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KNC인터내셔널 (1)
선우는 당황했다.
“아니, 왜?”
“왜는 무슨 왜야?”
“왜 불똥이 나한테 튀는데?”
“투자할 거야, 말 거야?”
선우와 나의 인연은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얘는 모르겠지만 이후로도 10년은 더 알고 지낸다. 사실상 가족을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회사가 망하고 백수가 됐을 때는 월세도 안 받고 계속 같이 살았고, 게임이나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는 같이 치킨집 하자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사람이 받은 은혜가 있으면 갚아야 한다.
“특별히 너한테만 투자할 기회를 주는 거야.”
······라지만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몇 가지 있다.
일단 정말로 돈이 부족하다.
나중에야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다. 초기투자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그리고 선우는 제법 실력 있는 개발자다. 몇 년 후에는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 자리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향후 게임 산업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얘가 맡아서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뭐, 본인이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잠시 고민하던 선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얼마나 투자해야 해?”
“너 통장에 얼마 있어?”
내 말에 선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핸드폰 사러 갔더니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야?”
“빨리 말해.”
“음, 한 1억 2천 정도.”
“제법인데.”
군대를 다녀온 나와는 달리 선우는 게임회사에서 병역특례로 일했고, 그게 호봉에 반영되었다.
매일같이 야근에 시달리는 만큼 수당도 많이 받는 편이고. 딱히 돈 쓸 일도 없으니 차곡차곡 저축해 놓은 모양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그거 다 투자해.”
선우는 화들짝 놀랐다.
“뭐!? 이걸 다 투자하라고?”
난 선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날 믿고 한번 투자해봐.”
“······널?”
전혀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하긴, 그동안 실적이 별로 안 좋긴 했지.
“레드홀 스튜디오로 20배 번 거 봤잖아. 내 투자실력이 이 정도야.”
“그냥 얻어걸린 것 같은데.”
난 당당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확실한 정보가 있어.”
“너 코인했을 때도 확실한 정보라고 했어!”
“으음······.”
몇 년 전 암호화폐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암호화폐가 디지털 세계의 금으로 취급받으며, 수백 수천 배씩 오른 코인이 속출했다. 오래전 몇 센트에 사놓은 코인이 수만 달러까지 치솟는 일까지 벌어지자, 너도나도 달려들어 이 코인 저 코인 닥치는 대로 샀다.
선우는 이과생이라 디지털 화폐에 관심이 많았고, 난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우리도 그 열풍에 올라타 함께 ‘가즈아’를 외쳤다.
결과는?
진짜 골로 갈 뻔했다. 반토막 났을 때 손절하고 빠져나와서 다행이지.
“너 에런 베이커 알지?”
“화이트로드 회장?”
에런 베이커는 모두가 아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투자자고, 화이트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사다.
그는 20대 시절부터 투자를 시작해 80대인 지금까지도 활발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 마을 사람 한 명이 1만 달러를 투자했어. 60년이 지난 지금 그 돈이 얼마가 됐을 것 같아?”
“글쎄. 한 1000만 달러?”
“아니. 6억 달러가 됐어.”
무려 6만 배의 수익이다!
선우는 놀라면서도 물었다.
“그래서?”
“내가 그 이상 벌어다 줄 테니까 지금 투자해. 60년 후 후회하지 말고.”
“음, 60년 후면 내가 살아있기나 할까?”
매우 현실적인 지적이다.
“그러니까 10년 안에 그 이상으로 불려줄게.”
“······.”
더더욱 신뢰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아직은 실적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
“좀 믿어봐!”
결국 선우는 1억 2천만 원을 빌려주기로 했다. 부모님께 빌린 1억과 내 돈 1억을 더하면 총 3억 2천만 원.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
“돈 더 없어?”
“없어!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어!”
과연 그럴까?
마른오징어도 짜면 물이 나오기 마련.
“너 신용대출 얼마나 나오지?”
선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응?”
“직장 있으니까 대출도 잘 나올 거 아니야?”
“전 재산 준 것도 모자라 빚까지 내라고?”
“괜찮으니까 다 털어봐.”
“······개새끼야.”
난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증권사에서 나오기 전에 입수한 정보가 하나 있어.”
“무슨 정보?”
“나중에 얘기해줄게.”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엄마가 좋은 정보 있다며 투자하라고 꼬드기는 인간은 다 사기꾼이라고 했는데.”
“생각해봐. 여기에 내 전 재산은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 돈에 대출까지 밀어 넣을 생각이야.확실한 정보가 아니라면 내가 미쳤다고 이러겠어?”
“하긴······.”
한 시간가량 어르고 달랜 끝에 마통까지 추가로 8천만 원을 받아냈다. 그래도 일한 경력이 있으니 대출이 제법 나오는구나.
“5억이면 그래도 좀 할 만하겠네.”
“뭘 하려고? 설마 내일부터 연락 안 되는 건 아니지?”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니 계좌로 거래할 거니까.”
