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코발트 게이트 (4)
박건휘는 항상 자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주식투자를 하며 꾸준히 수익을 내왔고, 이번 역시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다.
목표가가 5만 원이긴 하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팔고 빠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문제가 생겼다.
중흥경제신문 기사가 뜬 순간.
박건휘는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어!”
미래투자증권에서 일할 때, 떨어지는 칼날은 잡는 게 아니라고 배웠다.
그는 일단 바로 하한가에 매도를 걸었다. 하지만 이미 매수대기 물량이 500만 주 넘게 쌓여있는 상태.
이 물량이 전부 거래되기 전에는 파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작전주를 어떤 미친놈이 이 가격에 매수하겠는가?
그는 바로 미래투자증권에 있는 사촌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저 기사가 사실이에요?”
사촌형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몰라. 지금 창구마다 팔아달라고 난리야. 내 고객 중 한 명은 10억 넘게 넣었는데, 지금 난리 났어.]
“아, 아니. 전에는 사실이라고 했잖아요.”
[외교부 차관이 작전에 가담했을 줄 누가 알았나? 아! 미치겠네.]
“그럼······.”
[지금 정신없으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끊을게.]
사촌형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거래 없이 한 시간이 지났고 장이 끝났다.
박건휘는 그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내일은 하한가가 풀리겠지? 일단 시초가에 걸어놓고 바로 매도해야지.’
하지만 다음날도 하한가로 시작해 하한가로 끝났고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출근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회사를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박건휘는 회사에 전화해 말했다.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요. 며칠만 더 쉬겠습니다.”
그는 잠을 제대로 못 자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연일 계속되는 하한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초가를 하한가에서 시작한 주식은 종가 역시 하한가에서 끝났다. 차트를 보면 양봉이나 음봉이 아닌 그냥 파란색 점으로 찍혀 있었다.
‘대체 하한가가 언제 끝나는 거야?’
다음 날도 그랬고, 그 다음 날도 그랬다. 마치 영원히 내려가는 파란색 계단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한가를 맞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게 얼마나 충격과 공포인지 모른다.
1만 원이던 주식이 하한가를 한 번 맞으면 7천 원이 된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하한가를 맞으면 4천 9백 원이 된다.
단 이틀 거래만에 절반 이상이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이면 75퍼센트 이상이 날아간다.
38000원까지 찍었던 주식은 단 4거래일 만에 1만 원 아래까지 추락했다. 그동안 낸 수익은 이틀 만에 날아갔고, 그다음부터는 원금이 쭉쭉 까이기 시작했다.
손절을 하려고 해도, 하한가가 풀리지 않는 한 매매조차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체 내가 왜 이런 쓰레기 주식을 샀지?’
최근 기사가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걸 보고 매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강선우라는 놈이 전 재산을 투자해 샀기 때문이다. 그놈이 돈 버는 걸 보니 배가 아파서 따라서 샀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이런 젠장! 내가 왜 그놈 말을 들은 거지? 그 새끼만 아니었으면 이딴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이 와중에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혼자 날려먹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 나만 손실 본 건 아니잖아. 강선우도 번 돈 다 날렸을 거야.’
다행히 하한가 행진은 2300원에서 일단 멈췄다. 하한가가 풀리며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거래량은 폭증했다.
지금이라면 팔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손절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투자한 돈의 10분의 1도 건지지 못할 텐데.
돈을 날린 상실감과 후회감,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인해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흐흑. 내 돈······ 내 돈 돌려줘 개새끼들아. 어흐흑!”
전 재산이 날아갔어도 출근은 해야 했다.
박건휘는 보름 만에 힘겹게 집 밖으로 나왔다.
회사에 도착한 그는 제일 먼저 개발3팀으로 향했다. 강선우가 얼마나 날렸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서 피골이 상접해진 그와는 다르게 강선우는 제법 멀쩡해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아파서 쉬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
박건휘는 대답 대신 바로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선우 씨는 괜찮아요?”
“예. 뭐가요?”
박건휘는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아닌 척하기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은 자신처럼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 것이다.
“KNC인터내셔널 매일 하한가잖아요. 지금쯤이면 반대매매 당하지 않았어요?”
강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진작 다 팔았는데요.”
박건휘는 깜짝 놀랐다.
“뭐, 뭐? 다 팔았다고?”
“예.”
“거짓말하지 말구요. 계속 하한가였는데 어떻게 팔아요?”
“하한가 맞기 전에 팔았죠.”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자 옆에 있던 차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선우 씨 친구가 3만 6천 원쯤에 전부 팔았대요. 덕분에 저도 약간 벌었어요.”
다른 직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돈 번 기념으로 개발팀 전체에 피자 돌렸잖아요.”
“그런데 다음 날부터 하한가 치기 시작하던데요.”
“저 그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요.”
“친구분 주식 진짜 잘하나 봐요.”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매도했대요?”
박건휘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뭐야? 난 전 재산 다 날렸는데, 이 새끼는 고점에서 다 팔았다고? 왜 나만······ 왜 나만 이런 꼴을 당해야 해!’
강선우는 박건휘를 보며 말했다.
“어! 혹시 그 주식 샀어요?”
“아니, 난······.”
