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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시드 루카스 (2) (54/529)

 54화. 시드 루카스 (2)

 메타버스(Metaverse).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와 가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의 합성어다.

 현실세계와 이어진 가상세계.

 현실을 복제한 또 다른 현실.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

 지금은 아는 사람만 아는 용어지만,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다. 실제로 그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이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시드 루카스다.

 그는 향후 인터넷 세상을 하나로 만들 거대한 메타버스 플랫폼 판게아를 구축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뇌와 직접 연결이 가능한 VR기기까지 만들었다.

 판게아는 현실세계의 모습마저 바꿔놓았다.

 빌딩 안에 수천 명의 직원들이 모여서 일하듯 가상공간 안에 빌딩과 사무실이 들어섰고, 공연장과 행사장이 생겨났다.

 판게아에 접속하기만 하면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게임, 업무, 여가, 여행, 공연 등 모든 걸 즐길 수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인터넷 안에 쇼핑몰과 은행, 관공서가 들어설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몇 명 안 됐다.

 변화는 언제나 사람들의 인식보다 빠르게 일어나기 마련이지.

 판게아가 있었기 때문에 가상현실 게임도 등장할 수 있었고, 내가 아는 미래가 펼쳐지게 된다.

 한참 설명하던 시드는 이번에는 다른 불만을 얘기했다.

 “아! 또 짜증 나는 건 뭔지 알아요?”

 “뭔데요?”

 “회사 이름이 너무 구려요. 쿨라우드가 뭐예요, 쿨라우드가.”

 난 맞장구를 쳐주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뭐랄까? 쿨을 붙인 게 전혀 쿨하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시드는 손뼉을 쳤다.

 “제 생각이 딱 그거예요!”

 “그럼 회사 이름을 뭐로 짓고 싶은데요?”

 “생각해놓은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요.”

 “소설 제목에서 따온 건가요?”

 참고로 여기서 메타버스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시드는 반색했다.

 “어! 아시네요.”

 당연히 안다.

 왜냐하면 훗날 그가 CEO 자리에 앉자 사명부터 그걸로 변경했으니까. 약자로는 SC라고 불렀다.

 “좋은 이름이네요.”

 “그렇죠? 처음 회사 만들 때 그걸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까였어요.”

 스노우 크래시는 훗날 엔플과 NS, AMZ 등을 누르고 세계 최대의 회사로 성장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내 눈앞의 청년이고.

 시드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롤프 밑에서만 일했으니까.

 “그런데 왜 계속 쿨라우드에서 일하고 있는 건가요? 혹시 다른 회사를 갈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다른 데서 일해본 적이 없어서요. 연봉도 많이 주고. 아! 주식도 줬어요.”

 시드 루카스는 창업 초기에 롤프를 따라 합류한 핵심 멤버인 만큼 처음에 10퍼센트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추가 투자를 위한 유상증자가 이뤄졌다. 지분율이 크게 축소돼야 했으니, 두 사람이 그의 몫을 챙겨주었고 현재는 5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이것만 해도 원화로는 2조에 달하는 액수다.

 이런 걸 보면 두 사람 역시 시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명함을 내밀었을 때 롤프가 화를 낸 거겠지.

 하지만 시드가 받은 쿨라우드 지분은 5년 이내 퇴사 금지 조항이 붙어있다. 만약 그 전에 회사를 나가면 전부 반납해야 한다.

 이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흔히 쓰는 방식으로 자발적으로 회사에 묶인다고 해서 황금사슬이라고 부른다.

 “사실 돈은 별로 상관없어요. 어차피 쓰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쿨라우드에서 일하는 게 꽤 재밌거든요. 다른 회사에는 미네르바 같은 엄청난 프로그램도 없을 테고. 다른 프로그램은 봐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미네르바는 똑같이 만들어보라고 해도 못 만들 것 같아요. 그건 진짜 천재가 만든 거예요.”

 “롤프 같은 얼간이가 아니라요?”

 “예. 누군지 알면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얘기하는 걸 보니 정말로 쿨라우드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왠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에 열정적이라는 건 좋은 일이지.

 시드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런데 아까 한 얘기는 뭐예요?”

 “무슨 얘기요?”

 “좀비네이도2가 촬영 재개할 거라고 했잖아요.”

 “아아······.”

 시드는 미심쩍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혹시 거짓말한 건 아니죠?”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그 영화사를 샀으니까요.”

 내 말에 시드는 눈을 크게 떴다.

 “프리즈너를요?”

 “예. 프리즈너는 이제 제 겁니다. 그리고 인수하자마자 바로 좀비네이도2 촬영 재개부터 지시했습니다.”

 “우와아!”

 시드는 두 팔을 들며 환호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다.

 “좀비네이도2가 나온다니!”

 주식이 상한가를 쳐도 이 정도로 기뻐하진 않을 거다.

 잠시 후, 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피터 보이드 감독님도 직접 만나봤겠네요.”

 “그럼요.”

 “혹시 토네이도 안의 좀비가 어디서 나왔는지 들으셨어요? 좀비네이도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데.”

 “말해주면 스포일러가 될 텐데요.”

 감독한테 직접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1회차 때 시리즈를 접한 만큼 알고 있다.

