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지혜의 샘 (2)
기업은 자신들의 상표와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특허를 출원한다. 그리고 이를 침해당할 경우 소송을 통해 권리를 행사한다.
그런데 정작 사업은 하지 않으며 이러한 소송만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들이 있다. 이를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 한다.
이들은 개인이나 기업이 가진 특허기술을 사들여, 지적재산권을 위반한 기업을 상대로 거액의 로열티를 요구한다.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바로 소송을 건다.
판매금지, 영업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서 기업의 손발을 묶고, 이를 못 견딘 기업이 두 손을 들면 합의금을, 끝까지 판결로 가면 배상금을 뜯어낸다.
심지어는 엔플이나 구블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그 대상이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었다.
쿨라우드가 나스닥에 상장해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자 패트롤이라는 특허괴물이 공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쿨라우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롤프 부치가 제이슨 킴의 프로그램을 베껴서 창업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제이슨의 아내에게서 그가 생전에 개발한 프로그램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다.
당시 그들이 지불했던 금액은 고작 5만 달러로 알려졌다.
패트롤은 쿨라우드를 상대로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걸고, 당장 프로그램에 대한 사용을 중지해 달라는 영업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결국 쿨라우드는 협상에 나섰고, 양사는 합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정확한 합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200억 달러를 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알렉스 프레스턴과 롤프 부치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새로운 CEO로 시드 루카스가 선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주요주주였고, 그 뒤로도 쿨라우드가 승승장구하며 세계적인 부자가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 권리를 확보했다.
이게 과연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데이비드가 말했다.
“협상금액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시작부터 좀 세게 부르긴 했지.
“얼마면 팔았을까요?”
“10만 달러만 제시해도 충분했을 겁니다.”
그녀는 남편이 만든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가치를 지녔는지 잘 모르고 있다. 게다가 혼자서 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겠지.
따라서 헐값에 후려치려 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착해서?
천만에.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난 그렇게 착한 놈이 아니다. 현재 자금 사정이 그렇게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내가 이 금액을 제시한 이유는······.
“권리를 확보해 소송을 건다고 해도 판결이 나오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리겠죠?”
“길면 5년도 넘게 끌 수 있을 겁니다.”
“그전까지는 상대의 도덕성을 공격해야 하는데, 저쪽은 훔쳤고 이쪽은 후려쳤으면 그놈이 그놈인 상황이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합당한 대가를 지급해 권리를 확보했다면, 도덕적 우위를 가진 채 상대를 마음껏 두드려 팰 수 있다.
또 하나 이유는 시드 루카스.
그는 미네르바를 천재가 개발한 프로그램이라고 극찬했다. 그걸 헐값에 사왔다고 하면 그가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특허괴물이야 헐값에 후려쳤다고 욕먹어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다르다.
패트롤이 고작 5만 달러에 후려쳤다고 하니, 줄리아와 자식들이 계속 힘들게 살았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진 않았다.
왜냐하면 시드가 CEO가 된 뒤 제이슨 킴의 기일에 맞춰서 그의 가족들에게 매년 100만 달러씩 지급해 주었으니까.
그는 여러 차례 제이슨 킴에 대한 존경을 표했고, 방한했을 때도 처음 한 말이 ‘여기가 제이슨 킴의 나라로군요’였다.
“천재의 업적에는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내 말에 데이비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허황된 얘기였나요?”
“아닙니다. 전 그저 돈만 생각했는데 더 큰 걸 보고 계셨군요.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뭘요.”
전부 미래를 알고 있던 덕분이다.
얘기를 하는 사이 줄리아는 집에서 보관 중이던 노트북을 가져왔다.
열어본 지 오래된 듯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어댑터를 연결하자 다행히 잘 켜졌다.
“안에 별 자료는 없어요.”
그녀의 말대로 컴퓨터 안에는 없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21세기에 중요한 자료는 클라우드에 있기 마련이죠.”
내 말에 줄리아는 작은 탄성을 냈다.
“아······.”
“왜 그러시죠?”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제이슨 역시 똑같은 말을 했었거든요.”
워크스테이션도 아니고 이런 노트북으로 어떻게 프로그램 작업을 했나 싶지만, 클라우드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넷을 통해 멀리 있는 컴퓨터를 원격으로 조종하듯, 사용료만 내면 개발에 필요한 무거운 프로그램들을 클라우드에서 돌릴 수 있다.
인터넷을 연결한 다음 클라우드에 접속하려고 하는데, 패스워드가 걸려있었다.
“아······.”
이건 생각 못 했는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개발자라는 사람이 누구나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게 하지는 않았겠지.
패트롤이 쿨라우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는 것은 입증할 만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는 것은 패스워드를 알아냈다는 건데.
“혹시 제이슨이 패스워드에 대해 따로 말한 게 있나요?”
“딱히 말해준 건 없는데······.”
“그래요?”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생각나셨나요?”
“미미르는 단 한 사람만이 다룰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본인을 말한 건가 보군요.”
난 패스워드를 쳐보았다. ‘jasonkim'이라고 쳤지만 열리지 않았다.
“틀렸는데요.”
