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프리머스 사태 (2)
양정욱 전무는 잠시 말문이 막힌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설마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받게 될 줄은 몰랐겠지.
눈치를 보고 있던 동호 선배는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전부 제가 교육을 잘못시킨 탓입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그러고는 일부러 나에게 호통을 치듯 말했다.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전무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아니, 잘못한 게 있어야 죄송하다고 하죠.”
“야, 한미루! 너 진짜 왜 이러냐?”
“괜찮아요, 선배.”
윤영철 부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마치 미친놈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나를 보았고, 양정욱 전무는 이를 갈듯 말했다.
“전문가들도 아무 문제없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프리머스 펀드에 부실이 있다는 거지?”
난 그를 보며 말했다.
“권위적인 리더가 내린 의사결정에 대한 의심은 곧 리더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들만 입을 열고, 의심을 하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며, 결국 의심은 사라지고 긍정적인 전망만 남게 됩니다. 그러니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감사해보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거죠.”
내가 생각해낸 얘기는 아니고, 이후에 어떤 기자가 프리머스 사태를 분석하며 기사에 썼던 내용이다.
그 결과 3조 원이 넘게 날아갔다!
당시 충격이 얼마나 컸냐면 프리머스에 돈을 넣은 수십 곳의 기업들이 해당 분기에 투자금을 전부 손실 처리하며 주가지수를 끌어내렸을 정도다.
“마트에서 고기 진열해서 팔 때도 품질 확인 정도는 거치는데, 수천억 원어치 펀드를 팔아치우면서 한 번도 자산을 확인해본 적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질 수 있어? 만약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럼 책임지고 사표 쓰겠습니다.”
양정욱 전무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허위사실을 퍼트려 고의적으로 펀드런을 일으켜 놓고, 고작 사표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허위사실?”
그는 내가 폭로한 사실에 분노하고 있지만, 사실 진짜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였다.
난 영문도 모른 채 펀드 추천 리포트를 썼고, 이 사기사건의 가담자가 되었다. 나야 그렇다 쳐도 동호 선배는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폐질환이 생겨 평생 후유증을 안고 가야 함에도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전 재산을 날린 투자자들, 화재로 죽은 직원들과 그 유족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
그럼에도 그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내 말이 맞으면 당신은 어떻게 책임질 건데!”
내 행동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신입사원이 전무에게 소리치다니!
금융권에 있다 보면 숫자에 무감각해지기 쉽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돈이다.
그 일로 인해 수많은 가정이 풍비박산 났고,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칼을 든 살인범은 한두 명 죽이고 끝이지만, 사기꾼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게 바로 금융범죄가 무서운 이유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양정욱 전무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뭐? 당신? 이 새끼가 미쳤나?”
그가 전무고 회장 아들이라고 해서 내가 욕을 얻어먹을 이유는 없다.
“안 미쳤습니다. 그리고 말씀 가려서 하시죠.”
“뭐?”
“저 DA증권 계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 그만두면 이제 DA증권의 고객이라는 얘기죠. 소중한 고객한테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전무가 어디 있습니까?”
“······.”
양정욱 전무는 눈을 부릅떴고, 윤영철 부장은 입을 쩍 벌렸다. 다른 직원들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새끼,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말로 안 하면요?”
“회사 법무팀에서 손해배상 청구하고, 허위사실 유포와 업무방해로 형사고소도 진행할 거야. 아주 끝장을 내줄 테니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
난 피식 웃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이러고도 앞으로 여의도 바닥에 발붙일 수 있을 것 같아?”
업계의 소문이란 빛보다도 빠르다. 정보에 민감한 금융권이라면 더더욱. 내가 회사를 나가기도 전에 여기서 있었던 일은 여의도 전체에 퍼질 것이다.
회사에 불리한 정보를 까발리고, DA금융그룹 회장 아들을 들이받은 신입사원을 어느 회사가 받아주겠는가?
향후 금융권 취직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아니, 금융사뿐이 아니라, 다른 기업도 힘들 것이다.
“어차피 취직할 생각 없긴 한데, 누가 들으면 여의도가 다 전무님 땅인 줄 알겠네요.”
“이 새끼가 진짜······.”
난 짜증 나서 한마디했다.
“시발, 자꾸 누구 보고 새끼래?”
“뭐? 시발?”
양정욱 전무는 폭발했는지 손을 뻗어 내 멱살을 잡았다. 이게 이 인간의 실체겠지.
나 역시 똑같이 하려는데, 그 순간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전무님!”
양정욱 전무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박 실장! 내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하지만 바로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뭔데?”
“지금 기사가 계속 올라오고 있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금감원과 검찰도 수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뭐?”
멱살을 잡은 손에 저절로 풀렸다.
난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확인했다.
[(단독) 프리머스 펀드 거래내역에 의심정황 포착!]
[(속보) 보유 채권들 중 일부는 실제 발행된 적 없는 채권!]
[DA금융그룹 후계자의 야심작 프리머스 펀드. 정말로 사기인가?]
