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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비행기 사고 (3) (40/529)

 40화. 비행기 사고 (3)

 한 10분 정도 멍하니 앉아있는데 정장을 입은 두 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누구세요?”

 “국토안보부 소속 조사관 에디 가렐입니다.”

 “테레사 밀러입니다.”

 난 그들에게 인사했다.

 “전 한미루라고 합니다. 한국인이에요.”

 두 사람은 내 맞은편에 앉았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난 단호하게 말했다.

 “변호사와 통역 없이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겠습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난 웃으며 말했다.

 “가벼운 조크였습니다. 변호사도 통역도 없어도 되니 편하게 질문하세요.”

 조크가 별로 재미없었는지 가렐 조사관은 인상을 찌푸렸다.

 밀러 조사관이 질문했다.

 “애틀랜타에는 무슨 목적으로 왔습니까?”

 “관광하러 왔습니다.”

 “올랜도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디즈니랜드에서 생일파티 하려구요.”

 “생일파티요?”

 “예. 여권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생일은 내일이지 않습니까?”

 “한국 시간으로는 오늘입니다.”

 “누구랑 생일파티를 할 예정이었습니까?”

 “혼자서요.”

 “예?”

 “왜요? 혼자서 생일파티 하면 안 되나요?”

 “······.”

 표정을 보니 이제까지 그래 본 적 없는 모양이다.

 둘 다 인싸인가?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종교를 믿고 있습니까?”

 “무교입니다.”

 “이제까지 어떤 종교도 믿은 적이 없다는 겁니까?”

 “혹시 이슬람교를 믿냐고 물어보는 건 아니죠? 수니파냐 시아파냐 뭐 이런 거.”

 “묻는 말에 대답하세요.”

 난 묻는 말에 대답했다.

 “기독교 세례를 받은 적은 있습니다.”

 “크리스천입니까?”

 “무교라니까요.”

 “그럼 세례는 왜 받았습니까?”

 “초코파이와 코카콜라를 줬거든요.”

 농담한다고 생각하는지 두 사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 때문에 세례를 받았다는 겁니까?”

 “한국 군대에서는 다 그래요. 미국 군대는 초코파이 안 주나요?”

 “······.”

 혹시 햄버거 주나?

 밀러 조사관이 물었다.

 “미국에서의 행적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일단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고, 14시간 걸려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호텔로 이동해서 짐을 풀었고······.”

 난 이틀 동안 어디를 갔는지 뭘 먹었는지까지 일일이 말했고, 가렐 조사관은 노트북에 받아 적었다.

 얘기가 다 끝나자 밀러 조사관이 다시 물었다.

 “방금 한 얘기를 거꾸로 한번 해보세요.”

 “예?”

 “어려운가요?”

 “아니요. 어려울 게 뭐 있나요?”

 만약 지어낸 얘기라면 거꾸로 말해보라고 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겪은 일이라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

 난 이제까지 얘기한 일정을 거꾸로 술술 읊었다.

 “제 핸드폰 보시면 카드 결제 내역과 사진들이 있을 겁니다.”

 밀러 조사관은 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열어주실 수 있습니까?”

 “예.”

 난 지문으로 핸드폰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사진첩을 훑어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관광을 하며 찍은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내 일정을 자세하게 묻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난 대놓고 물어보았다.

 “설마 절 테러범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봐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할 뿐입니다.”

 “혹시 그 다양한 가능성에 제가 테러범일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나요?”

 두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면 아니라고 왜 말을 못 해!

 사실 내가 투자를 안 한 건 이것 때문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알려질 경우 자작극이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의심받을 짓은 안 하는 게 좋지.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제가 테러범이라면 폭탄을 설치해놓고 왜 비행기를 돌리라고 했겠습니까?”

 “마지막 순간 두려워서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죠.”

 “요즘 테러범들은 근성이 없는 모양이네요.”

 밀러 조사관이 말했다.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그 비행기에는 마크 필립스 상원의원과 가족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난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누구요?”

 “마크 필립스 조지아주 상원의원이요.”

 “아! 아까 그분이 상원의원이었나 보네요. 어쩐지 사람들이 놀라던데.”

 국회가 하나인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 있다.

 주별 인구수로 배분되는 하원의원과 달리, 상원의원은 인구수와 상관없이 주마다 두 명씩 배정된다.

 따라서 상원의원의 숫자는 총 100명.

 그중에서도 마크 필립스는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졌을 만큼 유명한 정치인이다. 만약 그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면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하필 상원의원과 가족들이 탄 비행기의 엔진이 폭발했습니다. 우연히도 그 비행기에 탄 승객이 내리겠다고 한 덕분에 모두 무사할 수 있었구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테러 가능성을 의심하시는 거군요. 이해합니다.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겠습니다. 궁금한 거 마음껏 질문하세요.”

 가렐 조사관이 계속해서 물었다.

 “엔진 이상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소리가 났으니까요.”

