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토머스 모터스 (3) (64/529)

 64화. 토머스 모터스 (3)

 그야말로 상식 밖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을 테고.

 세 사람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지만, 데이비드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에서 브레드 버튼은 항상 T1 FCV가 ‘움직인다(In Motion)’고만 말했지, ‘주행했다(Powertrain Driven)’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부분을 계속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언덕에서 굴린 거리면 ‘주행’이라는 표현을 피한 것이 이해가 된다.

 만에 하나 걸리면 자신은 영상을 공개했을 뿐 ‘주행했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니까.

 에드워드는 의문을 제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 커다란 트럭이 중력에 의해 달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 장면부터 찍은 것도 아니고, 이미 달리는 모습을 찍은 거잖아요. 자세히 보면 도로에 경사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영상에 나오지 않은 도로 끝에서 중립으로 놓고 굴리면 쭉 달려 내려오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럼 에드워드의 의견은 어떤데요?”

 “따로 동력장치를 설치한 게 분명합니다.”

 다른 두 사람도 그 말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에드워드는 더욱 강력하게 말했다.

 “토머스 모터스는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는 회사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자동차 섹터 애널리스트들이나, 전문가들이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체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뭐 하느라 이걸 눈치채지 못한 거지?

 어쨌거나 내가 이쪽 전문가도 아니고 말만으로는 납득시키기가 힘들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서 실험해보면 되겠네요.”

 “예?”

 난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영상에 나온 장소가 어딘지 알아보시고 차 타고 가서 직접 해보세요. 중립으로 놓고 저렇게 달릴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럼 되지 않겠어요?”

 “그, 그렇긴 한데······.”

 난 다른 직원들에게도 말했다.

 “가브리엘라는 미시시피로 가서 수소차 공장 확인해 보고, 모리스는 토머스 모터스에서 일하는 친구와 다시 접촉해보세요. 혹시 다른 직원들 만날 수 있으면 만나보고,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전부 수집하세요.”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각자 일하러 떠난 뒤.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좋은 기회 아닌가요?”

 내 말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가 예측은 둘 중 하나죠.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하지만 방향성을 안다고 해도 반드시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

 주식이 오르는 걸로 돈 버는 게 쉬울까, 떨어지는 걸로 돈 버는 게 쉬울까? 당연히 전자가 쉽다.

 사서 돈 번 사람들은 많아도, 공매도해서 돈 번 사람은 몇 안 된다.

 주식을 매수하는 건 시간을 내 편으로 삼는 것이다. 언제든 매매 시기를 조절할 수 있고, 떨어지면 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반면 공매도는 방향성뿐 아니라 시기까지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여기에 더해 거래비용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때문에 전자를 롱포지션, 후자를 숏포지션이라고 하는 것이다.

 언젠가 떨어질 것을 알아도 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소용없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를 예측하고 숏포지션을 취해 엄청난 돈을 번 투자자들은 금융시장의 스타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숏포지션을 취했던 사람들은 전부 망했다.

 당장 빅쇼트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조차도 금융위기가 1년만 늦게 발생했다면 파산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우리가 이걸 터트리면요?”

 직접 그 시기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지.

 그래서 공매도 세력들은 숏포지션을 취한 다음 해당 기업이 위험하다는 리포트를 내며 주가를 떨어트리기 위해 노력한다.

 샤크 매니지먼트 역시 마찬가지 방식을 취했다.

 사실 샤크 매니지먼트는 토머스 모터스의 주요 투자자 중 하나. 현재 지분 3.9퍼센트를 들고 있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이전부터 토머스 모터스에 대해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데이비드의 리포트를 보고는 확신을 갖게 됐고, 공매도와 파생상품에 투자한 다음 모든 영향력을 총동원해 이를 언론과 월가에 터트렸다.

 리포트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고, 65달러까지 올랐던 주가는 12달러로 주저앉으며 300억 달러가 넘는 시총이 증발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투자한 돈의 다섯 배를 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뒀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찬양 일색 리포트만 쏟아내는 한국 증권사들과는 달리, 미국 증권사들은 매도 리포트도 심심치 않게 쏟아낸다.

 그렇다면 매도 리포트가 나오면 주가는 무조건 폭락할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이 밝혀진 건 2008년입니다. 그럼 처음 사기 의혹이 제기된 게 언제였는지 아십니까?”

 “언제였나요?”

 “1999년입니다. 한 애널리스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리포트를 내고 SEC(증권거래위원회)에 제보했죠.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몇 년 후 또 다른 사람들이 신고를 했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나서야 조사에 나섰고, 사기라는 게 들통 났죠.”

 최초로 사기 의혹을 제기한 후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무려 10년 가까이 걸린 것이다.

 “월가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리포트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중에서는 부실을 지적하는 리포트도 많지만 그게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그냥 묻혀버리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DA증권에서 일하면서 매년 티슬라 망한다는 리포트만 수백 개는 넘게 본 것 같네요.”

 그런데 정작 망하기는커녕 계속 승승장구했다.

 그 리포트만 믿고 보유 주식을 팔거나 공매도했던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데이비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매년이요? 6개월 일하고 그만둔 것 아니었습니까?”

