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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유성그룹 회장 (2) (32/529)

 32화. 유성그룹 회장 (2)

 CMIC(청신국제집성전로제조).

 중국 최대 파운드리 회사로 홍콩증시에 상장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영기업이다.

 반도체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첨단산업의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반도체 부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반도체 국산화를 목표로 5년 전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후발주자가 가장 빠르게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인수합병.

 그렇게 먹어 삼킨 기업 중 하나가 바로 동우정밀이다.

 CMIC는 동우정밀을 인수한 뒤 NIL 장비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이미 EUV가 기술적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기술에 큰돈을 투자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중국은 사정이 좀 달랐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약진을 경계한 미국이 각종 제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국 반도체 업체들과의 거래를 금지시키는 한편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력은 세계 최고.

 특히 제조 관련 핵심기술은 상당수 미국이 가지고 있는 터라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조치들이 중국의 반도체 자립 열망에 더욱 불을 지폈다.

 오죽하면 린위샹 국가주석까지 나서서 ‘중국의 미래는 반도체에 달려있다. 하루빨리 세계 반도체 기술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미국과 유럽의 특허를 피한 대체 기술의 개발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동우정밀에 투자를 한 거고.

 처음에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쓸 용도였으나 기술 개발 과정에서 시스템 반도체에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동우정밀이 먼저 NIL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자, 다른 반도체 제조기업들 역시 뒤따라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여기에는 유성전자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NIL은 5nm 이하 공정에서 표준기술로 자리 잡힌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CMIC는 자신들의 핵심기술을 침해했다며 유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걸었다.

 소송가액은 무려 1천억 달러.

 이는 ‘세기의 반도체 소송’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과는?

 CMIC의 완승, 유성전자의 완패였다.

 무려 3년을 끈 이 소송에서 유성전자는 CMIC에 배상금 200억 달러에, 10년간 로열티로 300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한다.

 한화로는 무려 55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특허소송의 승소로 노광장비 분야의 독점업체가 된 CMIC는 이후로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상대로 갑질과 특허소송을 벌이며 유성전자와 LK유닉스를 압박했다.

 이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승승장구했고, 중국은 한국과 대만을 제치고 미국 다음가는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한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이 특허소송에서 가장 쟁점이 된 ‘NIL 미세공정 핵심기술’의 특허를 처음 출원한 회사가 다름 아닌 동우정밀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특허는 어떻게든 우회할 방법이 있었지만 이것만은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XRT세미콘의 동우정밀 인수가 중국 반도체 성장, 그리고 한국 반도체 몰락의 계기였던 셈이다.

 유재호 회장이 이를 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우정밀을 인수하겠지만, 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

 “동우정밀이 NIL에 뛰어난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NIL은 EUV에 비해 공정이 간단하고 단가가 저렴하죠. 하지만 미세공정에 필요한 건 EUV입니다.”

 EUV는 광원으로 회로를 그리는 방식인 반면, NIL은 마치 실크프린팅을 하듯 인쇄를 하는 방식이다.

 웨이퍼에 직접 접촉하는 방식인 만큼 그 과정에서 마모나 오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미세공정에는 활용되지 않는다.

 유재호 회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기술이 얼마나 쓸모 있냐는 다른 문제죠.”

 좋은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아이디어들 중 상용화된 게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 좋다고 생각하는 기술들도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형편없다고 여겨졌다. 아이디어를 기술로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한다.

 동우정밀이 지닌 NIL 기술이 미세공정에 쓰인다는 것은 이러한 기술적 난제를 해결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냐면······.

 “······.”

 내가 어떻게 알아?

 미래를 안다고 해도 그런 것까지 알 리가 있나?

 내가 아는 거라고는 그저 NIL이 EUV를 이기고 향후 기술표준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뿐이다. 그로 인해 유성전자가 CMIC에게 특허소송을 두드려 맞는다는 것도.

 이 자리에서 회귀 사실을 커밍아웃(?)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말로 설득해야 한다.

 “지금 쓰이는 기술 중 상당수는 과거에 상용화가 어려울 거라 여겨졌습니다. 당장 노광장비만 해도 기존 업체들은 EUV 기술이 상용화가 불가능할 거라 판단하고 R&D를 포기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과거 노광장비의 강자였던 캐논과 니콘은 이머전 Arf 기술개발을 소홀히 했고, 그로 인해 시장에서 밀려났다.

 CMIC가 NIL을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활용하기 시작한 건 동우정밀 인수 후 1년 반 뒤.

 즉, 지금으로부터 3년 후면 장비가 나오고, 또 2년 후면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 10nm이하의 미세공정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한다.

 현재 유성전자의 반도체 기술력은 CMIC보다 몇 단계나 우위에 있다. 유성전자가 인수해 개발에 나선다면 이 기간은 훨씬 단축될 것이다.

 혹시라도 역사가 바뀌는 바람에 기술 개발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손해 볼 건 없다.

