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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동우정밀 (1) (27/529)

 27화. 동우정밀 (1)

 선우는 계좌를 보며 물었다.

 “이중 내 몫은 얼마지?”

 초기 투자금 중 3억은 내가, 2억은 선우가 댔다.

 비율로 보면 6대4다.

 “신용이야 니가 땡긴 걸로 하면, 대충 20억이 내 몫인 건가?”

 “니가 투자한 2억 아니었으면 신용을 그만큼 땡길 수도 없었어.”

 선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차피 일은 니가 다 했잖아.”

 “그렇긴 하지.”

 “나야 20억만 해도 땡큐지.”

 난 선심 쓰듯 말했다.

 “내가 100억 가질 테니, 니가 30억 가져.”

 선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진짜?”

 “응.”

 “나중에 딴말하지 마.”

 “알았어.”

 1회차 때 신세 진 게 있는데 이 정도 못 해줄까?

 “이 돈으로 뭐 하지? 차 한 대 뽑을까? 집 살까?”

 선우의 표정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2억이 한 달도 안 돼 30억이 됐다. 이 정도만 해도 전생에서는 만져본 적도 없는 큰돈이다.

 나 역시 예전이었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목표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개인한테는 엄청난 돈이지만 투자시장에서는 쥐꼬리만 한 수준이다.

 이제 겨우 뭔가 해볼 수 있는 도전해볼 수 있는 종잣돈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작 수십억 수백억으로 짤짤이 할 생각은 없다. 기왕 시작한 이상 적어도 수십조 수백조 원으로 놀아봐야지.

 난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너 여기서 돈 뺄래, 아니면 묻고 더블로 갈래?”

 선우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음, 30억이면 빼는 게 낫지 않을까?”

 “······.”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겠지.

 나도 회귀하지 않았다면 이랬을지 모르겠다. 30억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너, 꿈이 게임사 차려서 만들고 싶은 게임 만드는 거라며?”

 “응.”

 “이거 계속 투자하면 그 돈 내가 마련해줄게.”

 “진짜?”

 “전에 말했잖아. 에런 베이커 회장이 마을 사람에게 6만 배를 벌어다 줬다고. 그런데 이제 겨우 열 배 먹었는데 그만두려고?”

 선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30억의 6천 배면 18조인데?”

 “그 정도야 쉽지.”

 “혹시 또 다른 정보가 있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많아.”

 잠시 고민하던 선우는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좋아. 묻고 더블로 가!”

 * * *

 선우는 회사로 출근했고, 난 이 시기쯤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음 투자 대상을 물색했다.

 인터넷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증권사에서 일하다 보면 돈 많은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도 1억이나10억이 생기면 어디에 투자할지 상상을 해보고는 했다.

 그런데 막상 100억이 넘게 생기고 나니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지난번처럼 작전주에 투자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매일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금액을 한 번에 투자했다가는 바로 주가가 치솟을 것이다.

 작전주가 아니더라도 사놓고 있으면 10배 이상 오를 주식은 얼마든지 있다. 최소한 몇 년은 걸린다는 게 문제지.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장기투자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초단기투자에 매진할 생각이다.

 그래서 뭐가 좋을까?

 열심히 고민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나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 * *

 DA증권 리서치부서 대리 이동호.

 그는 심각하게 이직을 고민 중이었다.

 프리우스 사태의 여파로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해당 직원이 어떻게 부실을 알아냈고 무슨 목적으로 터트렸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다.

 금감원도 DA증권도 몰랐던 걸 일개 신입사원이 조사해서 알아냈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그동안 누구도 몰랐던 부실을 신입사원이 혼자 조사해서 알아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일로 인해 DA금융그룹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양정욱 전무까지 날아갔다. 때문에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했거나, 정보를 알려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한미루가 리서치부서 소속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의심의 눈길은 리서치부서 쪽으로 쏠렸다.

 윤영철 부장은 대기발령 났고 업무는 거의 정지상태나 다름없었다.

 직원들은 출근해서 벽만 쳐다보다가 퇴근했다.

 이동호는 한미루와 같은 학과 선배에, 평소 친한 사이였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다.

 둘이 어떤 관계냐, 프리머스 부실에 대해 무슨 대화를 나눴냐, 다른 금융사 사람들과 접촉을 한 적이 있냐, 금품이나 접대를 받은 적 있냐 등등.

 금융사는 돈을 다룬다는 특성상 대단히 보수적인 집단이다. 직원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건 뛰어난 업무 실력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이동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사고 치고 나간 놈은 어디서 뭘 하는지 연락도 잘 안 되고.’

 그 난리를 치고 나갔으니 금융회사나 대기업 취직은 불가능할 것이다. 대체 뭘 하며 살고 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해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전화를 걸었다.

 “너 이 자식, 요즘 어떻게 살아?”

 * * *

 난 퇴사 후 처음으로 동호 선배를 만났다.

 “여기예요, 선배.”

 내가 손을 흔들자 동호 선배는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연락도 제대로 안 하고. 뭐 하고 지냈어?”

 “나름 바쁘게 지냈어요.”

 “그래도 회사 다닐 때에 비해 얼굴이 좋아 보이는데.”

 “그래요?”

 하기야 그때는 눈 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눈 감기 바빴으니.

 “일은 안 할 거야?”

 “준비 중이에요.”

 그사이 130억을 벌긴 했지만, 제대로 된 투자회사를 차리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한다.

 우리는 오랜만에 맥주잔을 부딪쳤다.

 “이러고 있으니 학생 때 생각나네.”

 “그러게요.”

 “회사 다녀보니까 왜 다들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아. 그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었는데.”

 뭐, 그때는 시험과 학점이 걱정이었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요즘 회사생활이 힘든 모양이다.

