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쿨라우드 (2)
“그게 누군데?”
롤프의 물음에 알렉스가 설명해주었다.
“빅토리 인베스트먼트에서 일했던 투자자야. 굵직한 투자를 여러 건 성공시켰지.”
설명을 다 들은 롤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는 퇴물 아니야?”
“그렇게 우습게 볼 만한 사람은 아니야. 제법 실력이 있으니까.”
“회사가 망했다며? 그런데 실력이 있다고?”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야.”
알렉스는 집안이 집안인 만큼 월가의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접할 수 있었다. 때문에 빅토리 인베스트먼트 파산 경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설마 투자 받으려고?”
“아니.”
알렉스는 큰형이 그를 고용하기 위해 수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렸다는 것까지.
영입에 실패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설마 실리콘밸리에 나타날 줄이야.
‘대체 어느 정도 실력을 지녔기에 그렇게까지 해서 손에 넣으려 했던 거지?’
형이 갖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보통 실력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호기심이 일었다.
‘내 사람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만약 데이비드 록허트가 자신의 사람이 된다면 큰형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힘들게 여기까지 왔을 텐데, 한 번 만나주는 게 어려울 건 없지.”
* * *
다행히 만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는 아이버를 불러 타고 산호세에 있는 쿨라우드의 본사로 향했다.
외관은 창고 같이 생겼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층고가 높고 사방이 탁 트여있었다. 우리는 바로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잠시 기다리자 두 명의 백인 청년이 들어왔다.
알렉스 프레스턴.
나이는 27세로 나와 동갑이다.
키는 무려 195센티. 남자답게 생긴 얼굴. 어깨는 떡 벌어져 있고 팔뚝은 우람하다. 하버드대 미식축구팀 쿼터백으로 활약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1회차 때 투자자가 되지 않았다면 미식축구 선수가 됐을 거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직접 만나보니 운동선수를 해도 잘했을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남자는 롤프 부치.
나이는 29세.
알렉스보다는 좀 작지만 그래도 183센티의 키에 훤칠한 미남이다. 금발에 푸른 눈. 그가 실리콘밸리의 스타가 된 데에는 천재적인 실력뿐 아니라 외모도 한몫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생겼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사람 자체가 시기심이 많고 경박해 보이는 느낌이다. 그건 내가 그에 대해 알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둘 다 나이에 비해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뭐, 나보다 돈 많으면 다 어른이지.
한국에서 재벌가 자제들이 온갖 사고치고 다니는 사이, 미국에서는 이런 젊은 창업자들이 신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알렉스는 나와 데이비드를 보며 물었다.
“빅토리 인베스트먼트를 나왔다고 듣긴 했는데 새로 투자사를 만들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다.
데이비드 록허트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 아마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을 거다.
얜 뭔가 싶겠지. 가만히 있으면 그냥 돈 많은 동양인처럼 보이려나?
남들의 눈에는 내가 자본을 대고, 데이비드가 회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일 거다.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고.
데이비드는 미리 준비해온 대로 대답했다.
“신생 투자사입니다. 현재는 벤처캐피탈을 위주로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자산 규모는 어느 정도 됩니까?”
“현재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LP 중 알 만한 곳이 있습니까?”
“그 부분은 아직 밝힐 만한 단계가 아닙니다.”
LP란 리미티드 파트너(Limited Partner).
투자회사에 돈을 투자하는 투자자들을 일컫는다. 유명 투자자가 차리는 펀드사의 경우 아예 국부펀드나 연기금이 나서서 돈을 대준다.
유명한 LP에 투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투자사의 가치가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컨티뉴 캐피탈은 투자 받은 게 없으니 밝힐 수도 없다.
몇 가지 질문을 한 알렉스는 대충 파악이 끝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 차례다.
“쿨라우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알렉스가 설명해주었다.
“쿨라우드는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플랫폼입니다. 기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쉽게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기업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는 클라우드 안에 모인다. 이 정보를 취합해 분석하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때문에 현재는 IT기업이 아니더라도 모든 기업이 클라우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많지 않나요?”
AMZ의 ZWS, NS의 아이저, 구블의 빅스토리지.
전 세계 클라우드 시장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빅3 역시 자체적인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기업들에게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AMZ는 온라인 쇼핑몰 회사이고 NS는 윈도어즈와 오피스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이 두 기업의 매출 과반은 클라우드 사업에서 나온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이유는 클라우드 사업이 주로 B2B로 이뤄지기 때문.
“쿨라우드의 장점은 강력한 호환성입니다. 이를 위해 클라우드 빅3는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는 가장 저렴하고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롤프는 잘난 척하듯 말했다.
