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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쿨라우드 (3) (52/529)

 52화. 쿨라우드 (3)

 우리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 회사를 둘러보았다.

 직원 숫자는 약 90명 정도. 기업가치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게 적은 숫자다.

 하지만 그렇게 특이한 것도 아닌 게, AI 프로그램을 만드는 딥마이닝의 경우 직원 수가 고작 22명에 불과하지만 구블에 8억 달러에 인수됐다.

 IT업계는 한 명의 천재가 1만 명의 일을 해내는 게 가능하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거겠지.

 아무래도 스타트업에 IT기업이다 보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증권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업무 시간임에도 직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파티션이 없는 곳에서 각자 맡은 작업을 했다.

 몇몇 직원들은 휴게실에 놓여있는 탁구대에서 탁구를 쳤다.

 실리콘밸리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탁구라고 하던데 사실인 모양이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기 마련이지.

 롤프는 자신 있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좋은데요.”

 그의 표정에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하긴, 이런 기업이 있으면 나 같아도 좋을 것 같다.

 난 회사를 둘러보는 척하며 직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그런데 찾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설마 오늘 안 나온 건 아니겠지?

 아! 찾았다!

 난 구석 자리에 앉아있는 백인 청년에게 다가갔다.

 청바지에 티셔츠, 신발은 낡은 크록스. 곱실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에 아직 주근깨가 남아있는 얼굴. 머리에는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모니터를 두 개 쓰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영화를 틀어놓고 있었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좀비가 사람을 쫓아다니는 걸 보니 좀비 영화인 모양이다.

 난 그쪽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러자 그는 영상을 멈추고 헤드폰을 뺀 다음 나를 쳐다보았다.

 “좀비 영화 좋아하시나 봐요?”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모르는 사이에 쓸데없이 말 걸지 말라는 눈치다.

 난 모른 척하며 계속 말했다.

 “제가 정말 재밌는 좀비 영화 하나 아는데. 추천해드릴까요?”

 “괜찮아요.”

 낯선 사람과 대화할 마음이 별로 없는지 그는 다시 헤드폰을 끼려 했다.

 “좀비네이도라는 영화인데.”

 그 순간,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 좀비네이도!”

 “아시나요?”

 “그럼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예요.”

 데이비드를 보니 놀란 표정이다. 설마 여기서 좀비네이도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겠지.

 “그 영화 보셨어요?”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요. 세상에 좀비네이도 안 본 사람도 있나요?”

 “그렇죠? 그런데 제 주변에는 아는 사람이 얼마 없더라구요. 몇 명한테 보여주긴 했는데 재미없다는 반응이고. 아니, 어떻게 좀비네이도를 재미없다고 할 수 있죠?”

 데이비드를 보니 ‘그걸 재밌게 보는 니가 이상한 거야’라는 표정이다.

 그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우와! 여기서 좀비네이도 팬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소개를 했다.

 “한미루라고 합니다.”

 “전 시드 루카스예요.”

 난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몇 년만 지나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되니까.

 그의 현재 나이는 22살.

 이 정도면 젊은 개발자들이 많은 스타트업계에서도 어린 나이다.

 뭐, 롤프 부치는 21살 때 창업했다고 하니 천재들은 다들 그 정도는 하는 모양이다.

 “이번에 제작비 부족으로 2탄이 제작 중지된 거 알아요? 그거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숨을 푹푹 내쉬는 걸 보니 진심으로 안타까운 모양이다.

 “걱정할 것 없어요.”

 “어떻게 걱정이 안 돼요? 이러다 안 나오면 어떡하지?”

 난 그의 걱정을 해결해주었다.

 “조만간 촬영 재개할 거예요.”

 내 말에 시드는 깜짝 놀랐다.

 “어! 정말요?”

 “예.”

 그는 의문을 나타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왜냐하면 내가 그 영화사를 인수했기 때문이지.

 난 그에게 임시로 만든 명함을 내밀었다.

 “궁금하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시드가 명함을 받아들자 롤프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것을 낚아채듯 빼앗은 다음 손으로 구겼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나에게 말했다.

 “지금 업무 중인 직원한테 뭐 하시는 겁니까?”

 난 일부러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예? 제가 뭘 잘못했나요?”

 “그럼 일을 방해하는 게 잘한 겁니까?”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짜증과 경계심이 가득 묻어있었다.

 알렉스는 우리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보셨을 겁니다. 나가는 길로 안내해드리죠.”

 난 따라 나가는 대신 시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얼간이들 밑에서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네요.”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알렉스와 롤프는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이었고, 데이비드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직원들은 전부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잠시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롤프는 내 멱살을 잡을 기세로 소리쳤다.

 “너 말 다했어!?”

 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얼간이라고 했는데 못 들으셨나요?”

 * * *

 한미루와 데이비드 록허트가 돌아간 뒤.

 롤프는 어이없어하며 소리쳤다.

 “시발! 대체 저거 뭐 하는 새끼야?”

 알렉스 역시 어이가 없었다.

 ‘설마 살면서 면전에서 얼간이 소리를 들을 줄이야.’

 감히 누가 프레스턴가의 기재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별 거지 같은 새끼들을 다 보겠네.”

