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코발트 게이트 (1)
수사가 마무리된 것은 3년이나 지난 후였다.
주가 상승을 통해 수백억의 차익을 챙긴 경영진들 무혐의. 확인 한 번 안 하고 공시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외교부 직원들 무혐의.
심지어 작전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외교부 윗선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도 않았다.
천덕유 회장만 겨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을 뿐이다. 부당이익금에 대한 몰수나 추징도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지금도 훌륭한 사기꾼인 그는 이번 일로 더 크게 성장해 훗날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사기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KNC인터내셔널은 폭락에 폭락을 거듭해 100원까지 떨어진 동전주가 되었다가, 사건 발생 4년 후 상장폐지된다.
그냥 팔고 나가도 되겠지만······.
“기왕이면 화려하게 터트리는 게 좋겠지?”
* * *
민홍수.
한국대 언론정보학과를 나온 그는 한국 최대 경제언론이라는 중흥경제신문에 입사했다.
처음 기자가 됐을 때만 해도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경제신문인 만큼 경제에 관한 기사를 주로 쓰는데, 한국 경제와 관련된 기사는 십중팔구 재벌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 언론사들은 전부 재벌그룹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벌을 비판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의 기사를 쓰면 바로 항의가 들어오고, 광고가 빠져나갔다.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재벌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만 내보내고, 안 좋은 내용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최대한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다.
민홍수는 프리머스 사태 이후 경영 세습 문제와 재벌 3세들의 경영능력을 지적하는 기사를 썼지만, 전부 위에서 잘려나갔다.
딱히 기득권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쓰고 싶은 기사를 쓰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네.’
민홍수는 답답한 마음에 잠시 머리 식힐 겸 밖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들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는 전화를 받았다.
“민홍수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한미루입니다. 일전에 저한테 인터뷰하자고 연락하셨었죠?]
다름 아닌 프리머스 사태를 터트린 신입사원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만날 수 있겠습니까?]
프리머스 사태가 금융계를 뒤흔들었지만, 그는 누구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 일에 대해 궁금한 게 한가득이다.
민홍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어디 계신가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 * *
난 카페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명함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중흥경제신문 민홍수 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한미루입니다.”
난 상대를 보았다.
나이는 33세. 큰 키에 마른 체구를 하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꼈다. 각진 턱과 짙은 눈썹 때문에 인상이 약간 세 보였다.
실제로 그는 요즘 시대에는 보기 힘든 정의감 넘치는 열혈기자다.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어디나 그렇듯 정의감 넘치는 사람은 살기가 힘들다.
그는 주위 말 안 듣고 폭로 기사를 열심히 써대는 바람에 회사에서 미운털이 박혔고, 결국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후 그는 중흥경제신문을 때려치우고 나와 ‘뉴스트리거’라는 인터넷 언론사로 자리를 옮긴다.
중흥경제신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흔하디흔한 인터넷 언론이었지만, 여기서 그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특종을 낸다.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뭐, 그건 나중 일이고······.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프리머스 펀드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거든요. 회사를 그만두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외압이 있었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기사도 기사지만 진행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모로 궁금했던 모양이다.
“인터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그전에 따로 드릴 말씀이 좀 있습니다.”
“뭔가요?”
난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KNC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알고 계신가요?”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요즘 얘기가 많은 주식이죠.”
경제부 기자답게 알고 있구나. 이러면 얘기가 편하지.
“그게 작전주라는 건 아시나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민홍수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관심을 갖고 계신 건가요? 작전세력이 설쳐대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닐 텐데요.”
“그렇긴 하죠.”
주가조작은 주식시장에서는 일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번 일은 좀 다르다.
“그 많은 작전 중 정부가 얽혀있는 일이 몇 개나 되나요?”
“그건······.”
“이건 정권 차원의 비리입니다.”
내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뭐라구요?”
“생각해 보세요. 개별 기업 공시에 정부기관이 나선 것 자체가 신기하지 않나요?”
“비슷한 일이 없진 않죠.”
큰 계약을 따내거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 관련 부서나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이에 대해 언급하고 기업이나 공장을 직접 찾아가 축하해주기도 한다.
이번 일 역시 그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콩고에 있다는 그 코발트 광산, 확인해본 사람이 있나요? 외교부 직원이 직접 가서 땅이라도 파봤다고 하나요? 설마 그깟 동영상과 사진 몇 장,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연구소와 뭐 하는지도 모를 교수 말을 믿는 겁니까?”
“그럼 외교부가 왜 나섰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난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뇌물을 받았기 때문이죠.”
“누가요?”
“누구일 것 같습니까?”
“설마 보도자료 뿌린 직원들입니까?”
