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코발트 게이트 (3)
[(단독) KNC인터내셔널 코발트 광산 작전세력의 허위공시]
(전략) 확인 결과 국제자원탐사연구소라는 곳은 사서함만 있는 유령연구소였고, 빈센트 반 호른 교수는 지질학회에 등록조차 안 된 영문학 교수임이 밝혀졌다.
애초에 코발트 광산은 존재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외교부는 무슨 근거로 이를 발표한 걸까?
내부자의 제보에 따르면 정현철 외교부 2차관은 보고서를 공시하기 직전 아내 명의로 신용거래를 포함해 KNC인터내셔널 주식 약 90만 주를 매수했다고 한다.
심지어 매수대금 20억 원을 천덕유 회장에게 빌렸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이는 정현철 차관이 민간기업에 뇌물을 상납받고 주가조작에 가담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외교부에 문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정 차관에게 직접 연락을 해보았지만······.
중흥경제신문에서 올린 기사를 본 천덕유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그냥 의혹 제기 수준이 아니었다. 내부자가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까지 담겨 있었다.
“대체 어떻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정현철 차관에게 주식을 뇌물로 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그 금액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자신과 정현철 차관 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당황하는 그에게 정현철 차관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귀에 욕이 박혔다.
[야, 이 새꺄!]
“왜 이러십니까?”
[뭐? 왜 이러십니까? 날 엿 먹여놓고도 그런 말이 나와?]
“뭐라구요?”
[너 우리 매형이 누군지 알아?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아? 너 이 새끼 절대 가만히 안 둬! 반드시 잡아서 깜빵 보낸다!]
“아, 아니. 나는······.”
[개새끼야! 너 때문에 내 인생 끝장나게 생겼어!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욕이 쏟아졌다.
그 역시 정신이 없고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천덕유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시발! 어린놈의 새끼가 왜 자꾸 반말이야!? 너 몇 살이야? 넌 애비 애미도 없어?”
[뭐, 뭐?]
실제로 나이는 천덕유가 10살 이상 많았다.
“나중에 다시 얘기합시다.”
천덕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주식을 처분하는 게 우선이다.
이번 작전을 위해 동원한 금액만 150억 원. 그의 돈이 아닌 여기저기서 끌어온 돈이다.
만약 이 돈을 갚지 못한다면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당장, 당장 팔아야 해!’
그런데······.
방금 전까지의 매수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코발트 광산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진 이상, 누가 주식을 사겠는가?
매도는 쌓이는데 매수는 없다. 잠시 멈춰있는 듯하던 주가는 호가가 사라지며 바로 하한가로 떨어졌다.
‘단 한 걸음이었는데······ 이제 단 한 걸음만 남았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는 주식을 1천억 원이 넘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나중에 기소를 당하더라도 이 돈이면 얼마든지 전관 변호사를 사서 방어할 수 있다. 여기에 가담한 정치인과 관료들도 한둘이 아닌 만큼, 재판을 받더라도 기껏해야 집행유예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 하나로 모든 게 끝났다.
마지막 순간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는 주식을 떠안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천덕유 본인이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으어어! 대체 어떤 개새끼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려!?”
* * *
[(단독) KNC인터내셔널 코발트 광산 작전세력의 허위공시]
KNC인터내셔널 시초가는 39,600원에 시작했다.
4만 원을 뚫고 올라가려는 바로 그 순간 중흥경제신문의 기사가 올라왔고, 종목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저게 뭔 소리야? 코발트 광산이 없다고?
-지랄하네. 개미들 털어내려고 수작 부리는 겁니다.
-기레기 새끼, 지가 못 샀다고 쓰레기 같은 기사 써재끼네.
-ㅅㅂ 저게 말이 되냐?
-중흥경제신문과 민홍수 기자를 주가조작과 허위사실 유포로 신고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지금 외교부에 민원 넣었습니다!
-저런 새끼는 코발트 광산에 처넣어서 셔틀을 시켜야 한다!
-주주들이 다 같이 중흥경제신문으로 몰려가 항의합시다!
-옳소! 주주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지금이 무슨 독재정권 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외교부 차관이 주식을 받고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머뭇거리던 다른 언론사들에서도 슬슬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외교부 정현철 2차관 연락 끊고 잠적]
[네덜란드 국제자원탐사 연구소, 유령회사나 다름없어.]
[빈센트 반 호른 교수, 학위 불분명. 지질학회에 문의 결과 등록 안 된 걸로 나와.]
[외교부까지 얽혀든 희대의 주가조작 사기극인가?]
[KNC인터내셔널, 개인투자자들 주의 요망!]
그사이 주가는 이미 하한가로 떨어졌다.
작전세력은 주식을 팔기 위해 너도나도 물량을 쏟아냈다. 난리가 난 건 투기에 동참한 외교부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도 시기가 되면 천덕유가 미리 알려주기로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기사가 터진 것이다.
기자들은 일제히 외교부로 몰려가서 질문을 던졌다.
“정현철 차관이 아내 명의로 주식을 받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외교부 대변인은 진땀을 흘리며 해명했다.
“아직 확인 중인 사항입니다. 차관님께서는 오늘 출근하지 않으셨습니다.”
“국제자원탐사연구소라는 곳은 사서함 주소만 있는 유령연구소고, 보고서를 쓴 빈센트 반 호른 교수라는 사람은 실제로는 이름만 빌려줬다는 게 진짜입니까?”
“그건 KNC인터내셔널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콩고 코발트 광산에 대해서는 확인이 된 겁니까?”