 “뭐······.”

 1회차 때 그랬다는 거지.

 토머스 모터스에 대한 매도 리포트 역시 찾아보면 많이 있다. 그런데도 주가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사실 투자자들 입장에서 중요한 건 기업의 본질적 가치가 아니다. 주가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주가가 오르기만 한다면 기업에 부실이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웬만해서는 이 방향성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데이비드가 샤크 매니지먼트에서 리포트를 냈을 때도 바로 주가가 폭락한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반응이 없다가 냄새를 맡은 다른 헤지펀드들이 일제히 매도 리포트를 내고 공매도를 쏟아냈다.

 그제서야 주가가 50퍼센트 폭락했고, 폭락이 현실화되자 다른 기관과 개인투자자들까지 매도에 가세해 80퍼센트까지 하락했다.

 65달러였던 주식이 12달러가 되기까지는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안타깝게도 컨티뉴 캐피탈은 샤크 매니지먼트 만큼의 영향력이 없다. 그리고 그 정도로 기다릴 여유도 없고.

 빠르게 폭락을 시키기 위해서는 더 확실하고 화끈하게 터트려야 한다.

 마침 딱 좋은 이벤트가 하나 예정되어 있다.

 “이번 주에 토머스 모터스 본사 근처에서 퓨어셀 데이가 열려요.”

 전기차의 선두주자 티슬라는 배터리 데이(Battery Day)라는 걸 만들었다. 이 행사에서 티슬라는 자사의 신기술과 함께 향후 비전을 공개한다.

 이를 벤치마킹했는지 토머스 모터스 역시 퓨어셀 데이(Fuel Cell Day)라는 것을 만들었다.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행사에서는 신차 발표와 함께 화안그룹과의 수소인프라 협약이 준비되어 있죠.”

 작년에 발표한 T1 FCV에 이어서 T2 FCV를 공개하고, 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과 손을 잡고 1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전역에 수소충전소 인프라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토머스 모터스가 주도하는 사업에 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는 형태다.

 이러한 기대감 덕분에 토머스 모터스의 주가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었다.

 “만약 신차가 껍데기만 있는 가짜로 밝혀지고, 화안에너지가 업무협약을 엎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요 파트너가 가장 중요한 투자계획을 중단한다면 투자자들은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투자계획과 협상은 이미 끝났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미 결정된 사항에 도장을 찍고 발표하는 것뿐이다.

 “일단 화안에너지 담당자를 만나서 설득을 해봐야죠.”

 업무협약을 위해 화안에너지에서는 허민웅 해외투자팀장이 미국에 와있다. 그는 다름 아닌 화안그룹 허성훈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무작정 찾아갈 생각은 아니시죠?”

 그러면 안 만나주겠지?

 “설마요. 아는 사람에게 소개시켜달라고 부탁을 하려구요.”

 “누구한테 말입니까?”

 다행히 부탁할 만한 사람이 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난 예전에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 * *

 유성전자 화성사업장.

 이곳에서 또다시 반도체 부문 임원들의 회의가 열렸다. 나이 지긋한 임원들은 허리를 세우고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번 회의 주제는 ADM 지분 인수, 그리고 팹리스 스타트업인 RD쿼넷과 NP세미의 인수였다.

 사실 그동안 유성전자의 인수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때문에 한동안 인수합병은 정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여러 기업을 동시에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팹리스를 인수하겠다는 거야?’

 ‘예전에 인수한 기업도 지금은 애물단지가 다 됐는데.’

 ‘ADM이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두 개는 뭐지? 처음 들어보는데.’

 ‘파운드리 투자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나?’

 다들 속으로는 회의적이었으나 입 밖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안건을 들고 온 사람이 바로 유재호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47세라는 젊은 나이지만 유재호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확고했다. 대중들의 인식에도 유재호가 유성이고 유성이 곧 유재호였다.

 유성그룹이 아닌 전자 하나만 놓고 봐도 거대한 제국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보통 각 부문의 사장들이 각자 분담해서 일을 처리했다.

 유재호 회장이 직접 회의를 주관하거나 업무를 지시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일이 잘 풀리면 지시를 내린 회장의 공이지만, 잘 안 되면 어차피 담당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냥 맡겨 놓고 있을 때가 편했는데.’

 ‘아니, 회장이 뭘 안다고 직접 M&A를 진두지휘하는 거야?’

 임원들은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동우정밀 인수 때문이다.

 망해가던 동우정밀은 유성전자의 인수 덕분에 되살아났다. 유성전자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개발비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동우정밀은 거래정지가 풀리자마자 상한가로 직행했다.

 NIL 방식의 특허를 활용해 신기술을 개발할지 못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유성전자가 동우정밀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중국 기업에 넘어갔을 테고, 이는 향후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미래에 있을 위협을 제거했다는 것만으로도 동우정밀 인수는 성공이라 할 만했다.

 임원들은 그룹의 전략이 변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어쨌거나 회장이 직접 인수를 지시한 이상, 반대는 있을 수 없다.

 때문에 회의에서는 인수 방식과 금액, 그리고 인수 후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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