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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효도하겠습니다 (1) (16/529)

 16화. 효도하겠습니다 (1)

 성윤아는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신기하네요. 대체 미루 씨는 모르는 게 뭐예요?”

 “그냥 찍은 거라니까요.”

 이제 어머니가 후계자가 되었으니 그녀의 삶에도 여러 변화가 생길 것이다.

 “앞으로 뭐할 거예요?”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죠.”

 뭘 할지는 이미 정했다.

 투자에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한 달 후나 1년 후는커녕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난 10년 후 미래에서 회귀했다.

 비상장주식을 사서 20배 대박을 터트리고, 펀드 부실을 밝혀내는 것쯤은 앞으로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인생을 바꿀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다. 이 기회를 흘려보내면 이전처럼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쉽네요. 미루 씨랑 계속 같이 일하면 재밌을 텐데.”

 “저도요.”

 그래도 함께 입사한 동기였는데, 앞으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 대화를 나눠보니 어째서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웃는 모습이 예쁘긴 예쁘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성윤아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또 볼 수 있겠죠?”

 “그럼요.”

 난 그 손을 붙잡았다.

 “저기······.”

 그녀가 뭔가 말을 하려는데, 다른 사람들이 등장했다.

 “어! 다행히 아직 여기 있었네요.”

 “진짜 회사 그만둔 거예요?”

 내 동기인 배근석과 황영민이다.

 황영민은 분개하며 말했다.

 “펀드 부실을 폭로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전 절대 용납 못 합니다.”

 배근석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미루 씨가 알리지 않았다면 더 큰일이 벌어졌을 텐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요.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난 두 사람에게 물었다.

 “탄원서라도 써주게요?”

 그러자 둘은 크게 당황했다.

 “예? 탄원서요?”

 “아, 아니, 뭐······ 그까짓 거 씁시다!”

 “됐어요.”

 내부고발한 직원을 커버쳐주다가는 같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수가 있다. 멀쩡한 동기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한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다들 잘 지내요.”

 * * *

 백수가 되서 좋은 점은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난 잠결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그러니까 ‘나’가 누군데?

 눈을 비비며 화면을 보니 진세연의 이름이 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프리머스 펀드 부실 폭로한 거, 미루 너 맞아?]

 그날 그렇게 말하고 갔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지.

 “뭐, 그렇지.”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야?]

 “응?”

 이게 뭔 소리야?

 [나 때문에 폭로한 거 맞지?]

 “······.”

 갑자기 전화해서 뭔 헛소리야?

 얘가 뭔가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순간,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잠깐. 지금 전화 왔으니까 내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난 일단 전화를 끊고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한미루 선생님이신가요?]

 “그런데요?”

 [예. 전 중흥경제신문 민홍수 기자라고 합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인터뷰를······.]

 “시간 안 괜찮습니다.”

 난 바로 전화를 끊었다.

 대체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박승훈과 다른 동기들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톡이 와있었다. 하나하나 설명하기 귀찮아서 일단 씹었다.

 난 눈을 비비며 TV를 켰다.

 뉴스 채널에서는 프리머스 펀드 관련 뉴스가 흘러나왔다.

 관리부실로 벌어진 초유의 사태인 만큼 정부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고, 금융위와 금감원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

 화면에 오영환 대통령의 얼굴이 나왔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준엄하게 말했다.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금융범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일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난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랄한다.”

 * * *

 난 오랜만에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 집은 인천. 평일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주말에는 쉬느라 바빠서 명절 때가 아니면 가는 일이 없다.

 회사를 그만둔 걸 숨기고 싶어도 어차피 알게 되실 테니, 내 입으로 말씀드리는 편이 좋겠지.

 초인종을 누르자 여동생이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집에는 어쩐 일이야?”

 “너도 있었네.”

 이름은 한세나.

 나와는 여섯 살 차이로 현재 대학생이다. 회귀를 한 뒤로는 처음 봐서 그런지 엄청 어려 보인다.

 얘도 아직은 풋풋한 대학생이구나.

 “머리색은 왜 그래?”

 “내 머리가 어때서?”

 일전에 봤을 땐 연갈색이던 머리가 어느새 금발로 변해있었다. 염색하는데 돈 좀 들었겠는데.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어?”

 세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뭔 상관?”

 그래도 명문대인 한국대를 간 나와는 달리 세나는 간신히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딱히 학업에 뜻이 있지 않음에도 대학을 간 이유는 오직 하나.

 남들도 가기 때문이지.

 난 오빠로서 충고를 해주었다.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데 열심히 공부해야지.”

 “남의 학점에 신경 끄셔.”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러 다니는 모양이다. 뭐, 대학은 졸업장만 따면 되는 거 아니겠나?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면 용돈 좀 주려고 했는데.”