 적어도 CMIC에 특허소송을 당해 500억 달러를 물어내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난 학창 시절 배운 내용을 떠올렸다.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좋은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다. 반대로 좋은 계획이 너무 많아서다.

 어떤 기업은 적기에 투자를 안 해서 망하고, 어떤 기업은 투자를 너무 많이 하다가 망한다. 동우정밀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어느 기업이든 자금과 인력,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주어진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방법을 찾는 게 경영자가 할 일이다.

 1회차 때 유재호 회장은 동우정밀을 못 보고 지나쳤고, 그로 인해 유성전자는 위기에 빠졌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던 유재호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얘기 즐거웠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만 일어나봐야겠군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기회라는 게 있을 리 있나?

 그는 만남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아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그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유재호 회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윤아는 따라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뭘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난 그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오늘 얘기는 잘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번 검토해보겠습니다.”

 정말로 검토를 할지 안 할지, 하더라도 얼마나 주의 깊게 볼지는 모를 일이다. 그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니.

 그래서 난 한마디 덧붙였다.

 “어쩌면 그 기업이 편자의 못일 수도 있으니까요.”

 잡고 있는 그의 손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 * *

 우리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유성타운을 빠져나오고 나자 성윤아는 마치 참았던 숨을 내쉬듯 긴 숨을 내뱉었다.

 “하아!”

 꽤나 어려운 자리였던 모양인지 반쯤 탈진한 것 같은 표정이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성윤아는 나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설마 동우정밀 인수를 얘기하려고 유재호 회장을 만나려고 했던 거예요?”

 “예.”

 “그러니까 모든 게 계획된 거였군요. 처음부터 유성전자에 인수를 제안할 생각으로 동우정밀 회사채를 헐값에 산 건가요? 유성전자가 인수하면 회사는 살아날 테고, 그럼 회사채는 제값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맞아요.”

 “미루 씨도 동우정밀 회사채를 샀구요?”

 “예. 친구 살 때 같이.”

 사실은 130억 중 100억이 내 돈이지만.

 어느새 성윤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음, 화난 건 아니죠?”

 “화 안 났어요.”

 “······.”

 화난 것 같은데.

 “왜 미리 말 안 해줬어요? 깜짝 놀랐잖아요.”

 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만약 내 행동으로 인해 유재호 회장에게 찍히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입장이 곤란할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안 보면 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나중에도 계속 봐야 하니까.

 난 안심시켜주기 위해 말했다.

 “이번 일로 인해 유재호 회장이 윤아 씨를 안 좋게 생각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어째서요?”

 “동우정밀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이니까요.”

 내가 이렇게 자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철저한 전략 아래 진행되고 있다. 동우정밀을 인수한 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 가치는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CMIC가 본 걸 유성전자가 못 볼 리 없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던 성윤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그런데 반도체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지 몰랐어요.”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공부를 좀 했거든요.”

 사실은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아는 척 말하느라 고생했다.

 “고마워요. 윤아 씨 아니었으면 만나기 힘들었을 거예요.”

 성윤아는 웃음을 지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긴장했더니 갑자기 배가 고프네요.”

 슬슬 저녁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밥은 제가 사기로 했죠. 뭐 먹고 싶어요? 다 사줄게요.”

 “저 강남은 잘 모르는데. 추천해줄 만한 거 있어요?”

 난 별생각 없이 말했다.

 “근처에 떡볶이 맛있는데 있는데.”

 내 말에 성윤아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떡볶이요? 전 반차까지 쓰고 나왔는데, 지금 떡볶이로 때우겠다는 거예요?”

 말하고 나서도 아차 싶었다.

 난 재빨리 말했다.

 “그럼 스테이크는 어때요? 가끔 친구랑 가는 곳 있는데 거기 맛있어요.”

 성윤아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흐음, 어딘데요?”

 “아웃백이요.”

 “······.”

 좋아하는 거 맞지?

 그녀는 이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아까 한 말이 무슨 뜻이었어요?”

 “뭐가요?”

 “편자의 못이라는 거요.”

 “아! 그냥 서양 속담 같은 거예요.”

 “무슨 뜻인데요?”

 “못이 없으면 말에 편자를 달지 못하고, 편자를 달지 못하면 말을 잃죠. 말이 없으면 전쟁에서 질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구요.”

 “아하! 큰일을 위해서는 작은 일부터 챙기라는 뜻이네요.”

 “맞아요.”

 성윤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 말 듣는 순간 유재호 회장님 표정이 확 바뀌던데.”

 난 짐짓 모른 척했다.

 “그랬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완전 깜짝 놀라는 것 같았어요.”

 그럴 수밖에.

 이 속담이 유명해진 건 세기의 특허소송에서 CMIC에 패한 뒤, 유재호 회장이 전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 적혀있었기 때문.

 출처를 생각한다면 유재호 회장에게는 의미가 꽤 깊을 것이다.

 과연 이 말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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