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KNC인터내셔널 (5)
박건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럼 그렇지! 역시 우량주 투자가 정답이야. 저런 개잡주는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한다니까.’
그는 구내식당에서 차수연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 강선우에게 다가가 괜히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KNC인터내셔널 슬슬 폭락 조짐이 보이던데. 지금이라도 파는 게 좋지 않겠어요?”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당장은 별 문제 없대요.”
그러자 듣고 있던 다른 직원들이 말했다.
“1만 원이면 너무 비싸지 않나요?”
“지난달에 비하면 7배가량 올랐는데.”
강선우는 태연하게 말했다.
“친구 말에 따르면 조만간 정부에서 뭔가 발표가 나올 거래요. 지금 조정받고 있으니 매수 기회라고 하던데.”
박건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일부러 크게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부가 무슨 발표를 해요? 미래투자증권에 있는 사촌형한테도 물어봤는데 그거 허위공시라고 하던데. 실체도 확인이 안 되고. 원래 루머로 오른 주식은 금세 폭락하기 마련이에요.”
“저도 잘은 모르는데, 아무튼 그럴 거래요.”
“그런 말 듣고 투자하다가는 큰일 나요. 거래량이 적은 소형주는 문제가 생기면 팔지도 못해요. 허위공시로 밝혀지면 주가폭락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장폐지될 겁니다. 가진 주식이 상폐될 거라고 하니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다 선우 씨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강선우는 그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내용 자체는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폼으로 MBA를 취득한 건 아닌 모양이네.’
박건휘가 자신 있게 말하자 관심을 보이던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좀 위험하겠네요.”
“역시 건휘 씨가 미래투자증권에서 일해서 잘 아시네요.”
“건휘 씨 말대로 우량주에 투자하는 게 낫겠네요.”
강선우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태도였다. 아마 팔 생각도 없을 것이다.
박건휘는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잘됐네. 다 날리고 나면 내 말 안 들은 거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KNC인터내셔널 주가는 전날 9퍼센트 빠지더니, 다음날 20퍼센트가 빠지며 이제 1만 원 밑으로 떨어졌다.
직원들은 박건휘에게 말했다.
“건휘 씨 말 듣고 안 사길 잘했네요.”
“역시 전문가는 다르네요.”
“샀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박건휘는 울상을 짓고 있을 강선우를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생각하며 개발3팀으로 향했는데, 정작 강선우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폭락했어도 아직은 벌었다는 건가?’
박건휘는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오늘 폭락 심상치 않던데, 괜찮아요?”
강선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폭락이라니요?”
“오늘만 해도 20퍼센트 떨어졌잖아요.”
“그건 3분 전 얘기구요. 방금 상한가 쳤어요.”
“뭐라구요?”
“기사 뜬 거 못 봤어요?”
“기사요?”
강선우는 기사를 보여주었다.
[(속보) 외교부, 콩고 코발트 매장량 공시!]
그 기사를 본 박건휘는 깜짝 놀랐다.
“뭐야? 외교부가 여기에 왜 나와?”
직원들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역시 그때 샀어야 했는데!”
“아! 선우 씨가 사라고 할 때 살걸.”
“어떻게 된 일이에요, 건휘 씨? 허위공시라면서요?”
“뭔가 잘못 안 거 아니에요?”
“어, 그, 그게······.”
박건휘는 황당해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 이거 왜 이래?’
* * *
[외교부 공식 인정, KNC인터내셔널 세계 최대 코발트 광산 확보!]
[배터리 강국을 향한 중소기업의 희망찬 날갯짓!]
[한국 향후 10년치 코발트 수급 걱정 없어······.]
[자원외교가 이루어낸 엄청난 성과!]
[KNC인터내셔널 내년부터 코발트 본격 생산 돌입 선언!]
[김흥규 애널리스트, KNC인터내셔널 목표가 5만 원 제시!]