 시드는 사정하듯 말했다.

 “괜찮으니 말씀해주세요. 제발요. 그거 궁금해서 가끔 잠도 못 잘 정도예요.”

 데이비드를 보니 ‘그게 뭐라고 잠을 못 자?’라는 표정이다.

 어쨌거나 본인이 괜찮다면 괜찮겠지?

 난 3편에서 밝혀지는 설정을 말해주었다.

 “토네이도 안에 차원의 문이 있어요. 그 좀비들은 이세계 좀비였던 거죠.”

 말 그대로 저세상 설정이다.

 “으음.”

 충격적이었는지 데이비드는 신음을 냈고, 시드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전 계속 그 설정일 거라고 주장했거든요. 그런데 고대부터 현재까지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가 죽은 사람이 좀비가 된 거라고 주장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거 때문에 며칠 동안 게시판에서 싸웠는데. 그럼 그렇지!”

 “······.”

 아니, 뭐 이런 쓸데없는 걸로 키보드 배틀을 하고 있어?

 어쨌거나 토네이도 안에 차원의 문이 있다는 설정이다 보니, 시리즈가 계속되며 나중에는 별의별 것들이 다 토네이도에서 안에서 튀어나온다.

 6편쯤에는 좀비 드래곤이 튀어나왔던가? (이건 제작비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기도 하다)

 시드는 실컷 좀비네이도의 스토리와 감상을 말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판게아를 만들어낸 희대의 천재이자, 세계 최대 기업의 CEO였다.

 1회차 때였다면 감히 말도 못 걸어봤을 존재다.

 그렇다 보니 후광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시 보니 그냥 어린 동생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시드는 나를 보며 물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난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편한 대로.”

 * * *

 앞으로의 플랜을 생각했을 때 시드는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때문에 친분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천재와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했는데, 그런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친해졌다.

 21세기 최고의 천재에게 형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시드가 돌아가고 나자 데이비드는 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계획입니까?”

 “계획이라니요?”

 “그럼 아무 계획 없이 쿨라우드의 개발팀장을 꼬신 겁니까?”

 “투자를 거절한 게 괘씸해서 앙갚음을 좀 하려구요.”

 “······.”

 “농담이었어요. 쿨라우드에 투자하겠다는 마음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저쪽에서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으니 회사를 좀 흔들어보려구요.”

 “설마 시드 루카스를 쿨라우드에서 빼내기라도 할 겁니까?”

 “쉽지 않겠죠.”

 어느 정도 마음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완전히 내 편이 됐다고 하기는 힘들다. 롤프랑은 그동안 같이 일하며 쌓은 정도 있을 테니. 스톡옵션 문제도 있고.

 사실 계획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바로 쿨라우드를 먹는 거다.

 스노우 크래시로 사명을 바꾼 쿨라우드는 엔플과 NS, AMZ를 뛰어넘는 기업으로 군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지분 대부분은 초기 투자자들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다 먹는다!

 향후 세상을 지배할 초거대 기업을 내가 쥐고 흔드는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이는 일이지만,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앞으로 영원히 기회가 없다.

 물론 내가 아무 계획 없이 목표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쿨라우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으니까.

 “아까 시드가 한 말 중에 재밌는 얘기가 좀 있지 않았어요?”

 데이비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롤프가 미네르바를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 말입니까?”

 “예.”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드 얘기 때문만이 아니라 저도 의심을 좀 하고 있었어요. 쿨라우드에 대해 알아보며 나름 조사를 좀 해봤는데, 이제까지 그가 했던 사업들을 보면 본인이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기보다는 주로 홍보와 마케팅에 치중했죠.”

 “그가 천재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싶은 겁니까?”

 “그렇지는 않겠죠.”

 애초에 천재가 아니라면 12살 때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MIT에 입학할 수도 없었겠지. 나 같은 일반인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천재다.

 “예전에 유명한 롤플레잉 게임을 했었는데 남들보다 성장이 빠른 캐릭터가 있었어요. 같은 레벨이면 다른 캐릭터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지녀서 초반에 잘 써먹었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죠.”

 “뭡니까?”

 “다른 캐릭터에 비해 레벨이 올라갈수록 필요한 경험치가 엄청나게 높아졌거든요. 레벨 20쯤에서는 더 이상 키우기가 힘들어졌고, 결국 게임 후반부에는 다른 캐릭터를 주력으로 사용하게 됐죠.”

 데이비드는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롤프 부치가 그런 캐릭터라는 겁니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천재는 계속 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장이 아니라 퇴보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어렸을 때 천재 소리 듣던 애가 나이 들면 평범해진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그 이유는 남들보다 일찍 재능을 꽃피웠지만 한계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

 찾아보면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

 “5년 전쯤에는 독보적인 천재였을지 몰라도, 현재 그 정도 천재는 찾아보면 많이 있을걸요.”

 “하지만 틴팅 이후에도 꾸준히 사업을 했고, 그중 서너 개는 그럭저럭 성공했습니다.”

 “전부 동업이었죠. 실제 프로그램 개발은 다른 사람이 했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게 사람이든 기업이든. 작년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라고 불렸던 메르세데스 왓슨 기억해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라피스 얘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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