“전부 미네르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미네르바는 쿨라우드의 핵심 프로그램이자 쿨라우드가 운영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미네르바에 대해 알고는 있는데, 직접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어려울 것 없죠.”
그는 자신 있게 설명해주었다.
“미네르바는 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입니다. 쿨라우드의 핵심 기능이라 할 수 있죠.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괏값은 전혀 달라집니다.”
통계를 낼 때 표본을 잘못 수집하고, 해석을 잘못하면 전혀 뜬금없는 결과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는 말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이 적지에서 살아 돌아온 전투기를 분석해보니, 대다수가 날개와 몸체에 총격을 받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투기 날개와 몸체를 보강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나, 한 통계학자만은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총격을 전혀 받지 않은 엔진과 조종석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날개와 몸체에 충격을 받은 전투기는 살아 돌아왔지만, 엔진과 조종석에 총격을 받은 전투기는 격추당해서 귀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표본을 잘못 수집해 잘못된 결론을 낸 케이스다.
이와 비슷한 예는 요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의 한 배달 앱에서 주문자 통계를 냈는데 2~30대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 통계만 보면 여성들은 배달을 잘 안 시켜 먹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남녀가 집이나 숙소에서 같이 시켜 먹을 경우 주문은 주로 남자가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직장이나 모임에서 단체로 시키는 경우 보통 상급자가 사는데, 이 경우에도 남자가 많다. 그리고 홀로 사는 여성의 경우 범죄와 사생활 노출을 우려해 성별을 남자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단지 통계만 보고 여자들은 배달 앱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바로 딥러닝이 가능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입니다. 일일이 보정값을 입력할 필요 없이 그 상황을 판단해 정확한 분석을 내리죠. 초기에는 오류가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학습하며 지금은 전문가들보다 더 정확한 결괏값을 제공합니다.”
난 감탄하며 물었다.
“만약 회사 가치가 100이라고 한다면 그중 미네르바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롤프는 웃음을 지었다.
“50 이상입니다. 미네르바 없이는 쿨라우드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반면 미네르바만 있다면 새로운 쿨라우드를 만들 수도 있겠죠.”
대단한 자신감이다.
미네르바 개발자라면 이 정도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하지.
“프로그램 이름을 미네르바로 지으신 이유가 있나요?”
“알다시피 미네르바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죠. 제가 만든 프로그램에 딱 어울리지 않나요?”
“그러네요.”
사실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하나 있다. 이걸 내가 말해주면 깜짝 놀라겠지?
알렉스가 덧붙였다.
“한번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은 쿨라우드를 떠나지 않습니다. 저희는 1천 개가 넘는 고객사를 확보했고, 그중에는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가 넘는 기업들도 여럿입니다. 내년에는 이 두 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게 허황된 목표가 아니다.
제조업이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서는 공장도 두 배로 짓고 사람도 두 배로 뽑아야 한다.
그러나 클라우드 기업은 공장도 사람도 필요 없다. 그저 고객을 감당할 수 있는 서버 자원만 확보하면 된다.
들으면 들을수록 탐이 나는 기업이다.
그러니 더 성장하기 전에 내가 인수를 해야겠지.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쿨라우드에 투자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투자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단순 지분투자가 아니라 쿨라우드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설마 인수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는지 둘은 살짝 놀라는 듯했다.
알렉스는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인수가는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700억 달러는 어떻습니까?”
별로 웃긴 얘기는 아닌데 롤프는 소리내서 웃었다.
“하하! 고작 700억 달러요?”
알렉스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회사를 팔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판다 하더라도 700억 달러라는 헐값에 넘길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700억 달러가 헐값이라니.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레드스톤의 투자를 엎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슬쩍 보니까 데이비드도 내심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돈도 없는데 뭔 인수?’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한테 700억 달러가 없긴 하지.
“그럼 얼마라면 회사를 파시겠습니까?”
“글쎄요. 1000억 달러 정도 되면 한번 생각해볼 수는 있겠네요.”
실제로 내년에 상장하자마자 1800억 달러가 넘는 가치를 평가받으니 그다지 허황된 얘기는 아니다.
물론 그전에 대규모 투자를 한 차례 받고 30퍼센트의 신주를 발행한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상장을 하며 두 사람은 구주를 처분해 지분율을 각각 20퍼센트 수준으로 낮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세계 최대 부자 순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 충분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인수는 무리겠네요.”
“혹시 투자를 받을 일이 생긴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신주를 발행할 때쯤 투자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기업가치가 지금보다 3배는 올라있을 거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건 바보짓이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이 기업을 인수할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온 김에 회사를 한번 둘러볼 수 있을까요?”
알렉스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따라오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