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직원 고용
처음 회귀를 했을 때만 해도 뭐든 쉽게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쳐보니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첫째로 내가 미래에서 일어난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닌 이상 전부 기사로 접했을 뿐이니,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려진 내용과 진실이 다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둘째로 내가 아는 일이라고 해도 남들에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납득시키는 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브릿지월드 항공 엔진 폭발 사건의 경우 그 비행기에 직접 타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었던 거지, 전화로 알렸다면 당장 체포돼 테러범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셋째로 미래를 알고 타인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도 그걸 현실화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있으면 뭐 하나?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판은 깔렸으니 이제 돈만 있으면 된다.
당장 수백억 달러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계약금 정도는 마련해 놔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가진 돈으로 어딘가에 투자해 불려야겠지.
마침 딱 이 시기에 투자할 만한 좋은 아이템이 있기도 하고.
“직원을 좀 고용하고 싶은데, 아는 사람 있어요?”
데이비드는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빅토리 인베스트먼트에서 일했을 때 같이 일했던 팀원들이 있습니다. 몇 명은 다른 투자사에 취직했지만 몇 명은 쉬고 있는 중이죠.”
그는 실력만큼이나 좋은 성품을 지녔다.
1회차 때 데이비드가 샤크 매니지먼트에 취직하자 빅토리 인베스트먼트 재직 당시 함께 일했던 직원들 중 상당수는 그를 따라 이동했다.
그곳에서 높은 성과를 올린 것에는 동료들의 조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잘됐네요. 혹시 용돈벌이 할 생각 있는지 물어보세요.”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기간은 일주일에서 열흘. 10만 달러 준다고 하세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돌렸다.
두 시간 후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세 명이 바로 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난 직원들에 대한 정보를 받아보았다.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 그리고 히스패닉 여성이다.
난 혀를 내둘렀다.
학력만 봐도 눈이 부시다. 뉴욕대 회계학과, 스탠퍼드대 수학과, 예일대 경영대학원. 여기에 한국대 경제학과는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다들 일 잘하나요?”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럼 됐어요. 이분들 고용하죠.”
데이비드는 나를 슬쩍 보며 물었다.
“뉴욕에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직접 만나서 얘기하게요?”
“그것도 있지만 딸 얼굴도 보고 싶어서요.”
그의 딸은 현재 뉴욕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 매일같이 화상통화와 전화를 해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겠지.
표정을 보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딸 바보 같으니라고.
“다녀오세요.”
데이비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 * *
데이비드는 비행기를 타고 떠났고, 난 낯선 미국 땅에 홀로 남았다.
호텔에 가만히 있기 심심해서 샌프란시스코를 관광하기로 했다. 마침 시드도 사직서를 내고 휴식 중인 터라 함께했다.
1회차 때였다면 증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에서 향후 세계를 이끌어나갈 천재와 관광을 하고 있다.
문득 시드가 방한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대통령과 단독으로 회담을 했고, 유력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다.
1회차 때는 감히 말도 못 붙여봤을 존재와 편하게 형동생 하고 있다니. 이런 걸 보면 사람이든 기업이든 저평가 우량주에 대해 투자해야 한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햇볕은 강하게 내리쬈다.
“밖에 나오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언제 이렇게 추워졌지?”
시드는 티셔츠를 하나 걸치고, 맨발에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얼어 죽을까봐 근처 매장에 들어가서 패딩을 하나 사줬다.
빽빽한 빌딩 숲이 들어서있는 뉴욕과는 달리, 샌프란시스코는 낮은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유는 지반이 약하고 지진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
도시 아래에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있는 만큼 실제로 간간이 지진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소설을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이 지진이 일어날 걸 알고 막기 위해 뛰어다니는 내용이었는데······ 제목이 뭐였더라?
우리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이렇게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도시라는 게 새삼 실감났다.
시드는 케이크를 먹으며 말했다.
“메타버스를 만들려면 꼭 필요한 기술이 있어요.”
“VR?”
“맞아요. 컴퓨터가 등장하고 수십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입출력 장치는 그대로예요. 입력은 키보드와 마우스, 출력은 모니터. 스마트폰도 터치로 바뀌었을 뿐 메커니즘은 마찬가지구요.”
“그래도 요즘 음성인식 같은 것도 등장했잖아.”
내 말에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변화가 시작된 거죠. 앞으로는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움직이는 시대가 올 거예요.”
현재도 VR 기기는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가상현실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뇌파를 이용한 입출력 장치가 활성화되고, 이는 IT산업 전체를 바꿔놓았다.
생각만으로 가상세계의 아바타를 움직이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게임에도 활용할 수 있겠는데.”
“맞아요. 앞으로는 게임도 전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요.”
