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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A카드 상무 (1) (10/529)

 10화. DA카드 상무 (1)

 DA카드.

 DA금융그룹에 속한 금융지주계열 카드사로 주로 DA은행, DA저축은행, DA증권 등과 연계해 카드를 발급한다.

 카드사의 주 수입은 가맹점에서 받는 결제수수료다. 매년 카드 결제액이 느는 만큼 카드사의 매출과 수익 역시 늘어가는 추세였다.

 이익률이 높으나 손해 볼 위험은 거의 없는 만큼, 대체로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로 불렸다.

 하지만 카드사들이라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업계 내의 치열한 경쟁이다. 웬만한 재벌그룹은 카드사를 가지고 있고, 각자 혜택을 내세우며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애썼다.

 이에 대응하여 점유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DA카드는 기존 카드 라인업을 정리하고 신규 카드 출시를 서둘렀다.

 대기업들과 연계해 가맹점을 확보하고 포인트 혜택을 개편하는 등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하지만 아직 카드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

 여러 차례 회의 끝에도 이렇게 할 만한 이름이 나오지 않자, DA카드에서는 상금 1천만 원과 포상휴가를 내걸고 사내 공모전을 열었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업무능력을 내보일 수 있는 기회로 여겨져, 여러 직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이름을 제출했다.

 신규 카드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양자은 상무는 직접 메일을 확인했다.

 ‘플래티넘 카드, 제로 카드, 제트 카드, 알파 카드, 트로피 카드, 톡톡 카드, 에픽 카드, 레전드 카드, 재즈 카드, EDM 카드.’

 벌써 수십 개의 메일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그냥 컨설팅 업체에 맡겨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메일을 열어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놀라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바로 이거야!”

 양자은 상무는 바로 회의를 열었다. 직원들이 급하게 모인 가운데 그녀는 화이트보드에 새로운 카드 이름을 적었다.

 [DA DREAM 카드]

 * * *

 DA카드의 본사는 남대문에 위치해있다.

 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서울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집무실에 중년여성이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DA증권 리서치부서 사원 한미루입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반가워요, 미루 씨. 음료는 뭐가 괜찮으세요?”

 “커피로 하겠습니다.”

 직원은 나가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TV로는 가끔 봤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나이는 50세지만 반듯하게 세운 허리와 관리 잘한 피부 덕분인지 그보다 젊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양자은.

 DA카드의 상무이자 양현성 회장의 장녀다. 양정욱 전무와는 일곱 살 차이로 그녀가 누나다.

 지위도 지위지만 회사가 달라 내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무작정 찾아왔다면 만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접촉할 방법을 궁리하는데, 마침 DA카드에서 상금을 내걸고 새로운 카드의 네이밍 사내공모 중이었다.

 이맘때쯤 신규 카드가 출시됐던 게 떠올랐다. DA증권에서도 CMA 계좌와 연계해 신용카드를 발급했고 나도 한 장 발급받았었다.

 혜택도 좋고 마케팅도 잘해서 꽤 큰 히트를 쳤지.

 난 재빨리 메일을 보냈고, 그 결과 이렇게 그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설마 증권사 직원이 공모전에 참여할 줄은 몰랐어요.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이라고 했죠?”

 “예.”

 양자은 상무는 나를 보며 회상하듯 말했다.

 “정말 좋을 때네요. 저도 신입사원으로 처음 회사에 발을 내디뎠던 때가 있었는데.”

 “DA은행에 입사하셨죠. 그곳에서 만나신 분과 결혼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재계 쪽과 정략결혼을 하는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그녀는 신입사원 시절 만난 평사원과 결혼했다.

 양자은 상무는 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연수원에서 처음 보고는 너무 잘생겨서 한눈에 반했어요. 혹시 다른 여자가 낚아 채가지는 않을까 걱정돼서 바로 사귀자고 고백했죠.”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양현성 회장이 반대했다고 하는데, 딸의 뜻을 꺾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요. 덕분에 좋은 이름을 찾게 돼서 다행이에요. 너무 뻔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뻔하다는 건 그만큼 간결하고 익숙하다는 뜻이니까요.”

 내가 제출한 이름은 ‘다 드림(DA DREAM) 카드’.

 ‘DA카드에서 발행한 드림(Dream) 카드’라는 의미와 ‘고객에게 혜택을 다 드리는 카드’라는 의미가 결합됐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름인데요.”

 내가 생각해낸 건 아니지만.

 양자은 상무는 웃음을 지었다.

 “대연그룹에서 백화점을 낼 때 프랑스의 유명 컨설팅 업체에 수백만 달러를 내고 네이밍을 의뢰했어요. 그래서 나온 이름이 뭔지 알아요?”

 대한민국 사람 중 대연그룹이 운영하는 백화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대연백화점인가요?”

 내 말에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들으면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름이에요. 그러한 이름을 생각해내는 게 힘든 일이죠.”

 “혹시 저 말고 비슷한 이름을 제출한 사람은 없었나요?”

