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프리머스 사태 (4) (15/529)

 15화. 프리머스 사태 (4)

 기사를 보고 놀란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지유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날 말한 게 진짜였어?’

 그가 마지막으로 해줬던 조언이 생각났다.

 ‘씨랩 선배님 피처링을 하지 말라고 했지? 조만간 여자 문제가 터질 거라고?’

 그 말을 들은 후 혹시 몰라 씨랩에 대해 나름 알아보았다.

 TM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기획사의 관리 때문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7년의 활동 기간 동안 크게 구설수에 오른 적은 없었다.

 성격도 좋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다고 한다.

 씨랩의 솔로곡에 피처링을 한다는 건 신인인 그녀에게 아주 큰 기회였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노래는 분명히 흥행할 테고 그녀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아직 계약서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한다고 얘기도 해놓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자꾸만 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대체 자기가 연예계에 대해 뭘 안다고?’

 펀드 부실이야 그쪽 일을 하고 있으니 알아챘다고 쳐도, 연예계 일까지 정확하게 맞출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분명 확신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뜻일까?

 지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한참의 고민 끝에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 * *

 이동호는 업무가 끝난 뒤 본사와 지점에서 일하는 동기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잔을 다 비우기도 전에 다들 이번 일에 대해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요즘 본사 분위기는 어때?”

 “거의 초상집이지.”

 그날 리서치부서에서 벌어졌던 일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양정욱 전무의 평판을 깎아내렸다.

 이동호를 통해 얘기를 전해들은 다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야! 신입사원이 차기 회장에게 책임지라고 소리쳤단 말이야?”

 “무슨 드라마의 한 장면도 아니고.”

 “그런데 결국 그 신입사원 말이 맞았잖아.”

 “그런데 대체 프리머스 부실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

 “추천 리포트 쓰다가 문제점을 발견했다는 게 진짜야?”

 “진짜 이게 말이 되냐? 프리머스는 자산운용사 중에서 탑3로 꼽는 곳인데, 고객 자산으로 사기를 쳤다니.”

 “양정욱 전무가 책임져야 한다며?”

 “회장도 커버쳐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럼 후계자 자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사실상 나가리 아니야?”

 프리머스 사태는 그야말로 사모펀드 역사상 최악의 사기 사건이다. 증권사가 입게 될 손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4천억 원.

 실적 쌓으라고 보내놨는데 초대형 사고를 쳤다. 판매사가 감시만 제대로 했어도 터지지 않았을 사고다.

 아무리 회장 아들이라고 해도 금융그룹 수장 자리에 앉기는 글렀다.

 “그럼 차기 회장은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당분간 자숙하다가 잊힐 때쯤 슬쩍 복귀하지 않겠어?”

 “그사이 양자은 상무가 가만히 있겠어? 동기한테 들었는데 그룹 내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대. 지금 경영진들도 다들 양자은 상무 라인으로 갈아타고 있대.”

 “이러다가 차기 회장 바뀌는 거 아니야?”

 고령인 양현성 회장과 비난을 받고 있는 양정욱 전무를 대신해 양자은 상무가 전면에 나섰다.

 그녀는 어수선한 그룹 내부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녀의 발 빠른 대처는 양정욱 전무와 비교되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룹 후계자가 바뀔 것으로 보이자, 일부에서는 양자은 상무가 일을 꾸민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동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것도 미루와 관계가 있는 걸까? 설마 아니겠지.’

 그는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뭐, 자업자득이지. 어차피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어.”

 “맞아. 차라리 일찍 터져서 다행이지.”

 각 지점들마다 프리머스 펀드를 신나게 팔아치우는 중이었다. 만약 발각이 늦어졌다면 더 큰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다.

 “니 후배한테 상여금이라도 몇 억 줘야 하지 않나?”

 “그럴 리가 있겠냐?”

 신입사원이 올린 리포트 덕분에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로 직원을 칭찬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기업 생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다.

 기업은 이익보다 원칙을 우선시한다.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상부에 보고해서 처리해야지, 멋대로 폭로하는 것은 내부고발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그리고 기업은 내부고발자를 병적으로 싫어한다.

 실제로 많은 임원들은 회사 내에서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쓸데없이 키웠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양정욱 전무뿐 아니라 그쪽 라인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한미루를 향해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한미루가 한 일은 분명 도덕적으로 옳고 회사를 위한 일이다. 동시에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루는 왜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거지?’

 모두가 맞다고 말할 때 혼자서 틀리다고 나서는 건 말이 쉽지, 웬만한 확신과 용기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얘가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며칠 사이 뭔가 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이동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걔 이미 사직서 썼어.”

 * * *

 회사 분위기는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힘들었다.

 피해자들은 몰려와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매일 같이 임원회의가 소집돼 대책을 논의했다. 사방에서 항의 전화가 쏟아졌고, 언론들 역시 매일같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다음 날에도 난 출근했다. 정신없이 바빴던 이전과는 달리 딱히 할 일은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리서치부서 전체가 올스톱 상태였다. 지금 리포트를 내봐야 누가 믿고 보겠는가?

