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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퍼플게임즈 (2) (49/529)

 49화. 퍼플게임즈 (2)

 찰스가 거절하려는데 청년은 한마디 덧붙였다.

 “100만 달러는 어디까지나 지분인수에 대한 비용입니다. 원활한 개발을 위해 100만 달러를 개발비로 지원하겠습니다. 부족할 경우 추가 투자도 생각 중입니다.”

 그 말에 찰스와 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사실 인력 부족은 항상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사람만 있으면 개발을 훨씬 빨리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제 생각에는 개발 규모를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블록 밸리는 강력한 자유도가 핵심입니다. 어쩌면 게임 내에서 여러 도구를 활용해 게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플레이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하면 게임 세계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찰스는 깜짝 놀랐다.

 ‘게임 내에서 게임을 만든다고?’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샌드박스 게임은 게임 내에서 모든 걸 만들어낼 수 있다. 지형물은 물론 몬스터나 캐릭터 같은 NPC까지.

 그렇다면 이를 활용해 새로운 게임을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게임 내의 게임이라······.’

 어쨌거나 이 정도면 게임 지분의 50퍼센트를 넘기는 게 아깝지 않았다.

 찰스와 켄이 흥분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는데, 상대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찰스는 그에게 물었다.

 “뭡니까?”

 “첫째는 이후 추가로 지분을 매각할 땐 컨티뉴 캐피탈이 우선협상자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구요?”

 “둘째는 독점 퍼블리셔권을 얻고 싶습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은 당황했다.

 게임회사는 크게 개발사와 유통사(Publisher)로 나뉜다.

 개발사는 게임을 개발해 완성하고, 유통사는 그렇게 완성된 게임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규모가 큰 게임회사들의 경우 자체적으로 퍼블리싱을 하지만, 소규모 게임사들은 대부분 유통사에 위탁해 판매한다.

 또한 자국 내에서는 직접 서비스하더라도 번역, 현지화, 규제, 서버 관리 등의 문제로 해외 진출시에는 현지 유통사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

 유통사는 판매뿐 아니라 운영, 번역, 홍보, 이벤트, 서버 관리 등을 하고, 개발과정에서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ESD의 발달로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서비스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더 큰 흥행을 위해서는 여전히 유통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같은 게임이라도 어떤 유통사가 서비스하느냐에 따라 수익은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좋은 게임이라도 유통사를 잘못 만나면 망할 수도 있다.

 찰스는 물었다.

 “컨티뉴 캐피탈에 퍼블리싱을 할 만한 회사가 있나요?”

 “지금은 없습니다.”

 그는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퍼블리싱할 능력도 없으면서 권한을 달라고 하다니!”

 한미루는 차분하게 말했다.

 “진정하세요. 지금은 없지만 나중에 생길 겁니다.”

 “뭐라구요?”

 “게임이 완성될 시점에 전 세계적 유통망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된다면, 퍼블리싱 계약은 파기해도 좋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200만 달러를 투자하는 입장에서 퍼블리싱을 제대로 못 해 게임이 잘 안 팔리면 저도 손해니까요.”

 찰스와 켄은 눈빛을 교환했다.

 “잠시 저희끼리 상의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둘은 함께 밖으로 나가 작업실에 남아있는 루퍼스에게 전화해 상황을 얘기했다. 설명을 들은 루퍼스는 흥분하며 말했다.

 [뭐!? 200만 달러? 뭘 하고 있어? 당장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고? 어서 지분을 넘기고 돈을 받아와! 오는 길에 그 돈으로 커피랑 케밥 좀 사오고!]

 이 얘기를 들으니 배가 고프긴 했다.

 동료의 동의를 얻은 찰스는 자리로 돌아와서 말했다.

 “좋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데이비드는 미리 준비해온 계약서를 꺼내들었다.

 찰스가 대표로 꼼꼼히 계약서를 검토해보았지만,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공동대표로서 사인을 했다.

 “투자금은 오늘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예.”

 찰스는 문득 궁금해졌다.

 벌써 3년이나 개발에 매진했지만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 사람은 투자하기로 결정한 걸까?

 “왜 우리 게임에 투자하기로 한 겁니까?”

 그의 물음에 한미루는 웃으며 말했다.

 “그 게임, 대박 날 것 같아서요.”

 * * *

 스타트업 투자가 뽑기라면, 인디 게임 투자는 그야말로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쏟아지는 인디 게임들 중 성공하는 건 100개 중 하나가 아니라, 1천 개 중 하나, 1만 개 중 하나가 될까 말까다.

 그런데 가끔 바늘구멍 같은 가능성을 통과해 대박을 터트리는 게임도 존재한다. 지금은NS에 인수된 마이 크래프트가 대표적이다.

 현재는 마이 크래프트가 샌드박스 게임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몇 년 후면 달라진다.

 블록 밸리(Block Valley).

 찰스 그리핀, 켄 어틀리, 루퍼트 베일리가 개발한 이 게임에 위챈트는 200만 달러를 투자해 50퍼센트의 지분과 퍼블리셔권을 확보한다.

 1년 후 출시된 게임은 첫 해에만 2천만 장이 넘게 팔리며 인디 게임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둔다.

 스토리가 짜여 있는 다른 게임과는 달리, 블록 밸리는 유저들이 게임 안에서 게임을 만들며 세계를 무한히 확장해나갈 수 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3억 명이 즐기는 하나의 게임 플랫폼으로 성장한다.

