도 토머스 모터스는 정말로 수소차를 만들 계획이 있었다. 비록 기술력은 없지만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다.

 다행히 그동안 장밋빛 전망을 내세워 투자금을 끌어모은 덕분에 토머스 모터스에는 충분한 자본이 있었다.

 브레드 버튼 CEO는 나름 구상을 했을 것이다.

 핵심기술은 대연자동차에서 가져오고, 생산은 GM에 맡기고, 수소인프라는 화안그룹이 담당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겠지.

 만약 대연자동차가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정말로 거짓을 진실로 바꿀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차례 구애했음에도 대연자동차는 토머스의 제안을 거절했고, 토머스는 수소차의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수소트럭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참고로 자체 개발했다는 인버터와 모터는 독일의 카르멘 사에서 사온 겁니다. 확인해보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MOU만 체결한 GM이나 협력을 거절한 대연자동차와는 달리 화안그룹은 실제 투자를 앞두고 있다.

 만약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다면 이때부터는 발을 빼기도 힘들어진다.

 난 허민웅을 쳐다보며 말했다.

 “퓨어셀 데이에 신차 발표가 예정되어 있죠. 제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이번에 공개한다는T2 FCV를 한 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정말로 그 차가 주행이 가능한 상태인지. 장담컨대 주행은커녕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내부를 살펴보지도 못하게 할 겁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지금쯤 머릿속이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겠지.

 잠시 후, 그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목적이 뭐야?”

 “무슨 목적이요?”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 나한테 이걸 말해주는 이유가 뭐냐고.”

 물론이다.

 설마 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 살리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겠는가? 다 내 이익을 위해서 이러는 거다.

 “일단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부터 해보세요. 자세한 얘기는 그다음에 하죠. 아! 협약은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게 좋을 겁니다.”

 할 말을 끝마친 난 명함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술 잘 마시고 갑니다.”

 * * *

 한미루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돌아갔다.

 홀로 남은 허민웅은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마주하고 있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어느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유재호 회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잘 들어두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는 마지막 말에 주목했다.

 대체 유재호 회장은 한미루에게 무슨 말을 들었던 걸까?

 ‘일이 잘되면 형이 가져가고, 안 되면 내가 뒤집어써야 한다고?’

 전자의 경우는 그도 우려하고 있던 부분이다. 그래서 나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런데 한미루의 말대로라면 그건 애초에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토머스 모터스는 현재 미래 가치가 큰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기차 시장을 티슬라가 장악했다면, 수소차 시장은 토머스가 장악할 것으로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기대감만으로 포드의 시총을 뛰어넘었고, 현재는 GM의 시총을 위협 중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사기라고?’

 허민웅은 한미루가 놓고 간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다. 한번 의심을 품고 보니 확실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브레드 버튼의 과거 행적들도 충격적이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수소트럭을 주행한 게 아니라 언덕에서 굴렸다는 것.

 ‘대체 왜 이걸 아무도 몰랐지?’

 만약 이 리포트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잘못된 투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수소인프라 협약이 엎어지면 화안그룹의 에너지 로드맵 전체를 다시 짜야 할 판이다.

 사실 토머스의 부실을 지적하는 리포트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는 과거 티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산업에 도전하는 기업에게 사람들은 언제나 기대와 함께 우려를 보내기 마련.

 티슬라는 그러한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고 전기차 시대를 열었다. 과연 토머스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미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하든 일단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 * *

 앨라바마에서 일을 끝마친 나는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각지에 파견(?) 나갔던 직원들은 진작 돌아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잘 만나고 왔어요.”

 지금쯤이면 머릿속에 의심이 가득할 것이다.

 “뜻대로 움직일 것 같습니까?”

 “그럼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잃는 걸 두려워하기 마련이잖아요.”

 허민웅은 태어날 때부터 재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지위를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겠지.

 난 데이비드와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이번 퓨어셀 데이에 맞춰서 한 번에 터트릴 생각입니다.”

 “얼마나 투자할 생각입니까?”

 “일단 있는 자산 다 부어야죠.”

 현재 컨티뉴 캐피탈의 보유 현금은 1억 700만 달러.

 할 때 제대로 해먹어야 하니 최대한 현금을 끌어모을 필요가 있다.

 난 일단 가지고 있던 동우정밀 워런트를 매각했다.

 내가 샀던 동우정밀 회사채는 BW(신주인수권부사채). 만기시에 이자와 원금은 물론이고, 정해진 가격에 신주를 받을 수 있다.

 신주를 받을 수 있는 가격은 12000원.

 하지만 거래정지 전 주가는 6580원이었다. 당연히 워런트는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유성전자 인수 후 거래정지가 풀렸고,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치며 현재는 35000원으로 다섯 배 넘게 뛰었다.

 워런트를 사서 신주를 받으면 현재 주가 기준으로 23000원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실제로는 20퍼센트 정도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졌다.

 향후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워런트는 잘만 팔렸다.

 매각으로 얻은 수익은 226억 원. 대략 2000만 달러다.

 이걸로는 좀 부족한데.

 더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한미루 씨 핸드폰이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누구신가요?”

 [안녕하세요. 전 GTiger PE의 CEO 타일러 박이라고 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어쨌거나 뒤에 PE가 붙은 걸 보니 사모펀드인가?

 “무슨 일이시죠?”

 [한미루 씨의 회사에 투자를 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얼마나 말인가요?”

 [1억 달러입니다.]

 그는 누구 소개로 연락했는지 말하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구 소개로 연락을 준 건지 묻지 않았다.

 1억 달러를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투자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부를 걸 그랬나?

 “계약서는 저희 쪽에서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난 바로 데이비드에게 계약서 작성을 부탁했다.

 1억 달러 투자를 받는다는 소식에 그는 깜짝 놀랐다.

 “1억 달러요? 대체 누가 투자를 하는 겁니까?”

 “아는 사람이요.”

 비자금이라 당사자 이름을 말해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기한은 보름. 수수료는 수익의 절반. 손실이 날 경우 내가 책임지겠다고 명시했다.

 사실 책임을 진다고 해도 못 갚으면 그만이다. 먹고 나를까봐 걱정도 안 되나?

 물론 그 경우 좋은 꼴 보기는 힘들겠지?

 유성그룹은 경제계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하나쯤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매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물리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을지도······.

 뭐, 상관없다.

 어차피 안 날려먹으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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