 “항공기 관련해 일한 경력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엔진음만 듣고 알아챘다는 겁니까?”

 “제가 귀가 좀 밝아서요.”

 “잠깐 듣고 엔진에 문제가 있다는 걸 확신했다구요?”

 “처음엔 저도 긴가민가했는데, 옆에 앉아있는 사람도 이상하다고 해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공군 정비사라고 밝혔습니다. 물어보면 아실 겁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물어본 모양이다.

 계속해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얼굴을 내민 여성이 말했다.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제가 없다면 금방 나가게 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천천히 일 보고 오세요.”

 * * *

 상원의원이 탑승한 비행기의 엔진이 폭발했다.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브릿지월드 항공의 본사가 있는 만큼, 조사는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졌다.

 “엔진을 조사를 해봤지만 폭발물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엔진 내부과열로 인해 폭발이 난 것 같습니다.”

 테레사 밀러가 물었다.

 “브릿지월드 항공사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정비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전부터 좌측 엔진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비행 전에 수리를 했어야 했는데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미뤘다고 합니다. 엔진 센서에도 이상이 있어서 경고등도 뜨지 않은 모양입니다.”

 “기체결함이라는 건가요?”

 사고조사를 맡은 담당자는 신중하게 말했다.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정비 불량으로 인한 기체결함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옆자리에 함께 앉은 공군 정비사 역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에디 가렐은 서류를 훑어보았다.

 한미루가 애틀랜타에 온 것은 이틀 전.

 CCTV를 확인해본 결과 공항에는 두 시간 전 도착했고, 당연히 비행기에는 어떠한 접근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조금의 혐의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운이 좋았군.’

 만약 저 청년이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필립스 상원의원이 애틀랜타 공항 책임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의원님!”

 테레사 밀러가 물었다.

 “가족들은 괜찮으십니까?”

 “딸들이 좀 놀라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그보다 조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고조사 담당자는 이제까지의 조사결과를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필립스 상원의원이 물었다.

 “만약 그대로 출발했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이륙 직후에 엔진이 터졌을 겁니다.”

 “그다음은요?”

 “고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쪽 엔진을 잃으면 비상착륙은 힘들었을 겁니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승객 70퍼센트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는 그와 그의 가족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하마터면 행복한 가족여행이 끔찍한 참사가 될 뻔했다.

 필립스 상원의원은 매직미러 너머에 앉아있는 동양인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청년이 우리 모두를 살렸군요.”

 * * *

 조사관들은 내 핸드폰과 여권, 지갑을 돌려주었다.

 “이제 조사는 끝난 건가요?”

 밀러 조사관이 말했다.

 “예. 정비 불량으로 인한 기체결함임을 확인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불쾌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국가안보를 위해 당연히 협조해야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그리고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난 조사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담당자는 나를 휴게실로 안내해주었다. 그곳에는 아까 비행기에 타고 있던 탑승객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등장하자 그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짝짝짝!

 아까 나를 비난하고 욕했던 사람들은 마치 반성이라도 하듯 더욱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대로 비행기가 출발했다면 모두가 죽었을 테니까.

 필립스 상원의원이 앞으로 나섰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저와 우리 가족을, 그리고 모두를 구했습니다.”

 난 겸손하게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입니다.”

 그의 뒤에는 아내와 두 딸이 함께 있었다.

 그의 아내는 러시아 출신 모델 출신으로 늘씬한 키와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그리고 그 미모는 딸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20대 초중반의 자매는 둘 다 빼어난 외모였고,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자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큰딸의 이름은 엘레나, 작은딸은 리아나다. 둘 다 나중에 아버지만큼이나 유명해진다.

 필립스 상원의원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우리 모두의 영웅입니다. 혹시 원하는 게 있습니까?”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 언론에 제 신상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 시점에서 유명세를 얻는 게 앞으로의 일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어째서입니까? 지금 수많은 기자들이 승객들을 구한 영웅을 인터뷰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 일부러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부끄러움이 좀 많아서요. 혹시 제 사진을 찍으신 분들은 언론이나 SNS에 올리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필립스 상원의원이 말했다.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언론에는 신상이 나가지 않도록 제가 조치하겠습니다.”

 승객들은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할 테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겠지.

 난 이어서 크리스를 가리켰다.

 “처음 엔진음이 이상하다고 말했던 건 이분입니다. 여러분들을 구한 진정한 영웅은 제가 아니라 크리스입니다.”

 내 말에 크리스는 당황했다.

 “아, 아니. 난 별로 한 게 없는데.”

 실제로 이번에는 한 게 없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했으니까.

 짝짝짝!

 승객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박수를 쳤고,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민머리를 매만졌다.

 필립스 상원의원은 새삼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엘레나와 리아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나 표창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마크 필립스와 그의 가족들을 구해줬다는 사실 그 자체니까.

 난 내 앞에 선 40대 중반의 백인남성을 보았다.

 조지아주 상원의원 마크 필립스.

 한국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조만간 모두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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