 한참 욕을 퍼붓던 롤프는 알렉스에게 물었다.

 “그런 말을 듣고도 화 안 나?”

 알렉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왠지 신경이 쓰여.”

 “응?”

 롤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것은 흔치 않았다.

 “데이비드 록허트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야?”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한국인 말이야.”

 분명 데이비드 록허트는 그가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다. 형이 어째서 그를 원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신경이 쓰이는 것은 같이 온 동양인이다.

 ‘대체 그놈은 뭐지?’

 알렉스 프레스턴은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의 위치였다.

 부모에게서 부와 명예는 물론, 잘생긴 외모와 큰 키, 좋은 머리까지 물려받았다. 공부를 했을 때는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운동을 했을 때는 대학대표 미식축구 쿼터백으로 활약했다.

 이러한 능력은 투자에도 발휘됐다.

 알렉스는 클라우드 산업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고, 실리콘밸리의 천재로 불리는 롤프 부치와 손을 잡고 재빨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특유의 수완을 발휘해 기업들을 고객사로 만들었고 기업가치는 나날이 치솟았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그들 중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라는 화이트로드의 에런 베이커 회장조차도 그의 나이에 이 정도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자만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객관적인 평가에 가까웠다.

 상대는 고작 비슷한 나이의 동양인. 아무리 생각해도 별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좀 이상했다.

 그 이유가 뭘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부러 그렇게 행동한 거라면?”

 “그게 무슨 말이야?”

 투자를 하겠다고 접근해 회사를 둘러보고, 시드에게 말을 걸고, 자신들을 얼간이라고 부른 모든 행동들이 어쩌면 의도된 게 아니었을까?

 롤프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

 알렉스 역시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도적인 행동에는 목적이 있을 텐데, 그 목적이 뭔지를 모르겠다.

 “그냥 미친놈이야.”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상대는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개 한국인이다.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겠지.’

 알렉스는 그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 * *

 우리는 쫓겨나듯 쿨라우드를 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데이비드는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풀며 나에게 따지듯 말했다.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마음껏 물어보세요.”

 “첫째로 인수 얘기는 뭡니까? 컨티뉴 캐피탈에 그만한 돈이 있습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은 없죠.”

 데이비드는 다시 물었다.

 “돈도 없는데 인수를 하겠다는 말은 왜 한 겁니까?”

 “돈이야 만들면 되죠.”

 “700억 달러를요?”

 “깎아야죠.”

 “700억 달러에도 안 팔겠다는 기업을 어떻게 말입니까? 그리고 깎아주면 살 수 있습니까?”

 절반으로 깎아도 350억 달러다.

 금액이 좀 크긴 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금액을 만들 수 있을지 나도 좀 궁금하다.

 “둘째로,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겁니까?”

 “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

 “그럼 사람 면전에 대고 얼간이라고 한 게 잘한 겁니까?”

 난 피식 웃었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요.”

 “예?”

 “그 둘은 실제로 얼간이니까요.”

 롤프 부치와 알렉스 프레스턴.

 두 사람 모두 천재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밝은 빛이라도 태양 앞에서는 빛이 바래는 법. 진짜 천재 앞에서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그저 얼간이일 뿐이지.

 내 얼굴을 쳐다보던 데이비드는 뭔가 눈치챈 듯했다.

 “설마 처음부터 계획했던 겁니까?”

 “예.”

 “어째서요?”

 “그래야 시드 루카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테니까.”

 훗날 시드는 쿨라우드 공동 창업자들을 얼간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지금 꾹 참고 있는 그의 눈앞에서 그들을 얼간이라고 불러줬으니 속이 뻥 뚫린 기분일 것이다.

 “그가 누군데 관심을 끌어야 합니까?”

 “천재죠.”

 나이는 어리지만 쿨라우드 창업 초창기 멤버다.

 원래 롤프 부치가 만든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가 쿨라우드를 창업하자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는 개발팀장으로, 롤프가 지시를 내리면 그걸 실행하는 역할이다. 사실상 롤프 부치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그는 쿨라우드를······ 아니, 전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만한 업적을 세운다. 전문가들은 그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되었다고 평가했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내가 회귀하기 전에 봤던 가상현실 게임 같은 건 나올 수도 없었겠지.

 “롤프 부치의 명성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실무는 시드 루카스가 전부 담당하고 있어요. 만약 그가 없으면 쿨라우드는 당장이라도 휘청거릴걸요.”

 쿨라우드는 분명히 대단한 기업이다.

 향후 클라우드 시장을 선도할 만한 유망한 기업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시드 루카스가 없어도 과연 그럴까?

 “직원 한 명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갈 거라는 겁니까?”

 “일반적인 회사라면 그렇지 않겠죠. 하지만 스타트업은 좀 다르잖아요.”

 스타트업의 경우 건물이나 공장 같은 유형적 자산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무형적 자산이다. 그리고 이 무형적 자산을 다루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쿨라우드의 경우 직원은 고작 90명에 불과한데 기업가치는 700억 달러가 넘는다. 단순 계산하면 직원 한 명이 대략 8억 달러가량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때문에 대기업이 인수할 경우에도 창업자와 직원 모두 일정 기간 회사에 남아서 일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시드라면 또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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