“직원들은 위에서 시킨 대로 했을 뿐이죠. 물론 그 과정에서 주식을 산 놈들이 한둘이 아니겠지만요. 까보면 아마 많이 나올걸요.”
“그럼 오명지 국장입니까?”
“국장보다 높죠. 외교부에서 이런 일을 멋대로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민홍수는 뭔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예. 정현철 2차관입니다.”
장관 이름도 잘 모르는 마당에 차관 이름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김한수 비서실장 처남 말입니까?”
역시 괜히 기자가 아니다.
참고로 김한수 비서실장은 오영환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이후 코발트 광산이 거짓으로 밝혀지고 주가가 폭락하자, 검찰과 금감원은 수사에 나선다. KNC인터내셔널은 물론 외교부에 대한 수사도 이뤄졌다.
하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정부 부처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검찰소환이나 대질심문은커녕 그 흔한 압수수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KNC인터내셔널의 말만 믿고 공시한 거라고 발뺌했고, 관련 직원들은 전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누구 하나 처벌을 받지도 않았고, 누가 지시를 내렸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난 이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을까?
황당하게도 수년이 흐른 후 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 외교부 2차관인 정현철은 다음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된다.
그런데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산을 고의적으로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조사를 해봤더니 놀랍게도 3년 사이 아내 명의의 재산이 420억 원 늘어났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엄청난 돈을 벌었나 해서 들여다봤더니, 아내가 KNC인터내셔널에 투자했다.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흘린 작전주에 투자해 420억 원을 넘게 챙긴 것이다!
청문회장에서 정현철은 정당한 투자였다고 항변했지만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당연히 장관 임명은 취소됐고 검찰 조사가 이뤄졌다.
그는 코발트 광산 공시가 나오기 전 2500원에 주식을 매수했고, 이후 37700원에 팔아14배가 넘는 수익을 남겼다.
심지어는 주식을 산 돈마저 천덕유 회장에게 빌렸다!
자기 돈 한 푼 안 쓰고 420억 원을 벌었다. 그야말로 기적의 재테크다.
내 얘기를 들은 민홍수는 황당해하며 말했다.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정현철 차관이 천덕유 회장에게 주식을 받고, 개별기업 보고서를 공시하고 보도자료를 내도록 지시했다는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그는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니까 불법이죠.”
한마디로 차관이라는 인간이 뇌물을 받고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이다.
만약 그냥 퇴임했으면 그 돈으로 잘 먹고 잘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놈의 권력욕이 뭔지 괜히 장관 한 번 하겠다고 청문회 나갔다가 탈탈 털렸다.
민홍수는 손가락으로 펜대를 돌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대충 16번 정도 돌렸을 때쯤 생각이 끝났는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내부자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게 누군데요?”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당사자가 알려지기를 원하질 않아서요.”
“그럼 증거는 있습니까?”
“계좌 까면 나올 겁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하기야 별다른 증거도 없이 내 말만 믿고 기사를 쓰기는 힘들겠지. 게다가 내가 작전에 가담한 관련자도 아니고, 나 역시 제보(?)를 받아 전달하는 입장이다.
민홍수는 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흘려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왜냐하면 내가 프리머스 펀드를 폭로했으니까. 한 번 부실을 밝혀낸 사람이 두 번은 못 밝혀내겠는가?
“전 이 작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련자들이 누군지, 끝이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는 겁니다. 세력이 매도하면 그 주식을 누가 살까요?”
“개인들이겠죠.”
“맞습니다. 그렇게 개인들이 피눈물을 흘리는 사이, 작전세력은 돈을 챙겨 나가는 거죠. 정현철 차관과 여기에 가담한 외교부 직원들도 함께요. 파보면 연관된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구요.”
민홍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게 사실이라면 보통 큰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것이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정황증거라면 있습니다.”
“정황증거요?”
“비밀을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민홍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겠습니다.”
난 선우의 계좌내역을 뽑은 자료를 보여주었다.
“작전세력 중 한 명에게 받은 자료입니다.”
이름과 계좌번호는 지웠지만 액수는 그대로 찍혀 있었다. 잔고는 어느새 100억을 넘었다.
현재까지 수익률만으로 900퍼센트가 넘는다.
그것을 본 민홍수는 깜짝 놀랐다.
“배, 백억······.”
난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에게 말했다.
“국제자원탐사연구소가 뭐 하는 곳인지, 그 교수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조금만 조사해보시면 아실 겁니다. 기사를 내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가능한 빨리 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러는 순간에도 작전세력들은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중이니까요.”
이 정도까지 말해줬으면 슬슬 기사 쓰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민홍수는 당황하며 나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왜요?”
“프리머스 사태 인터뷰는 안 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그것 때문에 만났었지?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건 일단 기사 쓰시는 거 봐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