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프리머스 사태 (1) (12/529)

 12화. 프리머스 사태 (1)

 프리머스 자산운용사 대표 박태일.

 그는 채권시장의 마이더스 손으로 불렸다. 그 명성 그대로 손대는 투자마다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를 믿고 돈을 투자했고, 그는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주었다. 성공이 이어지자 욕심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안정성이 높은 채권에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사모사채로 눈을 돌렸다.

 사모사채는 공모사채에 비해 규제가 없다시피 했다. 발행금리도 높은 데다가, CB와 BW의 경우 해당 기업이 상장이라도 하면 수십 배의 이익을 얻는 것도 가능했다.

 어떨 땐 30퍼센트가 넘는 수익을 올렸지만, 트리플A등급에만 투자한다고 밝힌 만큼 투자자들에게는 5~6퍼센트만 지급해주면 됐다.

 그렇게 지급하고 남은 돈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빼돌렸다.

 몇 차례 투자가 큰 성공을 거두며 그는 자만에 빠졌다. 하지만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말은 곧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말과 동일했다.

 시장상황이 급변하자 이익은 순식간에 손실로 변했다.

 손실을 만회할 방법은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뿐이었고, 이제는 비상장기업의 메자닌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손실이 아무리 늘어나도 판매사와 감독기관에는 운용보고서를 조작해서 올렸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관투자자의 환매 요청이 들어왔다.

 환매를 위해서는 보유한 채권을 팔아서 지급해줘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자산을 다 팔아도 환매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펀드를 추가로 개설해 개인투자자들의 가입을 받았다. 마치 카드 돌려막기하듯 개인의 돈을 받아 기관의 돈을 메울 생각이었다.

 ‘어차피 투자는 한 방이야. 지금까지는 시장 상황이 안 좋았을 뿐이야. 한 번만 성공하면 손실은 쉽게 복구할 수 있어.’

 다행히 사모펀드는 규제의 사각지대였고, 누구도 프리머스 펀드의 부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펀드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는 당장 문제 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들은 방금 속보로 올라온 기사들을 보는 순간 산산조각났다.

 [(속보) DA증권, 자사가 독점판매하는 펀드에 대해 투자주의 리포트 발표!]

 [DA증권 애널리스트, 프리머스 펀드 자산 매입내역에 대해 의문 제기]

 [공공기관 매출채권에만 투자한다는 설명과는 달리 부실기업 사모사채에 대거 투자한 것으로 의심]

 “대체 어떤 놈이야!”

 박태일은 리포트를 읽어보았다.

 ‘한미루라고?’

 DA증권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리서치부서 부장과 같이 술을 먹은 것도 여러 차례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신입사원이 이런 리포트를 올리다니!

 심지어는 마치 자산내역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지적한 내용들이 전부 사실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신입사원 따위가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이놈이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설마 위에서 지시를 내렸나?’

 그렇다는 건 이미 DA증권 차원에서 프리머스 펀드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건가?

 눈앞이 캄캄해지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 그 순간, 양정욱 전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박태일은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기사 보셨습니까?]

 “저, 전무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변명을 늘어놓으려는데, 양정욱 전무가 먼저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예?”

 [리서치부서 직원 하나가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리포트를 올린 모양입니다. 저도 지금 얘기 듣고 놀라서 회사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대표님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직원의 돌발행동이라고? 설마 위에서는 알아채지 못한 건가?’

 박태일 대표는 궁지에 몰린 심정을 숨기기라도 하듯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소리쳤다.

 “아, 아니, 판매사가 이런 음해성 리포트를 올려도 되는 겁니까? 전무님과의 인연을 생각해 다른 대형 증권사들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DA증권에 독점판매를 결정한 거 알지 않습니까? 이런 식이면 어떻게 앞으로 계속 일합니까? 이번 일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경위 확인하고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사과를 받았음에도 마음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다.

 조사를 시작하면 모든 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기업의 부실을 폭로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많은 폭로는 대부분 묻히기 마련이다.

 ‘아직까지는 증거가 없는 의혹일 뿐이야.’

 프리머스 펀드의 자산은 서류상으로는 완벽하다. 문제는 서류에는 있는 걸로 나오는 자산이 실제로는 없다는 것.

 ‘자산 실사만 피하면 돼.’

 거래내역을 확인하고 보유자산을 실사한다는 것은 꽤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한 일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양정욱 전무는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일이 터지면 그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박태일은 얼굴에 흥건한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필요한 서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보내드리겠습니다. 바로 리포트 취소하고, 정정보도 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 * *

 [DA증권, 프리머스 펀드의 자산은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발표!]

 [해당 리포트는 직원의 개인적 실수. 절차에 따라 징계할 것]

 [DA증권, 언론사에 정정보도 요청!]

 [프리머스 자산운용사, 근거 없는 의혹에 대해 법적 조치 취할 것!]