“친구가 그러는데 나중에 상폐될 거래요. 만약 가지고 있으면 당장 파세요.”
“뭐, 뭐라고?”
강선우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진 주식이 상폐될 거라고 하니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다 건휘 씨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박건휘는 자신도 모르게 강선우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야, 이 새꺄! 니가 뭔데 내 주식이 상폐된다 만다야?”
* * *
[KNC인터내셔널 주가조작 사건, 정권 차원의 비리인가?]
(전략) 일명 ‘코발트 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은 늘 있던 주가조작 사건 중 하나로, 주식시장에서 작전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황당한 사실은 이 작전에 외교부까지 개입했다는 것이다.
정현철 차관은 외교부 국장을 불러 보고서 공시와 함께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도록 지시하는 등 이번 작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작전이 성공했다면 그는 약 500억 원의 부당이익을 취했을 것이다. 이는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었음을······.
천덕유 회장과 정현철 2차관의 커넥션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적당히 수사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현철 차관이 아내 명의로 주식을 받은 것이 사실로 드러나며 기사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여기에 외교부 직원들까지도 대거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완전 미친 새끼들이네.
-이런 놈들이 공무원이라고 세금 주고 있었다니!
-투기꾼 새끼들이 뭔 외교를 하냐?
-ㅋㅋㅋ 외교 하라고 뽑아놨더니 투기하고 있음.
-그런데 대체 뭔 놈의 나라가 심심하면 금융사기가 터지냐? 뭔 사기 공화국이야?
-ㅎㅎ 진짜. 프리머스 사태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금감원은 무너졌냐, 새끼들아?
-깔끔하게 전부 사형시킵시다.
-개미들 피눈물 흘리는 동안 얼마나 챙겨먹었냐?
-걸려서 그나마 알려진 거지. 그동안 안 걸리고 해처먹은 게 얼마나 많겠냐?
-ㅅㅂ 이거 레알. 반박불가~
-새한국당 애들 계좌 다 까봐야 한다!
-청와대 인사들도 계좌 다 까봐라.
-뇌물을 돈이 아니라 주식으로 받고. 세상 많이 좋아졌네.
-코인으로 받을 날이 머지않았다~
범죄혐의가 확실한 만큼 정현철 차관은 긴급 체포되었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그를 향해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천덕유 회장과는 언제부터 알고 지내신 겁니까?”
“뇌물을 받고 주가조작에 가담한 사실 인정하십니까?”
“본인이 직접 지시를 내린 게 맞습니까?”
“피해자들에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정현철 차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정보를 듣고 투기에 가담했던 외교부 직원들도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그 와중에 감이 좋은지 폭락 직전 팔아 30억을 챙긴 직원도 있었다.
청와대는 충격에 휩싸였다.
집권 초에 터진 프리머스 사태의 여파가 아직 가라앉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외교부가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까지 터진 것이다.
야당인 우리국민당은 거센 공세에 나섰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권 차원의 비리입니다. 청와대와 여당 의원들 전부 조사해봐야 합니다.”
그러자 새한국당에서는 맞받아쳤다.
“왜 우리만 공개하냐? 공개할 거면 여야가 같이 하자.”
야당이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며 국회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결국 김한수 비서실장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고, 오영환 대통령은 이를 바로 수락했다.
* * *
난 뉴스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체 어느 선까지 이번 투기에 가담했을까?
아마 여기서 꼬리 자르기로 끝날 것이다. 나 역시 그 이상은 모르니, 여기서 더 제보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대부분의 작전주는 폭락한 뒤에야 실체가 드러난다. 그때는 이미 세력들이 돈을 챙겨서 떠난 뒤다.
이번처럼 작전세력이 수익을 내기도 전에 실체가 알려지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실제로 작전에 가담했던 이들은 엄청난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직원들이나 애널리스트 등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을 날렸다고 한다.
이건 중흥경제신문이 빠르게 기사를 낸 덕분이다.
민홍수 기자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해줬다.
혹시 이번 일로 신문사에서 잘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차피 나 아니어도 그만뒀을 테니 상관없겠지.
나중에 또 정보 생기면 열심히 밀어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선우가 손을 들며 물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
“코발트 광산은 없고 주가조작이라는 게 밝혀졌잖아.”
“응.”
“그럼 저 회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이 와중에 주식을 사는 애들은 뭐야?”
“······.”
놀랍게도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식은 여전히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86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반등해 오늘 1000원을 돌파했다.
선우는 감탄했다.
“이야! 18퍼센트 상승 실화냐?”
“뭐, 죽은 고양이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튀어오르기 마련이지.”
주가가 계속 폭락을 하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반등이 나온다.
이를 ‘데드캣 바운스(Dead Cat Bounce)’라고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튀어오른다’는 게 아니라 ‘죽었다’는 것이다.
주가가 반등하면 뭐 하나? 기업은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래도 4만 원 가까이 하던 주식이 1000원이 되니 싸보이는지 거래량이 폭증했다.
당연하지만 저런 주식은 기관이나 외국인은 찍먹도 안 한다. 여기 모여서 단타 치는 건 전부 개인투자자들뿐이다.
어차피 몇 년 후면 상장폐지 되겠지만 우리랑은 관련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진작 다 털고 나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