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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토머스 모터스 (2) (63/529)

 63화. 토머스 모터스 (2)

 “나스닥 상장과정도 좀 문제가 있습니다.”

 거래소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기업공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IPO(Initial Public Offering)라 한다.

 IPO의 조건은 꽤나 까다롭다.

 거래소 측에서는 해당 기업의 매출, 이익, 재무상태, 기술력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공모가가 적정한지도 심사한다.

 여기서 탈락해 상장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토머스는 IPO 과정을 거치는 대신 SPAC과의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했습니다.”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이란 기업인수목적회사.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로, 처음부터 비상장기업을 인수합병할 목적으로 상장된다. 이SPAC이 비상장기업을 인수해 합병하면, SPAC은 해산되고 인수 기업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우회상장은 여러 장점이 있다.

 빠르게 거래소에 들어갈 수 있고 심사도 IPO에 비해 덜 까다롭다.

 “확실히 좀 이상하네요. IPO를 했으면 상당히 흥행했을 것 같은데.”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이상한 건 CEO입니다.”

 토머스 모터스 CEO 브레드 버튼.

 그는 원래 세일즈맨 출신으로 자동차 부품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온라인 쇼핑몰이 급성장하는 것을 본 그는 재빨리 쇼핑몰을 차렸다.

 쇼핑몰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브레드 버튼의 능력은 제품 세일즈가 아닌 기업 세일즈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방문자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이용자를 10배까지 부풀려서 해당 쇼핑몰을 100만 달러에 팔아치웠다.

 그가 만든 쇼핑몰은 인수 후 3개월 만에 문을 닫았지만, 브레드 버튼은 100만 달러를 벌었다.

 이때부터 기업을 만들어 파는 게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그는 이번에 디젤 엔진을 개조하는 회사를 세웠다. 원천기술로 만든 특수한 기계를 엔진에 연결하기만 하면 유해물질 배출을 30퍼센트 감소시키고, 연비를 20퍼센트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난 놀라워하며 말했다.

 “와우! 자동차회사들이 조금이라도 연비 올리고 유해물질 줄이기 위해 매년 수십억 달러씩 연구개발에 투자하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나요?”

 이쯤 되면 자동차회사 연구원들 전부 잘라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진짜는 아니었습니다.”

 대체 이런 거에 누가 속나 싶지만 놀랍게도 누군가 속았다.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한 자동차 부품회사는 이 기업을 1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너무 당연하게도 그런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일시적으로 엔진의 출력을 조절해 검사기에 그런 수치가 나오도록 만든 것뿐이었다.

 어쨌거나 몇 차례 돈을 번 브레드 버튼은 드디어 토머스 모터스를 창업했다.

 재밌는 사실은, 초기에는 수소차와는 별 관련이 없었다는 거다.

 그저 여러 자동차 부품 회사와 협력을 맺고 친환경차 개발에 나서겠다고만 밝혔다.

 어떤 차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브레드 버튼은 사람들이 수소차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소차는 전기차와 함께 미래 자동차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 시장을 장악한 기업이 없다.

 만약 그런 기업을 만들 수 있다면 쉽게 투자자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재빨리 수소트럭을 개발하겠다고 나섰고, 더 나아가 미국 전역에 수소인프라를 깔겠다고 공언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산업이 변화하는 시기.

 좋은 아이템이 있다 싶으면 투자자들은 돈부터 밀어 넣는다. 이렇다 보니 별다른 수익모델 없이 투자금만으로 연명하는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그중에서는 살아남아 실제로 시장을 장악하는 기업이 있긴 하지만······.

 “수소 생산, 운송, 천연가스 유정, 충전소, 수소트럭 등등. 이것저것 발표한 건 많은데 그중 이뤄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사진들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했다.

 그는 거액을 주고 엔플과 구블에서 전기차를 개발하던 전문가들을 영입했고, 노벨상을 받은 로저 케이트를 사외이사로 앉혔다.

 “오! 노벨상!”

 “사실 연구 분야는 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노벨상이라는 타이틀은 대중에게 충분히 먹혀들었다.

 노벨상을 받은 교수가 사외이사를 맡았다는 소식에 주가가 10퍼센트 넘게 상승했으니까.

 “이걸 모두가 속고 있다는 거죠?”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다수보다는 소수를 속이기가 쉽다. 하지만 때로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만약 누군가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면서 투자하라고 하면 의심부터 하게 마련.

 어떤 기업인지, 정말로 좋은 아이템인지, 왜 하필 나한테 이런 기회를 주는 건지 등등.

 그런데 이미 알 만한 유명인들과 교수, 의사, 변호사 등이 투자를 했다면?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투자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절로 믿음이 생긴다.

 실제로 다단계 사기 사건의 경우 ‘얼마나 멍청하면 저런 것에 속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피해자들을 보면 고학력자에 전문직들이 수두룩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믿으면 그대로 따라 믿기 마련이니까요. 메이도프 사기 사건 때도 온갖 유명인들이 걸려들지 않았습니까?”

 버나드 메이도프는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출신의 펀드매니저다.

 그는 연 10퍼센트의 수익을 약속하며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실제 매년 10퍼센트의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지급했고, 입소문이 퍼지며 더 많은 투자금이 몰렸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을까?