 그 말에 세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정말? 얼마나 줄 건데?”

 “아니. 그냥 해본 말이야.”

 다시 순식간에 구겨졌다.

 “아, 뭐래? 짜증나.”

 그래. 이런 게 사이좋은 남매의 대화지.

 마음 같아서는 5만 원짜리라도 한 장 주고 싶지만, 퇴직금도 못 받고 나온 관계로 나 먹고 살기도 바쁘다.

 세나는 신경질을 내며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을 반겨주었다.

 “어머! 넌 연락도 없이 웬일이니? 저녁은 먹었어?”

 “아직이요. 아버지는요?”

 “금방 오실 거야.”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시는 동안 세나는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했다. 잠시 후, 퇴근한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다녀오셨습니까?”

 “미루 왔구나.”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세나는 한손으론 젓가락질을 하며 다른 손으로는 계속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회귀하기 전에 비해 어머니와 아버지 다 10년씩 젊어진 모습이다.

 밥을 먹는데 어머니가 옆에서 핸드폰을 슬쩍 내밀었다.

 “이 사진 한번 봐봐.”

 화면에는 20대 중반쯤의 예쁘게 생긴 여성의 사진이 떠있었다.

 “누구예요?”

 “엄마랑 같이 찜질방 다니는 아주머니 딸인데 지금 유성전자에 다니고 있대. 한번 만나서 얘기라도 좀 나눠봐.”

 사실상 선자리 아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중요한 얘기가 진행되고 있었을 줄이야!

 1회차 때도 결혼 안 한다고 부모님 걱정이 크긴 했다. 그래도 그때는 노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됐어요.”

 “되긴 뭐가 돼?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하대. 너 DA증권 다닌다니까, 그쪽 엄마도 관심을 보이더라.”

 “······.”

 DA증권 그만뒀다고 하면, 이제 관심을 안 보이지 않을까?

 계속해서 만나보라고 닦달을 하던 어머니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너네 회사 요즘 괜찮니?”

 “뭐가요?”

 “어떤 놈이 회사 부실을 폭로해서 난리 났다며? 수천억이 날아갈 수도 있다며? 혹시 회사 문 닫는 건 아니지?”

 세나는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진짜? 누가 그런 개념 없는 짓을 했대?”

 참고로 내 여동생은 뉴스나 기사 따위는 보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뉴스에 하루 종일 난리더라. 뭔 신입사원이 그랬다며?”

 “헐! 신입이 뭔데 나댔대?”

 “회사에서 회장 아들이랑 멱살 잡고 싸웠다는데, 혹시 너도 봤니?”

 “······예?”

 세나는 신나서 말했다.

 “완전 미쳤네. 혹시 사회 부적응자인가? 군대에서 말하는 고문관, 뭐 그런 거? 사내 왕따? 관심사원?”

 “······.”

 내부고발자에 대한 혐오를 멈춰주세요.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은 회사에서 절대로 그러면 안 돼. 알았지?”

 “······.”

 이미 그랬는데요.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아버지가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펀드가 사기였다는 걸 폭로한 게 뭐가 잘못이야? 그걸 묵인하고 판매한 증권사가 잘못이지. 뉴스에서도 폭로하지 않았으면 더 큰 부실이 발생했을 거라고 하던데. 따지고 보면 그 직원이 회사도 살리고 다른 사람들도 살린 셈이야.”

 아버지는 뉴스와 기사를 챙겨보시지만 내부고발자가 나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리포트에 내 이름을 쓰지 않았으니까.

 세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래도 직원이 막 회사일 폭로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잘못이 있으면 바로 잡는 게 당연하지. 그 사람은 자신의 양심과 사회를 위해 닥쳐올 불이익을 감수하고 폭로한 거야.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비리와 범죄가 사라지고 깨끗한 나라가 되는 거고. 그러니 내부고발자에 대해 우리 사회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줘야 해.”

 “아버지······.”

 감동해 눈물이 다 날 것 같다. 세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아빠는 오빠가 그래도 괜찮아?”

 아버지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만약 우리 아들이 그랬다면 잘했다고 칭찬해줘야지.”

 그 말에 난 용기를 내서 재빨리 말했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버지.”

 “응? 무슨 말이냐?”

 난 가족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물론 회귀했다는 얘기는 빼고.

 부실을 발견해 폭로하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은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심히 당황하신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너 미쳤니?”

 “예?”

 “아니, 그런 일 있으면 위에 보고를 해야지, 니가 왜 나서?”

 “보고했더니 모른 척하던데요.”

 “그럼 너도 모른 척했어야지.”

 “······방금 하신 말씀과는 좀 다르지 않나요?”

 우리 사회의 따뜻한 시선 어디 갔어? 칭찬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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