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KNC인터내셔널 (2)
선우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자기 전 재산이 이름도 못 들어본 개잡주로 바뀌었으니 놀랄 만도 하지.
입장 바꿔 생각해서 나였다면 벌써 멱살 잡았다. 5억 중 얘 돈이 2억이니까. 심지어 그중 8천은 빚이다.
사실 말이 좋아 2억이지, 일반 직장인이 이 돈 모으려면 수년을 허리띠 졸라매고 일만 해야 한다.
“신용거래 하면 한다고 말했어야지!”
“말했으면?”
“뜯어말렸겠지.”
“응. 그럴까봐 말 안 했어.”
“······.”
선우는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마 대학생 때 신용거래 한 번 잘못했다가 날려먹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주식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신용거래다.
일반적으로 그냥 주식투자를 하면 망해도 마이너스 7~80퍼센트가 될지언정 잔고가 0원이나 마이너스가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신용거래는 다르다.
당연하지만 증권사는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주가가 하락해 담보가치가 위험하다 싶으면 가차 없이 계좌에 있는 주식을 매도해 빌려준 돈을 챙겨간다.
이를 반대매매라고 한다.
만약 반대매매를 당했는데도 융자를 갚지 못하면? 그럼 부족한 만큼 고스란히 빚으로 남고, 돈 갚으라고 연락이 온다.
실제로 주식투자 한 번 잘못해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걱정할 것 없어. 8억은 내가 빌린 걸로 할게. 만약 니가 빌려준 2억 원이 위험해진다고 싶으면 바로 뺄 거야.”
“그 전에 반대매매 당하면?”
“그럴 리 없어.”
“니가 어떻게 알아?”
직접 봤으니까 알지.
그러나 이걸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
난 자신있게 말했다.
“며칠 동안은 약간 하락할 거야. 하지만 조만간 공시 뜰 거고, 그때가 되면 사고 싶어도 못 살걸.”
“무슨 공시?”
“보면 알아.”
* * *
강선우는 LB스튜디오로 출근했다.
그가 속한 판타지아 테일즈 개발팀은 클로즈베타 서비스를 앞두고 버그를 잡느라 한창이었다.
여전히 할 일은 많았지만 그래도 개발이 끝난 만큼 이전보다는 여유가 좀 있는 편이었다.
손으로는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 자식이 대체 뭔 생각이야?’
듣도 보도 못한 주식에 신용까지 끌어다가 몰빵을 치다니. 한미루는 오를 거라 자신했지만 매수가 끝난 다음 날 5퍼센트 하락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3퍼센트 하락하더니, 오늘 오전에는 7퍼센트 하락했다.
‘진짜 반대매매 당하면 어떡하지?’
전 재산이 걸려있다 보니 불안감으로 잠도 제대로 안 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작 주식을 산 장본인은 예상했던 일이라며 태평했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걱정을 안 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니까.
‘미루 성격이 원래 이랬던가?’
갑자기 차기 회장을 들이받고 회사를 때려치우질 않나, 정보가 있다며 잡주에 몰빵을 하질 않나.
‘생각해보면 원래 성격이 정상이 아니긴 했지. 얼마 전 여친과 헤어지기도 했고. 설마 그때 이후 막 나가기로 작정한 건가?’
한참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선우 씨.”
강선우는 화들짝 놀랐다.
“헉!”
“괜찮아요?”
“아, 예.”
말을 건넨 여자 직원의 이름은 차수연. 나이는 23살로 예쁜 외모와 활발한 성격 덕분에 남녀 가릴 것 없이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녀는 커피를 내밀었다.
“커피 사왔어요.”
“고마워요.”
차수연은 강선우와 마찬가지로 개발3팀 소속으로, 캐릭터 디자인 파트 담당이다. 하지만 개발에도 관심이 많아서 따로따로 코딩과 프로그래밍을 배울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강선우는 그녀에게 일과 후나 휴식시간에 틈틈이 가르쳐주었고, 차수연은 평소에도 강선우를 잘 따랐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몇 번 불러도 대답이 없어요?”
“그게, 뭘 좀 집중해서 보느라고······.”
차수연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저 캐릭터를요?”
모니터에는 게임의 중요 캐릭터가 떠있었다. 다름 아닌 빨강머리 미소녀 전사 캐릭터다. 그런데 사막의 여전사라는 컨셉답게 많이 헐벗은 복장이다.
‘그런데 정작 사막 사는 사람들은 햇빛 때문에 꽁꽁 싸매고 다니지 않나?’
어쨌거나 그 앞에서 정신을 놓고 있었으니 남들 눈에는 미소녀 일러스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실은 같이 사는 친구 때문에요.”
“아! DA증권에서 일하는 친구요?”
“예, 뭐······.”
얼마 전 퇴사했지만.
‘사실상 잘린 거 아닌가?’
차수연은 궁금하다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그런데 친구가 왜요?”
안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누구랑 얘기라도 좀 하고 싶던 차였다.
“친구가 이번에 주식을 좀 샀는데······.”
사정을 들은 차수연은 깜짝 놀랐다.
“대출까지 받아서 2억을 넣었다구요?”
“그것도 모자라 신용까지 끌어다 썼어요.”
“신용이 뭐예요?”
“빚이죠. 내 돈이 2억이면 3억 정도는 더 빌려서 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애초에 2억 중 8천이 대출이다. 레버리지의 레버리지를 일으킨 셈이다.