외교부는 KNC인터내셔널이 발표한 코발트 광산 보고서를 그대로 공시했다.
다른 곳도 아닌 외교부다.
정부기관이 허위사실을 발표할 리 없다.
이는 곧 코발트 매장량이 사실이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8천 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외교부 공시가 나오자마자 바로 상한가로 직행했고, 종목 토론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외교부가 공시!
-이, 이건 진짜다! 진짜 대박이다!
-콩고 코발트 매장량 실화냐?
-누구인가? 누가 허위공시라는 소리를 내었는가?
-ㄷㄷ 미쳤다! 한국이 해냈다!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그런데 외교부는 매장량을 어떻게 확인한 거지?
-관심법으로 보면 다 보임.
-ㅋㅋㅋ 루머라고 했던 새끼들 다 어디 감?
-그날 물타기 안 한 흑우 형제자매들 없재?
-상한가 매수대기 물량만 3만 주. 내일도 상 치겠네.
-너무 오른 것 같은데 슬슬 팔아야 하지 않을까?
-뭔 소리야? 이제부터 시작인데.
-본격 코발트 생산하면 20만 원까지도 갑니다~
-무려 100만 톤입니다! 지금 코발트가 1톤에 5천만 원이니까 100만 톤이면 50조 원입니다!
-채굴은 땅 파서 하냐?
-응. 땅 파서 함.
-채굴비랑 기타 다른 비용 계산해도 시총이 최소 10조는 돼야 정상입니다.
-그 정도면 코스닥 1위 찍겠는데.
-루머라고 할 때 샀어야 했는데ㅜㅜ
기사와 댓글을 살펴보고 있는데, 집으로 뛰어들어온 선우가 물었다.
“외교부가 공시한 거면 저거 진짜 아니야?”
난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너도 저런 헛소리를 믿냐? 외교부가 뭘 안다고 공시해?”
“직원들이 가서 땅 파봤을 수도 있잖아.”
“장난하냐?”
“콩고에도 대사관은 있을 거 아니야? 거기 직원들이 가서 확인해봤을 수 있잖아.”
“너 콩고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니?”
콩고의 영토는 아프리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광산이 무슨 대도시 한복판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도 제대로 안 깔린 외딴 곳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직원이 갈 리가 있나?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왜 다들 생각 없이 믿는 거야?”
“말이란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지기 마련이지.”
증권사 신입사원이 추천하는 주식에 별 관심을 안 갖던 사람들도, 에런 베이커가 추천한다면 바로 달려가서 매수한다.
외교부가 나서서 보고서가 맞다는 것을 확인해줬으니 모두가 믿을 수밖에.
실제로 외교부 공시 이후 KNC인터내셔널은 연일 상한가를 치며 폭등했다. 애널리스트들은 마치 경매라도 하듯 목표가를 올려 잡았다.
시장에는 때 아닌 테마주 열풍이 불며 리튬과 배터리 관련주들이 차례로 올랐고, 이어서 전기차 관련주들이 따라 올랐다.
전기차가 늘어나면 배터리 충전소가 늘어날 거라며 충전소 관련주들이 올랐고, 더 많은 전력송신이 필요하다며 전선주가 올랐다.
“이건 뭐 갖다 붙이면 테마주네.”
이런 게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다.
주식시장의 역사가 곧 테마주의 역사다.
대선이나 총선 때만 되면 선거 테마주로 시장 전체가 들썩거린다. 대표가 유력 후보와 사진을 같이 찍었거나, 친척이 이사로 등기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폭등한다.
2000년 초반에 한 건설사는 동해에 잠들어있는 보물선을 건져 올리겠다며 당국에 사업신청서까지 내고 홍보했다.
직전까지만 해도 망해가던 회사는 보물선 인양계획 발표 이후 17연상을 치는 기염을 토해냈고, 이후 상장폐지됐다.
1980년대 말에는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고, 그 공사를 한국기업에 맡길 거라는 루머가 증권가를 휩쓸었다.
