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시드 루카스 (1)
데이비드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정말로 시드 루카스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지,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겠지.
“설마 시드 루카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프리즈너를 인수한 겁니까?”
“예.”
그는 좀비네이도의 광팬이다.
어느 정도냐면 훗날 사비를 털어서 프리즈너를 인수한 것도 모자라, 아예 감독을 위해 CG제작 프로그램과 VR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줬다.
덕분에 B급 영화사였던 프리즈너는 할리우드 유수의 영화사들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VR영화를 선보이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프리즈너를 사서 좀비네이도2를 제작시키는 중이다.
“그가 좀비네이도를 좋아한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SNS 찾아보면 나와요.”
사실은 안 나온다.
그냥 회귀 전에 기사를 봐서 아는 거지.
데이비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그를 위해 영화사를 통째로 산 거군요.”
설마 단지 누군가 그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영화사를 샀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겠지.
“덕분에 얘기가 잘 풀렸잖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시드의 관심을 끌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까 잠깐 얘기해보며 느꼈지만, 확실히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좀비네이도2 제작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라도 연락하지 않을까요?”
데이비드는 피식 웃었다.
“설마 그런 걸로······.”
띠리리링!
그 순간, 내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난 일부러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미루입니다.”
[안녕하세요. 아까 회사에서 인사 나눈 시드 루카스라고 하는데요.]
“아! 반갑습니다.”
난 보란 듯이 웃었고, 데이비드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우리는 호텔 비즈니스룸에서 시드를 만났다.
1회차 때 TV에서 봤을 때는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했는데, 이렇게 보니 그냥 평범한 대학생 같은 모습이다.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그에게 준 명함은 롤프가 바로 빼앗아서 버려버렸다.
시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보자마자 외웠거든요.”
역시 똑똑하구나.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뭘요?”
“그 둘이 얼간이라는걸.”
“그야······.”
훗날 본인 입으로 직접 말했으니까.
그는 쿨라우드 CEO가 된 뒤 공동창업자들을 얼간이라 부르며 경멸했다. 특히 롤프에 대해서는 대놓고 욕을 할 정도였다.
뭐,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제가 천재를 알아볼 정도로 똑똑하진 않지만, 얼간이를 못 알아볼 만큼 멍청하진 않죠. 만나서 얘기해 보니까 금방 얼간이라는 걸 알겠던데요.”
시드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렇죠? 사람들은 이상하게 그걸 잘 모르더라구요. 사실 롤프 부치는 명성과는 달리 실력은 쥐뿔도 없는데.”
데이비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쿨라우드의 최고개발책임자는 롤프 부치 아닙니까?”
시드는 비웃듯 말했다.
“개발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이 뭔 개발책임자예요?”
“그가 개발을 하지 않는다구요?”
“오류 개선과 업데이트는 전부 개발자들이 하지, 롤프는 딱히 하는 일이 없어요. 그냥 기자들을 만나 헛소리 몇 마디 해주고 금발미녀들과 놀러 다닐 뿐이죠.”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평소에 어지간히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미 아는 얘기들도 있지만, 어차피 언론을 통해 접한 것인 만큼 당사자에게 직접 듣고 싶어 난 이것저것 질문했다.
“어쩌다 쿨라우드에서 일하게 된 거예요?”
“그 전의 회사에서 같이 일했거든요. 토크잇이라는 회사였는데, 지금은 망했어요. 그 전에 롤프가 쿨라우드를 창업하며 저를 데려갔죠.”
“왜 망한 거예요?”
“몇 가지 문제가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긴 해요.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그 문제들 싹 다 고치고 나왔을 텐데.”
“토크잇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거예요?”
“하이스쿨을 조기졸업하고 집에서 게임하다가, 롤프의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공지를 보고 지원했어요. 실리콘밸리 최고의 천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저 말고도 지원자들이 많더라구요. 다들 이력이 엄청 화려했어요. 칼텍, MIT, 하버드, 스탠포드, 에일 등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IT 대기업에서 일한 사람도 많았고. 대학 안 나온 사람은 저밖에 없었을걸요. 아! 나이도 제가 가장 어렸어요.”
처음 지원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18살.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코딩은 독학으로 배워서 간신히 프로그램 만지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합격했다는 건가요?”
“예. 즉석에서 코딩 몇 번 시켜보더니 뽑던데요.”
이 얘기를 들으니 좀 놀랍다.
어쩌면 롤프 부치는 천재를 알아보는 눈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게 아닐까?
사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재능이다. 천재를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롤프 부치와 함께 일하게 됐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뻤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개발에는 손도 대지 않고 인터뷰나 데이트나 하러 다니더라구요. 그렇게 한 1년 정도 일했는데 어느 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저에게 보여줬어요.”
“혹시 그게 미네르바였나요?”
“예.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 일은 안 하고 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따로 개발하고 있었던 거죠. 그건 진짜 천재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래서 이런 천재랑 계속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쿨라우드로 따라갔죠.”
데이비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아까는 얼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재와 얼간이 중 뭐가 맞는 건가요?”
“얼간이요.”
“어째서요?”
“제 생각에 미네르바는 그가 만든 게 아닌 것 같거든요.”
그 말에 데이비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난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 시점에서 눈치채고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시드는 딱 잘라 말했다.