 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뒤에 들어온 돈을 앞의 사람에게 지급해줬을 뿐이다. 그리고 더 이상 돈이 들어오지 않은 순간 사기인 게 밝혀졌다.

 피해액은 무려 650억 달러.

 찰스 폰지와 조희팔도 울고 갈 역사상 최대의 폰지 사기였다. 피해자들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인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영화감독, 할리우드 스타, 스포츠팀 구단주 등등. 심지어는 서로 소개시켜준 경우도 많았다.

 모두가 속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알아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여기에 화안그룹과 GM도 걸려든 거군요.”

 “꿈이란 사람들을 유혹하기 가장 쉬운 말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찬란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당장의 손실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죠.”

 “어쩌면 제2의 테라피스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보다 심할 겁니다.”

 일이 터졌을 당시 테라피스는 기업가치 100억 달러에 비상장기업이었다. 하지만 토머스 모터스는 상장기업인 데다가 시총이 네 배가 넘는다.

 수소 에너지 분야의 선두주자인 만큼 관련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야말로 월스트리트를 흔들 수 있는 거대 스캔들이다!

 * * *

 우리는 본격적인 기업 분석에 들어갔다.

 모리스는 노트북으로 영상을 하나 틀어서 보여주었다. 1년 전 행사에서 브레드 버튼이 직접 T1 FCV를 소개하는 장면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토머스 모터스가 정말 수소차를 개발할 역량이 되는지 투자자들은 의심의 시선을 보냈고, 주가는 지지부진했다.

 부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지자 보란 듯이 신차를 공개한 것이다.

 무대 뒤에서 등장한 거대한 수소트럭은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친구한테 얘기를 듣고 난 뒤 그동안 공개된 모든 영상들을 분석해봤습니다. 그러다가 이 영상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뭔가요?”

 모리스는 영상을 멈춘 다음 확대했다.

 “여기 보이십니까?”

 자세히 보자 휠베이스 사이에 굵은 전선이 보였다.

 “트럭에 전선이 달려있네요.”

 “무대 아래로 연결돼 전력을 공급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전선으로 연결해 움직였다는 거죠?”

 “예.”

 모터로 짧은 시간 느리게 움직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RC카도 건전지만 넣으면 굴러가니까.

 그런데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움직이는데 전선을 연결했을 정도면, 수소연료전지는커녕 배터리도 없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사기 아닌가요?”

 데이비드는 비웃듯 말했다.

 “이제까지 한 짓을 보면 수십 번 고소를 당했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와 거래했던 기업들이 몇 차례 고소를 검토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온갖 과장과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교묘하게 말을 피해갔거든요.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상대로 하여금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이랄까요?”

 난 혀를 내둘렀다.

 “사기꾼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 모양이네요.”

 하기야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을 속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난 모리스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행사 이후 트럭이 실제로 달리는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나요?”

 “예. 이겁니다.”

 푸른 하늘 아래 T1 FCV가 초원 사이의 2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여기에는 전선 같은 게 안 보이네요.”

 “예. 밖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하겠죠.”

 토머스 모터스가 이 영상을 공개한 건 신차 발표 이후 두 달이 지난 후.

 여전히 일부 언론과 리서치 회사에서는 행사에서 공개된 트럭이 실제 주행이 가능한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브레드 버튼은 보란 듯이 이 영상을 내보냈다.

 효과는 확실했다.

 영상 공개 이후 주가는 30퍼센트 뛰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토머스 모터스의 기술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전선을 연결해야만 움직일 수 있었던 차를 두 달 만에 달리게 만들었을 리 없습니다.”

 “그럼 결국 조작이라는 얘기네요.”

 “처음에는 CG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분석 결과 영상에는 손을 댄 흔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다음에는 디젤 엔진을 사용한 게 아닌지 의심했는데, 차체 구조상 쉽지 않겠더군요.”

 T1 FCV는 수소트럭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일반 트럭과는 차체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엔진만 넣는다고 차가 굴러가는 것도 아니다. 변속기, 연료통, 냉각장치, 동력장치 등을 일일이 설치해야 한다.

 “그럼 지금은요?”

 “전기트럭일 가능성을 의심 중입니다. 배터리만 충분히 연결한다면 일시적으로 주행이 가능하게 만들 수는 있을 테니까요.”

 “전기트럭이라고 해도 저 크기의 트럭을 시속 60마일 정도로 달리게 만들려면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할 텐데요.”

 “그렇긴 합니다.”

 이 영상은 토머스 모터스의 사기행각을 밝힐 가장 중요한 단서다.

 물론 나는 저 영상을 어떻게 찍었는지 알고 있다. 알고 나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트릭이다.

 “언덕에서 굴린 게 아닐까요?”

 내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기어를 중립에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만 떼면 차는 굴러가죠. 특히 경사가 있는 곳에서 저 정도 무게가 있다면, 계속 경사 타고 내려와 꽤 가속도가 붙었을 것 같은데.”

 내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에이, 설마요.”

 “그게 말이 됩니까?”

 뭐, 이런 반응이 당연하겠지.

 차라리 공개를 안 했으면 안 했지, 설마 언덕에서 굴리는 모습을 찍어서 주행 장면이라고 공개했겠는가?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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