만리장성 길이는 무려 6350킬로미터.
공사를 따내기만 하면 그야말로 10년치 일감을 확보하는 셈이다.
먼저 공사를 맡을 것으로 알려진 건설주와 바람막이를 만들 것으로 알려진 철강주가 폭등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공사에 참여하는 인부들이 빵 하나씩만 먹어도 그게 얼마냐며 제빵 관련 주식이 폭등했고, 이번에는 빵만 먹으면 목이 마를 거라며 유업주가 폭등했고, 이어서 빵을 너무 많이 먹어 소화가 안 되면 소화제가 필요할 거라며 제약주가 폭등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싶지만, 당시 투자자들은 이 말을 진지하게 믿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항상 반복되기 마련이지.
선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저 KNC시큐리티는 KNC인터내셔널과 무슨 관계야? 오늘도 17퍼센트 오르던데.”
“놀랍게도 아무 관련 없어.”
“그런데 왜 올라?”
“······글쎄.”
이름이 비슷해서?
장담컨대 이건 노벨경제학상 받은 경제학자를 데려다놔도 설명 못 하지 않을까?
사실 주식시장에 있다 보면 이런 기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저번 달까지만 해도 1500원이었던 주가가 이제는 3만 원을 넘어섰다. 우리가 투자한 4억은 이제 90억까지 불어났다.
“실화냐?”
“너무 좋아할 것 없어. 주식은 팔기 전까지는 내 돈이 아니니까.”
사실 작전주로 돈 버는 일은 매우 쉽다.
그저 폭등하는 주식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계속 폭등하던 주식이 내가 사자마자 떨어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
하지만 정작 작전주로 돈 벌었다는 사람은 없고 날린 사람만 수두룩하다. 그 이유는 빠져나올 타이밍을 잡지 못하기 때문.
“대체 언제까지 오르는 거야? 10만 원 돌파할 거라는 얘기도 있던데.”
난 피식 웃었다.
“그게 말이 되냐?”
주가가 오를 때는 마치 영원히 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자산이든 계속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고, 수급으로만 올리려 한다면 더더욱.
그도 그럴 것이 주가가 오를수록 작전에 들어가는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1만 원짜리 주식이 두 배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원이 필요하지만, 10만 원짜리 주식이 두 배가 되기 위해서는 10만 원이 필요하다.
“슬슬 끝날 때가 되긴 했지.”
아무리 즐거워도 파티는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
모든 작전주의 결말은 동일하다.
바로 폭락이다.
폭등한 주가가 그 가격에서 머물러 있으면 애초에 작전주가 아니다. 따라서 폭락하기 전에 팔고 나가야 한다.
매도 타이밍을 놓치면 아예 팔지도 못한다.
주가가 떨어지면 그보다 더 싸게 팔고 나오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은 상하한가 제한으로 인해 전일종가의 30퍼센트 이상과 이하로는 매매가 안 된다.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팔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자산이 30퍼센트씩 날아가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내 기억에 4만 원 직전까지 갔다가 수직으로 내리꽂았던 것 같다.
작은 연못에 고래가 들어가면 수위가 올라간다. 하지만 고래가 빠져나오려고 하면 수위는 다시 낮아진다.
그럼 고래는 언제 연못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건 바로 폭우가 내릴 때다. 폭우로 인해 일시적으로 수위가 오르면 고래는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다.
여기서 폭우는 개인의 매수세를 의미한다.
즉 큰손들이 개인에게 주식을 떠넘기고 돈을 챙겨 나가는 것이다. 당연히 뒤늦게 매수에 뛰어든 개미들은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지금쯤이면 전부 팔고 나갈 타이밍만 재고 있을 거야.”
작전들 설계한 놈들은 물론이고, 여기에 올라탄 외교부 직원들 역시.
모든 게 거짓으로 밝혀진 이후.
검찰은 금감원과 함께 수사에 나선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