 [관련 기업들 사실무근이라고 밝혀······]

 점심시간에 갑자기 벌어진 일에 DA증권은 난리가 났다.

 기사가 쏟아지자 보합세이던 DA증권 주가는 갑자기 5퍼센트 넘게 하락했다.

 DA증권 측에서는 재빨리 홈페이지에서 리포트를 삭제했지만 이미 언론사를 통해 보도가 나갔고, 주식갤러리 등을 통해 재생산되는 중이다.

 사방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다들 진땀을 빼며 고객들에게 설명했다.

 “직원의 실수입니다. 펀드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럼요. 이건 미국이나 유럽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한국이 망하면 망했지, 미국이나 유럽이 망하겠어요?”

 “펀드 부실이요? 그럴 리가요! 프리머스 펀드만큼 안전한 금융상품도 없습니다.”

 “가입하셨을 때 설명드렸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펀드입니다.”

 “직원이 다른 펀드와 착각해 리포트를 잘못 올린 모양입니다.”

 홍보팀은 언론사에 연락해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해당 리포트는 어디까지나 직원의 개인적인 실수였다고 선을 그었다.

 회사 전체가 발칵 뒤집힌 가운데, 비난은 일을 터트린 리서치부서로 쏟아졌다.

 대기업 홍보팀과의 점심약속 때문에 외부에 나와 있던 윤영철 부장은 양정욱 전무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죄, 죄송합니다, 전무님. 지금 당장 다른 리포트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더 이상 문제가 없도록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점심을 먹다 말고 회사로 뛰어온 윤영철 부장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한미루 이 새끼 어디 갔어!? 당장 잡아와!”

 * * *

 난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 리포트를 업로드한 다음, 회사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아무래도 장소가 여의도다 보니 다들 점심을 먹으면서도 주식, 펀드, 부동산, 환율 등에 대해 떠들어댔다.

 핸드폰은 꺼놓았고 기사도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쯤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대략 짐작이 갔다.

 입맛은 별로 없었지만 열심히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뭔가를 하려면 일단 배부터 채워야지.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인데.”

 그때는 말 잘 듣는 직원이었다.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러다가 그 모양이 됐지만.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난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시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 회사로 돌아갔다.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 먹으러 나올 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리서치부서로 향하는데 내 얼굴을 아는 직원들이 놀라 수군거렸다.

 난 신경 쓰지 않고 부서로 돌아갔다. 입사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한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얼차려라도 받듯 부서원 전원이 일렬로 서서 집합해 있고, 그 앞에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윤영철 부장이 서 있었다.

 “한미루 어디 갔냐고!”

 동호 선배는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핸드폰을 꺼놓은 것 같습니다.”

 “그럼 나가서 직접 찾아와!”

 “예?”

 “어디든 갈 만한 데 찾아서 멱살 잡고 끌고 오라고!”

 “아, 알겠······ 아!”

 나를 본 동호 선배가 놀란 표정을 짓자, 모두가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영철 부장이 날 보자마자 눈을 치켜떴다. 뺨이라도 후려갈길 기세였기에 난 재빨리 허리를 숙여 자진납세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죄송!?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예. 원래 리포트는 결재를 맡고 올려야 하는데, 급하다고 판단돼서 제가 먼저 올렸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부장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서, 설마 잘못했다는 게 그게 다야?

 난 눈을 껌뻑이며 되물었다.

 “혹시 제가 또 잘못한 게 있나요?”

 “내용이 문제잖아, 내용이! 대체 그 리포트는 뭐야!?”

 난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그거요? 일전에 보고 드린 내용 그대로입니다.”

 “뭐?”

 “프리머스 펀드에 심각한 부실이 있습니다. 당장 판매 중지시키고 감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너, 너······.”

 윤영철 부장이 소리치려는데, 40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다름 아닌 양정욱 전무다.

 평소 소탈한 행동과 친근한 모습으로 일반 직원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지만, 지금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윤영철 부장에게 말했다.

 “직원 관리 좀 잘하셔야겠네요, 부장님. 아랫사람 하나 제대로 관리를 못하는데 앞으로 큰 일 하시겠어요?”

 그 말에 부장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전무님!”

 양정욱 전무는 굳은 표정과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보상을 요구하는 직원과 유족들을 바라봤을 때의 얼굴과 비슷하다. 이게 이 사람의 원래 모습이겠지.

 “혼자 판단해서 하진 않았을 테고. 누가 지시했지?”

 내가 쓴 리포트는 신입사원 혼자 생각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걸 허락 없이 올리는 것 역시 신입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누가 배후에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지시라니요? 전무님께서 시키신 대로 했을 뿐입니다.”

 “내가 시켰다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회사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증권사는 고객의 자산을 보호하고 신의성실원칙에 따라 운용할 책임이 있다고. 전무님 말씀대로 당장은 손실을 입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이익으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