“저희는 KNC인터내셔널 보고서를 받아서 그대로 올렸을 뿐입니다. 사실 여부는 현재 확인 중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외교부가 광산에 대해 확인한 적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걸 확인하는 건 외교부의 역할이 아닙니다. 저희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외교부 대변인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인지 모른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이 해명은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해 외교부는 광산의 실체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공시를 한 것이다!
매도는 있지만 매수는 없다.
하한가에 수십만 주가 쌓여 있었지만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직전까지는 사고 싶어도 못 샀다면, 이제는 팔고 싶어도 못 파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매일 같이 재산의 30퍼센트가 날아가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다.
-뭐야? 확인도 안 해보고 공시했다고?
-그럼 진짜인지 가짜인지 외교부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거 아니야?
-이 미친놈들이 지금 저걸 변명이랍시고 하고 있는 거냐?
-아니 시발, 그래서 코발트 광산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야, 이 새끼들아!!! 코발트 광산 있다며? ㅜㅜ
-ㅋㅋㅋ 코발트 좋아하시네.
-100만 톤 이 지랄 할 때부터 알아봤다.
-상폐 각 날카롭다!
-가즈아~ 상폐 가즈아~
-한강 가즈아~
-지금 한강물 온도가 어떻게 되나요?
-마포대교 서강대교 벌써 정체 중. 뛰어내리려면 번호표 뽑고 30분 기다려야 합니다.
-성산대교 원활합니다~ 사람들 몰려오기 전에 빨리 오세요~
-한강정모방 개설했습니다. 참여하실 분들은 타톡주세요^^
-조문 왔습니다.
-육개장 잘 먹고 갑니다. 꺼어억!
-ㅉㅉㅉ 저거 믿은 놈들 뭐냐? 능지 수준 하고는.
-세계 최대 코발트 광산ㅋㅋㅋ 코볼트라도 있으면 다행이겠다 ㅎㅎ
-처음 들었을 때부터 뻥인 느낌 나더라~
-그런데 외교부는 저걸 왜 공시한 거야?
-외교부 직원들이 KNC 주식 샀는지 다 까봐야 한다!
-38층에 사람 있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ㅜㅜ
-38000원에 산 놈은 대체 뭐냐?
-ㅋㅋㅋ 그 가격에 매수한 니가 레전드다.
-그 돈이면 뜨끈한 국밥이 몇 그릇인데!
-오늘 저녁은 국밥이다!
선우는 게시판의 글들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세력들이 돈 먹는 사이, 개미들만 피 본 건가?”
“그런 셈이지.”
개미들이 피해자이긴 해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기업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주가가 오른다고 무작정 산 것도 큰 잘못이다. 핸드폰 하나 살 때도 약정에 지원금에 할인 같은 걸 꼼꼼하게 알아보고 사는 사람도, 정작 주식은 무턱대고 사는 경우가 많다.
주식투자가 도박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운이 아닌 실력에 의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생각 없이 샀는지 심지어 종목게시판에는 이런 글도 올라왔다.
[제목: 어제 KNC인터내셔널 주식 샀는데 환불이 왜 안 되나요?]
방금 증권사에 전화해봤는데 환불이 안 된다고 하니 너무 황당하네요. 당장 증권사 가서 따지려고 합니다.
주식 사면 2거래일 후에 들어온다고 들었는데 그럼 전 주식을 아직 안 받은 거잖아요. 수령 전이니 바로 반품하면 돈 돌려줘야 하지 않나요?
마트에서 1천 원짜리 물건을 사도 일주일 안에는 반품이 되는데, 수백만 원어치 산 주식을 환불 안 해준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저와 함께 환불원정 가실 분 있으시면 쪽지 부탁드립니다.
-헉! 순간 납득할 뻔했다!
-이야~ 이거 뭐라고 해야 하냐?
-주식 아직 입고 안 됐으니 환불 ㄷㄷㄷ
-15년 주식하는 동안 이런 쌈빡한 논리는 처음 보네.
-아ㅅㅂ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게 뭔 개소리야?
-괜찮은데. 전 재산 털어서 주식 산 다음 오르면 먹고, 떨어지면 증권사에 환불하면 되것네.
-100퍼 성공하는 투자!
-에런 베이커도 울고 갈 기적의 재테크!
-환불 해줘! 해줘!! 해줘어!!!
-환불 가즈아!!!
“주식 산 사람들 대부분은 기사에 나온 콩고가 콩고 공화국인지 콩고 민주공화국인지 관심도 없었을걸.”
“그게 무슨 말이야? 콩고 공화국은 뭐고 콩고 민주공화국은 뭐야?”
“알고 보면 콩고라는 나라는 두 곳이라는 거지.”
콩고 강 북쪽에 있는 나라는 ‘콩고 공화국’이고, 남쪽에 있는 나라는 ‘콩고 민주공화국’이다.
코발트 광산이 있는 곳은 콩고 민주공화국.
기자들도 헷갈리는지, 기사를 보면 ‘콩고 공화국’과 ‘콩고 민주공화국’을 섞어서 쓰고 있었다.
사실 투기를 방지하는 장치는 충분히 존재했다.
주가가 이상하게 폭등하면 시스템에 따라 주의경고가 뜨고, 단일가 거래를 시키고, 심지어는 일정기간 거래를 정지시킨다.
그럼에도 매수대열은 멈출 줄은 몰랐다.
이유는?
주가가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차가 절벽을 향해 내달리는 걸 알아도 마지막 순간 자신은 뛰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너도나도 올라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바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 마지막에 폭탄을 떠안는 게 자신이 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난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