“어째서?”
“난 며칠 전까지 증권사를 다녔으니까.”
내부정보를 활용한 거래는 불법이다. 때문에 증권사 직원들은 주식 보유현황과 매매현황 등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퇴사를 했으니 이제 보고의무는 없지만, 회사 업무 중 알게 된 내부정보로 거래했다는 의심을 살 우려가 있다.
“아, 맞다. 증권사에서 입수한 정보로 거래하면 안 된다고 했지?”
“그런 거지.”
엄밀히 말하면 증권사에서 입수한 정보는 아니지만, 문제를 삼으면 뭐든 문제가 되기 마련이지.
그러니 안전하게 얘 명의로 하는 게 낫다.
얘랑은 그냥 동거인일 뿐이니 걸리더라도 의심 살 리는 없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안전장치를 하나 더 추가했다.
“너 미국 계좌 아직 있지?”
“사용 안 한 지는 됐지만 있을걸. 왜?”
대학생 때 미국 공모주에 투자하겠다고 나와 함께 만들어놓은 계좌가 있다.
“그걸 사용해야겠어.”
“굳이 미국 계좌로?”
“기왕이면 안전하게 가야지.”
국내 증권사들은 수사기관 한마디면 고객정보를 몽땅 넘겨주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외국 증권사들은 정식으로 영장 들고 오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번에 번 돈으로 미국에 투자법인을 만들 생각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아직 말해줄 필요 없겠지.
* * *
주식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원칙은 실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매출이나 수익이 늘어나면 주가는 오르고, 줄어들면 떨어진다.
그러나 세상일이 원칙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실적과 아무 상관 없이 단지 수급에 의해 주가가 결정되기도 한다. 어차피 주식 수는 한정되어 있으니,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오르고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내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 이를 노려 주식을 매집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수익을 내려는 놈들이 존재한다.
바로 작전세력이다.
주식시장에서는 매일같이 작전이 판을 친다. 개중에는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큰 사건들도 간간이 터지고.
‘작전’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방식은 간단하다.
세력들이 힘을 모아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다음, 비싼 값에 팔고 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된다.
10년 사이 일어난 모든 작전을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부까지 얽혀있는 황당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대정상사.
코스닥 상장사로 원래 무역업을 하는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매출과 실적이 줄어들고, 부채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기업은 위기에 빠졌다.
이때 천덕유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우회상장 방식으로 자신의 기업과 합병시켜 대주주가 되었다. 이후 사명도 KNC인터내셔널로 바꾸었다.
천덕유 회장은 뜬금없이 아프리카 광물 채굴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히더니, 회사의 주업종을 자원탐사 및 광물채굴로 바꾸었다.
이어서 콩고의 폐광산의 채굴권을 인수했다고 발표하더니, 광물을 가공하고 유통하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발표 이후에도 주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천 원 중반에 머물던 주식은 최근 매수세가 붙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3천 원에 근접했다.
별다른 실적이나 호재도 없는데 주가만 두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거래 상위 증권사에는 메릴린치와 JP모건, HSBC 등의 외국계 증권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선우가 출근한 사이 난 컴퓨터 앞에 앉아 손가락을 풀었다.
“나도 슬슬 시작해 볼까?”
두 배가 올랐다 해도 KNC인터내셔널의 시총은 고작 700억.
거래량도 그리 많지 않다. 아마 이중 상당수는 세력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총이 작고 거래량이 적다 보니 조금만 주문이 늘어도 주가가 올랐다. 난 눈에 띄지 않도록 매수세가 있을 때마다 나눠서 주문을 넣어 지속적으로 주식을 매수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총 30만 2천 주를 매수했다.
매수가 끝난 뒤, 난 선우에게 말해주었다.
내 말을 다 들은 선우는 천천히 물었다.
“그러니까 코스닥 잡주 한 종목을 몽땅 샀다고?”
“응.”
선우는 핸드폰으로 종목을 검색해보았다.
“시총은 700억에, 별다른 실적도 없고 빚만 잔뜩 있는 적자기업이네.”
“응.”
“얼마에 샀어?”
“평단가 3430원.”
선우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1500원이던 주식을 3430원에 샀다고?”
“어차피 그 가격에는 얼마 못 샀어.”
지금 주가는 세력끼리 주거니 받거니 해가며 올린 거다. 그사이에 슬금슬금 끼어든 덕분에 발행주수의 1퍼센트가 넘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몇 주나 샀는데?”
“38만 2천 주.”
선우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잠깐. 계산이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3430원에 38만 2천을 곱하면 13억이 넘잖아.”
“그렇지.”
누가 하이스트 출신 아니랄까봐 계산이 참 빠르다.
“원금이 5억인데 어떻게 13억이 넘는 주식을 샀어?”
“신용거래라는 좋은 제도를 활용했지.”
“······응?”
신용거래란 계좌에 있는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의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것. 이를 활용하면 가진 돈의 두 배 넘게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선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