현재 이쪽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는 NS.
원래 NS는 자사의 PC OS 윈도어즈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티아 샤말란이 3대CEO로 취임한 뒤 클라우드 중심으로 기업을 재편했다.
어느 운영체제를 사용하던 자사의 클라우드인 에이저에 접속해 데이터를 관리하고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게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플랫폼과 디바이스에 상관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나 클라우드다. NS는 AMZ에 이어 클라우드 2위 기업으로 성장했고 주가 역시 폭등했다.
이것만 봐도 클라우드의 성장 가능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쿨라우드는 언제 인수할 거예요?”
“열흘 정도 걸릴 것 같아.”
인수에 필요한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인수할지는 이미 다 짜놓았다.
한참 대화를 하는 와중에 테이블 위에 있는 시드의 핸드폰이 울렸다. 슬쩍 보니 롤프의 이름이 떠있었다.
“안 받아도 돼?”
“받아봐야 쓸데없는 소리할걸요. 밥 먹자, 커피 마시자, 얘기 좀 하자 등등.”
어지간히 아쉬운 모양이다.
하기야 롤프가 천재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건 전부 시드 덕분이다. 그러니 시드가 자신의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지간히 똥줄이 타겠지.
천재를 이용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난 시드를 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냥 어수룩한 청년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나, 아이작 뉴턴과 비교될 정도의 천재.
만약 그가 앞으로 이룰 업적을 몰랐다면 나 역시 롤프와 같은 착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시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이상 얼굴을 마주 보고 싶지도 않아요.”
“지분 15퍼센트를 준다고 해도?”
“저한테는 별 필요도 없는데요.”
그는 돈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현실세계의 부란 정말로 그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상세계의 창조자. 새로운 세계의 무한한 부가 그의 손에 있는 셈이니.
난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인수하면 바로 쫓아낼 거니까.”
쿨라우드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시드 루카스. 둘째는 미미르.
이 둘을 활용해 그냥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도 될 것 같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째서 요즘 IT 대기업들이 서비스를 베끼거나 직원을 빼오는 대신, 엄청난 돈을 주고 스타트업들을 사들이겠는가?
그 회사만이 가진 아이덴티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미르는 딥러닝을 통해 성장하는 프로그램이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라도 성장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어른이 될 수도 있다.
쿨라우드의 미네르바는 이미 3년에 걸친 딥러닝을 해왔다.
이걸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3년이 걸릴지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고, 그렇게 만들어진 AI가 똑같이 기능한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내가 쿨라우드를 인수하는 것부터가 1회차 때는 없었던 일이다. 가능하다면 변수는 줄이는 편이 좋겠지.
결국 쿨라우드를 그대로 인수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야겠지만.
“CEO가 되면 뭐부터 하고 싶어?”
“할 건 많죠.”
“인터넷은 언제나 오늘이 첫날(Day1)이니까?”
“어! 맞아요.”
판게아가 만들어진 이후 사람들은 시드에게 물었다.
‘이걸로 인터넷 세상이 완성되었습니까?’
그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간신히 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골드러시는 마지막 금을 캐낸 순간 끝났다. 그러나 인터넷은 오늘이 가장 낙후되어있는 순간이다.
시드는 그 낙후된 세상의 문명을 끌어 올릴 선구자다.
“왠지 형은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 것 같아요.”
“정말?”
“보자마자 그 두 사람이 얼간이인 걸 알아챈 것도 그렇고. 사실 저도 오래전부터 생각은 했는데 말은 못 했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랑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에요.”
“그래?”
“예. 제가 말하면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거든요.”
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 따라서 천재가 보는 세상은 일반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 지금 시드가 보는 세상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전혀 다를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만들어낸 미래에서 살다 왔다. 그래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천재도 뭐도 아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회귀를 했기 때문이다.
시드의 말대로 그 이후로도 인터넷 세상은 끝없이 발전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미래는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러니 그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손에 넣어야 한다.
* * *
이틀 후.
데이비드 록허트가 실리콘밸리로 돌아왔다. 그의 옆에는 세 명의 남녀가 함께였다.
난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 한미루입니다. 저에 대한 얘기는 대충 들으셨을 테니 자기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백인 남성의 이름은 모리스 피어슨, 흑인 남성의 에드워드 밴슨, 그리고 히스패닉 여성의 이름은 가브리엘라 차베즈다.
세 사람 다 빅토리 인베스트먼트에서 데이비드와 함께 일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난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컨티뉴 캐피탈의 자본은 약 1억 달러입니다. 이 돈을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불리는 게 목표입니다.”
모리스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하시는 겁니까?”
“최소 열 배입니다.”
“······.”
다들 ‘뭔 헛소리냐’라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다.
내 목표가 좀 크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