“그 사람은 그걸 만들 능력이 안 돼요. 아마 남이 만든 걸 베꼈거나 돈 주고 사왔을 거예요.”
미네르바는 쿨라우드의 핵심 프로그램.
이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근거가 있습니까?”
“옆에서 지켜봤으니 잘 알죠. 그는 그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이해도 못 하고 있어요. 혼자서 해보라고 하면 다루지도 못할걸요.”
데이비드는 의문을 제기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개발한 거라면 진작 얘기가 나왔어야 하지 않습니까?”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도 그게 의문이에요. 미네르바를 만들 정도면 보통 천재가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라면 실리콘밸리에 이름이 알려져 있어야 할 텐데.”
맞는 말이다.
그 정도 천재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롤프 부치야 그렇다 치고, 알렉스 프레스턴은요? 그는 왜 얼간이라는 겁니까?”
“옆에 붙어있으면서도 롤프가 얼간이인 줄 모르고 있으니까요. 얼마나 멍청하면 그렇게 속고 있겠어요?”
이 얘기를 들으니 미래를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얼간이를 못 알아보면 얼간이죠.”
시드는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어요.”
“뭔가요?”
“그 둘은 클라우드가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황당한 얘기다. 클라우드 기업을 만든 창업자들이 클라우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니.
시드는 우리를 보며 물었다.
“클라우드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클라우드라는 개념이 워낙 광범위해서 각자 정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개의 대답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다행히 나는 정답이 뭔지 알고 있다.
“메타버스죠.”
메타버스란 현실의 공간을 넘어 일상과 여가, 그리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가상공간.
딱히 정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지 시드는 깜짝 놀랐다.
“어!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시드는 신나서 설명했다.
“기존의 플랫폼 기업들을 뛰어넘으려면 결국 메타버스로 가야 해요. 그 기반이 바로 클라우드죠.”
초거대 기업들은 자신들만의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NS는 PC 운영체제 윈도어즈를, 엔플은 엔폰과 NOS를, 구블은 안드로메다를, AMZ는 에이존과 ZWS를.
중요한 건 이게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30퍼센트를 자신들의 몫으로 챙겨간다.
디지털 소작농과 지주의 관계랄까?
그 안에서 다른 기업들이 열심히 하면 할수록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도 커진다. 열심히 해봐야 남 좋은 일 시켜주는 셈이다.
당장 쿨라우드만 해도 클라우드 빅3 업체에 엄청난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종속되어있는 셈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플랫폼을 가진 자와 안 가진 자의 격차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둘 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어요. 뭐 좀 하려고 하면 엔플이 반대한다, 구블이 반대한다 하면서 못 하게 해요.”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플랫폼 공룡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드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거고.
이러한 의견 충돌도 경영진들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이유 중 하나겠지.
데이비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빅3와 협력을 하지 않으면 클라우드 사업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이런 게 일반인의 상식이겠지.
하지만 천재의 생각을 어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스토리지를 대줄 데이터센터는 걔들 아니어도 얼마든지 있어요. 필요하면 직접 만들어도 될 테고. 미네르바만 있으면 훨씬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 굳이 협력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죠. 운영체제든 프로그램이든 어차피 클라우드에서 돌리면 그만이에요.”
데이비드는 놀라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일반적으로 운영체제를 활용해 클라우드를 돌린다. 그런데 시드가 말한 건 그것과 완전히 반대였다.
어떠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만 작동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통 플랫폼 생태계라고 표현한다. 한번 생태계 안에 들어온 소비자는 더 좋은 플랫폼이 나오더라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일명 락인(Lock In) 효과다.
예를 들어 엔플의 NOS는 강력한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 자체 앱스토어를 통하지 않으면 설치와 결제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굳이 설치할 필요 없이 클라우드에서 프로그램을 돌린다면?
소비자는 어떤 운영체제를 쓰든 상관없이 가상공간에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고, 그 안에서 결제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각자의 플랫폼은 의미가 없어지고 클라우드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다.
이 개념에 대해 설명을 들은 데이비드는 황당해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 기존 기업들이 허용하겠습니까?”
당연하게도 IT 공룡들이 쉽게 자신들의 영역을 내줄 리 없다. 기를 쓰고 막으려 할 것이다.
시드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허용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작동되게 만들면 되니까요. 안 돌아가는 프로그램 돌아가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에요.”
“······.”
마치 주머니 속에서 물건 꺼내는 것처럼 쉽게 말한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입만 살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사람이 시드 루카스라면 얘기가 다르다.
사실 좋은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천재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걸 실행에 옮긴다.
하늘을 날면 좋겠다는 생각을 라이트 형제만 했겠는가? 동서고금을 하늘을 나는 것은 인간의 꿈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라이트 형제처럼 꿈을 현실로 만들 계획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시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 실행할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걸 하기 위해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난 눈앞의 청년을 보았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대에나 세상을 이끌어가던 천재가 있다.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한 걸 보고,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변화의 흐름을 읽고 돈을 댄 투자자들이 있다.
미래에 뭐가 만들어지는지 안다고 한들 내가 그걸 직접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 천재가 아니니까.
그러나 그 천재에게 투자하는 것은 가능하다.
시드 루카스는 21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21세기 가장 뛰어난 천재로 불린다.
왜냐하면 그는 가상세계의 창시자이자 메타버스의 아버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