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지분을 올려주세요 (1) (59/529)

 59화. 지분을 올려주세요 (1)

 데이비드는 그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지금이 그 시기라는 겁니까?”

 “예. 변화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마치 폭발하듯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죠. 지금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변화의 시기에는 기회가 생기죠.”

 “그 기회를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명운이 갈리겠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는 모두의 예상보다 빨리 올 거예요. 따라서 최대한 빠르게 미래에 핵심이 될 기업들을 선점해야 해요.”

 “그중 하나가 쿨라우드라는 겁니까?”

 “그중 하나가 아니라 그 하나죠.”

 난 미래를 알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수하겠다는 거군요.”

 “예. 성공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데이비드는 황당하다는 웃음을 지었다.

 “주식 하나 없이 적대적 M&A를 하겠다는 겁니까?”

 “바로 그거예요.”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금융시장에 있다 보면 허황된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들 대부분은 능력도 안 되면서 꿈만 크게 꾸죠.”

 “전 어떤 것 같나요?”

 “솔직히 쿨라우드를 인수하겠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영자들은 팔 생각이 없고, 컨티뉴 캐피탈은 살 돈이 없으니까요.”

 “그럼 지금은요?”

 데이비드는 날 보며 말했다.

 “한번 해보죠.”

 * * *

 난 데이비드와 함께 향후 전략을 논의했다.

 “협상은 아쉬운 쪽이 지는 겁니다.”

 여기서 아쉬운 쪽은 바로 나다.

 저쪽은 팔 마음이 없는 걸 사고 싶어 하는 거니까. 금액이 지금보다 몇 배로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 내가 아닌 저쪽이 아쉽게 만들어야 한다.

 상의를 끝마친 나는 시드에게 연락했다.

 “잠깐 볼 수 있어?”

 [예. 바로 호텔로 갈게요.]

 시드는 일하다 말고 호텔로 달려왔다.

 “업무 중에 나와도 되는 거야?”

 “상관없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니 얘기를 듣고 한번 알아봤어.”

 “어떤 얘기요?”

 “롤프가 미네르바를 개발하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

 시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이거 한번 봐봐.”

 난 제이슨의 노트북을 보여주었다. 클라우드 안에 저장되어있는 프로그램을 본 시드는 경악했다.

 “어!”

 “알아보겠어?”

 “그럼요. 미네르바 초기 버전이잖아요.”

 역시 보자마자 아는구나.

 “이거 어디서 났어요?”

 “이걸 보면 알 거야.”

 난 이어서 스티븐 킴과 롤프 부치가 주고받은 메일과 메신저를 보여주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어! 역시 다른 사람이 만든 게 맞네! 그럼 그렇지. 이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죽었어.”

 난 그동안 알게 된 사실들을 말해주었다.

 “아아, 그래서 이제까지 아무 얘기도 안 나온 거군요.”

 “그런 셈이지.”

 시드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와아! 얼간이인 줄은 진작 알았는데, 이 정도로 쓰레기일 줄은 몰랐네.”

 “롤프가 개발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내 말에 시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최소한 개발에 일정 부분 관여했거나 돈 주고 사온 줄 알았죠. 설마 죽은 친구의 프로그램을 훔쳐서 자기가 만든 거라고 발표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런 주제에 지금도 어디 가기만 하면 자기가 미네르바를 개발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고 있어요.”

 남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비일비재하다.

 요식업계에서 미투상품이 판을 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죽은 친구의 프로그램을 훔쳐서 자기 걸로 발표한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사실상 업계에서 매장이라고 봐야겠지.

 한동안 롤프에게 욕을 퍼붓던 시드는 나에게 물었다.

 “그럼 이 프로그램 저작권은 지금 누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원래는 제이슨 킴의 아내가 가지고 있었지.”

 “지금은요?”

 “내가 사들였어.”

 시드는 깜짝 놀랐다.

 “미네르바를 사들였다구요?”

 “응.”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설마 그걸 쿨라우드에 팔 생각은 아니죠?”

 “니 생각은 어때?”

 “당연히 사람들한테 알려야죠. 롤프는 대가를 치르게 하고.”

 “쿨라우드 주가 떨어질 텐데, 괜찮겠어?”

 “어차피 사표 쓸 거예요.”

 “지금 나가면 스톡옵션을 포기해야 하지 않아?”

 시드가 가지고 있는 주식은 무려 5퍼센트.

 당장 팔아도 3조 원이 넘는 돈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 돈을 포기하고 회사를 나올 생각은 못 할 것이다.

 “상관없어요. 이런 쓰레기랑 같이 일하는 것보다는 낫죠.”

 시드는 경멸과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

 하긴, 일이 터졌을 당시 그는 알렉스와 롤프가 회사를 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나가겠다고 소리쳤다.

 개발자들과 둘을 제외한 주주들은 전부 시드를 지지했고, 결국 압박을 못 이긴 두 사람은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아니면 주주들이 들고 일어날 걸 걱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배상금 중 일부는 롤프가 자신의 주식으로 지불했다.

 어쨌거나 시드가 그만둘 생각이라고 하니 얘기가 편하다.

 “나한테 좋은 계획이 하나 있는데.”

 “뭔데요?”

 내 얘기를 들은 시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렇게 하면 계속 그 얼간이들과 같이 일해야 할지도 모르는데요.”