 “회사 분위기는 어때요?”

 “알면서 뭘 물어? 너 그렇게 나간 뒤로 흉흉하다 못해 살벌해. 리서치부서 전체가 끈 떨어진 연이나 다름없는 신세야. 부장은 대기발령 났고. 알아서 퇴직하지 않으면 어디 한직으로 뺑뺑이 돌리다가 쫓아내겠지.”

 대표적인 양정욱 전무 라인이었으니 같이 갈려나간 모양이다.

 “어쩐지 요즘 리포트도 안 올라오던데.”

 “리포트 올려봐야 뭐 하겠어? 너 같으면 DA증권에서 파는 상품을 믿을 수 있겠냐? 펀드고 ELS고 안 팔리고, 예탁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어.”

 난 쓴웃음을 지었다.

 “남아있는 사람들만 고생이네요.”

 단번에 맥주를 들이켠 동호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너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많아. 더 늦게 터졌으면 진짜 손실이 감당이 안 되는 정도였을 테니. 그리고 사기 친 놈과 모르고 판 놈이 잘못이지. 그거 밝힌 놈이 무슨 잘못이겠냐? 잘했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요. DA증권은 괜찮을 것 같아요?”

 “어찌저찌 수습은 되는 모양이야. 그룹에서 지원해준다고 하니 망하진 않겠지. 하지만 조만간 지점들 몇 군데 폐쇄하고 구조조정할 거라는 얘기가 있어. 이러다가 나도 잘리는 거 아니야?”

 “잘리면 뭐 하실 거예요?”

 “고향 내려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선배 고향 서울이잖아요.”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농사지을 땅도 없어서 큰일이야. 나중에 농사짓게 땅이라도 좀 사놓을걸. 그동안 월급 때려 부어서 산 주식은 폭락하고. 더 이상 물타기 할 돈도 없어서 미치겠다. 혹시 레드홀 스튜디어 같은 주식 또 없나? 떡상할 주식 하나만 물면 바로 사표 쓰고 나올 텐데.”

 투자한 주식이 폭등해 사표 던지고 나오는 건 모든 직장인의 꿈이긴 하지.

 “힘내서 좀만 버텨봐요.”

 회사 차리고 나면 바로 데리고 올 생각이다.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한다.

 내가 1회차 때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사람 둘을 꼽아보자면, 바로 선우와 동호 선배다.

 선우는 별다른 일자리 없이 놀고 있던 나를 먹여주고 재워줬고, 동호 선배는 그 불길 속에서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

 만약 그때 죽었으면 지금 회귀도 못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동호 선배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맞다! 너 그거 알아?”

 “그게 뭔데요?”

 “니 입사 동기 성윤아 말이야.”

 “예.”

 “회장님 손녀라는데.”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헉!”

 그걸 어떻게 알았지?

 동호 선배는 나도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DA카드 양자은 상무님 외동딸이래. 재벌가 자제가 신입사원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는 가끔 들었지만, 설마 내 주변에도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너 성윤아랑 친하지 않아?”

 “친하긴요. 그냥 인사 정도 하는 사이죠.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본인 입으로 밝혔나?

 “이번에 인사이동 과정에서 새어나온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회사가 한 번 발칵 뒤집혔잖아.”

 난 성윤아를 떠올렸다.

 입사 동기라고 해도 1회차 때는 나와 별 인연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 프리머스 사태를 해결하며 제법 친분이 생겼다.

 그렇다고 친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잘 지내고 있겠지?

 동호 선배는 계속 술을 마시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요즘 시장이 아주 개판이야. 너 며칠 전에 코발트 게이트 터진 거 알지?”

 “예. 뭐······.”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지.

 “아니, 뭔 작전에 외교부까지 가담을 해? 이게 말이 되냐?”

 “그러게요.”

 “채권시장도 난리 났고.”

 “채권시장은 왜요?”

 “왜긴 왜야? 누구 때문이겠어?”

 “누구 때문인데요?”

 내 물음에 동호 선배는 날 빤히 쳐다보았다.

 “진짜 몰라서 물어?”

 “몰라서 묻는데요.”

 “너 때문이잖아.”

 난 그 말에 당황했다.

 “예? 왜 저 때문이에요?”

 “프리머스 사태로 그 난리가 났는데 회사채 시장이라고 멀쩡하겠어? 지금 모든 기관들이 가지고 있던 채권 점검하며 부실 CB와 BW를 내던지고 있어. 투매라고 해도 좋을 정도야.”

 “아······.”

 동호 선배는 소주를 마시며 계속 말했다.

 “지금 코스닥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자체가 중단된 상태나 다름없어. 아마 한계 기업들은 못 버티고 파산할걸.”

 프리머스 사태가 터진 뒤 한동안 회사채 시장은 얼어붙었고, 코스닥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채권시장은 기업의 중요한 자금조달 창구다. 이러한 시장이 얼어붙었으니 타격을 입은 회사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때 망한 기업들도 여럿 있었다.

 내가 이걸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원래는 2년 뒤에나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프리머스 사태가 지금 터지는 바람에 회사채 대란 역시 앞당겨진 건가?

 동호 선배의 말을 듣고 나자 뭔가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시기쯤 ‘그 회사’의 유동성 위기가 생겨나지 않았나?

 당시에는 어찌어찌 넘어갔는데 1년 뒤 결국 파산 위기로 내몰린다. 프리머스 사태가 지금 터졌으면 그 회사는 어떻게 됐지?

 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역시나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상환 못 해서 회사는 워크아웃, 주식은 거래정지 상태다.

 난 동호 선배에게 말했다.

 “동우정밀 회사채 가격 좀 알아봐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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