 이후 퍼플게임즈는 블록게임즈로 이름을 바꾸고, 나스닥에 상장해 첫날에만 400억 달러를 넘는 시총을 기록한다.

 단 하나의 게임이 이뤄냈다고는 믿기지 않는 성과였다.

 당장 내년 상반기쯤 게임의 윤곽이 드러나면 여러 회사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달려들 것이다.

 향후 시장의 핵심이 될 게임의 지분 50퍼센트를 사들였고, 퍼블리셔권까지 얻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다.

 하지만 아직 일이 끝난 건 아니다.

 상장 전에 추가로 지분을 인수할 계획이니까. 유통사도 마련해야 하고.

 뭘 살지는 이미 정해 놓았다. 아직은 돈이 없을 뿐이지.

 “다음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실리콘밸리요.”

 * * *

 실리콘밸리.

 누구나 아는 곳이지만 실제로 미국에 이런 지명은 존재하지는 않는다.

 보통 샌프란시스코 남부의 산호세, 레드우드 시티, 팔로 알토 등의 도시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정확한 범위 역시 말하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이곳은 미국 첨단산업의 산실이자, 세계 유수의 IT기업과 스타트업들이 모여있는 곳. 유성전자나 LK닉스 같은 한국 기업들도 지사를 두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집값과 렌트비도 나날이 치솟고, 연 10만 달러 벌면 불우이웃 취급을 받을 정도다.

 그럼에도 창업지원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고, 필요한 인재를 구하기가 쉬운 만큼 창업자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갈까 하다가 차를 렌트해서 가기로 했다. LA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지는 캘리포니아 1번 국도는 드라이빙 코스로 유명하다.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데이비드는 내 옆에 앉았다.

 차를 몰고 달리자 따뜻한 햇살과 투명한 바다가 우리를 반겼다. 도로 옆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장관이다.

 이러고 있으니 벌써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인데,

 한창 좋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데이비드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이런 방식의 투자가 잘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런 방식의 투자가 뭔데요?”

 “펍에서 먹은 햄버거가 맛있다고 투자하고, 영화를 좋아한다고 영화사에 투자하고, 게임이 재미있다고 게임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하는 겁니다.”

 “에런 베이커 회장님이 말씀하셨죠. 자신의 취향과 관심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라고.평소 코카콜라 좋아해서 코카콜라에 투자해 대박치셨잖아요.”

 “그리고 평소 즐겨 드시던 케첩 회사에 투자했다가 130억 달러의 손실을 봤죠.”

 “뭐······.”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투자자라도 실패할 때가 있기 마련이지.

 사실 그가 우려하는 건 당연하다.

 나야 미래를 알고 움직이는 거지만, 그가 보기에는 기분 내키는 대로 투자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서 이번에는 누구나 알 만한 기업에 투자할 생각이니까요.”

 “어딘가요?”

 “쿨라우드라는 회사 아세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역시 아시네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이니까요.”

 이름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듯 클라우드 기업이다.

 클라우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훨씬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우리가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도 알고 보면 클라우드에 접속하는 행위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자와 이용시간이 늘어나며 클라우드 시장 역시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렇다 보니 실리콘밸리에는 관련 기업들이 넘쳐났다.

 스타트업 창업 업종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선두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한 이 시장에서 최근 가장 급성장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쿨라우드.

 “그 기업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

 “4개월 전쯤 레드스톤이 투자 의향을 밝혔습니다. 지분 20퍼센트를 인수하는 대가로 140억 달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 기업가치는 700억 달러 정도 하겠네요.”

 “하지만 투자는 협상 과정에서 무산됐습니다. 쿨라우드 측에서 엎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유는요?”

 “너무 싸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경영자들은 그 두 배를 불렀다고 하더군요. 지금의 성장세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그렇군요.”

 그 말대로다.

 쿨라우드는 내후년 초에 상장하는데, 첫날 몸값은 2800억 달러로 치솟는다. 이게 어느 정도 규모냐면, 코스피에 상장했으면 유성전자에 이어 바로 시총 2위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엄청 싼 가격이다. 만약 내가 돈만 많았다면 기꺼이 두 배를 내고서라도 인수하겠지.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쿨라우드에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예.”

 현재 내가 가진 돈은 1억 700만 달러.

 이 돈을 다 쏟아부어 봐야 1퍼센트도 못 산다. 그것만 사도 대박이긴 하다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힘들 겁니다.”

 “어째서요?”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은 유서 깊은 금융재벌 프레스턴 가문의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유명 IT재벌입니다.”

 “본인들 자본만으로 충분하다는 건가요?”

 “예. 유수의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IT기업들의 투자 제안을 전부 거절했습니다. 투자를 받더라도 몸값을 최대한 키운 다음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레드스톤의 제안 역시 거절한 거겠지.

 “투자자들이 줄을 서 있다면 신생 투자회사의 투자를 받아줄 가능성은 더더욱 적겠네요.”

 “그럴 겁니다.”

 뭐,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남들도 똑같이 생각하기 마련이지.

 “되든 안 되든 일단 자리 한 번 마련할 수 있겠어요?”

 비록 지금은 망했지만, 그에게는 빅토리 인베스트먼트에서 일하며 쌓아놓은 인맥과 명성이 있다.

 자리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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