“그럼 좀 위험하지 않나요?”
“많이 위험하죠.”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끼어들었다.
“주식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경영팀 매니저 박건휘.
나이는 29세로, 원래 미국에서 MBA 자격증을 취득해 미래투자증권에서 일하다가 반년 전 LB스튜디오로 이직했다.
개발팀과 경영팀은 일하는 층부터가 다르다. 하지만 그는 여러 이유를 들며 개발3팀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이유는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 직원 때문이었다.
박건휘는 출근 첫날 로비에서 차수연과 마주친 뒤 한눈에 반했다.
가만히 있어도 큰 눈에 잡티 없이 깨끗한 피부, 웃을 때 살짝 들어가는 보조개. 화장도 진하게 하지 않고 회사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지만, 그럼에도 타고난 볼륨은 감추기 힘들었다.
아마 조금만 꾸미고 나가도 사람들이 다들 쳐다볼 것이다.
‘진짜 매력적이란 말이지.’
박건휘는 적극적으로 차수연에게 대시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편한 복장으로 다니는 다른 직원들과는 다르게, 그는 명품을 빼입고 포르쉐를 몰고 다녔다. 얼굴도 제법 잘생긴 편이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의 아버지는 LB스튜디오 창업자 중 한 명인 박현종 전무였다.
그가 처음 증권사에 입사한 것도, 본격적인 경영을 배우기 전 실무적인 경험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그는 입사 때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차수연은 그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약속을 잡아보려고 해도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실제로 판타지아 테일즈 개발로 인해 개발3팀은 매일같이 야근에 시달렸다.
다행히 이제 좀 한가해진 것 같아서 말을 걸어보려고 왔는데, 역시나 강선우가 함께 있었다. 오늘만이 아니라 매번 이랬다.
‘빌어먹을! 이놈은 왜 자꾸 수연이 옆에서 알짱거리는 거야?’
정확히는 차수연이 강선우 자리에 와있는 거였지만, 어쨌거나 신경에 거슬리기는 마찬가지다.
개발팀과 경영팀은 서로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직급이 더 높고 전무 아들이긴 해도 강선우를 함부로 대하긴 힘들었다. 왜냐하면 강선우의 개발능력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직위를 떠나 디렉터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개발3팀은 강선우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진짜 존나 마음에 안 드네.’
어쩌다 둘의 대화에 끼어들려고 해도 알아듣지 못할 프로그램 언어들이 오갔다.
그랬는데 이번에 웬일로 주식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주식은 내 전문분야지.’
그는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선우 씨도 주식하나 보네요.”
“예. 예전에는 좀 했었는데, 최근 친구랑 같이 다시 시작했어요.”
“친구가 주식전문가예요?”
“DA증권 애널리스트였죠.”
“DA증권이면······ 아, 맞다. 그런 증권사도 있죠. 제가 일했던 미래투자증권에 비하면 워낙 작아서. 얼마 전 프리머스 사태 때문에 난리나지 않았어요?”
“예, 맞아요.”
강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친구가 바로 그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지.’
박건휘는 비웃듯 말했다.
“주식은 아무 생각 없이 쉽게 하는 게 아니에요.”
강선우가 주식을 하든 말든 별 관심 없었다. 그가 관심이 있는 건 그 옆에 있는 여자 직원.
차수연 앞에서 잘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어떤 주식을 매수했어요?”
강선우는 별 생각 없이 말했다.
“KNC인터내셔널이요. 제가 고른 건 아니고, 친구가 그냥 샀어요.”
박건휘는 웃으며 혀를 찼다.
“아, 주식에 대해 잘 모르시구나. 아무리 친구라도 함부로 맡기고 그러면 안 되는데. 그 주식을 산 이유는 뭐래요?”
“조만간 큰 호재가 나올 거라고 하던데요.”
박건휘는 핸드폰으로 주식을 검색해보았다.
“한 달 사이 두 배 이상 올랐다가 최근에는 하락세네요. 오늘도 7퍼센트 하락 중이고. 그나저나 시총도 얼마 안 되는 코스닥 주식이면 위험할 텐데요. 주식 초짜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싼 주식만 찾는 거예요. 오히려 저 같은 전문가나 꾼들은 오히려 우량주 장기투자를 선호하는데 말이죠.”
박건휘는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한참 동안 주식투자에 대해 떠벌렸다.
“수연 씨는 주식에 관심 없어요?”
“계좌가 있긴 한데 잘 몰라서요.”
“그럼 제가 가르쳐줄까요?”
“글쎄요······.”
“주식은 무조건 해야 해요. 에런 베이커를 보면 알 수 있듯, 우량주 장기투자는 저축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게 증명됐으니까요. 제 말에 따라 매수랑 매도 타이밍만 잘 잡아도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제 덕분에 돈 번 직원들도 많아요.”
그는 주식으로 제법 큰돈을 벌었다고 소문났다.
아무래도 월급만으로는 내 집 사기 힘든 시대다. 그렇다 보니 꽤 많은 직원들이 주식투자를 했고, 몇몇 직원들은 그에게 투자 상담을 하기도 했다.
차수연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중에 하게 되면 말씀드릴게요.”
“기왕 할 거면 빨리 시작하는 게 좋아요. 제가 종목 몇 개 추천해드릴까요?”
박건휘는 계속해서 꼬드겼지만, 차수연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