[펀드 손실 우려에 투자자들 패닉! 양정욱 전무의 책임은?]
[금감원과 검찰, 합동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
내가 리포트를 올린 뒤 기사가 나가긴 했지만, 이후 DA증권이 발 빠르게 리포트를 내리고 해명과 함께 정정보도를 요청하며 일단락되는 분위기였다.
이대로라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갑자기 후속 기사들이 쏟아지며 꺼져가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기사 내용은 단지 의혹제기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프리머스와 양정욱 전무의 관계에 대해서도 집중조명하며, 그의 책임론을 부각시켰다.
다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보며 당황했다. 수시기관까지 움직인 이상, 이제 그냥 덮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양정욱 전무는 죽일듯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았다.
“이것도 니 짓이야?”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설마요. 일개 직원인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금감원과 검찰을 움직이겠습니까?”
하지만 양자은 상무 정도 되면 얘기가 다르겠지.
“그리고 뭐가 걱정인가요? 프리머스 펀드가 보유한 트리플A 채권들만 공개하면 아무 문제 없을 텐데요. 그나저나 박태일 대표랑 연락은 되나요?”
“무슨 말이지?”
“지금쯤 짐 싸서 도망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이쯤 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건 깨달았을 것이다.
1회차 때는 수사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자 펀드에 남은 돈을 빼서 해외로 도주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려나?
“뭔 헛소리야?”
난 혀를 찼다.
놀랍게도 양정욱 전무는 아직까지도 박태일 대표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러니 터질 때까지도 몰랐지.
박 실장은 양정욱 전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은 아까부터 박태일 대표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 말에 양정욱 전무는 버럭 소리쳤다.
“방금 전까지 나랑 통화했잖아!”
“아, 예. 그런데 그 후 사정을 물어보려고 다시 연락했더니 전화가 꺼져있었습니다. 회사로 전화했더니 급하게 나갔다고 합니다. 직원들도 행방을 모르겠다고······.”
기사를 확인하던 동호 선배는 마치 생중계라도 하듯 소리쳤다.
“어! 박태일 대표가 돈 챙겨서 튀었다는데요!”
“뭐, 뭐? 진짜야?”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양정욱 전무를 대신해 우백현 과장이 말했다.
“당장 TV 좀 켜 봐.”
리서치부서는 정보를 수집하는 게 일인 만큼 대형 TV가 설치되어 있다. 누군가 TV를 틀자 프리머스 펀드 관련 기사가 흘러나왔다.
강남의 한 주상복합건물 앞에 선 기자가 말했다.
[이곳은 프리머스 자산운용사 대표가 사는 곳입니다. 해당 건물 경비원의 말에 따르면 한 시간 전쯤 박태일 대표가 캐리어 세 개를 차에 싣고 어딘가로 급히 떠났다고 합니다. 현재 핸드폰이 꺼진 상태이며······.]
뉴스에 나온 CCTV 화면에는 캐리어에서 쏟아진 돈다발을 박태일 대표가 황급히 주워 담는 모습도 포착됐다.
모두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흘러나오는 뉴스를 바라보았다.
난 프리머스 사태가 터졌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나도 뉴스를 보고 저런 표정을 지었다. 언론이 허위보도를 하고 있고 금방 진실이 밝혀질 거라 생각했었지.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동호 선배가 입을 열었다.
“저기, 박태일 대표가 저렇게 도망간 걸 보면 미루 말이 맞는 거 아니에요?”
윤영철 부장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럼 진작 보고했어야지.”
난 부장에게 말했다.
“제가 보고서 올렸을 때 나대지 말라고 소리치셨던 거 잊으셨어요?”
“아, 아니. 그거야 말도 안 되는 얘기니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데요.”
“······.”
양정욱 전무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판매하기 전에 좀 잘 알아보지 그랬어요, 양정욱 씨?”
전에 그는 자신의 잘못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몰랐다는 말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거다. 그만한 위치에 있으면 모르는 것도 죄니까.
* * *
[프리머스 자산운용사,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인 횡령과 배임 행위]
[펀드 돌려막기 의혹, 사실로 드러나]
[최악의 펀드 사기! DA증권 사전에 인지했나?]
[DA증권 양정욱 전무와 프리머스 박태일 대표의 개인적 친분 관계······]
[최근 3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유자산에 대한 감사가 이뤄진 적 없어]
[사모펀드 규제 미비가 만들어낸 참사! 판매사와 감독기관은 그동안 뭘 했나?]
[(속보) 박태일 대표 인천공항에서 긴급체포!]
수년 동안 철저하게 감춰져 있던 프리머스 자산운용사의 실체는 DA증권의 한 직원이 폭로하며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황증거가 쏟아지고 당국이 수사에 나서겠다고 하자, 박태일 대표는 잠적했다.
다행히 검찰이 바로 박태일 대표와 관련자들에 대해 전원 출국금지시켰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캐리어를 잔뜩 끌고 인천공항에 나타난 박태일 대표는 잠복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중앙지검은 프리머스 자산운용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금감원은 투자자와 채권단과 함께 펀드에 대한 실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