 그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쿨라우드를 인수해 알렉스와 롤프를 내보낼 거니까.”

 “정말요?”

 “응. 미네르바도 원래 이름인 미미르로 되돌리고, 널 CEO로 만들 거야.”

 “저를요? 왜요?”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라고. 일단 쿨라우드라는 사명부터 스노우 크래시로 바꾸는 건 어때?”

 “오! 좋은데요.”

 난 시드를 보며 물었다.

 “도와줄 수 있어?”

 시드는 길게 생각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어떻게 인수할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당연히 내가 인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 말을 믿는 거야?”

 “예. 믿어요.”

 “어째서?”

 시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한눈에 얼간이를 알아본 것도 그렇고, 좀비네이도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모두가 롤프에게 속고 있는데 제 말만 듣고 진실을 찾아냈잖아요.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믿을 수 있죠.”

 * * *

 쿨라우드는 알렉스 프레스턴과 롤프 부치의 공동CEO 체제를 유지했다.

 창업 초기부터 두 사람의 역할 분업은 적절하게 이뤄졌다.

 알렉스 프레스턴은 재무관리와 투자, 홍보, 고객사 확보를 담당했고, 롤프 부치는 개발과 인사를 담당했다.

 즉, 알렉스가 회사 밖의 일을, 롤프가 회사 내의 일을 맡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유기적으로 협력했다.

 알렉스가 고객사들이 원하는 것을 롤프에게 전달해주면, 롤프는 개발팀에 지시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어떠한 무리한 요구도 기한 내에 잘 해결했고, 이는 고객사들의 만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메일을 확인한 롤프는 놀라 시드를 불렀다.

 “이게 뭐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물 빠진 청바지에 크록스를 끌고 나타난 시드는 태연하게 말했다.

 “보셨으면 아시겠네요. 사직서예요. 이상하진 않죠? 처음 써보는 거라서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봐서 썼어요.”

 “쿨라우드를 그만두겠다고?”

 “예.”

 롤프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이런 경우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코흘리개나 다름없던 시드를 직원으로 뽑았고, 4년이 넘는 동안 데리고 일을 시켰다.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

 “어째서 그만두겠다는 건데?”

 시드는 태연하게 말했다.

 “제 회사를 차려주겠다고 해서요.”

 “대체 누가?”

 “지난번에 회사에 왔던 사람들이요. 컨티뉴 캐피탈이라고 했나?”

 “뭐······?”

 롤프는 투자를 하겠다고 찾아와서는 자신을 얼간이라고 말하고 나간 동양인을 떠올렸다.

 ‘그놈들이 시드를 꼬드겼다고? 잠깐. 설마······.’

 처음부터 시드를 빼낼 생각으로 접근해온 건가?

 “그, 그 사람들 말을 믿는 거야?”

 “예. 얘기 들어보니 클라우드 사업에 대한 진출 의사가 확고하던데요. 지금 다른 회사 인수도 고려 중이라고 해서, 제가 쓸 만한 데 몇 개 추천해줬어요.”

 “······.”

 롤프는 자신이 머리라면 시드는 손발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시드가 머리와 손발의 역할을 다 했지만, 적어도 롤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도구를 활용해 만든 결과물이 자신의 것이듯, 그는 시드를 활용해 만든 결과물을 당연히 자신의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 도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만약 시드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용하던 컴퓨터가 망가지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으로 시드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있나?

 다른 직원은 누구든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시드는 모든 것에서 예외의 존재였다.

 “정말 회사를 떠나겠다고?”

 “예. 제 회사를 차려준다고 하니까요.”

 “회사 운영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개발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야.”

 “아! 그런 건 그쪽에서 다 알아서 해준대요. 전 그냥 개발만 하면 된다는데요.”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쿨라우드를 떠나 자신의 회사를 차리겠다는 생각은 확고해보였다.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지분 5퍼센트를 내놔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

 “까짓 거 그러죠. 그거 얼마나 한다구요. 컨티뉴 캐피탈에서 몇 배는 더 챙겨준다고 했거든요.”

 이대로라면 정말로 회사를 그만두고 넘어갈 판이다.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다.

 “그쪽에서 얼마를 제시했는데?”

 “그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 실력이면 지금보다 네다섯 배는 더 받아야 한대요. 지금까지 헐값에 일한 거라고 하던데요.”

 롤프는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오르는 걸 느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시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예. 그 말을 듣고 보니 제 몫이 너무 적은 것 같아요.”

 “무슨······.”

 “사실이 그렇잖아요. 일은 제가 다 하는데 지분이라고는 고작 5퍼센트뿐이잖아요.”

 “······.”

 아직도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시드는 돈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제 몫을 요구하다니.

 “혹시 회사에 바라는 게 있어? 연봉을 더 올려준다든지.”

 시드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연봉은 그대로여도 상관없어요. 대신 주식을 추가로 받고 싶어요.”

 “얼마나?”

 “15퍼센트요.”

 “뭐!?”

 현재 지분이 5퍼센트니, 15퍼센트를 더하면 무려 20퍼센트다.

 지난번 레드스톤이 지분 20퍼센트를 인수하는데 180억 달러를 제시했었다. 그런데 그 4분의 3에 해당하는 지분을 그냥 달라고 하다니!

 롤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너무 말도 안 되는 요구 아니야?”

 시드는 긴말 늘어놓는 대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러네요. 역시 투자를 받아서 제 회사를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