 “사실은 하루 뒤에 다른 직원이 같은 이름을 제출했어요. 로고까지 제작해서요.”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태블릿으로 메일을 보여주었다. 내가 기억하는 폰트와 로고 그대로다. 빨리 메일을 보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주앉기 힘들었을 테니.

 “노력한 직원에게는 안타깝지만, 먼저 제출한 사람을 당선자로 선정하는 게 맞겠죠.”

 양자은 상무는 조금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아마 폰트와 로고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겠지.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 직원을 당선자로 선정해야 합니다.”

 양자은 상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인가요?”

 “전 DA카드 직원이 아니니 애초에 사내공모전의 참가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네이밍은 이름뿐 아니라 폰트와 로고가 결합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직원이 당선되는 게 맞습니다.”

 “상금이 걸려있는데도 괜찮나요?”

 “예.”

 직장인에게 1천만 원이면 큰돈이다.

 하지만 이 이름은 내가 생각해낸 게 아니다. 열심히 노력한 직원의 성과를 가로챌 것까지는 없겠지.

 양자은 상무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메일에 저를 꼭 만나 할 얘기가 있다고 했죠.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제부터 본론이다.

 난 준비해온 자료를 내밀었다.

 “이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그녀는 내가 내민 자료를 훑어보았다. 자료를 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시시각각 변했다.

 “이게 뭔가요?”

 “프리머스 펀드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작성자는요?”

 “접니다.”

 그녀는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증권사 신입사원이 뜬금없이 이런 걸 만들어와 내밀었으니 황당하겠지.

 난 재빨리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프리머스 자산운용사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양자은 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알고 있어요. 박태일 대표가 운용하는 곳이죠. 이번에 DA증권이 독점으로 판매하고 있고.”

 “맞습니다.”

 하긴 자산운용사 중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니, 금융권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다.

 “그 펀드에 부실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예.”

 난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을 정리해서 말했다. 가만히 얘기를 듣던 그녀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니라 부실기업의 사모사채에 투자했을 수도 있다구요?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일부 자산을 다른 곳에 투자했다는 건가요?”

 아마 처음 시작은 그랬을지 모른다. 고위험 투자였던 만큼 큰 수익을 얻기도 했겠지. 그러다가 지금까지 이르게 된 거고.

 “일부 자산이 아니라 전체 자산에 부실이 있습니다. 또한 조직적인 횡령과 배임 행위도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설사 부실이 있다고 해도 운용사 책임이지, 판매사 책임은 아닐 텐데요.”

 “그건 정상적인 투자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얘기죠. 이게 사기라면 누군가는 투자자들에게 배상을 해줘야 합니다. 물론 1차 배상책임은 당연히 운용사에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이 판매사를 믿고 구매한 만큼 증권사가 먼저 돈을 물어주고, 운용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 될 겁니다. 문제는 프리머스에 돈이 얼마나 남아있냐는 거죠.”

 “DA증권이 입게 될 리스크 익스포저가 어느 정도라는 건가요?”

 “현재까지 DA증권에서 판매된 게 5천억 원 규모고, 현재도 계속 판매 중입니다. 그중 4천억 이상이 부실로 추정 중입니다.”

 내 말에 그녀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후에 터질 금액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이 정도만 해도 DA증권 시총을 뛰어넘는 액수다.

 사실 나도 결과를 알기에 이렇게 말하는 거지, 몰랐다면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상식 밖의 일이다.

 프리머스의 운용자산 규모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런 곳이 고객 돈으로 대놓고 사기를 쳤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않나요?”

 “상무님께서 조금만 조사해보시면 제 말이 맞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녀 정도 위치쯤 되면 다양한 경로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양자은 상무는 다 읽은 자료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정말로 이렇게 큰일이라면 어째서 회사에 보고하지 않은 거죠?”

 “사실은 부장에게 올렸다가 바로 퇴짜 맞았습니다. 아시겠지만 여기에 양정욱 전무님이 관련되어 있다 보니 다들 조심스러워하더군요.”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설마 저보고 이걸 터트리라는 건가요?”

 만약 그녀가 이 문제를 건드리면 양정욱 전무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일이 잘못될 경우 지금의 자리마저 위험해질 테고.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 건은 제가 터트릴 생각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살짝 열렸다. 비서는 그녀에게 말했다.

 “10분 후에 회의 시작입니다.”

 양자은 상무는 입을 열었다.

 “취소하세요. 그리고 제가 얘기할 때까지는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비서는 문을 닫고 나갔고, 양자은 상무는 나를 쳐다보았다. 카드 이름 공모전 때문에 만남을 가졌는데 이런 얘기를 꺼내니, 뭐 하는 놈인가 싶겠지.

 “이 문제를 직접 터트리겠다구요?”

 “예.”

 내가 하려는 행동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내부고발이다. 결과적으로는 회사를 위하는 일이라 한들, 그걸 누가 알아주겠는가? 욕이나 처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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