그 순간, 생각나는 게 있었다.
제이슨 킴은 영어 이름이고. 한국 이름은 김재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kimjaehyun’을 쳐보았다.
“이것도 아니네.”
문제는······.
데이비드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한 번 남았다고 나오는데요.”
“어······.”
이거 세 번 다 틀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영원히 잠기는 거 아니야? 아니면 안에 있는 자료가 전부 지워진다든지.
그럼 나가린데.
아, 젠장. 어떻게 하지?
난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전문가랑 상의 좀 하고 올게요.”
밖으로 나온 나는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야! 지금이 몇 시인데 전화야?]
“미안. 한국은 지금 새벽이겠구나.”
사실 알면서 그냥 걸었다.
선우는 자다 깬 목소리로 물었다.
[미국에서 잘 놀고 있어?]
“일하고 있어.”
[잘 되어가는 거 맞지? 내 돈은 무사한 거지?]
“아니. 전부 날렸어.”
[뭐!?]
“농담이야.”
선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딴 농담 하지 마!]
다행히 잠이 다 깬 것 같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뭔데?]
“미미르라고 알아?”
[북유럽 신화 말하는 거야?]
“응.”
[당연히 알지. 게임에 자주 나오는 캐릭터인데.]
판타지 게임 등에 워낙 많이 등장해서 게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이긴 하다.
“지금 상황이······.”
난 대충 설명해주었다.
선우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혹시 다시 잠들었나?
“자냐?”
[아니.]
“그런데 왜 말을 안 해?”
[너무 쉬워서.]
“응?”
[미미르가 지혜의 샘을 지키고 있는 건 알지?]
“알지.”
[그 샘물을 마시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오딘은 샘물을 마시게 달라고 부탁했지. 미미르는 샘물을 마시려면 한쪽 눈을 달라고 했고, 오딘은 스스로 한쪽 눈을 뽑고 샘물을 마셨어.]
“들어본 것 같아.”
그래서 게임이나 영화에서 오딘은 항상 애꾸로 나온다.
[미미르가 나중에 목이 잘리는데, 오딘이 그 머리를 되살려 들고 다니며 조언을 구한다는 얘기도 있고.]
“그래서?”
[그럼 미미르를 다룰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누구겠어?]
“아······.”
정말 너무 쉽구나.
이거 물어보느라 깨운 게 미안할 정도다.
“고마워. 얼른 자.”
난 바로 돌아가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데이비드가 물었다.
“마지막인 거 아시죠?”
“조용히 하세요.”
난 떨리는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눌렀다. 패스워드는 ‘odin'.
클라우드가 열렸다.
* * *
우리는 노트북을 가지고 머물고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이 프로그램이 미네르바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저야 모르죠. 한번 보시겠어요?”
데이비드는 슬쩍 보더니 말했다.
“전 변호사입니다.”
“······.”
둘 다 문과다 보니, 본다고 알 수 있을 리가 있나.
다행히 클라우드 안에는 메일과 메신저도 보관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제이슨 킴이 롤프 부치와 나눈 대화들이 전부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아닌가요?”
데이비드는 눈을 빛냈다.
“정말 놀랍네요. 실리콘밸리의 천재로 불리던 사람이 남의 프로그램을 훔쳐서 창업을 했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요?”
“롤프 부치의 명성은 바닥으로 추락할 겁니다. 법적 책임 역시 져야겠죠.”
“쿨라우드는요?”
“증거가 명확한 만큼 일단 프로그램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판결이 나오면 이제까지 사용에 대한 배상과 위약금을 받을 수 있겠죠. 아니면 협상을 통해 쿨라우드 측에 권리를 매각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지분으로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는 안 되죠. 줄리아에게 약속했잖아요. 미미르의 원래 이름을 되찾게 해주겠다고.”
“설마······.”
“예. 이걸 무기로 쿨라우드를 통째로 인수할 생각입니다.”
데이비드는 한숨을 내쉬는 표정이었다.
“처음 인수하겠다는 말을 꺼낸 게 농담이 아니었군요.”
“미미르는 쿨라우드의 핵심 프로그램이에요. 이걸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사업을 접기 싫으면 매각하지 않겠어요?”
그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인수자금이 있습니까?”
“그건 나중에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
이게 대체 뭔 소리냐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돈도 없는데 인수를 하겠다니 황당하게 들리긴 하겠지.
잠시 생각하던 데이비드는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마음껏 질문하세요.”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나요?”
“그럼 아닙니까? 마치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무리하게 투자를 하다 보면, 일이 조금만 틀어져도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됩니다.”
맞는 말이다.
그가 이렇게 걱정하는 이유는 잘 알 것 같다. 빅토리 인베스트먼트도 그렇게 무너졌으니까.
“주식투자에 대해 잘 아시죠?”
“10월이 특히 위험한 달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난 피식 웃었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네요.”
그는 그 외에 위험한 달로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을 꼽았다.
“주가가 우상향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주가가 상승하는 기간은 전체 보유 기간의 5퍼센트 정도에 불과합니다. 몇 년을 보유하고 있어도 그 시기를 놓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