 다들 회사가 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몇몇 직원들은 발 빠르게 이직 자리를 알아보았다.

 손실액이 크긴 해도 그룹 차원에서 지원하면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양자은 상무는 DA증권을 버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증권사 내부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 역시 별로 좋지 못했다.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하면 양반이다. 복도에서 일부러 어깨를 치고 지나가거나, 앞에서 대놓고 떠들어대기도 했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데, 다른 부서 사람 몇몇이 나를 보며 빈정거렸다.

 “아주 그냥 지만 잘났지.”

 “뭔데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거야?”

 “시발,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해?”

 내부고발자가 겪는 어려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러니 다들 회사 비리를 알아도 쉬쉬하는 모양이다.

 난 몸을 돌려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설마 내가 다가올 줄은 몰랐는지 앞담화(?)를 하던 직원들은 당황했다.

 난 그들에게 말했다.

 “저한테 너무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내 덕에 회사도 안 망하고 화재도 안 일어났다. 직장도 지키고 목숨도 지킨 셈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일 없는 그는 화를 냈다.

 “뭐? 그게 뭔 소리야?”

 “야야, 참아. 괜히 한 대 쳤다가 인권위에 신고한다 어쩐다 하면 어쩔 거야?”

 “에이씨! 재수가 없으려니!”

 다들 화를 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난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내 첫 직장이었던 곳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 * *

 사직서는 금방 처리됐다.

 재직기간이라고는 고작 6개월. 업무를 배우는 도중이었던 만큼 인수인계할 것도 없었다. 당연히 퇴직금도 나오지 않았다.

 입사할 때는 온갖 관문을 뚫고 들어간 것 같았는데, 나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책상 정리를 끝마치고 회사를 나온 나는 편의점에서 4개에 1만 원 하는 맥주를 사들고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정장을 입고 브리프케이스를 든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다들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나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얼룩말 같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백수가 됐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났다.

 난 처음 DA증권을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유명 트레이더가 되고, 수억 원의 연봉을 받고, 언젠가 사장이 되는 게 목표였다. 결국은 치킨집 사장이 됐지만.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난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중년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회사 그만뒀다고 들었어요.]

 “예. 바쁘실 텐데 연락 주셨네요.”

 그룹 내부를 정리하고 실권을 장악하라면 몸이 몇 개여도 부족하겠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뭔가요?”

 [대체 프리머스 펀드 부실은 어떻게 눈치챈 건가요? 저는 그날 얘기를 듣고도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반신반의했는데.]

 이유는 회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역시 모르고 추천 리포트나 쓰고 있었겠지.

 난 웃으며 말했다.

 “그냥 감이라고 해두죠.”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그만둬도 괜찮겠어요?]

 “예.”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한 일이었다. 향후 일어날 대참사를 막았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남은 사람들은 알아서 잘 살겠지.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회사 안이 아니라 회사 밖에 있다.

 [나중에라도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맥주를 마시는데,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도 하나 줄래요?”

 난 봉지에서 맥주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목이 말랐는지 마치 맥주 광고의 한 장면처럼 시원하게 들이켰다.

 나랑은 달리 다시 일하러 가야 하지 않나?

 성윤아는 내 옆에 걸터앉았다.

 “정말로 회사 그만둔 거예요?”

 “그런 사고를 쳤는데 계속 다닐 수는 없잖아요.”

 “사고는 다른 사람이 쳤죠. 미루 씨는 그걸 밝혀냈을 뿐이고.”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구요.”

 “아니에요. 큰 도움이 되었어요.”

 성윤아는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설마 양자은 상무님을 만났을 줄은 몰랐어요. 왜 미리 말 안 해줬어요?”

 내가 양자은 상무를 만난 걸 아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그런데 그 사실을 그녀가 어떻게 알았을까?

 “어머님께 들었나요?”

 내 말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양자은 상무님이 어머니잖아요.”

 “뭐라구요?”

 “아니면 말구요.”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양자은 상무님을 직접 만나 보니까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고 보니 상무님 남편분 성함이 성민석이죠. 혹시나 해서 한번 찍어 봤어요.”

 거짓말이다.

 그녀는 어머니와 전혀 닮지 않았다. 아마 나란히 놓고 봐도 모녀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1년 후쯤 그녀가 양자은 상무 딸이라는 소문이 회사에 쫙 퍼졌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모른 채 그동안 그녀에게 찝쩍거렸던 남자직원들은 좌불안석이 되었고, 그녀에게 성희롱 문자를 수차례 보냈던 과장은 징계를 받고 좌천됐다.

 구내식당에서 양정욱 전무가 신입사원들 있는 자리로 온 것도 사실은 조카인 성윤아에게 말을 걸기 위함이었다.

 사실 양자은 상무를 만나려 할 때 그녀에게 부탁해볼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오해를 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능력으로 직접 자리를 만들었으니 내 말을 좀 더 쉽게 믿을 수 있었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